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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 의존성

경로의존성에서 넘어옴
1. 개요2. 경제학적 설명3. 원인
3.1. 인간의 본성3.2. 매몰비용3.3. 욕구의 다각화
4. 예시
4.1. 반례
5. 극복 방법6. 타파해야 하는가?7. 여담8. 관련 속담9. 관련 문서
9.1. 유사 현상

1. 개요

경로의존성(, path dependence)은 과거에 형성된 관행이나 제도, 규격, 제품 등에 익숙해져 이에 의존한 탓에 시간이 지난 후 이것이 비효율적인 것으로 밝혀지거나 변화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을 때에도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사회경제적 현상이다.

법률이나 제도, 관습이나 문화, 과학적 지식이나 기술에 이르기까지 인간 사회는 한번 형성되어 버리면 환경이나 여러 조건이 더 좋게 변경되었음에도 종래부터의 내용이나 형태가 그대로 존속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같이 과거 하나의 선택이 관성 때문에 쉽게 달라지지 않는 현상을 '경로의존성'이라고 한다.#

2. 경제학적 설명

신고전파 경제학에서는 시장에 여러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면 가장 우수한 것이 널리 보급되어 시장 점유율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일도 많다. 그 상황을 설명하고자 등장한 새로운 개념이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폴 데이비드 교수와 브라이언 아서 교수가 주창한 '경로의존성'이다.

그래서 경영학에서는 '선점 우위 효과(first-mover advantage)'란 용어가 있다. 일찍 진입할수록 기술 우위를 갖는 것은 물론, 유통망과 충성 고객 확보도 쉽기에 설령 기술적으로 우위를 보이는 후발 업체가 탄생한다한들 유통망과 인지도가 있기에 쉽게 밀려나지 않는다. 국내 한 홍보대행사 대표는 기업 이미지는 '감성의 영역'임을 강조했는데, 특히 IT 제품과 서비스는 기존 이용자가 또 다른 이용자를 끌어들이는 ‘네트워크 효과’까지 발휘돼 선점 우위 효과의 강도가 더 세다.

선점 우위 효과는 유행을 따라 남을 모방하고 동조하는 사회적 현상인 '밴드왜건 효과(Band wagon effect)'로 이어진다. 사람들이 음악대에 몰려든 사람을 보고 다시 모여들어 큰 흐름을 이루듯이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에 편승하는 군중 심리 현상으로서 경제학적으로는 소비자가 어떤 재화를 소비할 때, 다른 소비자들이 많이 소비하는 재화에 영향을 받아 그 소비 형태를 따라가는 현상으로 정의한다.

3. 원인

3.1. 인간의 본성

사람은 언어든 문화든 한번 각인되면 잘 바뀌지 않는다. 특히 습관화된 행동은 의식적으로 바꾸기 어려워 경로의존성을 초래한다. 습관은 무의식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1] 이러한 현상을 각인 효과라고 한다.[2]

인간, 더 나아가 생물의 기본적인 본성 중 하나인 적응은 경로의존성이 나타나게 하는 요인 중 하나이다. 어떠한 환경에서 불편함을 맞닥뜨리면 인간은 거기에 적응하게 된다. 그렇게 적응하고 나면 불편함이 체화되기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나중에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등장해도 이를 활용하려는 욕구가 잘 들지 않는다.[3] 이를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비효율의 숙달화'로 정의했다. ##

익숙한 행동이 정서적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가령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읽는 데 익숙한 세대라면 종이 신문을 보는 게 불편하지 않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신문에 익숙한 세대들은 신문을 읽는 게 스마트폰을 보는 것보다 편하다고 생각할 뿐 아니라 신문지 특유의 향이나 넘기는 소리, 촉감에도 편안함을 느끼곤 한다.

항상성이라는 심리학 개념도 경로의존성의 요인 중 하나이다. 항상성이란 상황이 바뀌어도 한 번 친숙해진 것은 늘 동일하게 지각되는 현상을 말한다. 가령 마이크 타이슨이나 무하마드 알리 같은 이들은 지금은 최강자가 아니지만 전설이 되어 여전히 최강자인 것처럼 느껴진다. '원조'는 그런 추억 보정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을 끌어당기게 된다.

3.2. 매몰비용

경로를 바꾸는 과정에서 드는 수고와 비용에 비하면 얻는 것이 적다고 판단하면 기존의 경로를 바꾸지 않는다. 언어와 풍습과 같은 것은 경로를 바꾸는 수고가 막대하기 때문에[4] 역사적인 시간이 경과되어도 잘 바뀌지 않는 경향이 있다.

또한 새로운 것을 접할 때 적응하는 동안은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심적 장벽이 형성되어 기회비용이 늘어난다. 특히 신발이나 옷 같은 것은 아무리 잘 만들어진 것이라 해도 처음에는 신으면 좀 불편하고 몸에 맞추는 시간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 그래서 지금 익숙한 것에 큰 불편이 없으면 굳이 바꿔야 하나 하는 마음이 더 커질 수 있다. 그러다 적응에 실패하면 '구관이 명관이다'라며 되돌아가기도 한다.

3.3. 욕구의 다각화

의식주 등 저차원적 욕구는 대개 비슷하지만, 고차원적 욕구로 올라갈수록 만족을 느끼는 지점이 천차만별로 달라져 변화의 속도가 느려진다.[5] 가령 삐삐에서 휴대폰으로 전환될 때를 보자. 호출만 하고 내용 전달은 전화에 의존하던 삐삐보다[6] 휴대폰은 직접 연락을 할 수 있다는 막대한 편의성을 제공하므로 휴대폰이 출시되자 사람들은 모두들 휴대폰을 구매했다. 휴대폰을 쓰기로 변화함으로써 "직접 연락을 할 수 있다"라는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기 때문이다.

반면 요즘 스마트폰들은 새로운 게 나온다고 해서 그 정도까지 사람들이 많이 핸드폰을 바꾸지 않고 어지간해서는 쓰던 걸 계속 쓴다.[7] 이미 기본적인 불편함은 사라졌고 오늘날의 신형 스마트폰은 고차원적인 기능을 좀 더 개선했을 뿐이기 때문에 개인별로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기기 변경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4. 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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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습과 문화적 정서: 경로의존성이 강하게 나타나는 분야이다. 소달구지보다 경운기가 더 뛰어나듯 기술은 더 좋은 기술이 무엇인지 명확하지만, 문화는 어떤 문화가 더 좋은지 그렇게까지 가시적으로 인지되지 않기 때문이다.[8]
    • 악습: 안 좋은 걸 알고도 지속하는 것은 대체로 '옛날부터 해왔으니까'라는 경로의존성 때문이다.
  • 법률: 법률은 기본적으로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지 않으면 이중잣대 논란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판례가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 취향: 개개인의 취향에는 별 이유가 없이 정해져서 유지되는 것이 많으며, 손괴, 절도 같은 범죄가 아닌 이상은 어느 취향이 더 좋거나 옳지도 않아, 곧 우열을 따질 요인과 강요할 요인이 없기 때문에 바꿀 필요성도 크지 않다.[9]
    • 비틀즈를 듣고 자란 서구 사람들은 팝 음악을 선호하며 노인들도 팝 음악을 듣는 것에 익숙하다. 트로트를 듣고 자란 한국의 노인들은 여전히 트로트 가수와 노래를 선호하며 편안함을 느낀다.
  • 진화: 생물의 진화는 기본적으로 경로의존적이다. 자녀 세대의 생물은 보통 부모와 같은 형질로 태어나며, 돌연변이 같은 우연한 사건으로만 변화할 수 있을 뿐, 애초에 의지적으로 부모와 다르게 태어날 수도 없다.
  • 키보드 자판: 표준에 가까운 QWERTY 자판보다 편리하고 효율적인 드보락 자판이 개발되고 상용화되었으나, 쿼티 자판이 손에 익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굳이 새로운 배열을 익히려 하지 않아 드보락 자판은 보기 힘들다. 한국에서는 두벌식 자판과 세벌식 자판이 비슷한 위치이다. 세벌식 자판 배열이 효율적이기도 하고 심지어 먼저 나왔지만, 두벌식 자판이 표준으로 지정되면서 컴퓨터의 보급과 함께 세벌식을 압도하는 결과를 낳았다.
  • 일상 생활
    • 처음으로 무엇인가를 접할 때 크게 고생하면 트라우마가 되어 그것을 멀리하는 게 경로로 굳어지곤 한다.
      • SBS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 나와 있던 사례 중에는 어느 가게집 발발이 개가 특정 오토바이만 지나가면 미친 듯이 짖어대며 뛰쳐나가 맹렬한 추격전을 벌여 방송사에 제보했다. 제작진이 알아보니 그 행동의 원인은 그 개가 어렸을 때 그 오토바이를 몰던 배달부에게 걷어차인 것이다. 그래서 동물 전문가를 초청해서 화해를 주선했다. 처음에는 배달부가 호의를 보여도 잔뜩 경계했지만 차츰 노력을 들이니 점차 개도 짖지 않게 되었다.[10]
    • 어머니가 지저분한 자녀 방을 깔끔하게 정리정돈하자 기존 배치에 익숙해져 있던 자녀가 짜증을 내는 현상
      • 좀 지저분해도 익숙한 게 편해서인데, 사실 미관과 효율성은 반드시까지는 비례하지 않기에 이 경우에는 자녀의 물건 배치가 보기엔 더러워 보여도 더 효율적인 상태일 수 있다. 그런 경우는 "방은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라는 고정관념이 도리어 비효율적인 책상 배치를 만드는 경로의존성의 예로 볼 수 있다. 시내에 돌아다니려고 옷을 입을 때 안전성이나 편리성보다 멋을 우선하는 것도 후자의 예이다.
    • 01X 번호 폐지에 반발한 현상은 경로의존성의 예이긴 하나 약간 부연이 필요하다. 핸드폰 번호는 원래부터가 어떤 번호를 쓴다고 더 편리해지는 그런 개념이 아니다. 반면에 번호를 바꾸면 연락처를 새로 알려줘야 하는 불편함이 발생하므로 기본적으로 쓰던 번호를 계속 쓰는 경로의존 현상이 일어나는 게 당연하다.
    • 토박이: 한 동네에서 태어나거나 정착해서 살면 그 환경에서 이미 익숙해진 나머지 다른 곳으로 이사하기가 어렵다.
    • 10진법: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경로 의존성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10진법을 사용하는 이유는 10이 수학적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단순히 우리에게 열 개의 손가락이 있기 때문이다. 2와 5로만 나누어지는 10은 분수의 소수 표현에 불편함이 많다. 당장 원이 100도나 400도가 아닌 360도임을 생각해 보자. 원이 100도였다면 1/3을 유한소수로 표현하지 못하는 10진법의 특성상 특수각의 표기가 굉장히 불편해졌을 것이다. [11]
      마찬가지로 길이나 무게의 단위 또한 10진법보다 12진법이나 24진법이 더욱 편리하겠으나 세상의 모든 부분이 이미 10진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미터법이 정착된 것이다.
  •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은 모든 단위에 미터법을 사용하지만, 미국을 포함한 몇몇의 국가만이 독자적인 단위법을 사용한다. 미국 역시 단위법을 바꿔야 한다는 필요성은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 단위계로 생산하는 볼트나 너트, 나사 같은 부품과 여러가지 제품 모두 미터법으로 전환하면 사회적, 정치적인 비용뿐만 아니라 천문학적인 경제 비용이 들어서 하루 아침에 전환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게다가 이미 세계 군사 경제 내수 최강국이라서 타국에 비해 아쉬운게 적어 변화의 필요가 적다.

4.1. 반례

경로의존성이 작용하더라도 변경시 손해가 크지 않거나 특별한 계기가 있을 경우 새로운 관습이 정착하는 사례도 있다.
  • 기술적 실업
  • 단발령: 처음에는 반발이 심했으나 현대 한국에서 완전히 정착되었다. 오히려 요즘엔 더벅머리를 하고 다니면 이상하게 쳐다볼 정도가 되었다.
  • 비대면 업무: 코로나 사태로 인해 기업들이 평소는 미뤄두던 자택 근무나 화상 회의 등을 과감히 실행해 보게 되었는데, 괜찮다고 판단한 기업들은 코로나가 끝나도 그전대로 돌아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회사일은 회사에 와서 해야지'라는 문화적 경로의존성때문에 재택근무나 화상회의 기술이 퍼지는것이 멈춰있다가 '모임'이 금지되어 강제로 체험한 뒤에는 '굳이 예전으로 돌아갈 필요 없지 않나'라는 새로운 경로의존성이 생겼다고 볼 수도 있다.
  • 현대식 복장/건축: 근대화가 이루어지자 세계 곳곳의 전통 옷이 거의 사라지고 다들 현대식 복장을 입게 되었다. 이는 현대식 복장이 저렴하고 편리하다는 막대한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 건축 역시 마찬가지이다. 반면 식생활 면에서는 근대적 식단이 그렇게까지 더 뛰어난 것은 아니기 때문에[12] 경로의존적 경향을 보인다.

5. 극복 방법

경로의존성을 타파하기 위해서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속담처럼 처음 시작할 때의 기세, 곧 초심을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런데 이때 첫 기세보다도 중요한 것은 꾸준히 하는 것이다. 새해에 다들 굳은 결심을 세우지만 작심삼일로 끝나고, 무슨 사건이 터질 때 여론이 달아오르지만 금세 식어버리는 것처럼 갑자기 생긴 의욕은 사라질 때도 갑자기 사라질 수 있다. 오래도록 길들여져 있던 종교나 관습, 도구, 인연 등을 하루아침에 끊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의지가 꺾일 때마다 초심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13]

때로는 점진적인 변화가 필요할 때가 있다. 급격한 변화일수록 그만큼 스트레스와 저항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개인 차원은 아니라 사회적 관성을 타파하려 할 때에 많은 사람이 얽힌 일이므로 단계적 접근이 더더욱 요구된다. 쇠뿔을 단김에 빼려다 소를 죽일 수도 있고.

다이어트 등 건강 관련 목표는 우리 몸의 경로의존성이 굳건함을 특히 유념해두어야 한다. 다이어트는 좀만 방심하면 요요 현상이 온다는 것이 유명하다. 술, 담배, 약물이나 게임, 일에 중독된 사람들은 단계적으로 서서히 줄여가며 끊어가는 게 원칙이다. 니코틴이나 알코올 중독은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경로 재설정이 힘들다. 담배 의존증이 심한 사람은 금연을 시작하면 처음에는 도무지 살아가지 못할 것 같은 감정마저 받는다. 그래도 금연 클리닉의 스케줄대로 차근차근 진행해 나가면 어느새 금연에 성공할 수도 있다. 기사를 보면 다이어트를 하려면 적어도 2주는 꾸준히 습관적으로 노력하라고 한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처럼 '마의 2주'를 넘기는 게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다.

바꿔야 한다고 강하게 마음을 먹으면 쉽게 바꿀 수 있으리라고 흔히들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의 의지는 생각보다 강하지 못하다. 채근담에 "한때의 흥분으로 일을 시작하는 사람은 일을 시작하자마자 곧 멈추게 된다."라는 말이 있는 것은 순간의 의지가 오래 지속되지 못함을 지적한 것이다. 그래서 의지만 믿기보다는 습관으로 만들어 무의식적으로 행하게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14] 스스로에게 적절한 보상을 주는 것도 좋은 습관을 만드는 데 필요할 수 있다.[15]

목표를 적당한 수준으로 잡는 것도 중요하다. 가령 출근 시간을 정시보다 10분 정도 앞당기는 것 같은 작은 목표부터 잡는 것이다. 게임 난이도가 너무 높으면 포기해버리지만 약간 높은 레벨이면 도전 욕구가 활활 타오르는 것과 같다. 헬스장을 다니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헬스 마니아들이야 처음부터 높은 운동량을 목표로 해도 괜찮겠지만, 운동을 싫어하지만 건강관리를 위해 억지로 운동하려는 사람은 예열하듯이 아주 서서히 낮은 단계의 운동량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농심 신라면의 미국 시장 성공기는 경로의존성을 어떻게 극복하는 게 좋은지를 잘 보여준다. 미국에 이미 진출해 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일본 라면과 유사한 제품을 출시하면 단기적인 매출을 가져올진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농심의 브랜드가 사라질 것으로 판단했다. 때문에 일본 라면과 철저히 차별화하는 방향을 택했는데, 일본 라면에 익숙한 미국 소비자들의 경로의존성을 단기간에 바꿀 수는 없으니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한 곳에 집중하여 신라면을 정착시킨 뒤 인접 지역을 공략하는 단계별 전략을 펼쳤다. 이 전략은 성공하여 처음에 낯설어하던 미국 소비자들도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신라면의 맛에 매료되기 시작했다고 했다.

압도적으로 성능이 좋으면 경로의존성을 극복할 수 있다. 아이폰이 처음으로 발매되자마자 순식간에 유행해서 피처폰이 단종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2020년대에는 아이폰의 세계적인 흥행과 애플 특유의 폐쇄적인 사용자 환경 때문에 아이폰 사용자들이 오히려 경로의존성에 빠지곤 한다.

6. 타파해야 하는가?

더 나은 방법이 있는데도 비효율적인 경로를 유지하는 것은 일견 바로 타파해야 할 현상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단언할 수는 없다.

일단 원인 문단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경로의존성은 인간의 본능에 의한 면이 상당하므로 이를 바꾸려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리고 더 나은 방법이라는 것이 얼마나 더 나은 것인지도 불확실할 때가 많기에 비효율적이긴 해도 그렇게까지 큰 문제가 되지 않으면 기존의 경로를 유지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가령 쿼티 자판이 비효율적이라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지만 바꾼다고 얼마나 더 빨라질지도 알 수 없으며 이제 와서 바꾸려 해봐야 지나치게 많은 비용이 발생하므로 굳이 바꿀 이유가 없다.

또한 변화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행복도를 높일 때도 있다. 실제로 전반적인 구성원의 행복 수준이 높은 곳은 활발히 사회가 바뀌는 곳보다는 전통적인 삶에 머무르는 곳에서 더 많이 나타난다. 이는 분명 변화와 위협 이 두 가지가 인간에게 생물학적으로 작용하는 면에서 공통점이 있음을 시사하며 이는 다시 무조건적인 변혁과 개혁이 능사인 것은 아님을 또 다시 알려 준다. 또한 급격한 변화는 과거의 향수를 일으켜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 태미 에릭슨은 오늘날 급속한 사회 변화로 말미암아 세대 갈등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는데(#), 경로에 의존하는 것이 이 현상을 완화해줄 수도 있다. (또 다른 관련 글)

6.1. 시장경제 관련

경로의존성을 타파해야 한다는 주장은 시장 속 공급자의 주장인 것이 많다. 선발 주자이건 후발 주자이건 공급자는 수요를 꾸준히 만들어 물건/콘텐츠를 꾸준히 팔아야 살아남는 입장이다. 소비자야 효율이 보다 낮은 기존 물건/콘텐츠를 이용해도 좀 불편하고 말 뿐이지만, 공급자는 시장 질서 안에서 자기네 물건/콘텐츠를 꾸준히 못 팔면 아예 망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후발 주자로서는 자사 제품이 경로의존성 때문에 평균적인 품질임에도, 심지어 비용을 들여 품질을 높이기까지 했는데도 잘 팔리지 않는 것이 억울한 진입장벽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후발 주자가 선발 주자의 것을 공격하기 위해 "지금 저 회사의 제품이 많이 팔리는 것은 예전부터 그래왔기 때문이고(경로의존성) 품질은 그저 그렇다. 우리 회사는 잘 안 알려져 있어서 그렇지, 우리 것 품질이 더 좋다." 식으로 선전하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나아가 선발 주자이건 후발 주자이건 기존에 물건을 가진 사람들도 구매하게 유혹하려고 "아직도 그런 물건을 쓰세요?", "지금 쓰는 건 낡았으니 빨리 새로운 것으로 바꿔야 합니다." 식으로 기존 제품을 그대로 쓰는 것이 비효율적인 행위인 것처럼 새로움에 호소하기도 하며, 계획적 구식화를 조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공급자의 입장일 뿐이므로 이러한 광고에 지나치게 휘둘리면 크게 불편하지 않은데도 물건을 바꾸는 과소비가 될 수 있다. 또한 불필요하게 쓰레기를 발생시켜 환경 문제를 악화할 수 있으며, 환경 문제 말고도 다시 구할 수 없게 되어서 상술된 향수가 일거나 창작물에 오류가 생기는 등 문제도 있다.

그리고 변화의 초점 역시 공급자의 편의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경로 의존적인 과거 방식이 더욱 편리한 경우도 많다. 가령 모바일 기기와 데스크톱 컴퓨터의 인터페이스를 통일하는 것은 공급자의 편의를 위한 변화이고, 소비자로서는 디스플레이 크기가 다른데 동일한 UI를 쓰는 것이 아주 불편하다. 데스크톱 컴퓨터의 모니터가 아무리 커봐야 필요 이상으로 큰 모바일 특유의 글씨와, 옆으로 넓은 모니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세로집중형 UI, 눈아플 정도로 원색의 큰 아이콘들이 화면을 뒤덮을 뿐, 정작 그 큰 화면에 표시되는 정보량은 손바닥만 한 모바일 기기에 표시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당연히 데스크탑 이용자는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변화를 주도하는 공급자들은 종종 '모바일에 익숙한 MZ 세대들에게 맞추어 변화시켰다' 등의 이유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웹 개발 편의성을 확보하고 유지보수 비용을 낮추려는 공급자의 편의를 도모했을 뿐이다.[16] 소비자 편의성보다 개발자 편의성을 더 중시하는 처사라 할 수 있다. 정작 모바일 화면 통합의 핑계로 삼는 그 MZ 세대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유튜브는 2005년 최초 설립 당시부터 지금까지도 데스크탑 버전 UI의 근본적인 기능적 위치와 크기들은 거의 바꾸지 않으면서 경로의존성을 유지한다.

7. 여담

반대말인 '경로무관성(path independence)'은 수학 또는 물리에서 주로 사용하는 용어로서 결과가 경로에 무관한 경우[17]를 나타낸다. 경로에 무관할 경우는 '보존장(conservative vector fields)'의 개념을 사용할 수 있다.

위키 사이트에서도 종종 발생하는 현상이다. 본 위키를 기준으로 설명하면 1주일 이상 지속된 서술은 그 내용이 맞든 틀리든 일단 기존 서술로서 지위를 인정받으며, 이와 관련된 편집 분쟁이 발생하여 토론이 열리면[18] 신규 서술을 하려는 측에서 먼저 근거를 가져와야 한다. 그러나 여러 증거를 제시하여 새로운 서술로 교체하는 것은 노력을 요하는 일이기 때문에 어지간히 큰 문제가 있지 않는 한 기존 서술이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19] 특별한 근거 없이 서술이 자주 바뀌면 위키 전반의 내용 안정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방침이기는 하다.[20]

8. 관련 속담

  •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많이 먹는다: 어떤 일이든지 늘 하던 사람이 잘 한다는 말.
  • 고기도 저 놀던 물이 좋다: 낯익은 곳이 더 좋다.

9. 관련 문서

9.1. 유사 현상


[1] 이를 보여주는 예로 일 중독과 의식 장애의 하나인 '직업 섬망'이 있다. 흔히 '습관성 직업병'으로 불리는 후자는 환자가 자기 직업에 관한 거동이나 작업을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일이다. 목수인 환자가 나무를 깎는 시늉을 하거나, 신문을 읽지 못하는 인지상태인데도 신문을 거꾸로 들고 마치 읽는 것처럼 진지하게 쳐다보는 것이다. 나무를 깎는 일, 신문을 보는 일이 무의식 차원에서 반복되는 현상이다.[2] 어린 동물이 태어나자마자 본 존재를 엄마로 여기는 현상이 각인 효과의 유명한 예이다.[3] 가령 주판에 익숙해진 사람은 주판으로도 이미 계산을 빠르게 할 수 있으므로 더 편리한 도구인 계산기의 도입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하곤 한다.[4] 언어와 풍습은 이와 더불어 집단의 정체성과도 결부되기 때문에 변화에 대한 심적 저항이 크다는 또 다른 요인도 있다. 가령 재외국민으로 사는 상황이라면 언어/풍습을 바꾸는 것이 막대한 이득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변화의 동인은 충분하다. 하지만 그러면 집단의 정체성이 희석된다는 이유로 출신국의 언어/풍습을 유지하곤 한다.[5] 후진국 시절에는 대개 전체주의 성향을 보이다가, 선진국으로 발전하면 개인주의 성향이 되는 것은 이러한 원인도 있다. 후진국 시절에는 "GDP 1만 달러 달성"으로 모든 국민을 만족시킬 수 있지만 선진국에 이르면 모든 국민을 만족시키는 어젠다의 형성은 거의 불가능해진다.[6] 사실 휴대폰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지, 삐삐 역시 등장 당시에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 전에는 공중전화나 실내 전화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지만 휴대하면서 호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매우 혁신적이었기 때문이다.[7] 대개 핸드폰이 좀 느려진다 싶으면 할부 약정이 끝날 즈음인 2~3년 째에 바꾼다.# 오래돼서 쓰기 불편해져서 바꾸는 것이지 신상품이 나왔다고 바꾸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뜻이다. 이처럼 적당히 성능 저하가 나타날 때 구매를 결정하는 소비자 성향을 이용하고자 공급자 측에서 어느 기간 정도 쓰면 일부러 고장나게 설계하고 만드는 것이라는 의혹이 있다. '계획적 구식화', '소니 타이머' 등 문서를 참고할 만하다.[8] 이 때문에 문화가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하는데, 이는 '문화 지체'라고 한다.[9] 그래서 취향을 존중하는 자세가 늘 강조되며, 그러지 않으면 우월의식으로 차별하는 것이 된다.[10]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빈발 효과를 활용한 것이다. '빈발 효과'란 '반복되는 행동이나 태도 때문에 첫인상이 바뀌는 효과'를 말한다.[11] 십일십일단은 구구단보다 더욱 가르치기가 쉬우며, 어린 아이들은 열 개보다 열 두 개의 막대나 블록을 이용해 할 수 있는 흥미로운 일들이 더욱 많다는 것을 알아챌 것이므로 초등 교육에서도 편리할 것이다. 12진법을 익힌 이들은 십진법을 익힌 이들보다 1.5배 더 빠르게 연산을 할 수 있다. 이것은 내 경험이며 다른 이들도 이에 동의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 알랙산더 앳킨,"Twelves and Tens"(1962년 1월 25일).[12] 오히려 '서구적 식단'은 비만이나 성인병 등을 일으킨다는 인식이 팽배해있다. 단, 한국에서 서구적 식단이라는 말은 실제 서구의 식단을 의미한다기보다는 비만과 성인병을 유발하는 미국식 정크푸드 식단과 거의 동의어로 사용됨을 감안해야 한다.[13] 도종환 '너 없이 어찌 내게 향기 있으랴'에서는 큰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세 가지 마음이 필요하며 그중에서도 초심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장승수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에서는 처음부터 강하게 몰아붙여 아예 그걸 습관으로 만들어 쭈욱 밀고 나가 '관성의 법칙'으로 현타나 슬럼프 같은 위기를 극복했다고 한다.[14] 그래서 습관을 중시하는 격언들이 많다. "처음에는 우리가 습관을 만들지만, 나중에는 습관이 우리의 인생을 바꾼다", "출세하기 위해서 정신보다 습관이 중요하다"(라 브뤼에르), "선한 일은 항상 노력으로써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 노력이 자주 반복되는 동안에 착한 일은 습관이 되어서 나타난다"(레프 톨스토이) 등.[15] "세상의 모든 굼벵이들에게"라는 책에서는 기존에 계속 미루던 습관을 타파하고 해야 할 일을 미리미리 하기 위해서 마감을 설정하고 그 마감을 지키면 자기자신에게 커피나마 주는 식으로 보상을 주라고 했다.[16] 기존의 PC 버전과 모바일 버전 웹사이트 UI를 따로 나누어 관리하는 것보다는 그냥 모바일 화면 하나로 퉁쳐버리는 게 개발 및 유지보수 입장에서는 당연히 훨씬 편리하다.[17] 예: 보존 장에서 에너지, 극점이 존재하지 않는 복소평면에서 코시 적분, 엔트로피, 엔탈피, 내부에너지 등.[18] 다만 그 사이에 1주일이 지나면 새로운 서술이 기존 서술의 지위를 획득한다.[19] 때문에 첨예한 갈등을 빚는 사회 주제보다 아무도 관심이 없는 주제에 틀린 서술이 있을 때가 더 많다.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는 주제는 금세 공격받지만 (종종 캡처 박제도 되는 등) 존재 자체도 모르는 주제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비판을 제기하지 않기 때문이다.[20] 가령 디시위키의 경우 디시위키/비판 및 문제점에서 보듯 사용자의 자유를 좀 더 넓게 인정한다는 방침이기에 잘 써놓은 문서도 어느날 갑자기 내용이 사라질 위험이 꽤 큰 편이다.[21] 대개는 과거에 명명하던 당시에는 이름과 실제가 같았다가 나중에 와서 달라진 것이지만 몇몇 경우는 아예 지었을 때부터 이름을 엉뚱하게 붙인 것도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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