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본토박이의 줄임말로 한 지역에서 대대로 살아온 사람을 의미한다. 농업이 기반이던 전근대에는 토박이가 사회 구성원의 주류였겠지만 현대에 들어서 6.25 전쟁으로 전통 향촌이 해체된 데다 도시화, 공업화가 촉진되어 이농 현상이 잦아지고 대도시에서 교외 베드타운으로의 이주를 포함하여 도시화된 지역 안에서도 인구 이동이 빈번하다 보니 과거에 비해 토박이의 숫자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이다.2. 설명
보통 토박이로 인정해 줄 때는 3대째 이상 대대로 해당 지역에 거주한다는 조건이 전제된다. 본인이 태어나서 줄곧 살았다고 하더라도 부모 또는 조부모의 고향이 다를 경우 그 지역 토박이라고 부를 수 없다. 현대에는 고향의 의미로 변질되어 쓰이기도 하지만 엄연히 틀린 용례이다.이 문서에서는 한 지역에 3대째 이상 살고 있는 본토박이들을 토박이라고 정의한다. 따라서 본인이 현재 살고 있는 지역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부모 세대가 타 지역에서 온 경우에는 토박이에서 제외된다.[1][2] 뉴스 기사에서 얘기하는 토박이의 수치는 대부분 3대째 이상이 아니라 그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의 비율만을 측정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경우이므로 이 문서에 각 지역의 토박이 수치를 기록할 때 반드시 3대째 이상인 경우에만 기록하길 바란다.
참고로 토박이 비율과 방언(사투리) 간의 관련성은 상당히 깊다. 다양한 지역 출신이 모이는 곳에서는 모두 다 알아들을 수 있는 표준어가 우세해질 수밖에 없는데 대표적인 예시가 현재 서울특별시에 거주 중인 사람들 중 전통적인 서울 방언 구사자의 수가 매우 적다는 것이다.[3] 물론 방언의 쇠퇴로 인해 모든 지역에서 사투리가 점차 사라지고 있기는 하지만 토박이 비율이 낮은 지역일수록 사투리가 사라지는 속도가 빠르다. 반대로 토박이 비율이 높은 지역일수록 그 속도가 느리며 현재까지도 그 지역 사투리를 젊은 세대도 구사할 만큼 비교적 잘 유지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3. 지역에 따른 토박이 비율
오늘날에도 농어촌 지역은 귀농 인구가 해마다 꾸준히 있지만 여전히 도시 지역에 비해 토박이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한편, 도시 지역이어도 시골만큼은 아니지만 토박이들이 제법 거주하는 지역들이 한두 곳씩은 항상 있는 편인데 그런 곳은 대체로 도시 내의 미개발 그린벨트 지역[4]이거나 노후 주택이 많은 원도심일 확률이 높다.
3.1. 서울특별시
자세한 내용은 서울토박이 문서 참고하십시오.서울특별시는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최대도시로서 타 지역에서 이주한 주민들이 많아서 3대째 이상 살고 있는 토박이가 전체 인구의 5%도 안 된다. 특히 노원구, 양천구, 강동구 같은 1980년대 이후 아파트단지로 개발된 지역은 토박이가 정말 손에 꼽힐 정로도 희귀하다.[5] 노원구는 50만 명의 인구 중에서 3대째 살아온 사람이 아예 없을 정도로 토박이가 사실상 씨가 마른 지역이며 전라도[6], 강원도[7], 경기도 농어촌 출신 주민들의 비중이 높다. 다만 노원구 영역[8] 출신 외 서울특별시 출신[9]을 기준으로 하면 생각보다 많이 나온다.
그나마 서울에서 토박이를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곳이 사대문 안, 성저십리 지역이다. 특히 종로구, 중구, 용산구, 서대문구, 성북구 등에 많고 도봉구 역시 개발되지 않은 지역은 생각보다 서울토박이가 많다.
3.2. 경기도
인천광역시도 서울과 비슷하게 토박이가 거의 없는 편인데 그나마 적은 수의 토박이들 중에서는 충청도 출신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10] 전라도, 미수복 경기도, 이북 5도 출신이 많다. 다만 도서 지역인 강화군과 옹진군은 예외적으로 인천 본토에서 떨어진 오지인 데다 노년층 비율이 높아 토박이가 50% 이상으로 많은데 여기도 황해도, 미수복 경기도 출신 실향민이 많이 거주한다.경기도 북부는 전방과 가까워 개발되지 않은 지역이 많은 관계로 경기 남부보다는 토박이들이 많은 편에 속한다. 다만 상수원보호구역으로 묶인 남양주시[11]와 의정부에서는 3대째 이상 대대로 살아온 토박이의 비율이 10~15% 정도밖에 안 된다.[12] 그런데 양주시 남부지역 출신도 의정부 출신으로 보면 사정이 달라질 수 있다. 경기 북부의 제3의 도시인 양주시는 본토박이의 비율이 전체의 35~40% 정도 된다. 김포시의 농어촌 지역 역시 토박이가 많이 거주한다.[13] 가평군[14]에는 그나마 좀 많은 편인데 전체 6만 2천 인구 중 50% 정도가 본토박이라고 한다. 전방 지역인 연천군은 약 60~65% 정도[15]이며 포천시는 시임에도 불구하고 경기 북부의 두 군 지역보다도 더 많은 70~75% 정도가 본토박이로 경기 권역 전체를 통틀어 가장 높은 수치이다.[16]
경기 남부 지역은 토박이가 전무하다 싶을 정도로 없는 편인데 산업화 이후 인위적으로 개발된 주택지구에 거주하는 인구가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17] 안성시와 평택시는 그래도 인구의 40% 이상이 3대 이상 살고 있는 토박이로 경기 남부 지역에서는 토박이 비율이 매우 높다. 수원시, 이천시, 여주시, 양평군도 본토박이들이 그나마 많이 거주하는 편이며[18] 용인시[19]와 광주시도 본토박이 비율이 두 자리 수로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근대적 고도성장기에 정부 주도로 개발된 성남시[20], 부천시, 과천시[21], 안산시[22]의 시민들은 백이면 거의 백 외지인이라고 보면 된다.
3.3. 강원특별자치도
강원특별자치도는 아무래도 군 지역이 많다 보니 대체적으로 토박이가 많은 편에 속하는데 그 중에서도 영동 지방의 토박이 비율이 상당히 높다.우선 영서 지방의 대표 도시인 원주시는 23부제, 13도제 시행 이후 쇠락하다가 6.25 전쟁 이후 제1야전군사령부, 캠프 롱 등의 군부대가 들어오면서 급격하게 성장했고 영동고속도로 건설로 인해 중요성이 커졌다. 근대화 이후 강원도 외부와의 편리한 이동, 수도권 인접 지역이라는 특성이 맞물려 적었던 토박이 수 + 많은 이주민 수로 3대 이상 살아온 토박이가 강원도에서 가장 드물다. 같은 강원도에서도 특히 횡성, 영월, 평창, 정선 등에서 원주로 이사온 사람들이 많다. 특히 광업이 무너진후 원주로 이주한 가족들도 상당하다. 원주시 전체 인구의 5% 정도만 3대 이상 대대로 살아온 사람들이다.[23] 그래도 원주를 제외하면 대부분 지역의 토박이 비율이 수도권, 부울경, 충청도에 비해서는 높은 편이다. 강원도 영서 북부의 중심도시이자 강원도의 수부 도시인 춘천시는 35~40% 정도가 3대째 이상 살아온 토박이다. 화천군은 40~45% 정도가 본토박이다.
영동 지방은 영서 지방보다 토박이 비율이 높은데 강원도 영동 북부의 속초시[24]의 전체 인구 중 35~40% 정도가 3대째 이상 살아온 토박이다. 본토박이가 강원도에서 가장 많은 강릉시는 전체 인구 중 65~75% 정도가 대대로 살아온 본토박이다.[25] 삼척시와 양양군은 50% 이상, 고성군은 60% 이상으로 토박이 비율이 높다. 이 지역의 외지인들도 미수복 강원특별자치도 출신이고 영동 북부 지역 출신이 많기 때문에 사실상 토박이로 간주된다. 그나마 영동 지방 유일의 공업 도시이자 해군기지를 끼고 있는 동해시와 석탄 광업 도시인 태백시 정도가 30~35%로 토박이 비율이 낮은 편에 속한다.
3.4. 충청도
충청도는 토박이 비율이 낮은 편[26]이다. 특히 경부선 연선인 대전광역시, 세종특별자치시, 천안시, 아산시 위주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이 일대는 3대째 이상 살고 있는 토박이의 비율이 낮다.충청권 최대의 도시이며 충청남도에서 가장 큰 광역권을 형성하고 있는 대전광역시[27]는 3대 이상 대대로 살아온 토박이가 25~30%로 추정되며 비수도권 대도시 중에서 가장 낮은 비율을 보인다.[28] 특히 대부분의 대도시들은 그래도 인근 지역민들이 모이는 반면 대전은 아예 충청권 밖에서 인구가 유입되는 경향이 강한데 그 중에서도 수도권에서의 인구 유입이 높은 편이다.[29] 그래서 대전에서 토박이의 비율이 높은 곳은 사투리 사용률도 비교적 높은 데 반해 외지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은 대전 사투리를 거의 쓰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30][31]
행정수도인 세종특별자치시는 정확한 비율은 알 수 없지만 충청남도 연기군이었던 시절에는 정말 농촌 지역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외지인의 비율이 높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하지만 세종시의 출범이 확정된 직후 2012년 6월 말 기준으로 88,256명에 불과하던 인구가 10년이 지난 현재는 약 39만 명으로 늘어났으니 토박이의 비율이 대전보다도 더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 외지인 중 대전광역시에서 전입된 인구가 많다 보니 세종의 언어 특성도 대전과 아주 유사하며 동 지역과 읍, 면 지역의 차이가 확연하다. 오히려 청주, 대전과 비슷하다.
충청남도의 주요 도시인 천안시는 2012년 기준으로 전체 인구[32]의 약 18%만이 3대째 이상 살고 있는 토박이었다. 현재는 인구가 약 66만 명으로 8년 사이 10만이나 증가한 것을 보면 토박이 비율은 더 낮아졌을 것으로 보인다.[33][34][35] 아산시도 천안과 마찬가지로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한 도시이기 때문에 토박이 비율이 적은 편에 속한다. 대전권에 속한 계룡시는 1980~1990년대 3군 본부 이전으로 조성된 계획도시이자 군사도시라는 특성상 인구 유출입이 잦아 토박이 비율이 20% 정도로 낮다.[36]
반면 충남 남부 지역과 서해안 지역은 3대째 이상 살고 있는 토박이들이 많은 편이다. 대표적으로 부여군과 청양군의 경우 충남답지 않게 토박이 비율이 80% 정도로 꽤 높은 편이다. 예외적으로 당진시, 서산시는 최근 개발됨에 따라 인구가 지속적으로 유입되어 충남 서해안 지역에서는 토박이 비율이 40% 정도로 낮은 편에 속한다.
충청북도는 충청남도에 비해 본토박이들이 많은 편인데 충청북도 제1의 도시이자 충청북도의 모든 인프라가 집중되어 있는 청주시의 본토박이 비율이 적어도 40% 정도가 된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나마 토박이 비중이 낮은 곳이 청주권 지역이다. 청주 다음으로 큰 충주시도 조선 시대부터 대대로 살아온 사람들의 비율이 50%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다만 수도권 인접 지역으로 혁신도시가 건설되고 수도권에서 이전한 공장들이 많이 들어서 있는 진천군, 음성군, 증평군은 토박이 비율이 35% 정도로 충북에서는 낮다.[37]
3.5. 전라도
전라도는 수도권과 떨어진 남부 지역에 위치하기 때문에 토박이의 수가 상당히 많은 편이다. 그나마 도시가 많고 다양한 산업이 발달한 경상도 지역과 달리 광주광역시, 전주시 - 익산시 - 군산시, 여수시 - 순천시 - 광양시, 목포시 외에는 대부분 농어촌 지역이다.전라도 최대의 도시이자 광주전남권의 중심 도시인 광주광역시는 3대째 이상 살고 있는 토박이의 비율이 45~50%로 대전광역시의 2배에 가깝다. 목포시만 해도 80% 이상[38]이 3대 이상 살아온 토박이이다. 특히 무안군[39], 진도군, 완도군, 해남군, 강진군 등 군 지역은 조선 시대부터 대대로 살아온 토박이[40]가 93%고 신안군은 무려 98%에 달한다.[41]
다만 석유화학산업단지를 끼고 있는 여수시와 포스코 광양제철소가 들어서 있는 광양시, 그리고 순천시는 토박이 비율이 35~40% 정도로 전라도 치고는 낮은 편에 속한다. 오히려 이쪽은 경상도 출신이나 수도권 출신이 많다. 특히 경상남도 서부 지역과 교류가 많다.
전라북도 최대의 도시인 전주시는 약 40~45% 정도로 전국적으로 보면 다소 높은 편이지만 일반시치고는 그 비율이 낮다. 전라도로 들어오는 철도가 놓인 익산시는 3대째 이상 살아온 토박이가 약 76~80%[42] 정도로 강원도나 충청도의 시들과 비교하면 상대도 안 되는 수준이다. 군 지역으로 넘어가면 이 수치는 더 증가하는데 고창군, 부안군은 조선시대부터 대대로 살아온 토박이가 93% 이상, 무주군, 장수군, 진안군 등 동부 산간 지역은 무려 95% 이상이다.
3.6. 경상도
경상도 역시 전라도와 더불어 3대째 이상 살고 있는 토박이의 수가 많은 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수도권과 같이 도시가 많다 보니 외지인들의 유입도 상당하다. 6.25 전쟁의 피해를 덜 입었기 때문에 다른 지방에 비해 전통 향촌의 해체를 덜 겪었고 따라서 집성촌도 많이 남아있다. 당연히 같은 성씨끼리 집성촌에 모여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토박이이기 때문이다.경상도에서 그나마 외지인이 많으며 경상도 전체를 통틀어 가장 큰 도시인 부산광역시는 전체 인구의 25~30% 정도가 3대째 이상 대대로 살고 있는 토박이다. 토박이들은 원도심, 동래 지역에 주로 거주하고 있다. 부산에는 함경도 출신 실향민과 대경권, 제주도[43], 전라도 등에서 온 이주민들이 많으며 충청도, 강원도 등 경상도와 가까운 지역 출신 이주민들도 많다.[44] 부울경의 중심지이자 대한민국 제1의 항구도시로 물류량도 상당하고 많은 기업체들이 자리잡고 있는 지역 특성상 토박이 비율이 낮을 수밖에 없다. 특히 사하구, 강서구, 해운대구는 토박이 비율이 15% 전후 밖에 안 될 정도이다.
한국 최대의 공업도시인 울산광역시 역시 35~40%의 비율을 보여주는데 대기업에 근무하는 연구원, 생산직 노동자와 가족들이 많으며 부울경 치고는 사투리보다 표준어가 통하고 동남 방언의 특색이 옅은 지역이다. 당장 울산 지역의 방언도 반은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 남동 지역의 특징과 부산광역시와 경상남도 동부 지역의 특징이 섞여있다.[45]
경상남도 서부 지역에서 큰 도시 축에 끼는 진주시는 시 전체 인구의 약 65~70% 정도가 토박이로 추산되고 있다. 경남 역시 군 지역으로 갈수록 토박이 비율이 엄청나게 증가하는데 합천군이나 의령군 일대는 적어도 구한말 이전부터 살아온 토박이가 80% 이상이다.[46] 다만 경상남도청 소재지이자 국가산업단지와 진해 해군기지를 끼고 있는 창원시는 30~35% 정도이며 수도권 출신도 많이 거주한다. 부산의 위성도시로 발전한 김해시, 양산시나 조선 산업이 발달한 거제시는 45~50% 정도로, 전국적으로 보면 높지만 경상도에서는 그나마 낮다. 단, 여기는 도농 간 차이가 있다.
대경권 제1의 도시인 대구광역시는 약 55%로 인구 100만 이상의 대도시들을 통틀어 토박이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다. 그나마 동구, 북구, 수성구, 달서구의 외곽 택지지구에 외지인들이 많은데 그 외지인들도 대경권 출신을 제외하면[47] 인근 부울경[48] 등 가까운 지역 출신이 많다.[49]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중심도시인 안동시[50]는 3대째 이상 살아온 토박이가 75% 정도, 경주시는 65% 정도로 역시 토박이의 비율이 매우 높다. 안동, 경주[51], 영주시 등은 과거부터 형성된 도시인 데다 집성촌 비율이 높다. 봉화군, 영양군, 청송군, 군위군, 의성군 등 경북 북부 농어촌 지역은 적어도 구한말 이전부터 살아온 토박이가 95% 이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텃세도 심하고 외지인이 정착하기 매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경북 남부 출신들도 이쪽에 가면 적응하기 쉽지 않다고 할 정도다.
물론 토박이 비율이 낮은 지역들도 많은데 포스코의 본사, 연구소, 포항공과대학교와 해병대 제1사단이 자리잡은 포항시는 토박이 비율이 30~35%[52], 구미국가산업단지가 있는 공업도시인 구미시는 비율이 35~40% 정도로 경북에서는 낮은 편에 속한다.
3.7. 제주도
제주도는 본토와 떨어진 섬이다 보니 토박이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2000년 제주도 인구총조사결과에 따르면 당시 인구 약 54만 명 중 79%가 토박이었다.최근에는 많은 연예인들이 제주살이를 하며 제주도에 사는 것에 대한 로망을 심어주는 등 '복잡한 도시에서 벗어나서 편안히 살아갈 수 있는 곳'이라는 인식이 생기게 되었고 제주도로 이사를 오는 사람들도 증가하는 추세다. 하지만 육지 사람들에게 3대 이상 살아야지 진정한 제주인이 된다면서 텃세를 부리는 일부 토박이[53]들로 인해 육지 사람들은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하는 등 여전히 소외 받는 삶을 살고 있다.
로망을 안고 왔지만 정작 자기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자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가는 이들도 많기 때문에 현재에도 토박이 비율이 높은 편이다. 그래도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지자체인 만큼 토박이 비율도 서서히 줄어들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4. 관련 문서
5. 김종국의 정규 4집 수록곡
자세한 내용은 토박이(김종국) 문서 참고하십시오.[1] 즉, 자신이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지만 부모가 경기도 평택시에서 태어났다면 토박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적어도 조부모가 서울 종로에서 태어나서 부모, 본인까지 살아왔다면 당연히 진정한 서울토박이지만 본인이 서울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토박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말이 되지 않으니 토박이라고 절대 우기지 않길 바란다.[2] 대표적인 예가 신승훈인데 본인은 대전에서 태어나고 자라 대학까지 마쳤지만 아버지가 충청북도 출신이기 때문에 대전 토박이에 해당하지 않는다.[3] 물론 'ㅗ'를 'ㅜ' 발음하는 것(뭐하고 놀래? → 뭐하구 놀래?)과 'ㅏ'를 'ㅐ'로 발음하는 것(거지 같아 → 그지 같애)처럼 일부 발음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미싯가루(미숫가루), 빈자떡(빈대떡), 코보(코주부), 도야지(돼지), 우렁쉥이(멍게)처럼 많은 서울 방언들이 지방 방언(이었으나 현재는 표준어로 등재된 단어)에 밀려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4] 주로 자연마을[5] 하지만 양천구 목동은 노인 중에서 토박이를 꽤 찾아볼 수 있으니 아주 없지는 않다.[6] 전북특별자치도 출신의 서울 최다 거주 지역이다.[7] 원주시 출신의 서울 최다 거주 지역이다.[8] 舊 경기도 양주군 노원면, 노해면[9] ex. 이전에는 서울 다른 지역에 살다가 전두환 정부 시절 노원구가 개발되면서 이주한 케이스.[10] 인천 사람 10명이 모이면 혈통을 따질 때 충청도 출신이 4명일 정도로 충청도 출신이 많다. 특히 내포지방이라고 부르는 충청남도 서해안 지역 출신이 절반을 차지하며 그 다음이 내포지방 바로 옆인 천안-아산권 출신이다. 의외로 대전권, 충청북도, 충청남도 동부 출신은 상당히 적은 편인데 오히려 이들은 송파구나 수원시, 용인시, 성남시 등지에 상당히 많이 모여 거주한다.[11] 이 지역에서는 주로 양정동, 일패동, 이패동, 삼패동, 금곡동, 화도읍, 와부읍, 별내면 청학리, 광전리 등에서 3대 이상 대대로 살아온 토박이들을 볼 수 있지만 계속된 개발로 인해 지금은 토박이 비율이 상당히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토박이들은 양평군, 가평군, 포천시, 심지어는 춘천시까지 밀려났다. 화도읍, 와부읍에서도 외진 산골 마을로 들어가야 토박이들이 많으며 평내동과 호평동, 도농동, 별내동, 다산동은 거의 대부분이 외지인으로 채워진 신도시라고 봐도 된다.[12] 의정부시 지역도 생각보다 의외로 토박이가 있다. 특히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10대 이상을 대대로 살아왔다고 하니 의정부시의 가장 대표적이고 진정한 의정부 토박이라고 할 수 있는데 현재도 의정부시 의정부동에서 살고 있으며 원래 고향은 경기도 양주군 의정부읍(구 시둔면) 가능리(현재의 가능동)이다. 빅뱅의 동영배도 3대 이상 살아 왔으므로 진정한 토박이라고 할 수 있다.[13] 아울러 경기 북부의 제2의 대표도시인 양주시(양주군 포함, 남양주시, 구리시 제외) 출신까지 토박이로 본다면 의정부시 지역 주민 중 약 35% 정도 이상 된다. 결국 광의의 의미로 보면 양주 본토박이가 상당히 많으며 순수 경기 북부 출신(의정부, 양주, 동두천, 연천, 포천) 및 토박이를 다 합쳐도 의정부시 전체 인구의 50%가 된다.[14] 춘천 사람들도 가평군에 많이 거주하며 광의로 보면 춘천 출신도 약간이나마 있다. 가평과 춘천은 과거에 같은 강원도였고 행정상으로는 경기도라고 할지라도 춘천 사람들도 가평에서 터를 잡아 사는 경우가 많은지라 두 지역은 상당히 각별한 사이임은 분명하다. 2022년 11월 25일 기준으로 가평의 본토박이/외지인 출신지 분포를 보면 토박이랑 외지인이랑 반반 정도의 비율을 보인다. 그렇지만 강원도 연고 출신이 제법 많다. 6번 국도(경춘로) 연선인 남양주시, 구리시, 중랑구 일대에서 살다가 가평으로 이주한 사람들도 제법 있다. 포천시나 양평군 출신도 인접한 편이라 약간이나마 있다.[15] 이 지역이 북한 땅이었을 때부터도 포함된다. 즉, 삭녕군, 마전군 시절부터 살아온 토박이도 당연히 포함한다.[16] 서울특별시, 경기도, 강원특별자치도 지역으로 한정해 보면 강원도 강릉시, 경기도 포천시는 토박이가 가장 많이 거주하고 텃세가 상당히 심한 지역으로 정평이 나 있다.[17] 서울에 거주하다가 2000년대 이후에 경기 남부로 이사왔거나 타 지역에서 이사 온 경우가 대부분이다.[18] 수원문화원의 2012년 연구에 따르면 경기도의 수부 도시인 수원시의 3대 이상 대대로 살아온 인구는 20~25% 정도에 이르며 과거 수원군 영역이었던 화성시와 오산시 출신 인구를 더하면 그 비율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이천, 여주도 토박이 비중이 30~40% 정도 된다. 다만, 양평은 舊 양근군양평읍 이서 지역, 즉 양평읍을 포함한 서쪽 지역을 말한다. 설악면도 과거 양평군이었기 때문에 설악면을 포함하는 경우도 간혹 있으나 지금은 가평군으로 추산한다.과 舊 지평군용문면 이동 지역, 즉 용문면을 포함하여 지평면(지제면) 기준의 동쪽과 동북, 동남쪽 지역이다. 시절부터 살아온 토박이 비율은 50% 이상 된다.[19] 전체의 10~15% 정도가 3대 이상 살고 있는 본토박이로 추정되는데 21세기 들어 개발이 지속됨에 따라 토박이 숫자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그나마 난개발이 심한 수지구, 기흥구와 달리 도농복합 지역인 처인구는 토박이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20] 舊 경기도 광주군 돌마면(분당신도시의 서현동, 수내동 일대), 낙생면(판교동, 백현동, 운중동, 정자동, 금곡동), 중부면(현재의 구성남, 즉 수정구, 중원구 일대)의 토박이들은 경기도 광주군(현 경기도 광주시) 출신이니 경기도 광주시 출신 역시 이 지역의 토박이로 봐도 될 것이다. 이는 광의의 성남 토박이의 기준이다. 현재 진짜 성남 토박이 비율(경기도 광주군 중부면(성남출장소 지역), 돌마면, 낙생면, 대왕면 남부 지역 출신자)은 약 3~4% 정도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단, 광의의 토박이 비율인 광주시 출신을 합치면 10% 정도 된다고 하며 경기 남부권까지 합치면 약 15% 정도가 된다.[21] 단, 주암동이나 문원동 일대는 토박이가 약간은 있다고 한다.[22] 상록구 수암동, 반월동 및 단원구 선부동, 신길동 일부, 그리고 실질월경지인 대부도에는 토박이가 남아있다.[23] 그래서인지 원주가 외지인 유입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편에 속한다. 특히 서울특별시 노원구에서 집값을 피해 이사 온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강원원주혁신도시나 기업도시나 새 아파트에 노원구 출신이 많이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그 외지인들도 원주, 횡성에 기반을 둔 사람들이 서울, 경기도에 살다가 다시 귀향하는 케이스가 많다.[24] 소도시지만 토박이가 상당히 많다. 외지인이라고 착각할 수 있으나 외지인들은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며 대대로 살아온 토박이는 양양군, 고성군 토성면까지 포함한다. 왜냐하면 이 지역은 과거 모두 다 양양군이었기 때문이다.[25] 강릉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러 가문들이 상당히 많이 거주하고 있고 대를 이어서 끊임없이 거주하고 있다고 강릉에서 수십 대째 살아온 토박이가 증언했다.[26] 특히 충청도는 수도권과 가까이 위치해 있는 지역이다 보니 적어도 현재 10~30대의 조부모 세대가 청년기이던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일찌감치 수도권으로 인구가 유출됐던 것도 낮은 토박이 비율에 한 몫했다.[27] 엄연히 말하면 1989년에 직할시로 승격되어 현재 충남 소속은 아니지만 '충남권'에는 여전히 포함된다.[28] 물론 그렇다고 해서 수도권처럼 토박이가 아주 없는 편은 아니다. 배우 송중기, 야구인 정민철 등이 대표적인 대전 토박이이다.[29] 주변 40~50대의 출신 지역만 보더라도 대전 토박이보다는 외지 출신이 많은데 충청권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수도권, 경상도, 전라도 등지에서 온 사람들이다. 다만, 수도권은 전라도 출신이라고 하면 대체로 전라남도 출신의 비율이 높은 데 비해 대전은 지리적 여건상 전라도 출신 중 전남 출신은 전남 동부를 제외하면 강원도 출신보다도 보기 힘들 정도로 매우 적고 전북특별자치도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도 특징이다. 또다른 충청도 지역인 천안시와 아산시 역시 마찬가지로 전북 출신이 전남 출신보다 많다. 대전의 경상도 출신은 경남과 경북 서북부 출신이 많다.[30] 서구 둔산동, 관저동, 유성구 일대는 본토박이가 정말 적은 지역으로, 서구 원도심(직할시 승격 이전부터 대전 소속이었던 정림동, 도마동, 변동, 가장동, 복수동 등), 중구, 동구, 대덕구 일대에서 기본적으로 쓰이는 사투리조차 거의 쓰지 않으며 단어는 후술할 지역들이 사투리와 표준어를 번갈아가며 쓰는 것과 달리 대부분 표준어 혹은 경기 방언을 쓴다. 자세한 내용은 대전광역시/문화 문서 참고.[31] 이 때문에 충청도 사투리 관련 유튜브 영상에 '대전도 사투리 쓰는 거였구나'라는 댓이 달리면 '나는 표준어만 쓰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입만 열면 사투리 쓰는 거였더라, 출생의 비밀급 충격'처럼 공감하는 댓글과 '대전이 뭔 사투리를 쓰냐, 헛소리하지 말아라'처럼 부정하는 댓글이 서로 싸우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32] 당시 약 57만 명[33] 수도권의 개발로 인해 바로 밑인 천안 및 아산 지역으로 공장들이 지어지게 되었고 점차 공업이 주요 산업으로 자리잡다 보니 지난 30년 동안 젊은 노동자 계층이 많이 유입되었다. 외지인들도 충청남도 타 지역(특히 내포권, 그 중에서도 장항선 권역인 예산, 홍성) 출신과 전라도 출신이 많다. 이는 아산시도 마찬가지다.[34] 한 지역의 방언은 그 지역 토박이들에 의해 구사되는 경우가 많은데 대전은 그래도 인구 수로 보자면 40만 명 정도가 본토박이인 반면 천안은 9만 명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인구 규모로 보나 해당 지역 방언 구사자라고 볼 수 있는 사람의 수가 대전보다 훨씬 적다. 그래서 천안에서는 충청도 사투리 자체가 거의 쓰이지 않고 있으며 그나마 쓰이는 '~겨' 위주의 말투도 사용 빈도가 낮다.[35] 다만 동남구 농어촌 지역 등지는 토박이 비율이 꽤 높다.[36] 특히 신도안면은 백이면 백 거의 다 외지인이다. 그나마 두마면과 엄사면 일부 지역은 토박이가 꽤 남아있다.[37] 증평 출신 배우인 박보영이 말하듯이 증평의 군부대, 공단으로 인해 전출입이 많다.[38] 목포 주변인 무안군, 신안군, 영암군 출신을 모두 포함한 수치다.[39] 남악신도시를 제외한다면 그렇다.[40] 트로트 가수 송가인이 대표적인 진도 토박이이다.[41] 신안군이 외지인들에 대한 배타성이 강하고 섬노예 등 지역 집단 범죄 등으로 사회 이슈화되는 원인 중 하나가 외지인이 거의 없는 폐쇄적인 특성이다. 있어도 이웃 목포시 출신이 대부분이고 목포는 신안과 같은 생활권이다. 한때 신안군청이 목포에 있었고 목포경찰서가 신안도 담당하고 있었지만 2023년에 신안경찰서가 생기면서 치안은 신안군이 자치권을 얻게 되었다.[42] 과거 여산군, 용동군, 함열군, 익산군의 토박이를 다 포함한 수치이다.[43] 제주 4.3 사건으로 인해 피난 온 주민들이 많았다.[44] 화승그룹의 창업주 역시 부산 토박이가 아닌 충청북도 괴산군 출신이며, 1955년 부산에서 신진자동차를 창업했던 김창원 회장 역시 충청남도 공주시 출신이고, 부산에서 동원그룹을 창업했던 김재철 회장 역시 전라남도 강진군 출신이다.[45] 사실 울산도 경상남도 동부 방언 지역에 속하지만 경북과 접해 있어 경북의 영향도 강하게 받았다.[46] 예외가 함안군인데 여기는 창원시의 위성도시로 공업단지, 교외 주거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남해군의 남해독일마을 역시 파독 근로자들 덕에 토박이는 거의 없고 외지인들이 많다.[47] 대구광역시에서도 동구, 수성구에는 경상북도 동남부 지역 출신이, 북구 칠곡에는 경상북도 북부 지역 출신이, 달서구에는 경상북도 서남부 지역 출신이 많다. 다만 영덕군, 울진군, 청송군, 영양군 출신은 동구, 수성구에도 많이 거주하고 있다.[48] 특히 경상남도 서북부 지역인 거창군, 창녕군, 합천군 등은 오히려 대구광역시와 밀접하게 교류하며, 부산광역시, 울산광역시, 창원시 등과 다른 생활권이다. 경상남도 동부 지역 중에서는 부산 동래권과 동부산권, 울산광역시, 창원시 출신이 많다.[49] 전두환 전 대통령(합천군)과 홍준표 현 대구시장(창녕군)도 경남에서 태어났지만 청소년기에 대구로 이주해 성장했다.[50] 이쪽은 아예 문중들이 총선과 지선의 결과를 좌우한다. 안동에 기반이 없는 가문 출신은 국민의힘 공천을 받아 나왔을지라도 낙선한다. 권오을이 민주당계 정당 소속으로 당선된 이유도, 김광림이 무소속으로 당선된 이유도 그런 정치적 환경의 영향이다. 그나마 최근에는 경북도청이전신도시, SK바이오사이언스 덕에 외지인들이 안동시와 예천군 호명읍에 유입되고 있어서 문중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있다.[51] 의외로 강원도 태백 출신인 권영국이 21대 총선에서 유의미한 득표율을 기록했다.[52] 포항도 경상도 밖에서 유입되는 인구가 상당하기 때문에 표준어를 쓰는 인구가 적지 않다.[53] 특히 과거에 육지에서 건너온 남조선로동당, 서북청년회 등 외지인들의 제주 4.3 사건 등의 만행으로 인해 지금까지도 제주도 토박이들의 육지 이주자들에 대한 불신과 텃세는 의외로 심하다. 오죽하면 육지 출신 개신교 목사들이나 신학생들에게 제주 지역 교회로의 부임은 귀양살이로 인식될 정도다. 서울특별시에서 서귀포시로 이주한 돈가스 전문점 연돈 대표 부부 역시 이주지에서 원주민들에게 견제를 당한다는 제보가 있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