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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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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문학적 핍진성
2.1. 개연성과의 차이
3. 사례4. 관련 문서

1. 개요

逼眞性 / Verisimilitude

핍진성진실거짓의 구분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외부의 관측자가 진실에 가깝다고 납득할 만한 정도를 이르는 형이상학적 성질이다. 여기서 외부의 관측자란, 진리를 알 수 없는 시점에서 사물을 객관적으로 관측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 용어의 한자의 뜻을 풀이해 보면 '가까이할 핍(핍박할 핍, 逼)', '참 진()', '성품 성()'으로 '진실에 가까운 정도'라고 해석할 수 있겠으나, 본디 핍진성이라는 개념은 매우 추상적이며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원어 'verisimilitude' 역시 의미 해석이 다양하며, 영미권에서는 'truthlikeness'로 풀어 쓰기도 한다. 일본어로는 '真実らしさ'로 쓴다. 한국어에서는 영미권 해석인 'truthlikeness'를 번역하여 사실성(事實性), 진실성(眞實性), '철학적 개연성'의 유의어로 설명한다.

용어로서의 'verisimilitude'는 17세기 영국에서 라틴어 verisimilitudo(truth-like)의 변형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한국어 '핍진성'이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1920년대 내외로 추정된다.

2. 문학적 핍진성

문학에서 말하는 핍진성은 개연성과는 구별된다. 개연성은 "A라는 원인이 있으니 B라는 결과가 나와야 한다."라는 개념에서 출발하지만, 핍진성은 작품 속 개연성이 얼마나 현실과 부합하는가를 포함한다. 현실성과 비슷한 단어이다. 개연성은 엄밀히 말하면 논리와 수학의 영역이고 연출과 관련이 깊다. 그러나 핍진성은 한 사회 공동체가 공유하고 있는 감성적, 문화적 현상과 그 작품 세계관 내에서의 사실성에서 기인한다.

핍진성과 사실성은 다르다. 핍진성은 상기한 대로 현실성과 비슷한 단어이며 사실성 역시 일상에서는 현실성이란 단어로 자주 대체되어 불리므로 혼동이 많다. 어떤 작품이 명백한 현실에 기반한, 예컨대 고증에 충실한 역사 소설이나 사극이라면 사실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혹은 21세기 지구를 바탕으로 하는 소설이라면 핍진성과 사실성을 동일하게 볼 수 있다. 그 작품의 세계관 규칙이 곧 현실의 규칙과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종 이종족과 마법이 난무하는 판타지소설이라면 판타지는 원래 허구이기 때문에 사실성을 따질 수가 없다. 하지만 허구성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세계관이 정교하게 짜여있고, 작중 사회와 등장인물들이 서로 적절히 어우러져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 작품이라면 핍진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헌터×헌터의 등장 국가나 집단, 넨 등의 능력은 완전한 허구지만 그 안에 국가체제, 인터넷 등 통신 인프라, 국가간 대립구조, 협회 규정 등이 나름의 합리성이 있기 때문에 읽는 독자로 하여금 허구성을 쉽게 느끼지 못한다. 혹은 마찬가지로 중세풍 판타지인 왕좌의 게임이나 이 분야 끝판왕 반지의 제왕을 읽으면서 사실성은 떨어진다 할 수 있겠지만 핍진성, 연출과 이야기 면에서는 개연성도 절대 떨어진다고 하지 않는다.

2.1. 개연성과의 차이

핍진성은 보통은 개연성과 비교되곤 한다. 하지만 그 둘이 어긋나는 경우는 정확히 정의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핍진성이 있다면 개연성도 있는 경우가 많지만 개연성이 있는데 핍진성이 어긋나거나 그 반대도 가끔 존재할 수는 있다.

워크래프트 시리즈의 세계에 등장하는 오크해리 포터 시리즈의 세계에 등장하는 집요정, 두 종족을 비교해보도록 하자. 오크는 '우리는 노예가 되지 않는다'는 말마따나 힘과 명예를 중시하고 다른 종족으로부터의 지배를 거부하는 반면, 집요정은 남에게 복종하고 봉사하는 것을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종족이다. 이러한 뒷설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난다면 오크가 다른 종족의 지배를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키는 이야기나, 자신들을 해방시켜주겠다는 권유를 오히려 거부하는 집요정들의 행보가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똑같이 허구의 존재들이고 서로 상반된 전개임에도 독자들이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핍진성이 잘 지켜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워크래프트의 스랄처럼 오크 하나가 탄압받는 동료를 구하기 위해 반란을 도모하는 이야기로 간다고 해보자. 워크래프트 세계관의 지식이 없더라도 반란은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범죄이며 매우 큰 소동이 될 것이라는걸 독자들은 예상이 가능하다. 이처럼 작품 내 명시된 설정이 없을 때 독자는 현실의 핍진성을 작품 내 세계관에 대입시키게 된다. 즉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반란을 일으켰으니 그냥 안 넘어가겠구나'하는 사실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반란을 일으킨 주모자가 붙잡혀 처형된다거나 하는 전개가 찾아오면 독자는 이를 자연스럽게 납득하게 된다. 반란을 일으킨 중죄인이 처형되는 것은 자연스럽게 개연성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아무런 사전 설명이 없었는데 집요정 캐릭터 하나가 등장하여 탄압받는 동료를 구하기 위해 반란을 도모하는 전개가 등장한다면 독자는 위화감을 받게 된다. 이는 개연성을 해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새로운 전개'의 등장은 명제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A라는 원인이 있으니 B라는 결과가 나와야 한다." 부분의 'A'에 해당되는 부분이 처음 언급됐을 뿐이다. 그럼에도 독자는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분명 설정상 집요정 종족은 남에게 복종하고 봉사하는 것을 즐기는 종족인데, 반란을 일으키는 전개는 어색하기 때문이다.

이를 자연스럽게 바꾸기 위해서는 작가가 핍진성을 보충해주어야 한다. 즉, 저러한 일이 나타난 이유가 무엇이며, 종족 중 한 명의 특이 사례인 것인지 종족 전체의 생각이 조금씩 바뀌게 된 것인지 등 봉사를 즐기는 종족임에도 반란을 생각하게 될 만한 여타 보충 설정 등으로 핍진성을 보충해야 한다.

핍진성이 떨어지는 작품은 읽다가 개연성과는 다른 의미로[1] "뭐야 이게 말이 돼?"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작가가 자신이 만든 작품 속 세계관의 규칙을 어긴다면 핍진성을 상실한 것이다. 보통 작가가 자신이 세운 세계관의 규칙을 간과, 혹은 까먹었거나[2] 미리 생각해둔 줄거리가 자신이 앞서 만들어온 세계관의 규칙을 어기게 될 때 수정하지 않고[3] 어거지로 이야기를 끼워넣어 서사를 이어가면 이런 일이 발생한다.

핍진성은 해당 사건과 연관성이 있는 사실적인 바탕(=배경설정)이고, 개연성은 해당 사건과 연관성이 있는 과거 사건(=전개)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3. 사례

이런 핍진성이 중요한 장르리얼로봇물이나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이 꼽힌다. 로봇물은 현실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현실에서의 실용성이 전혀 없는 이족보행병기가 등장한다. 이때 핍진성을 지키기 위해 인공 근육의 가성비 등 온갖 설정들을 붙여 그나마 사실성과 핍진성을 함께 잡으려 한다.[4] 또한 건담 시리즈에서도 이족보행병기가 버젓이 돌아다니지만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그 세계관, 즉 그 작품에서의 '현실세계'에서는 미노프스키 입자를 비롯, 핍진성을 채우기 위한 다양한 장치가 등장한다.

알드노아 제로에 핍진성에 대한 사례가 있다. 해당 작품의 세계관은 몇십년 뒤의 우리가 사는 지구와 유사한 세계를 바탕으로 한다. 차이점은 화성에 가난하면서 귀족 중심의 국가 성립하여 지구와 대립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현대 선진국 시민들로 이루어진 화성 사회가 50년 정도만에 완전한 귀족 중심 사회의 국가로 변모한 것, 화성 국민들이 제대로된 식사를 하지 못하는 처참한 환경에서도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있었다. 상식적으로 화성과 같은 상황은 이루어지기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분단 50년만에 저렇게 된 국가를 이웃으로 두고 있다.[5] 북한의 존재를 지적하기 전에 한국 시청자들 중에서 해당 설정이 말이 안된다는 의견이 상당수 나왔다. 알려주면 현실성이 있다고 납득하지만 그 전에는 비현실적이라는 평을 받았다는 건 핍진성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좀비물 같은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에서도 주로 21세기 현실세계를 바탕으로 하기에 사실성과 핍진성을 동시에 잡아야 한다. 그래서 분노 바이러스 등 좀비나 유사한 것의 출현 이유를 그 작품(세계관) 내에서 사실적으로 설명해주는 장치를 넣고 현실이라면 군대가 제압했을 좀비를 제압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는 장치를 또 넣는다.

매트릭스 시리즈에서 민간인들이 매트릭스가 만든 세상에 위화감을 느끼는 것[6]을 현실에서의 핍진성의 어긋남을 느낀 예로 들 수 있다.

놀랍게도 바키 시리즈와 같이 비현실성이 매우 짙은 작품들에서도 그 나름대로의 핍진성이 있다. 제 3자의 말을 빌려 서술하는 장면이나, 그럴듯한 저명인사(당연히 그조차도 허구지만)의 말을 인용하는 장면이 핍진성을 강화하는 장치에 해당한다. 이와 비슷한 장치 중 특히 유명한 게 민명서방.

다른 예시로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선 이야기와 연출은 물론 주인공 군인들의 행동들이 전혀 군인답지 않고 말이 안 된다고 까인다. 여기다가 실드를 친다고 '이건 원래 판타지니까 사실성 따지면 안 됨! 그렇게 치면 반지의 제왕은 뭐 말이 되냐?' 이런다면 핍진성이 뭔지 전혀 모르는 것이다. 태양의 후예는 21세기 지구를 배경으로 하기에 별다른 설정이 없다면 자동적으로 그 세계관의 규칙은 현실과 똑같아진다. 이와 같은 비판을 피하려면 독자가 그 세계를 '현실'이 아니라 '현실과 비슷한 가상 세계'로 생각할 수 있도록 설정을 보강해야 한다. 작품을 읽는 독자나 시청자들은 픽션이라 해도 별 말이 없으면 현실의 핍진성을 대입하는데, 현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 더더욱 현실의 핍진성을 대입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드라마 도깨비에서 지은탁이 죽은 뒤 이승의 기억을 잊는 차를 마시지 않는데 이는 핍진성이 아니라 개연성을 무시한 좋은 예이다. 그 세계관에서의 규칙은 죽은 자는 그 차를 마시고 환생을 해야 했고 모든 죽은 자들이 그 규칙을 따랐는데 갑자기 예외가 생겨버린 것이다. 도깨비를 잊기 싫다는 마음의 개연성은 있을지 모르나 '망각의 차를 마실지 말지 개인이 결정할 수 있다'라는 건 '죽은 자는 망각의 차를 반드시 마셔야 한다'라는 작가 자신의 규칙을 깨버린 것이다.

쉽게 말해 그 문학 속의 인물이 그 문학에서의 발생하는 사건 전개를 들었을 때 사실적이라고 생각하면 그 이야기는 핍진성을 지킨 것이고, 아니라면 핍진성을 어긴 것이다.

4. 관련 문서



[1] 개연성에 의심이 드는 경우는 대체로 엉성한 구성이나 인과관계 때문이다.[2] 여러 작가가 이야기를 쓰는 스타크래프트 소설에서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한다. 감염된 프로토스 참조[3] 앞서 만들어온 수많은 이야기들과 엮여 있는 세계관의 규칙을 뒤늦게 수정할 수는 없으니까[4] 이는 작가가 작품 무대를 현실로 잡았기 때문이다. 아니라면 반지의 제왕처럼 사실성은 잡지 않고도 핍진성을 지킬 수 있다.[5] 여담으로 알드노아 제로가 북한을 모티브로 화성을 만든 것은 아닌 걸로 추정된다[6] 애니매트릭스에서 달리기 선수가 한계를 뛰어넘고는 세상에 위화감을 느끼는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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