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발도대(#!if ruby == null
抜刀隊#!if ruby != null
[ruby(抜刀隊,ruby=)]#!if ruby == null
警視庁抜刀隊#!if ruby != null
[ruby(警視庁抜刀隊,ruby=)]이 곡의 작곡자는 당시 일본군 군악대를 양성하기 위해 군사고문으로 일본에 왔던 프랑스인인 샤를 르루(Charles Edouard Gabriel Leroux, 1851~1926), 작사자는 도쿄제국대학 교수였던 도야마 마사카즈(外山正一, 1848~1900). 공교롭게도 이 곡은 수십년 후 일본군에게 점령된 프랑스 영토에서 연주된다.
노래는 메이지 15년(1882년) 발표되었다. 가사의 특징으로는 끝 네 구절을 반복하는 것인데, 이는 미국 유학파였던 도야마가 미군 군가의 영향을 받은 것뿐만 아니라, 프랑스군 군가의 영향도 받았다고 한다. 현재도 육상자위대와 일본 경찰[4]에서 이 노래를 약간 편곡한 육군분열행진곡을 열병식 때 행진곡으로 사용하고 있다.
2. 들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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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절과 3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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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군분열행진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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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버전들 |
3. 가사
| '''{{{#ffffff 抜刀隊''' | ||||
| 1절 | 2절 | 3절 | ||
| 我は官軍、我が敵は天地容れざる朝敵ぞ 와레와 캉운 왕아 테키와 텐치 이레자루 초-테키조 우리는 관군 우리의 적은 하늘과 땅이 용서치 않는 조적이다 敵の大将たるものは古今無双の英雄で 테키노 타이쇼-타루 모노와 코콤무소-노 에-유-데 적의 대장이라 하는 자는 고금무쌍의 영웅이니 これに従ふ兵はともに剽悍決死の士 코레니 시타고- 츠와모노와 토모니 효-칸 켓시노 시 여기에 따르는 병사들은 모두가 날래고 사나운 결사의 무사. 鬼神に恥ぢぬ勇あるも天の許さぬ反逆を 키진니 하지누 유-아루모 텐노 유루사누 항야쿠오 귀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용기 있어도 하늘이 용서 않은 반역을 起ししものは昔しより栄えし例しあらざるぞ 오코시시 모노와 무카시요리 사카에시 타메시 아라자루조 일으킨 자는 옛날부터 성한 예가 없다. | 皇国の風[5]ともののふのその身を護る霊の 미쿠니노 카제토 모노노-노 소노 미오 마모루 타마시-노 황국의 전통과 무사의 그 몸을 지키는 혼이었던, 維新この方廃れたる日本刀[6]のいまさらに 이신 코노 카타 스타레타루 닛폰토-노 이마사라니 유신 이래 버려졌던 일본도가 이제 また世にいづる身の誉れ敵も味方ももろともに 마타요니 이즈루 미노 호마레 테키모 미카타모 모로토모니 다시 세상에 나와서 명예를 얻었다, 적도 아군도 모두 함께 刃の下に死ぬべきぞ大和魂あるものの 야이바노 시타니 시누베키조 야마토다마시- 아루모노노 칼날 밑에서 죽어야지, 야마토의 혼이 있는 자의 死ぬべき時は今なるぞ人に後れて恥ぢ掻くな 시누베키 토키와 이마나루조 히토니 오쿠레테 하지카쿠나 죽어야 할 때는 지금이다, 다른 이에 뒤쳐져서 부끄럽게 되지 마라 | 前を望めば剣なり右も左りもみな剣 마에오 노조메바 츠룽이나리 밍이모 히다리모 미나츠룽이 앞을 바라보면 칼이고 오른쪽도 왼쪽도 모두 칼이다 剣の山に登らんは未来のことと聞きつるに 츠룽이노 야마니 노보랑와 미라이노 코토토 키키츠루니 칼의 산에 오르는 것은 미래의 일이라고 들었건만은 この世において目の当たり剣の山に登るのも 코노 요니 오이테 마노 아타리 츠룽이노 야마니 노보루노모 이 세상에서 마주쳤구나[7] 칼의 산에 오르는 것도 我が身のなせる罪業を滅ぼすために非ずして 왕아 미노 나세루 자잉오-오 호로보스 타메니 아라즈시테 나 자신의 죄업을 없애기 위함이 아니라 賊を征伐するがため、剣の山もなんのその 조쿠오 세-바츠 스룽아 타메 츠룽이노 야마모 난노 소노 역적을 정벌하기 위해서 위함이다, 칼의 산도 무엇이겠느냐 | ||
| 4절 | 5절 | 6절 | ||
| 剣の光閃くは雲間に見ゆる電か 츠룽이노 히카리 히라메쿠와 쿠모마니 미유루 이나즈마카 검의 빛이 빛나는 것은 구름 사이로 비치는 번개인가 四方に打ち出す砲声は天にとどろく雷か 요모니 우치다스 호-세-와 텐니 토도로쿠 이카즈치카 사방에 울려 대는 포성은 하늘을 울리는 천둥인가 敵の刃に伏すものや、丸に砕けて玉の緒の 테키노 야이바니 후스 모노야 타마니 쿠다케테 타마노 오노 적의 칼날에 쓰러지는 자와 총알에 맞아 絶えて儚く失する身の屍はつみて山をなし 타에테 하카나쿠 우스루 미노 카바네와 츠미테 야마오 나시 허무하게 죽는 자의 시체는[8] 쌓여서 산을 이루고 その血は流れて川をなす、死地に入るのも君がため 소노 치와 낭아레테 카와오 나스 시치니 이루노모 키밍아 타메 그 피는 흘러서 강을 이룬다, 사지에 들어서는 것도 천황 폐하를 위해 | 弾丸雨飛の間にも二つなき身を惜しまずに 당안 우히노 아이다니모 후타츠나키 미오 오시마즈니 총알이 비처럼 쏟아지는 속에서도 둘 없는 몸을 아끼지 않고 進む我が身は野嵐に吹かれて消ゆる白露の 스스무 왕아 미와 노아라시니 후카레테 키유루 시라츠유노 나아가는 내 몸은 들바람에 휘날려 사라지는 이슬처럼 儚き最後を遂ぐるとも忠義のために死ぬる身の 하카나키 사잉오- 통우루토모 충-이노 타메니 시누루 미노 허무한 최후를 맞더라도 충의를 위해 죽는 몸의 死にてかひあるものならば死ぬるもさらに怨みなし 시니테 카이아루 모노나라바 시누루모 사라니 우라미나시 죽는 보람이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죽는 것도 이제 원이 없다 我と思はん人たちは一歩も後へ引くなかれ 와레토 오모완 히토타치와 잇포모 아토에 히쿠나카레 바로 나라고 생각하는 자들은 한 발자국도 뒤로 물러나지 마라 | 我今ここに死なん身は君のためなり国のため 와레 이마 코코니 시난 미와 키미노 타메나리 쿠니노 타메 우리 지금 여기서 죽는 것은 폐하를 위해서며 나라를 위함이다 捨つべきものは命なりたとひ屍は朽ちぬとも 스츠베키 모노와 이노치나리 타토이 카바네와 쿠치누토모 버려야 할 것은 목숨이도다, 비록 시체는 썩을지라도 忠義のために捨つる身の名は芳しく後の世に 충-이노 타메니 스츠루 미노 나와 캄바시쿠 노치노 요니 충의를 위해 버린 몸의 이름은 명예롭게 후세에 永く伝へて残るらん武士と生まれたかひもなく 낭아쿠 츠타에테 노코루 부시토 우마레타 카이모 나쿠 길이 전해져 남는다, 무사로 태어난 보람도 없이 義もなき犬といはるるな卑怯ものとな謗られそ 기모 나키 이누토 이와루루나 히쿄-모노토나 소시라레소 의도 없는 개, 비겁자라고 매도당해선 안 된다 | ||
| 후렴 | ||||
| 敵の亡ぶるそれまでは進めや進めもろともに 테키노 호로부루 소레마데와 스스메야 스스메 모로토모니 적을 멸할 그때까지는 나아가라 나아가 모두 다 함께 玉散る剣抜き連れて死ぬる[9]覚悟で進むべし 타마치루 츠룽이 누키츠레테 시누루 카쿵오데 스스무베시 번쩍이는 칼을 뽑아 들고서 죽을 각오로 나아가야 한다! | ||||
발음이 이상하다 싶을 수 있는데 비탁음이 들어가서 그렇다.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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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 AI 커버 |
- 고 보이즈 - 마지막 잎새 사수 프로젝트 라는 영화에도 등장 한다.고등학교 연극부를 소재로한 영화인데, 후지산 근처로 단합대회를 갔다가 연극부원 한명을 잃어 버렸다가 찾았는데... 일본군의 혼령과 어깨동무를 하고 이 노래를 함께 부르고 있었다.
- 진주만 공습과 태평양 전쟁 이후로 일본 내에서는 '적성국의 교란행위를 막는다'는 구실로 범정부 차원에서 서구 음악[11]들을 금지곡으로 지정하거나 불법화했는데, 이 곡도 적국이었던 프랑스인이 작곡한 곡이었기에 금지곡으로 지정할 경우 육군 대표 군가가 금지곡이 되는 골때리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일본 육군의 눈치를 봤던 일본 정부는 군가를 약간 편곡한 후 작곡자를 바꾸어 계속 연주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프랑스인 개인이 일본의 노래로 만들어 주기 위하여 지은 곡이니 금지시키기에는 뭣하다. 비시 프랑스 수립 후에는 프랑스는 명목상이나마 독일의 괴뢰국이 되었으니 규제에서 제외되었다.
- 조선의 서울에서도 연주된 전적이 있다. 1943년 병력이 모자라던 일제가 대학생과 구제전문학교 학생들을 학도병이라는 이름으로 징집해 배치했는데,[12] 소집된 이들이 실사한 시가행진에서[13] 연주된 적이 있다.
- 상술했듯 일본군경의 상징적인 노래이기 때문에 이를 이어받은 자위대나 일본 경찰[14]에서는 부대개방이나 퍼레이드 등 행사 시 자주 연주하는 곡이지만, 사이고 다카모리의 고향이며 사이고에 애정이 각별한 지역인 가고시마 주둔 병력은 이 노래의 본질이 사이고와 가고시마를 때려잡는 내용의 노래인 만큼 지역 환경과 문화를 고려해 되도록이면 연주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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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믹스 버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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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호쿠 키리탄 버전 |
- 칼든 무사가 등장하는 가사 때문인지 와패니즈들의 취향을 자극해 서양에서도 인기가 있지만 작사된 배경이 내전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제국주의 밈의 주소재로 쓰이는 경향이 있다.[15] 동귀어진 상황이 발생할 때 브금으로 많이 깔리며[16], 역사대전략 게임 영상에서는 일본을 잡은 유저가 폭주하거나 역으로 쳐발릴때 눈의 진군과 함께 깔리는 브금을 양분한다. 비교하자면 발도대는 유저가 잘할 때, 눈의진군은 유저가 못할 때 깔리는 편이 많다.
- 7-5 음보로 끊으면 정확하게 끊어진다.[끊어보자]
- 해병문학의 무모구칠 렌야 해병님의 임팔 장난! 편에서 '발오도대'라는 군가로 개사되어 후렴구 부분만 짧막하게 나온다.[가사전문] 여담으로 해당 문학의 실제 인물인 무타구치 렌야는 서남전쟁 이후에 태어난 인물이다.
[1] 아이러니하게 징병제를 결정한 것은 사이고 다카모리였다.[2] 보신 전쟁으로 사쓰마에 원한이 깊던 조슈 번사들과 아이즈 번사들이나 신센구미 출신 사이토 하지메 등 많은 이들이 참전했다.[3] 군간부로 특채한다면 징병제와 정면으로 대치되는 문제가 생기겠지만 경찰관으로 특채했으니 문제는 없다는 논리였다.[4] 단, 오키나와현 경찰본부와 교토부 경찰본부만 제외한다.[5] 風(후-)로 부르는 버전도 있다. 이쪽이 좀 더 한자어의 느낌이 강하다.[6] 훈음으로 やまとがたな(야마통아타나)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러면 비트가 꽉 차는 느낌을 준다.[7] 불교의 지옥 중 하나인 도산(刀山)지옥. 칼이 박혀있는 산을 오르며 고통을 당한다. 즉, 죽어서 혼령이 된 다음이 아니라 현실에서 칼의 산(=도산지옥)을 보았다.[8] 儚く라고 쓰지만 그 어원은 '墓無く(무덤도 없이)'임. 중의법[9] 死する(시스루)로 부르는 버전도 있다. 이쪽이 좀 더 한자어의 느낌이 강하다.[10] 식민지 조선인 2500만이 일제의 징병에 감격한다는 가사[11] 주로 미국의 재즈와 가곡 등이 탄압 대상이 되었다.[12] 당연히 이는 어리석은 짓이다. 병력이 모자라다지만 전후 사회를 재건할 엘리트 인력은 남겨놔야 하기 때문. 물론 이때 일본은 미쳐 돌아가기는 했지만 아예 정신줄을 놓지는 않았던만큼 장교나 사관후보생으로 징집했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정신줄을 놓은 대전 말에는 엘리트고 뭐고 닥치는대로 일반 병으로 징집해 가미카제 등 총알받이로 내몰았다. 이때 징집된 조선인중 가장 유명한 이가 고 김수환 추기경.[13] 당시 명칭은 출진학도 장행회(出陣学徒壮行会)로 일본 각 대도시와 식민지인 조선, 대만, 심지어 만주국에서도 실시되었다.[14] 단, 오키나와현 경찰본부와 교토부 경찰본부만 제외한다.[15] 당장 위 영상 섬네일에 있는 히로히토는 서남전쟁(1877) 당시는 커녕 이 곡이 작사될 때(1885)도 태어나지도 않았다.[16] 예를 들면 꿀벌이 침을 쏘고 죽는다. 카미카제 때문인듯.[끊어보자] 我は官軍/我が敵は/天地容れざる/朝敵ぞ/敵の大將/たる者は/古今無雙の/英雄で
와레와 카ㄴ구ㄴ/와가 테키와/테ㄴ치 이레자루/쵸-테키조/테키노 타이쇼-/ 타루 모노와/ 코코ㄴ무소-노/ 에이유-데/(일본어는 받침과 장음도 1음절로 친다.)[가사전문] 기열을 무찌를 그때까지는 나아가 나아가라 모두 함께 번쩍이는 포신 뽑아들고 해병덴뿌라가 될 각오로 나아갈 것! 하잇 빠빠리빠! 사무라이라이 차차차![19] 물론 정작 2차대전 당시 미국은 일본의 적국이었던걸 생각하면 완벽한 자폭이다.(...)
와레와 카ㄴ구ㄴ/와가 테키와/테ㄴ치 이레자루/쵸-테키조/테키노 타이쇼-/ 타루 모노와/ 코코ㄴ무소-노/ 에이유-데/(일본어는 받침과 장음도 1음절로 친다.)[가사전문] 기열을 무찌를 그때까지는 나아가 나아가라 모두 함께 번쩍이는 포신 뽑아들고 해병덴뿌라가 될 각오로 나아갈 것! 하잇 빠빠리빠! 사무라이라이 차차차![19] 물론 정작 2차대전 당시 미국은 일본의 적국이었던걸 생각하면 완벽한 자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