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8 21:10:17

사이토 하지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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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센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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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 히지카타 토시조 군사 타케다 간류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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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센구미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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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센구미 3번대 조장
사이토 하지메
斎藤一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Goro_Fujita_aka_Hajime_Saito.jpg
<colbgcolor=#068fb0> 출생 1844년 2월 18일
무사시국 에도 (現 도쿄도)
사망 1915년 9월 28일 (향년 71세)
도쿄부 도쿄시 혼고구 (現 도쿄도 분쿄구)
묘소 아미타 사 (후쿠시마현 아이즈와카마쓰시)
재임기간 신센구미 3번대 조장
1864년 ~ 1868년
아이즈 신센구미 국장[1]
1868년 ~ 186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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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68fb0> 개명 야마구치 하지메
→ 사이토 하지메[2]
→ 후지타 고로[3]
가명 야마구치 지로
이치노세 덴파치
부모 아버지 야마구치 유스케
어머니 마스
아내 전처 시노다 야소
후처 타카기 토키오
자녀 장남 후지타 츠토무
차남 후지타 쯔요시
삼남 후지타 타츠오
신체 약 170cm[4] | 체중 불명
유파 불명
약력 신센구미 부장 보조
신센구미 3번대 조장
아이즈 신센구미 국장
경시국 경시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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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이름4. 외모5. 기타6. 본 인물이 등장하는 미디어 목록
6.1. 만화/웹툰6.2. 소설6.3. 영상물(영화, 드라마)6.4.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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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도 막부 말기의 신센구미 출신으로 메이지 시대에는 일본제국 경찰로 근무했던 실존 인물이다.

신센구미 최고의 검술 실력자인 1번대 조장 오키타 소지, 2번대 조장 나가쿠라 신파치와도 막상막하의 실력을 가졌다고 한다. 신파치는 오키타와 함께 사이토의 검술 실력을 평가하면서 오키타의 검은 맹자(猛者)[6]의 검이라면 사이토의 검은 무적(無敵)의 검이다.(沖田は猛者の剣、斎藤は無敵の剣)라고 언급했다. 후술하겠지만 다른 임무도 아니고 칼 잘 쓰기로 이름난 신선조 내에서도 내부 숙청과 적대측 주요인물 척살을 맡았다는 점에서 검술이 매우 뛰어났다는 것을 방증한다.

2. 생애

신센구미의 3번대 대장인 동시에, 주로 대내 밀정과 숙청 임무를 맡았다.

세리자와 카모, 이토 카시타로나 5번대 대장 다케다 칸류사이, 7번대 대장인 타니 산주로 등, 조직내외를 막론하고 직ㆍ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전해진다. 내부 암살자로서 유명해 이와 관련한 숱한 수수께끼를 남긴 의문의 사나이이기도 하다. 사이토 하지메 = 냉혹한 살수라는 지금의 이미지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이다.

지금의 유명세와는 달리 실제론 신선조 내의 주요 사건에선 약간 동떨어져서 크게 눈에 띄는 활약상은 없지만 알게 모르게 신선조에선 상당한 기여를 한 인물이다. 콘도 이사미를 신선조 원년 멤버 중심으로 아이즈 번주에게 참소한 건백서 사건에서 그 이름이 등장하기도 했으며 참모였던 이토 카시타로가 고료에지란 이름으로 조직을 분열시켰을 때 그와 같이 신선조 부대를 이탈하였고, 마침 그가 본대로 귀환한 직후 이토 카시타로가 암살되었기 때문에 조직 내 숙청이나 방첩업무에서 비밀스레 활약했다고 추정된다. 곧 옛 성과 차남이었던 사실을 따 야마구치 지로(山口次郞)으로 개명하였는데 후세의 팬과 역사 연구가들은 고료에지 시절 당시, 사이토 하지메가 콘도파의 스파이로 이토파의 동향을 감시하고 보고하는 스파이 역할을 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고료에지에 같이 가담했던 동료는 사이토 하지메가 밀정이었단 사실을 전면 부인하며, 단순히 여자 관계 때문에 조직의 돈에 손을 댔기 때문에 신센구미에서 도망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 정황증거 및 사이토 하지메의 성격, 그리고 유신 이후에도 밀정일을 수행했다는 점을 보면 그런 단순한 배신이 아니라 기존의 학설대로 콘도파가 파견한 밀정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보신전쟁에서 부상당한 히지카타 토시조를 대신하여 임시로 대장이 되어 부대원을 이끌고 아이즈까지 진격하기도 했다.

보신전쟁 이후, 사이토 하지메의 삶은 실로 아이즈 번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할 수 있다. 최후의 이름이었던 후지타 고로란 이름도 아이즈와의 인연에서 개명한 것이었으며 2번의 결혼도 아이즈의 무가 여성과, 지인도 아이즈 번 사람들이 다수였으며 죽을 때는 그 유해가 아이즈에서 안치되는 등, 실로 아이즈인으로서의 삶을 완수하였다. 그의 인생 후반생은 아이즈란 키워드를 제하면 논할 수 없을 정도로 아이즈의 인연으로 점철되었다. 혹자는 그는 에도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스스로 고향을 만든 사람이라고 평하고 있다.

보신 전쟁 종전 후 아이즈 번이 더 북쪽의 도나미 번으로 전봉되자 도나미 번의 번사로 살다가 이후 도쿄로 이주해 경시청에서 경찰의 밀정으로 근무했다. 서남전쟁 때는 경시대[7]로 참전해서 전장에서 돌격대의 선봉에 서서 부상당하면서 상당한 무훈을 세우기도 하며 평생 신센구미 시절과 그닥 다를 게 없는 무사도 스타일의 인생길을 근대화 사회에서도 꿋꿋이 걸어간 대단한 인물이다. 48세에 경시청에서 퇴직한 이후는 도쿄고등사범학교(현 쓰쿠바대학)에서 부속 박물관 수위로 근무. 하지만 그 당시 도쿄고등사범학교에 부속 박물관은 실존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구가들은 실제로는 검술 사범이나 수위 신분을 가장해 밀정 활동을 계속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하고 있다. 말년은 오차노미즈 여자고등사범학교(현 오차노미즈여자대학)에서 소소한 일을 하는 회계 및 서기로 일했다하니 그 하드한 인생을 생각하면 그저 충격이다.

나이들어서 노인이 된 뒤에도 실력이 여전했는지, 근처 학교의 검도부에 견학을 가서 연습 대련을 했는데, 한창 나이의 청년인 검도부원 중에 노인인 사이토에게 당해낼 자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역시 노인이 된 후에 근처에서 검도를 연습하는 사람이 나무 가지에 양철 물통을 끈으로 묶어두고 찌르기 연습을 하는 것을 보고는 '찌르기는 그냥 빨리 정확하게 찌르면 되는게 아니고 찌른 후 민첩하게 회수하는 동작이 중요하다''한번으로 죽인다는 생각을 하지마라. 몇번이고 다시 찔러라, 난 1명 죽이는데 평균적으로 3번 정도 찔렀다'라는 조언을 해주며 시연으로 목검을 쥐고 양철 물통을 찔렀는데 허공에 끈 하나로 매달린 물통이 그대로 꿰뚫렸다는 일화도 있다. 후세 창작물에서는 이 일화를 두고 '먼저 기로 관통한다면 손에 들린 것이 목검이건 진검이건 상관없이 꿰뚫을 수 있다'라는 말을 남겼다고도 한다.일본어 위키[8]

한편 자식들의 증언에 따르면 말년에는 병에 걸려서 상당히 고통이 심했을텐데도 불구하고 죽을 때 가부좌를 하고 앉은 자세로 죽었다고 하며, 자식들에게도 늘 전장에서 무사가 지켜야 할 마음가짐을 엄격히 강조했다는 일화도 여럿 있다. 현관 뒤에 숨어 있다가 귀가하는 자식들을 죽도로 내려치면서 "무사의 마음가짐이 안 되어 있다!(士道不覺悟!)"라든가 "문에 들어가면서 머리부터 들이밀면 기습당했을 때 치명상을 입는다! 발부터 들이밀어라!"라고 설교했을 정도라고 했다.

3. 이름

이름을 무려 4번이나 개명한 것으로 유명하다. 실은 '사이토 하지메'라는 이름은 2번째로 쓰던 이름이고 태어났을 당시에는 '야마구치 하지메'였다. 하지메(一)란 이름은 정월에 태어나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18세까지 야마구치 하지메라는 이름을 썼고, 이후에 사이토 하지메로 개명한다. 하지만 사실 이 이름은 5년 정도밖에 쓰지 않았다.

3번째 이름으로 '야마구치 지로'라는 이름을 사용했었고, 아이즈 전쟁 패전 후는 임시로 '이치노세 덴하치' 혹은 '이치노헤 덴파치'라는 가명을 쓰다 최종적으로 후지타 고로로 개명한다.

바람의 검심 -메이지 검객 낭만기-에도 등장하는 '후지타 고로'라는 이름은 '고로(五郞)'에서 알 수 있듯이 5번째 이름으로 그가 죽을 때까지 사용하던 이름이었으며 호적상에도 위의 이름을 사용했다. 이후의 행적들과 재직기록들을 살펴볼 때에는 '후지타 고로'로 찾아야 나온다. 40년 이상 후지타 고로라는 이름을 썼기 때문에 실제로는 후지타 고로가 가장 오래 사용된 이름이다.

후지타 고로(藤田五郞)란 이름은 아이즈 번 제후였던 마츠다이라 카타모리로부터 하사 받은 것이란 설이 있다. 실제로 후지타(藤田)이란 성은 아이즈 지방 무가의 성으로는 드물지 않다고 한다. 추측컨대 유신후, 신변 보호의 목적과 아이즈 전쟁에 끝까지 싸워줬던 것에 대한 보답으로 아이즈 무가의 양자로 들이는 식으로 이름을 하사하지 않았을까 싶다.

사이토는 일개 하급 무사, 그것도 아이즈 지방 출신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후손들이 '조부님은 아이즈후의 총신(寵臣)이었다'라고 회고할 정도로 아이즈 번 마지막 다이묘 마츠다이라 카타모리의 총애를 받은 것 같다. 이례적으로 사이토의 혼인시 중매인으로까지 나서주는 등 아이즈 전쟁 때 마지막까지 남아준 것에 대해 대단히 감명 받은 모양이다.

그 외에도 사이토가 후지타란 성을 쓰게 된 것은 아이즈 전쟁 후, 근신 중에 후지타란 아이즈 노무사에게 받은 것이란 설(아마 양자란 형식)과 아내 토키오의 친척쪽 성이란 설이 있다.

4. 외모

파일:external/www.saitouhajime.com/onlyphotosaitou.jpg

서남전쟁 당시에 찍은 경찰 시절의 사이토 하지메라고 추정되는 사진. 하지만 해당 인물이 쓰고있는 모자는 순경을 뜻하고 있으며, 사이토는 당시에 경부보(경위)였다고 자손들이 부정하고 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Goro_Fujita_aka_Hajime_Saito.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Hajime_Saito_and_his_family_in_1897.jpg

노년에 접어들 무렵의 사이토 하지메. 1897년, 53세 때 찍은 사진이라고 한다. 이 당시는 후지타 고로라는 이름을 쓰고 있었다. 오른쪽은 같은 해에 찍은 가족 사진으로 사진 왼쪽부터 차남, 하지메, 장남, 부인 토키오.[9]

5. 기타

오키타 소지와 마찬가지로 검술에 있어서 찌르기가 특기였다. '아돌'의 모델이 된 '좌편수일본돌(左片手一本突き; 히다리카타데 잇폰즈키, 왼 한손 찌르기)가 유명하다.

비록 한미한 신분이었지만 무사보다도 무사다운 기풍에 반해 신센구미를 지지하던 팬덤 사이에서는 은밀히 활동하던 살수라는 행적 때문에 과거에는 인지도가 낮고, 인기도 저조한 편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바람의 검심 -메이지 검객 낭만기-에 등장한 뒤라고 하는데, 작가가 암살과 밀정으로 활동했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막강한 힘을 가진 과묵한 자객으로 묘사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다만 이 쪽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진 탓에 다른 만화에서 등장하는 경우는 오히려 더 적어졌다고...

참고로 만화에 출연해서 이상한 쪽으로 인기가 생긴 탓에 많은 수의 부녀자들이 가문의 묘에 참배를 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이 묘지에서 코스프레를 하는 등 주변에 소란을 피워서, 민폐를 걱정한 나머지 묘지를 폐쇄했다고 한다. 묘는 아이즈와카마츠시(会津若松市) 아미다사(阿弥陀寺)에 있다. 부녀자들의 말에 의하면 묘가 후지타 가문의 본가가 있는 도쿄와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성묘를 갈 수 있어 좋다고 한다.

확실한 바는 아니나 일본사 블로그나 아이즈 지방 연구 사이트 등에 의하면 현재 사이토 하지메의 후손, 즉 후지타 가의 직계 자손은 도쿄의 츠키지 어시장에서 도매상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대부분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 등지에선 냉혹하고 과묵한 캐릭터으로 그려지는데, 대부분이 미남에다 badass한 캐릭터 혹은 쿨 계열 캐릭터다. 말할 것도 없이 바람의 검심 때문. 사실상 오늘날의 신선조의 이미지를 확립한 시바 료타로의 소설에서 히지카타, 오키타, 곤도의 3인을 주연으로 다루었고 사이토는 비중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위에서 언급하듯 찐 신선조 오타쿠가 아닌 이상 이름만 아는 정도의 인물이었는데, 바람의 검심에서 멋진 캐릭터로 재창작을 해 낸 덕분에 오늘날의 차갑고 잘생긴 미남 사이토의 이미지가 완성되었고, 사실상 바람의 검심 이후에 나오는 신선조 창작물에서의 사이토는 시바 료타로의 사이토가 아닌 바람의 검심의 사이토를 레퍼런스로 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 후일의 만화 은혼이나 대하드라마 신센구미!에 나온 오다기리 죠 또한 그런 갈래.[10]

6. 본 인물이 등장하는 미디어 목록

(국내 번역물만 대상으로 하였다.)

6.1. 만화/웹툰

6.2. 소설

  • 신센구미혈풍록
  • 칼에 지다 (원제:미부기시덴)
  • 타올라라 검
  • 막말의 암살자

6.3. 영상물(영화, 드라마)

6.4. 게임

파일:斎藤一.jpg
100만인의 노부나가의 야망


[1] 사이토는 20여명의 대원들과 아이즈에 잔류하여 신센구미를 이끌었다.[2] 이 이름은 불과 5년밖에 사용하지 않았지만 신센구미 활동 기간 사용했기 때문에 세간에 가장 널리 알려져있다.[3] 메이지 유신 이후 줄곧 사용한 이름이다.[4] 5척 6촌이라는 기록이 있다. 당시 일본인 남성의 평균 키가 155~158cm였음을 감안하면 상당히 장신으로 5척 5촌이던 히지카타보다 살짝 더 크다.[5] 계급은 경부보(경위)→경부(경감)[6] 한국어에서는 용감하고 기백이 있는 사람이지만, 일본어로는 수완가, 달인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니까 기술적으로 매우 높은 경지에 이른 검의 달인.#[7] 서남전쟁 당시 경시청이 전국의 무사 9,500명을 순사로 특채하여 편성한 부대. 일명 징모순사대. 흔히들 알고 있는 발도대는 타바루자카 탈환을 위해 이 경시대에서 검술에 능한자를 선발해서 편성한 부대다. 발도대에 구 막부측 무사가 많았다는 인식과는 달리 실제로는 오쿠보 도시미치 일파 사쓰마 번사들이 주력이었고, 사이토 하지메는 발도대에 소속된 적이 없다. 구 막부측 무사가 많았던 것은 주로 도호쿠 방면 무사들을 특채했던 경시대. 총원 9,500명 중 과반수인 5,200명이 도호쿠 출신이었다.[8] 일본어 위키 만년부에 나온다.[9] 바람의 검심에서도 그 이름이 언급된다.[10] 참고로 함께 출연했던 배우들이 오다기리 죠를 당시에 정말 부러워했다고 하는데 멋있고 폼나는 역할이기도 하거니와 대사는 알겠소(쇼치)등 대부분 매우 짤막한데 그에 반해 임팩트는 상당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물론 오다기리 죠의 살수다운 차갑고 냉혹한 표정연기가 일품이다.[11] 첫 등장시엔 그냥 주인공 일행을 도와주는 동네경찰서장으로 나오지만 점점 통찰력이나 인맥, 엄청난 검술실력이 드러나면서 보통사람이 아니라는게 드러난다. 후반부에 요괴로 부활한 히지카타 토시조가 사이토 하지메라고 부르며 비로소 정체가 밝혀진다.[12] 사이토를 생전에 만나본 나이 많은 독자가 이 만화를 읽어보고 자기가 여태까지 본 모든 미디어에 등장한 사이토 중 제일 실존인물에 가깝게 묘사했다고 발언한 적이 있는데, 정말이라면 피비린내나는 삶을 살았으면서도 의외로 인상은 평범했던 모양이다. 아니면 그만큼 일반인 코스프레를 잘 했거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