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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원전 20년 전 ~ 기원후 39년 후헤로데 대왕의 아들. 루카 복음서에서 예수가 고통받을 때 등장하는 헤로데 왕은 이 헤로데 왕이다. 갈릴래아의 분봉왕으로, 형제들 가운데 가장 오래 살았고 왕권도 지킬 수 있었던 인물.
2. 생애
기원전 4년 헤로데 사두정치 | |
헤로데 아르켈라오스 | |
헤로데 안티파스 | |
헤로데 필립보 2세 | |
살로메 1세 |
세례자 요한이 헤로디아와의 결혼으로 헤로데 임금을 비판했다가 감옥에 갇힌 후 결국 참수당해서 죽는데, 마태오 복음서와 마르코 복음서에 따르면 이 때 헤로디아와 딸이 주요하게 개입한 것으로 나온다. 당대의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에 따르면 그 딸은 헤로데 필립보 1세의 친딸인 살로메 3세였다고 한다. 성경에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4] 헤로데 왕의 의붓딸이 매혹적인 춤을 춰 헤로데 임금에게 호감을 샀고, 그 때 어머니와 상의하여 은쟁반에 요한의 목을 가져오기를 요구했다고 나온다.[5][6][7]
헤로데가 요한에게 까인 이유는 필립보 1세가 죽어서 그 아내를 어쩔 수 없이…가 아니라 강탈했기 때문이다. 이건 정치적인 계산이 들어있었는데, 헤로디아는 정통 유대인 왕조인 하스몬 왕조의 후손이었기 때문. 정확히는 헤로데 대왕이 찬탈한 정통 유대인 왕조 하스몬 왕조의 공주이자 헤로데 임금의 부인인 미리암[8]의 아들인 아리스토불로스 4세[9]의 딸이다. 어머니가 측실이어서 지지기반이 취약했던 헤로데 안티파스에겐 나름 정통성 강화의 수단이었던 셈.
그러나 요한의 말대로 이 결혼은 실제로 그에게 영 좋지 않은 효과를 불러왔다. 갑작스러운 이혼에 분노한 전처의 아버지, 즉 전 장인인 나바테아 왕국의 아레타스 4세가 쳐들어왔고(서기 37년), 이에 로마에 구원을 요청했으나 시리아 총독 루키우스 비텔리우스는 매우 천천히 진압에 임했다고 한다. 이 때 그는 굴욕적인 패배를 맛본 후 헤로디아와 아그리파의 갈등에 따라 자기 조카 헤로데 아그리파스 1세의 참소로 인해 로마 황제 칼리굴라에 대한 반역죄로 왕위에서 쫓겨나, 형이 쫓겨난 유배지 갈리아에서 숨을 거둔다. 이 때문에 흔히 죄 없는 요한을 죽인 대가로 악몽에 시달리다 영화도 잃고 죽었다고 전해진다.[10]
3. 기타
루카 복음서에서는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으로 들어와 마침 붙잡힌 예수를 만나 그를 조롱하며 기적을 일으켜 보라며 떠보나, 예수가 듣지 않는 등 대놓고 악역으로 나온다.[11] 외경에서는 본시오 빌라도와 달리 손을 씻지 않으며, 십자가형을 주도하기도 한다.[12] 여기에 헤로데의 막장, 사치 이미지가 결합하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등에서는 아주 코믹하게 나온다. 1973년판 영화 2000년판 영상물 딱 한 파트 나오지만 의외로 카메오 격의 주요 배우가 나오는게 특징으로, 30년을 거치면서 점차 복장이 브로드웨이 쇼 뮤지컬 틱하게 변하는 게 특징. 많은 바리에이션이 있다.잭 블랙도 2006년에 자선공연으로 헤로데를 맡았다.
1977년 영화 나사렛 예수에서는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맡아 권력욕과 색욕에 찌든 권력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1] 티베리아스는 갈릴래아의 주도로 지금도 번성하는 도시다.[2] 헤로데 2세라고도 한다. 아버지 헤로데 대왕과는 동명이인이며 헤로데 대왕의 3번째 부인이자 대제사장 시몬 보에투스의 외동딸인 마리암네 2세의 외동아들로 흔히 보에투스라고 한다. 아버지의 지위는 계승하지 못했으며 헤로데 대왕으로부터 영토를 물려받은 통치자들(= 분봉왕, 헤로데 사두정치) 중 한 명인 헤로데 빌립보 2세와는 다른 인물이므로 혼동하지 말 것. 그리고 훗날 세례자 요한을 죽게 만든 헤로디아의 첫 번째 남편이지만 아내인 헤로디아는 자신의 이복형제인 헤로데 안티파스와 불륜을 저지른다.[3] 부활 개념을 인정하지 않았던 사두개 인들이 예수에게 형사취수로 형제들이랑 결혼한 여자가 나중에 다 같이 부활하면 누구의 부인이 되는 거냐 물어보기도 했다.[4] 전술했듯 살로메의 이름은 플라비우스의 기록에만 나온다.[5] 그러나 요세푸스의 기록에는 헤로디아와 그녀의 딸의 춤에 대한 기록은 없다. 아마 요한의 죽음이 민간으로 전해지면서 당시 민간에서 안 좋게 본 헤로디아 모녀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우는 루머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고, 성경에도 그대로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6] 오해와 달리 헤로데가 근친상간 돋게 살로메에게 '네 어미의 자리도 주리라'라고 한 적은 없다. 헤로데가 한 말은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이다.[7] 그리고 복음서에서는 예수의 죽음 이후로 추정되는 요한의 죽음의 선후가 반대다. 그래서 오히려 헤로데 임금이 예수를 두고 "허걱, 세례자 요한이 도로 살아났구나! 그러니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 하는 대목이 있다. 부활 두 번 할 기세 이 대목은 헤로데가 가지고 있던 죄책감(마르코 복음에선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게 여겨 그의 극언을 싫어해도 듣기는 얌전히 들었으나, 헤로데가 살로메에게 한 맹세 때문에 억지로 죽였다고 나온다) 등을 반영한다는 해석이 있다.[8] 첫번째 헤로데 임금 또한 정통성을 위해 미리암과 결혼한다.[9] 이 사람은 하스몬 왕조의 남성 후손이라 찬탈자였던 아버지 헤로데 대왕에게 처형당했다.[10] 외경에 의하면, 요한의 목을 달라고 한 헤로디아의 딸은 갈리아에서 얼음 위를 걷다가 얼음이 무너지면서 물에 빠지는데, 얼음의 날카로운 면에 그만 목이 잘리고 만다.[11] 대신 흥미롭게도 루카 복음서에는 요한을 베는 과정과 살로메의 이야기가 안 나온다(베었다는 얘기는 나온다).[12] 자기가 다스리던 갈릴래아 출신이니 더욱 깔봤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