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B13C3B, #B13C3B 20%, #B13C3B 80%, #B13C3B); color: #FAE572;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rowcolor=#FAE572> | |||
안드레아스 팔레올로고스 | 그레고리아 | 갈리스토 | 비오 | |
<rowcolor=#FAE572> | ||||
알리폰소 | 프리드리히 | 스프란체스 | 바오로 |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181818,#E5E5E5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font-size: 0.95em; letter-spacing: -1.4px" | 칸타쿠지노스 왕조 | 팔레올로고스 왕조 | |||
1349년~1380년 | 1380년~1383년 | 1383년 | 1383년~1407년 | 1407년~1428년 | |
마누일 칸타쿠지노스 | 마테오스 칸타쿠지노스 | 디미트리오스 칸타쿠지노스 | 테오도로스 1세 팔레올로고스 | 테오도로스 2세 팔레올로고스 | |
팔레올로고스 왕조 | |||||
1428년~1443년 | 1443년~1449년 | 1449년~1460년 | 1460년~1465년 | 1465년~1502년 | |
테오도로스 2세 팔레올로고스 | |||||
콘스탄티노스 팔레올로고스 | 디미트리오스 팔레올로고스 | ||||
토마스 팔레올로고스 | 안드레아스 팔레올로고스 | }}}}}}}}}}}}}}} |
제호 | 없음 | |
성 | 팔레올로고스(Παλαιολόγος) | |
휘 | 안드레아스(Ανδρέας) | |
생몰년도 | 1453년 ~ 1502년 | |
재위기간 | 1465년 ~ 1502년 |
[clearfix]
1. 개요
동로마 제국의 제위 계승권자로 토마스 팔레올로고스(Θωμάς Παλαιολόγος)의 장남이자 마누일 팔레올로고스의 형이자 소피아 팔레올로기나의 큰남동생이며 콘스탄티노스 11세의 조카이다. 공식 직함은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황제이자 모레아의 전제군주였다. 12세의 나이에 고아가 되어 망국의 마지막 계승권자로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시도했지만, 이름 말고는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어떤 시도도 성공적이지 못했고 빈곤 속에서 사망했다.2. 생애
콘스탄티노스 11세 이후로 이어진 제위는 어차피 망명한 상태에서 이어진 것이고 실질적인 지위라고 보기는 어렵다. 마지막 명목상 황제인 안드레아스 팔레올로고스는 이전까지는 방탕한 삶을 살다 재산을 탕진하였다고 알려져 있었다. 다만 최근 들어 학자들이 밝혀낸 바로는 교황에게서 받은 생활비 자체가 부족했기에 방탕하고 뭐고 할 것도 없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실제로 교황은 아버지 토마스를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황제'로 인정해서 풍족하게 지원했지만 안드레아스는 '모레아의 전제군주'로만 인정했고, 교회 내의 유일한 후견인이었던 그리스 출신의 바실리오스 베사리온 추기경이 사망한 이후에는 교황청은 그에게 관심을 끊었고 지급하던 금액도 1/5 이하로 줄였다. 아버지 토마스는 그래도 망명 정부를 꾸리고 수백 명의 가신들을 먹여 살릴 여력이 있었지만, 그가 죽은 후에는 가신들에게 지급할 급여가 없어서 하인 두세 명 말고는 모두 떠나버렸다.1481년에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트 2세가 사망한 이후 제위 복귀를 노렸으나 소수의 난민들 외에는 지지를 얻지 못해서 실패했고 전 재산인 2,000 두카트를 잃어 파산 상태에 빠졌다. 이후에는 조부 마누일 2세가 그러했듯 유럽을 순회하며 지원을 구했으나 그를 동정했던 프랑스 국왕 샤를 8세나 누나인 모스크바의 소피아를 제외하면[1] 어딜 가나 귀찮은 불청객 수준의 박대를 당했다. 여행 경비 때문에 빚만 늘어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후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1494년 샤를 8세에게 제위 계승권을 팔았다. 샤를 8세는 오스만을 공격하여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탈환하고 연간 4,300 두카트의 연금과 백 명의 기사들을 지원하기로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지급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나중에 안드레아스는 유언으로 스페인 국왕 페르난도 2세와 이사벨 1세 부부에게 또다시 계승권을 넘겼는데, 이미 죽어가던 무렵이었기에 그의 가족이 돈을 받았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리고 1502년 안드레아스가 죽고 나서 그의 아내는 남편의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교황에게 104 두카트를 구걸하다시피 해서 얻어내야만 했다.
그러나 이미 동로마 황제라는 자리는 명예직이나 다름없는 것이었고, 샤를 8세와 후계자들은 단순히 명예 칭호로만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황제'를 사용했고, 샤를 9세는 이 칭호가 무의미하다며 공식적으로 폐지했다. 스페인 부부왕 또한 로마 황제라는 칭호를 아예 사용하지 않았다.[2][3] 제국 역사상 가장 긴 왕조였던(1258~1453) 팔레올로고스 왕조는 명목상의 계승권마저 흐지부지하게 소멸하는 모습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3. 대중매체에서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에선 템플 기사단원으로 등장. 로마에서 어린 시절 템플 기사단에 대해 알게 된 그는 동생 마누일 팔레올로고스와 함께 템플 기사단에 가입한다. 템플 기사단의 힘을 빌려 동로마 제국의 부활을 꿈꿨던 그는 로드리고 보르지아와 친분을 유지하려 했으나 보르지아는 점점 관심을 끊기 시작하며 후원도 중단한다. 보르지아의 후원으로 살던 그는 살기 위해 제위 계승권까지 팔며 버텼으나 1502년 로마 빈민굴에서 사망한다.대체역사물 이탈리아에서 살아남기에서는 오스만의 오트란토 침공을 주인공의 삼촌인 루도비코가 주도한 나폴리 영주 연합이 격퇴하며 할 일이 없어진 십자군이 모레아 수복을 거론하며 언급되었고 주인공의 밀라노 공국이 피렌체 공화국, 페라라 공국, 볼로냐, 만토바 후국과 연합해 베네치아를 칠 때 용병업이라도 해서 돈을 벌기 위해 페라라 공작을 방문하는 것으로 첫 등장했다. 비록 안드레아스는 병사라도 좋으니 참전시켜달라고 하지만 신분상 그를 병사를 내세울 순 없고 그런다고 지휘관으로 삼자니 군사적 경험이 없어 그 능력이 검증이 되지 않은 상태라 골머리를 썩던 페라라 공작이 밀라노 공국에 안드레아스를 토스하게 되고 그가 가지고 있는 동로마 제국의 제위 주장권을 이용하고 싶던 주인공의 도움으로 베네치아령에서 동로마 제국의 부활이 선언되자 그 황제로 즉위했다. 원 역사에서는 돈이 없어 끝내 빈민굴에서 비참하게 사망했지만 여기서는 돈 많은 베네치아 지역에서 동로마 제국이 재건되고 그 황제로 즉위한 덕에 황실 재산이 유럽내 순위권이라 할 정도로 부유하게 지내고 있으며 키프로스의 여왕과 결혼했고 북이탈리아의 공국들과 헝가리 왕국을 봉신으로 두며 이들을 토대로 제국 수복 전쟁까지 일으켜 오스만을 몰아내고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다시 수복하는 등 대체역사의 최대 수혜자가 되었다.
[1] 반갑기는 하지만 올 때마다 돈을 빌려간다며 불평했다.[2] 반면 안드레아스에게 작위를 사지도 않은 오스만 제국 술탄은 로마 황제를 겸임하고 있음을 자처했다.[3] 거기다 이때는 스페인 부부왕의 사돈 막시밀리안 1세가 신성 로마 황제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