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22 01:11:00

법학


1. 개요2. 법학의 분류3. 법학 용어4. 유용성5. 유사6. 교재7. 관련 어록8. 관련 단체·기관9. 관련 문서

1. 개요

Science of Law
의 이해와 실생활에 응용하는 학문이다.

좁은 의미에서는, 법원(法源)을 해석하며 그 원리를 규명하고 이로써 법해석을 체계화하는 학문(독일어로는 Rechtsdogmatik(법교의학, 법도그마틱으로 번역)이라고 한다)을 말하고, 넓은 의미에서는 법을 역사적, 철학적, 사회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법이라는 것이 사회현상이기 때문에 대학 편제에서 사회과학대학에 법학과를 두는 예가 많지만, 법학은 방법론적으로는 사회과학보다는 오히려 인문학에 가깝다. 이 점은, 해석(학)이라는 것이 사회과학에서 주로 문제되는지 아니면 인문학에서 문제되는지를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2. 법학의 분류

크게 실정법학(법해석학)과 기초법학으로 구분된다.

실정법학은, 법분야별로 해당 법령의 해석과 체계화를 목적으로 한다. 상술했듯이, 좁은 의미의 법학은 실정법학을 지칭한다. 그 분과는 대체로 "○○법학"(예: 민법학)이라는 명칭이 된다.

법을 정당하게 적용하려면 체계화된 해석이 필요하기 때문에, 실정법학은 법실무(재판이 대표적이다)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아래에도 서술되어 있듯이, 법실무를 위해 실정법학이 존재한다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다.

기초법학은, 법현상 일반을 관련 인문, 사회과학의 관점에서 고찰함을 목적으로 한다. 그 분과는 대체로 "법○○학"(예: 법철학, 법사학, 법사회학, 법경제학, 법의학[1])이라는 명칭이 되며, 방법론적으로 완전히 해당 인문, 사회과학 분야의 그것에 의한다. 예를 들어, 법철학은 협의의 법학보다는 철학에 가깝다.

그밖에, 비교법학이라는 것이 있는데,이런 분과가 존재하는 이유는 실정법학이란 기본적으로 자국의 실정법만을 대상으로 하기[2] 때문이다.[3]

3. 법학 용어

한편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의미와 다른 법률 용어들이 적지 않은 편인데, 선의, 악의, 준용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사실 준용은 일상생활에서 원래 의미로도 잘 쓰이지 않는다 설명을 하자면 선의와 악의는 법학에서 선의라 함은 전후 사정을 몰랐음을 뜻하며 악의는 사전에 알았음을 뜻한다. 준용 역시 원래는 표준으로 삼아 적용하다라는 의미이지만, 법학에서는 "어떤 사항에 관한 규정을 그와 유사하지만 본질적으로 다른 사항에 적용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또한 법학에서 쓰는 용어와 실무상의 단어도 다를 때가 많다. 그것도 아주 많다! 예를 들면 '운전면허'는 학문적으로는 '허가'에 해당하고, '발명특허'는 학문상의 '특허'가 아니라 '확인'이다. 정작 학문상의 '특허'에는 '광업허가'가 들어가는 등, 법공부를 안 해본 사람이 보기에는 매우 엉망진창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행정기관에서 용어를 통일하던지 법학계에서 용어를 좀 바꾸던지 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지만, 당사자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듯...

그래서인지 법학과 법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 대한 대한 전형적인 편견을 나열하자면, 일단 법학을 공부한 사람은 따지는 것을 매우 좋아하고, 일상생활에서 쓰는 쉬운 말들을 어려운 말로 치환하여 쓰는 것을 즐기며, 심지어 일상생활에서 쓰는 단어들을 이해하기 어려운 순서대로 배열하는 데 능하다고 하는 것이다. 정답 최근에는 이러한 비판을 감안했는지 한자투성이인 법전을 한글화하고, 판결문도 가능한한 쉬운 단어를 사용하려고 노력 중이지만, 보수적인 법원 특성상 단시간에 바뀌고 있지는 않다.

법학도들이 교과서보다 더 많이 읽어야 되는 판례부터가 이미 만연체의 향연이다. 만연체의 본좌라고 할 수 있는 독일어를 공부한 교수조차도 가끔씩은 "이게 무슨 소릴까요?"라고 법학과 교수들에게 하소연 하곤 한다. 사실 이런 특성 자체도 우리나라 법체계가 대부분 독일법을 따랐기 때문인데[4] 이것은 법학의 기본 태도가 개념에 대한 정밀한 이해를 전제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개념의 정의, 해석의 여하, 그리고 입법자나 법해석자의 오류에 의해서 작게는 채권 채무의 존부, 크게는 인간생명, 자유 심지어 국가안보가 왔다갔다 한다. 그러니 당연한 결과. 다만 그렇다고 쳐도 굳이 간결하게 쓸 수 있는 표현을 억지로 늘리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다. 굳이 '않다'를 '아니하다'로 쓴다든가...

다만 법학 만연체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이다'를 '~라 하지 아니할 수 없다.'로 늘여쓰는 것에는 나름의 사정이 있다. 하나의 법률 쟁점에 대해 여러 의견들이 첨예하게 대립할 경우, 법관은 그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형식으로 판결을 내리는게 대부분이다. 그런데 현실의 분쟁은 과학처럼 진리의 정답이 정해져 있는게 아닌지라, 법관이 무조건 '이 의견이 옳다'라고 단정 짓듯이 서술하는 것은 법관 입장에서도 상당히 부담스럽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의견이 모든 경우에 옳다고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이 사안에서는 그 적용을 부정하면 안 되겠다'[5]라는 의미에서 '~라 하지 아니할 수 없다' 등의 완곡한 표현을 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4. 유용성

법학은 분명히 생활에 매우 밀접하고 크게 도움이 되는 학문들 중에 하나임이 틀림없다. 얕게 배운 다른 학문들보단 그나마 얕게라도 배운 법학은 혹시 모를 불의의 사고에서 크나큰 도움이 된다. 예를 들면 폭행 사건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짭짤한 용돈을 버는 경우의 수를 선택할 수 있는지, 도둑질을 어떻게 해야 그나마 형량을 적게 받는지 등. 좋은 거 가르친다.

다만 사람들이 잘 모르고 나불대다가 역관광당하는 경우가 결코 적지 않은 분야이기도 하다. 다른 사회과학의 학문에 비하자면 법은 그 체계가 꽤나 잘 잡혀 있고, 여기에 평생을 바치는 전문가들도 많고 판례도 엄청나게 쌓여 있기 때문에 대충 어떤 요소를 어떻게 해석할지는 어지간해선 다 틀이 잡혀 있다. 즉 자기가 뭔가를 새로 정의해서 자기 논리를 펴는 게 거의 불가능한 분야라는 것. 자기가 하는 행동이 불법인지도 모르고 까불거나, 상대방의 아주 정당한 권리행사를 붙잡고 늘어지다가 피해자에게 고소를 당해 되려 얻어터지거나 하는 경우는 결코 드물지 않다. 무슨 죄 항목이나 범죄로 착각하기 쉬운 것들 항목을 참조.

실제 사건에서 적용되는 법률과 판례는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고 복잡하다. 사건의 규모와는 상관이 없다. 따라서 법적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어설픈 법지식으로 대응할 생각 말고 반드시 법률 전문가(변호사, 법무사, 해당 법률 분야 석박사 등)의 상담을 받도록 하자. 총론 수준의 일반적인 지식은 구체적인 사건에서는 그냥 길잡이 역할만 할뿐이다. 시험 준비하면서 민법, 형법 좀 공부했다고 함부로 덤벼들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조문 하나 판례 하나 때문에 수백~수천만원의 돈이 왔다갔다하고 감옥이냐 자유냐가 결정될 수 있는데, 이런건 법률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제대로 짚어내기가 힘들다.

대표적인 법학자로 민법학에서는 곽윤직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가 있고, 형법학에서는 이재상이화여자대학교 법과대학 교수가 있다. 다만 실제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접하는 법관계는 저 둘이 아니라 사실 행정법이다. 출생신고부터 시작해서 뉴스에 꾸준히 나오는 정부의 각종 발표내용, 뭘 하려고 하면 받아야 하는 각종 허가, 면허, 주민등록, 수능시험의 출제 및 응시(사인의 공법행위) 같은 것들이 전부 다 행정법의 영역이다. 워낙에 별거 아니고 흔한 내용이 많다 보니 이게 법률의 영역이라는 걸 깨닫지도 못할 뿐.

법학과 졸업자의 경우 변호사, 법무사, 노무사 등의 자격증이 없더라도 법학 자체가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취업 분야는 매우 넓다. 일부 기업에서는 상경계와 함께 분류하거나 아예 따로 지원자격(법정)을 설정하기도 한다. 또한, 문과 중에서는 행정학과와 더불어 인문학은 물론 어지간한 순수 사회과학 분야보다 인식이 매우 좋다. 최근엔 예비 공시생 취급을 많이 하지만 일단 진로와는 무관하게 법은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다만 법의 내용은 시대에 따라 바뀔 것이다.

단점이라면 법은 나라마다 다르기 때문에 법지식은 그 나라에서만 유효하다. 의사나 기술자는 자기 능력을 그대로 살려 해외취업할 수 있지만, 대법원장이라도 다른 나라 법은 다시 배워야 한다. 다만 대부분의 현대 국가 법률은 기본적으로 나폴레옹 법전을 기초로 하며 서로 영향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므로[6] 아예 백지부터 시작하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한국이 영향을 많이 받는 일본(베꼈다)[7], 독일, 미국[8] 세 나라 법은 한국법 전문가들은 해석만 되면 무슨 내용인지 대충 이해는 다 된다고 한다.

모 교수는 사람들이 싸우면 법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기쁜 일이라 하더라(?!)

법학의 유용성에 대한 표현으로 '을 위한 학문'이 알려져 있다. 독일어인 원어는 Brotwissenschaft. 독일의 작가인 프리드리히 쉴러가 만든 표현인 '빵 학자'(Brotgelehrter)에서 기인했다. 단, 쉴러는 이 표현을 법학을 넘어서 학문 전체에 대해 지나치게 실용적인 입장을 취하는 학자들을 비판하기 위해 만들었다. 개인의 물질적 이득과 사회적 지위, 명예 등을 얻기 위해 학문을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자들을 '빵 학자'로 표현한 것.

5. 유사

실무법학, 학문으로서의 법학(이론, 강단법학), 수험법학 사이에 차이가 있다. 이는 언론지상은 물론이고 심지어 학술논문에서도 자주 거론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밀한 구분이 쉽지 않다.[9]
이러한 로스쿨 체제하에서 법학의 모습은 어떠할지에 관해서도 로스쿨 문턱에 가 보지 못한 본인은 전혀 알 길이 없다. 대체로 법률 이론이 아니라 실무적인 교육이 요구된다는 말을 한다. 즉 로스쿨의 본질은 이론이 아니라 실무에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러하다. 이것 또한 미국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것이다. 로스쿨에서 법학의 학문적 성격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고 그 도착점은 법학의 학문적 종말이다. 로스쿨의 본질상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그러한 운명적 결단을 이미 내린 것이다. 그것이 로스쿨의 본질이다. 그렇기 때문에 로스쿨법의 통과는 학문으로서의 법학에 대한 사형선고이고 법학의 학문적 성격에 종말을 선언한 것이다. 이는 필자가 전공하는 형법에 관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결국 형법학은 쇠락해 가는 것이며, 이를 국민들은 기꺼이 선택하였다. 형법학의 종말. 그것이다.
- 이용식,[10] 현대형법이론 I(2008) 서문, 그런데 막상 로스쿨이 도입되고 보니 법과대학 시절보다 학생들이 수업을 열심히 들어 주어서 저 서문 쓴 본인이 감읍해 하고 있다는 것이 개그.
강단법학은 실제 현장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주목하지 않고, 이론의 체계화 및 논리적 타당성을 추구하고 학설 대립의 설명에 치중하는 법학이고, 수험법학은 모범답안의 작성능력 향상에 목적을 두고 시험문제의 분석과 암기력 테스트에 치중하는 법학이다.
- 박종보[11]
로마의 법학은 (중략) 실무법학이었다. (중략) [로마법률가]들의 주된 관심은 정의에 관하여 철학적으로 사색하여 "심오한" 진리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법률자문을 구하는 자들에게 실천적 해결책을 제시하여 그들의 심적 물적 부담을 덜어 주는 것이었다.[12]
- 최병조[13]

연구 내지 공부의 주된 대상 자체는 다를 바 없다(우리나라의 법령, 유권해석(대개 판례), 학설).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연구 내지 공부의 목적이다. 실무법학은 실제 법률문제의 해결을 목적으로 하고,[14] 수험법학은 변별력 있는 출제와 시험 합격을 목적으로 하며, 학문으로서의 법학은 이론적 정합성과 학설대립의 극복을 목적으로 한다고 할 수 있다.

저 세 가지가 서로 잘 어우러지면 법치주의가 이룩되는 것이고, 저 세 가지가 서로 따로 놀면 막장이 되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현대 한국 법학의 상태는 후자 쪽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6. 교재

  • 법'학' 말고, 생활법률 서적으로는, 법무부'한국인의 법과 생활'이 가장 명저로 꼽힌다.
  • 선진국의 경우에는 간결하고도 수준 높은 법학 입문서들이 있으나(독일의 Academia Iuris 시리즈, 미국의 Nutshell 시리즈 등), 대한민국은 그런 거 없다. 설마 싶겠지만, 정말로 없다.[15][16]
    • 시중에 '입문'이라는 제목이 붙은 법서들은 다수 존재하지만, 입문서로서의 가치...는 고사하고 대체 왜 썼는지 이해할 수 없는 책들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유명한 책인 양창수 대법관의 '민법입문'도 정작 내용은 입문서가 아니다. 실제로 읽어 본 사람들 대부분은 "민법 공부를 '하고 나서' 읽어 보면 좋은 책"이라고 평한다.
    • 누워서 읽는 법학(저자는 초판 출간 당시 공익법무관. 현재는 판사)이라는 책이 한 때 화제가 되었는데, 시중에서 책을 살 수 있을 뿐 아니라, 저자가 책자를 PDF 파일로 올려 놓아서 무료로 볼 수도 있다. 심지어 저자가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여 교재 강의까지 올려 놓았다. 그런데, "저자의 의도는 생활법률 서적 겸 법학 입문서 겸 변호사시험 수험서였던 듯하나, 그 결과 생활법률 책도 아니고 법학 입문서도 아니며 그렇다고 변호사시험 수험서도 아닌 책이 되어 버렸다."라고 평하는 이들도 있다. 로스쿨 새내기라면 학교 시험을 쳐야 하는 부담이 있기 때문에 수험가의 정평 있는 수험서를 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대로 문외한이 누워서 읽기에는 관심을 가질만한 쉬운 내용보다는 너무 많이 나갔다. 그래서 컨셉이 모호하다.
    • 간결하면서도 구색이 맞게 집필된 법학교재로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재와 법원공무원교육원 교재가 있다. 너무 인지도가 없어서 추천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비전공자로서' '학문으로서의 법학이 궁금한데' '두꺼운 교과서를 읽을 엄두는 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읽어 볼 만하다.
  • 전통적으로는 사법시험 수험생들이 많이 보는 정평 있는 교과서(교수저)로 공부하는 것이 법과대학 학생들의 일반적인 공부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는 20세기의 이야기로, 2000년대 들어서는 수험서(강사저)를 교재로 사용하는 것이 대세가 되어서, '정평 있으면서 많이들 보는 교과서'라는 것 자체가 사실상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17]
    • 조금 황당하게도, 예나 지금이나, 교과서보다 수험서를 읽고 나니 오히려 해당 과목이 더 이해가 잘 되었다고 하는 예들이 엄존한다. 그도 그럴 것이 교과서는 저자가 자기 학설을 개진하려고 쓰는 예가 많다 보니 저자의 독자설 등 쓸데없는 내용은 많은 반면 중요 판례 등 정작 필요한 내용을 빼 놓은 경우가 허다하다. 실제로, 시중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교과서들을 보면 대개 저것이 저렇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다. 다만, 수험서는 수험서대로 시험에 나올 내용만 토막 토막 그러모아 만들다 보니 서술이 체계적이지 않은 것이 일반적이며 따라서 해당 과목의 총체적인 이해를 저해한다. 양자의 단점을 두루 구비한 책의 대표적인 예로 이 분 교과서가 있다.
    • 전술한 바와 같이 한국에는 적당한 법학 입문서가 없으므로 입문서의 탈을 쓴 책을 말 그대로 법학 입문용으로 읽는 것은 거의 시간 낭비에 가깝다. 법학전문대학원은 교육연한이 법과대학보다 짧다 보니 비법학사 출신들을 위해 입학 전에 예비과정(일명 프리로스쿨)을 운영하는 예가 많은데, 거기서도 정작 '입문서'를 교재로 사용하는 예가 거의 전무하다는 사실은 매우 시사적이다(교수가 직접 만든 교재를 사용하거나 그냥 교과서를 사용하거나 심지어 수험서를 사용한다).
  •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가장 유명했던 교과서들은 그 저자들이 이미 작고했거나(곽윤직, 이재상 등), 곧 작고할 날이 멀지 않은(가령 이 분)(...) 이들이며, 이 교과서들을 능가는 고사하고 필적할 만하다고 꼽히는 후학의 저작은 거의 없다. 주요 판례를 비교적 잘 정리해 온 매우 드문 교과서인, 그리고 매년 개정판이 나오던 지원림 저 《민법강의》도 2018년에는 개정판이 출간되지 않아 이미 절판 크리를 맞은 것 아니냐는 우려가 파다하다.[18] 이런 현상들을 두고서 한국 법학의 몰락의 징후라고 평하는 이도 있다.[19]

7. 관련 어록

Iuri operam daturum prius nosse oportet, unde nomen iuris descendat. est autem a iustitia appellatum: nam, ut eleganter Celsus definit, ius est ars boni et aequi.
—Digesta, 1,1,1 pr. Ulpianus libro primo institutionum.
법을 공부하려는 자는 먼저, 법(ius)이라는 이름이 어디서 유래했는지 알아야 한다. 그런데 그것은 정의(正義)(iustitia)로부터 명명된 것이다: 켈수스가 정묘하게 정의했듯이, 법이란 선과 형평의 기술인 것이다.
—학설휘찬 제1권 제1장 제1절 서문. 울피아누스, 『법학입문』 제1권 발췌.
Iuris prudentia est divinarum atque humanarum rerum notitia, iusti atque iniusti scientia.
—Digesta, 1,1,10,2. Ulpianus libro primo regularum.
법학(iurisprudentia)이란 신사(神事)와 인사(人事)의 지식이며, 정(正)과 부정(不正)의 식별이다.
—학설휘찬 제1권 제1장 제10절 제1문. 울피아누스, 『법규집』 제1권 발췌.[20]
해석자는 법률을 그 제정자가 이해한 것보다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으며, 따라서 법률은 그 제정자보다도 총명할 수 있다. - 오히려 그것은 그 제정자보다도 총명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구스타프 라드브루흐, 《법철학》
학문 중에서 법학이 차지하는 지위는 의심스러운 것이다. 법학은 모든 전통적인 대학교에서 교수되고 있지만, 학문과 그 요구 및 성과를 열거할 때, 거의 거명되지 않는다. 학문적 업적들에 대한 大賞들에도 끼지 못한다. 법학연구는 다른 학문연구와 비교할 때 비용이 거의 들지 않으므로 학문지원을 하는 입장에서 당혹하게 된다. 자연과학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정신과학이나 사회과학이라고 하기에도 석연치가 않다. 그러나 법학의 학문성에 디하여 어떻게 보든, 법학은 헌법 제22조 제1항에 의하여 학문의 자유의 보장을 받는 학문이다. 그러므로 법학적 진술에 대해서는 기본권보장의 한계를 제외한다면 어떠한 법적 제재도 존재하지 않는다.

법학설의 과제는 법발견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다. 학설은 구체적·개별적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판례를 정리·체계화하며, 법원리를 발전시키고, 법학방법론을 연구함으로써 법실무에 영향을 끼친다. 제도화된 법학은 안정적 기능, 발전적 기능, 부담경감적 기능, 발견적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법의 획득을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학설은 규범적으로 승인된 "법적 권위"(auctoritas)를 가지지 않고 다만 그 이유제시의 무게만이 있다(veritas). 학설은 고권에 기하여(ratione imperii) 법관을 기속하는 법원이 아니라, 이성의 힘에 의하여(rationis imperio) 법관을 설득함으로써 고려되는 법인식의 자료이다. 이른바 통설(communis opinio)이라 하더라도 법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의미에서 모두에게 혹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혹은 통찰력 있는 사람들 모두 혹은 이들의 대부분 혹은 이들 중 가장 저명하고 명망있는 자들에게 참된 것으로 보이는 가장 개연성 있는 견해(ἔνδοξα, probabilia)일 뿐이다(Topica I1, 100b). 오늘날은 누구도 황제의 권위에 기한 칙허해답법학자가 아니다. 학설은 판결과 달리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직접적으로 그리고 평등의 면에서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건과 관련된 모든 관점이 노정되고 증거에 기한 객관적 판정을 함으로써 분쟁을 해결한다는 합리성을 가지는 반면에 시간의 제약과 정치성이라는 비합리성을 공유하는 법실무와 비교할 때, 법학은 내외의 압력에 보다 의식적으로 대처할 수가 있으므로 학문적으로 준수할 것이 요구되는 행위준범(scientific code of values)을 잘 준수할 수 있다는 강한 이점을 가진다.
민법주해[I]-총칙(1) (서울, 박영사: 1992), 67~69면

8. 관련 단체·기관

법학을 연구하는 학회나 이에 준하는 기관·단체로 다음과 같은 곳들이 있다.

9. 관련 문서




[1] 법의학은 법을 의학적으로 고찰하는 분야가 아니고, 수사나 재판에서 문제되는 의학적 판단 문제(주로 죽음의 원인과 기전)를 다루는 분야이다.[2] "법률학은 개개의 독일 혹은 프랑스의 법체계의 특수성을 넘어서 전법질서에 공통한 명제에 매진하는 것을 임무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 법질서를 그 개성 속에서 이해하는 것을 그 사명으로 하는 것이다."(구스타프 라드브루흐, 《법철학》)[3] 정치학의 비교정치학 분과와 비슷하다.[4] 정확히는 일본법을 따랐는데, 일본법이 독일법을 따랐다.[5] 결론은 '이 사안에서는 ~이다'와 같게 된다.[6] 입법자들이 법안을 처음부터 창조하는 경우는 드물며 대부분 해외 사례를 참고한다.[7] 그러나 실제 적용은 좀 다르다. 일본/사법 참조[8] 영미법계이지만 미국 유학 다녀온 학자들이 많아 영향이 크다[9] 사실, 학문으로서의 법학을 운위하는 논자들 본인더러 막상 개념정의를 해 보라고 하면 대부분 못할 것이다(...).[10]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11]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12] 이를 두고 이탈리아의 어느 법학자는 "고대 로마법률가들이 현대의 법학자들을 보면 '이들은 법률가가 아니라 철학자이다.'라고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13]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14] 소위 '답이 없는' 문제도 당연히 많지만, 답이 없는 문제가 답이 없는 문제임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도 일종의 해결이다.[15] 외국의 유명 입문서들을 찾아보면 알겠지만, 해당 서적들 저자는 대개 학계의 원로들이다. 그만큼 입문서 집필은 '심후한 내공'을 요하는 일이다. 한국의 경우에 그런 책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법학계 전체가 '내공'이 떨어진다는 사실의 방증이기도 하다.[16] 다만, 전통적으로 사법시험 합격자의 경우 민사집행법사법연수원 다니면서 그 교재(민사집행법, 보전처분)를 통해 기본 내용을 익혔는데, 법학전문대학원 도입 후에도 저 교재는 여전히 무난하게 좋은 책으로 평가되고 있다.[17] 교과서만 열심히 공부해도 합격을 할 수 있던 시절도 있었으나, 판례가 많이 축적되고 사법시험 합격자를 늘리면서 수험생들의 경쟁이 더 심해져 감에 따라 출제의 수준(?)도 점점 더 높아져 왔다. 그 결과 교수 개인의 학설을 펴는 데에 주안을 두고 판례나 다른 학설을 다루는 데에는 소홀한 교과서의 특성상, 교과서만으로는 도저히 수험의 수요를 충족할 수 없게 되었고, 이 수요를 채우기 위한 수험서들이 등장하여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18] 지원림 민법강의는 다행히도 2년만인 2019년에 개정판이 나왔다.[19] 이와 비슷하지만 사정이 더 나쁜 예로 로마법 문서에 설명된 예가 있다. 관심 있는 후학이 독학을 하려고 해도 교과서가 모조리 절판 상태이어서 제대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실정법학은 허접하게나마(...) 교과서가 시중에 없는 것은 아니므로 사정이 훨씬 낫지만, 한국의 실정법학 역시 근본적으로는 이와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는 셈이다.[20] "법학을 형성한 불후의 업적을 남긴 로마인들은 그들이 법학을 통해 무엇을 추구했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 그들은 법학이야말로 모든 학문들 가운데 가장 생동적이고 삶을 가장 구체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으로 여겼으며, 법과 법학과 함께 로마는 강력한 제국으로 성장했다."(칼 엥기쉬, 안법영·윤재왕 (역), 법학방법론 (서울: 세창출판사, 2011), 5면.)[21] 흔히 쓰이는 분류기준이나, 실제로는 그 기준이 매우 애매해서 논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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