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1 17:58:34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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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경지대의 과학
비학문 병적 과학 · 쓰레기 과학 · 유사과학(대체의학) · 반과학
1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유사과학의 일종인 대체의학으로 분류하나, 한국, 중국, 북한, 대만 4개국에는 독립된 한의학부가 존재하여 의학사에 준하는 학위를 부여한다.
2 인문학과 사회과학에 걸쳐져 있다.
3 인문학을 확실하게 과학으로 분류하는 독일 같은 특수사례가 있으나 사회 전반 및 국제적으로 보편적인 경향성은 아니다. 대한민국의 교육법상으로 인문학은 '직관·체험·표현·이해·해석 등 인문학적 방법론을 수용하는 제반 학문'으로 정의하고 있으며,[1] 과학과 분리된 개념으로 다루고 있다.[2] 다만 근래에는 과학적 방법론이 연구에 쓰이는 사례도 종종 있다.
4 최근에는 사회과학적 연구도 계속되고 있다.

[1]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의 진흥에 관한 법률 제3조 2. "인문학"이란 인문에 관하여 탐구하는 학문으로서 언어학·문학·역사학·철학·종교학 등의 학문과 직관·체험·표현·이해·해석 등 인문학적 방법론을 수용하는 제반 학문 및 이에 기반을 둔 융복합 학문 등 관련 학문분야를 말한다.[2] 과학은 교육법상 과학수학정보 교육 진흥법의 관리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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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특징
2.1. 신학과 신앙의 관계
3. 종교학과의 차이4. 분야5. 신학은 학문인가?6. 대학 교과 과정
6.1. 학부6.2. 대학원
7. 신학자8. 관련 문서

1. 개요

/ Theology, Divinity

에 대해 설명하고 신과 인간과의 관계를 해명하는 학문. 넓은 의미에서는 인격적인 '신'이 아니라 '종교가 가진 신성(Divine)'을 가리킬 수도 있다.

수식하는 말 없이 말할 경우 일반적으로 기독교신학을 가리키며, 그것만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현대 학계에선 '신성에 대한 비판적 연구 전반'으로 신학을 정의내리고 있기에 신학의 기능이 반드시 특정 종교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각종 신화의 신들에 관련된 부분 역시 넓은 의미에서의 신학으로 볼 수 있으며, 좁은 의미에서의 신학에서도 타 종교나 경전고대 문화를 비교 탐구할 때 같이 다룰 수도 있다.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성직자 양성과 교회 운영을 위한 신학"은 당연히 성직자를 양성하고 신도들을 가르치기 위한 종교교육학의 성질이 강하지만 파고들면 인문학사회과학과 깊게 연계된 메타학문의 성격이 강하다.

2. 특징

신학은 그 특성상 기본적으로 신 혹은 신성의 영역에 대한 견해, 그리고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신앙 혹은 의견에 대한 전제를 깔고 진행될 수밖에 없는데, 신과 신앙에 대한 정의가 각 종교나 무종교마다 다른 만큼 신학이라는 학문 분야는 어떠한 종교든지 자신의 종교이던 자신과 다른 종교이던, 그 종교의 모든 것을 연구하면 성립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앞서 정의한 신학의 광의의 의미이다. 협의로서의 신학은 특정한 종교의 경전, 역사, 교리, 교회 등을 인문사회적으로 분석하며 수호하는 학문이라고 본다.

고대 시대의 신학은 과학을 비롯한 다른 분야의 학문들이 함께 섞인 만물학(혼합 학문)이었으나, 중세에 돌입하여 신을 섬기는 교회[1]가 본격적으로 체계화되어 신학은 교의학을 중심으로 학문들을 바라보는 메타학문이 되었다. 그래서 근대에 돌입하여 다른 학문들이 태동하자 신학도 고유의 영역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독립적인 학문으로서의 신학은 교리를 연구하는 학문에서 출발하여 교회를 연구하고 변증하는 학문이 되었다. 그러나 현대에는 타 종교를 단순히 적대하는 것을 넘어 교류하는 일이 많아지고, 비종교인(종교학)이나 타종교인(다른 신학)이 자신들의 관점으로 교회를 분석하기도 해서 결국 신학은 종교와 무종교의 관점으로 모든 종교를 바라보는 학문이 되어버렸다. 때문에 불가지론자나 무신론자들도 신학을 공부하는 일도 많다.

신앙인들이 다루는 (흔히들 알고 있는) 신학은 신에 대한 사유 또한 전제로 하고 있다. 현대 신학은 신앙인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다루는 신학과 달리 신앙을 반드시 전제하진 않지만 생각하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신학은 철학과 동떨어져 생각할 수 없고, 실제로 신학의 가장 큰 분야인 기독교 신학의 상당 부분은 고대 철학의 사조를 이어받거나 철학에서 사용하는 각종 개념 및 용어를 차용해 가며 체계화되었다. 토마스 아퀴나스를 대표로 하는 스콜라 철학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받은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때문에 철학 없는 신학은 생각할 수 없으며, 이에 관련된 유명한 말이 바로 '철학은 신학의 시녀다'라는 말이다.

그리고 교리를 통해 종교와 사회 현상에 접근하거나, 오히려 인문학, 사회학, 자연과학으로 교리를 비평하는 특성상 형이상학에만 국한될 수 없다. 신학계가 종교계와 무신론계와 반신론계의 시선에 얽매이는 경우가 많아서 종교를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종교학이라는 학문도 등장했지만, 결국 신학과 종교학은 종교 현상에 대한 접근 자세만 다를 뿐, 학문적 영역을 거의 공유하게 되었다. 사실상 같은 학문이 되어버렸다는 것. 도서관의 도서 분류표나 학회 논문의 분류표를 봐도 알겠지만 신학과 종교학은 아예 같은 분류로 묶여버린다. Theology & religion studies를 한국에서는 (광의의) '종교학' 혹은 '신학'으로 번역해서 신학을 학문에서 퇴출했다는 오해도 알음알음 있지만, 신학을 정식 학문으로 인정하지 않아서 신학을 따로 분류하지 않는 게 아니다.

과학적 방법론이 아예 사용되지 않는다는 오해도 알음알음 있지만, 성경신학(경전신학), 역사신학에서는 성경 및 경전을 분석하거나 교회의 유물 및 기록물을 분석할 때 과학적 방법론도 사용되며(성서비평학, 성서고고학, 탄소연대측정법 등) 실천신학에서는 교회성장학을 연구하거나 교회 관련 통계를 분석할 때 통계학, 경영학도 종종 사용된다. 조직신학에서도 과학신학, 과정신학 등의 몇몇 학파들은 교리를 자연과학적으로 비평하는 것을 중요시하기도 한다. 비록 분야과 학파에 따라 과학적 방법론을 얼마나 사용할지는 천차만별이지만 과학적 방법론을 사용하는 것은 신학도 마찬가지이다.

2.1. 신학과 신앙의 관계

신학은 주어진 종교의 교의를 토대로 이루어지지만, 상기한 바와 같이 신학을 연구하는데 그 교의에 대한 신앙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경전에 대한 해석을 통해 특정 구절의 의미를 해석해 내는 작업은 그 경전을 믿고 믿지 않고와는 상관없이 학문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신론 종교인 기독교 신학을 연구하는 무신론자 혹은 불가지론자 신학자들 역시 충분히 존재한다. * 영어권에서는 주어진 종교를 신앙할 것을 전제하는 신학적 접근을 "고백적 신학(confessional theology)"이라고 따로 부른다. 요컨대 현대 신학계에서는 자기가 연구하는 종교를 신앙하지 않는 비고백적(non-confessional) 신학자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

이런 특성 때문에 각 종교를 막론하고 신학은 오히려 해당 종교의 독실한 신앙인들에게 경원시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를테면 "신학을 공부해봤자 머리가 커지고 교만해져서 신앙만 잃어버린다"는 정서가 종교인들 사이에서는 공유되고는 한다. 독실한 성직자 지망생들이 오히려 신학교 등 성직자 양성 과정에서 자유주의적 관점이 많이 들어간 학문적 신학을 공부하며 신앙에 회의를 갖게 된다는 일화들도 종종 회자되는 이야기다. #

그리고 이는 비단 기독교 등 유신론 계통 종교에 대한 학문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를테면 불교에서도 종교 활동으로서의 불교 '수행론'과 종교에 대한 연구로서의 '불교학' 간의 차이가 있음을 지적하는 담론이 제기되고는 한다.
불교학은 종교가 아니라 학문이다. 학문의 한 분야이고 그 학문이 다루는 대상이 불교일 뿐이다. 그래서 비유하자면 불교학은 붕어가 아니라 붕어빵이다. 그리고 붕어빵이 헤엄치지도 않고 감이나 매운탕감이 되지 않는 것처럼 불교학 역시 종교적 진리를 가르치지 않으며 니르바나를 목표로 하지도 않는다. 이 당연한 상식조차 논쟁거리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생각이 있다는 사정이 바로 필자가 경험하는 ‘불교학에서의 놀라움’들을 가능케 하는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다. [...]


불교 전통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학습이 이루어지지 않다 보니 학생들은 이미 주어진 자료들을 다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채로 너무나 많은 형태의 ‘불교들’과 방대한 연구 자료 앞에서 주눅이 든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가르치는 사람도 자신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해를 상상으로 대체하고 자료를 신념으로 대체하면서 자기가 만든 자기만의 ‘불교’를 그려내는 훈련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이해가 아니라 익숙해지는 적응 과정을 거쳐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을 불교적 용어로 포장해서 구사하는 일정 정도의 수사적 훈련을 받은 연구자가 양산된다. [...] 아무 말이나 마구 내뱉은 다음에 상대방이 무어라 하거든 ‘내 말까지 포함해서 일체개공’이라고 대답하는 일을 초급에서 배운다. 나중에 좀 더 모양새 나는 말을 해야 할 상황이 오면 ‘사사무애’라고 대답하는 일을 중급에서 배운다. 그다음에 좀 더 강한 적을 만나서 앞뒤가 안 맞는 헛소리라고 비판을 받으면 그때는 “진제에서 보면 그런데 속제에서는 다르죠.”라고 대답하는 일을 고급 과정에서 배운다. 이런 직업훈련 과정을 거친 사람들이 학계에 연구자로서 자리를 잡고 나면 공유되지도 않고 공유될 필요도 없는 활동들을 불교학의 이름으로 지속해 나가게 된다. [...]


이러한 한계상황에서 위안이 필요할 때 그들에게는 항상 음모론의 탈출구가 주어져 있다. 자료와 근거로 그리고 논리로 자신의 주장이 도저히 방어되지 않을 때 “외국 가서 불교를 배운 것들이 통 불교를 몰라서 그래!”라거나 외국의 대가가 학적으로 증명을 마친 사실들에 대해서는 “서양 놈들은 결국에는 불교를 모르더라고……”라는 대응을 할 수 있는 길이 주어지는 것이다. 수많은 불교학의 대가들이, 서구인들의 경우에는 특히, 불교가 아닌 종교를 가진 사람들인 경우가 많으니 이 경우에는 마침 이런 핑계를 둘러 붙이기도 좋다.
강성용. "한국 불교학 발전을 위한 제언", 불교평론

이처럼 신앙신학은 함께 가는 경우가 잦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꼭 반드시 함께 가야하는 것은 아니다.

3. 종교학과의 차이

사실 현대 학계에서는 신학과 종교학을 그리 엄격하게 나누지 않는다. 종교학과 신학을 엄격하게 나누려는 시도는 계속 존재하지만, 종교 연구도 객관적 분석과 내부적 성찰이 동시에 필요한 작업이라서 후술할 내용은 아주 전형적인 경우에만 해당하고, 실제로는 관점이든, 방법론이든, 영역이든 어느정도 혼재된 양상을 보인다.

현대에 와서 종교학과 신학의 연구 주제는 상당부분 겹칠 수 밖에 없다. 특히나 비고백적 신학, 요컨대 신앙과 신학을 구분하는 태도까지 있음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이처럼 종교학과 신학를 명쾌하게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두 학문이 초점을 두는 부분은 차이가 나고는 한다.

첫째, 범위가 다르다. 종교학은 특정 종교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종교 현상과 그 총체로서 원시종교에서부터 세계 종교, 현대 신흥 종교까지 '종교' 그 자체를 연구한다. 반면 신학은 특정한 한 종교에 초점을 기울인다. 물론 타 종교의 교리와 비교 연구를 할 수도 있지만, 초점은 주어진 종교가 되고는 한다.

둘째, 전형적인 신학은 종교 '안의' 문제를 다룬다면, 전형적인 종교학은 종교 '바깥'의 문제를 다룬다. 이를테면 기독교성만찬를 예로 들 경우,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과 전통적인 기독교 종교학은 각기 다른 질문을 던진다.
신학: 성만찬을 할 때 빵과 포도의 정체는 무엇으로 보는 것이 기독교의 핵심 교리에 비추어봤을 때 가장 정합적[2]인가?
종교학: 1세기 초대교회 기독교인들이 성만찬을 특히 중요한 의례로 여겼던 것에 당시 유대 사회의 특정 문화가 영향을 미쳤는가?

신학은 신성에 대한 연구(어떤 종교의 교리를 성립시키는 연구) → 성직자 양성과 해당 종교의 교의와 영성, 역사를 다루는 연구 → 해당 종교의 관점으로 해당 종교의 모든 것과 다른 종교를 다루는 연구 → 신성에 대한 변증과 비판 전반(모든 종교와 무종교의 관점으로 모든 종교와 사회를 다루는 연구)로 꾸준히 정의가 커졌다. 주로 자신들의 종교의 주류 교파와 비주류 교파들을 두루두루 다루며, 타종교와 단순히 갈등하는 것을 넘어 교류도 많아진 종교현장의 상황을 반영하여 타종교의 신학도 다루기도 한다.

4. 분야

후술할 내용은 한국의 신학대학, 종교학과에서의 교육과정에서의 신학들을 나열한 것이며, 신학의 종류는 세상에 존재하는 종교의 갯수만큼 많다는 것을 염두에 두라.

4.1. 기독교신학

4.1.1. 가톨릭신학

4.1.2. 개신교신학

4.1.3. 정교회신학

한국정교회 홈페이지 - 신학[참고서적]

정교회의 신학은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신 것은 인간이 창조된 신이 되기 위함이다'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으며, 이 신화(테오시스)에 이르는 것이 정교회의 구원관이며 영성이며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정교회 신학에서는 하느님에 대해 알수 있는 것을 (어쩌면 너무 가볍게) 공언하는 긍정신학과 달리 부정신학(하느님은 무엇무엇이 아니다)적 전통이 지배적이며, 신비와 신학이 쉽게 분리되는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참고서적]

정교회의 신학은 또한 교부와 전통에 대한 존중, 전례적 예배와 신학의 단절이 아닌 일치에서 특징지어진다. 정교회 예배에서 상징적인 것이란 실재적인 것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며 상징과 실재 모두 충분히 존중하는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예컨대, 성찬은 단순히 상징이라는 관점도, 단순히 예수님의 몸과 피일 뿐이라는 관점이 아니라 성찬은 상징이자 실재인 것이다. 초대교회의 전례를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는 것은 정교회의 전례적 예배로 평가받고 있다.[참고서적]

4.2. 불교학

4.3. 유학

4.4. 원불교학

4.5. 기타 신학

5. 신학은 학문인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신학/신학은 학문인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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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주의의 영향으로 근대 과학적 방법론만을 인정하려는 여론이 생겨났고, 이에 따라 신학을 학문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견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반론이 기술된 문서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엄연히 신학은 학문이라고 인정받는다.

6. 대학 교과 과정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신학대학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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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학부

6.2. 대학원

7. 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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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관련 문서


[1] 여기서의 교회는 신자들을 통칭하는 개신교의 개념과 물리적인 장소로서의 천주교의 개념을 모두 포함한다.[2] 整合的, 명제들 간에 논리적 모순이 없는 상태를 뜻한다.[참고서적] 바르톨로메오스 1세 세계총대주교, '신비와의 만남'
핀란드 정교회 바울로 대주교, '우리가 지닌 신앙'
[참고서적] 블라디미르 로스키, '동방교회의 신비신학'[참고서적] 알렉산더 슈메만의, '세상에 생명을 주는 예배', '성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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