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42:42

예술

1. 개요2. 예술의 정의
2.1.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2.2. 프랑스의 예술 분류법2.3. 예술의 확대
3. 이야깃거리
3.1. 예술 분야 편중3.2.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3.3. 대중성과 상업성3.4. 가난한 예술가?3.5. 투기 수단으로 전락한 예술3.6. 예술계의 각종 비리
4. 각종 오해와 통념들5. 예술가6. 관련 정보7. 예술의 종류8. 관련 문서9. 강조의 의미

1. 개요

이 세상에서 아무 논란의 여지 없이 순수하게 좋고 한 것은 여름날 날벼락처럼 찾아오는 개인적 행복과 예술뿐이다.
- 알렉산드르 게르첸
/ Art

표현적인 창조 활동. 이런 활동을 하는 사람예술가라 부른다.

옛날에는 기예와 학술을 아울러 이르는 말. 즉, 기술과 같은 의미로 불리었다. 영어 단어 Art가 기술[1]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듯,[2] 예술이라는 단어 역시 술(術)에서 어원을 찾아볼 수 있다. 본래는 자유칠과(liberal arts)의 역어였다. 의미는 '표현'이라는 단어로 집약될 수 있으며, 순수예술에서는 기능성을 따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본래는 종교의례와 기록 등의 목적과 기능이 있었던 행동이지만, 후대에 가서는 기능과 목적이 사라진 잔존문화가 예술로 전용된 것이라는 관점도 있다.

현대인들이 흔히 하는 착각 중 하나가 '예술은 예술가 개인이 하는 것' 이라고만 생각하는 오해인데, 이는 공연자와 관람자로 이원화된 서구 예술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범하는 오류이다. 예술가와 관람자(문학의 경우 독자, 음악인 경우 청자)간의 상호작용 또한 예술의 일부분으로써 인정받는다. 물론 '예술은 예술가 개인이 한다는 것' 도 옳은 말이다. 중요한 것은 수단이 아닌 예술 그 자체일 것이다.

2. 예술의 정의

2.1.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

사실 예술은 모호한 장르이다. 특정한 형식으로 를 창조하고 표현하려는 인간 활동이라는 점에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지만, 이때 미를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이란 것이 인간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인간의 타자적 세계, 즉 외부 세계를 모방하는 활동이라고 말하기도 하며, 자신이 느낀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활동,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활동, 작품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형식만을 표현한 것도 맞다는 등 사람 간의 입장 차이가 많다.

이처럼 이 예술의 정의라는 것이 잣대가 참 애매모호한지라 여러모로 논란거리가 된다. 특히 현대미술, 그중에서도 전위예술 같은 것을 일반인들은 난해하게 받아들인다.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뭐야? 변기에 사인을 한 게 예술작품이라고?" "뭐야? 피아노를 쓰러트리는 게 예술이라고?" 라는 반응을 내뱉을 수밖에 없다. 심지어 아름다움 이전에 위생적인 불결함마저 느껴지는 행위들도 많다. 그런데도 이런 작품, 행위들마저 예술이라면 결국 예술은 그냥 아무도 알 수 없고 예술이라면 예술이라고 믿어야 하는 장르가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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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창조 -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 - 피트 몬드리안

잠깐 분위기를 바꿔서, 많은 사람들에게 가치를 인정받는 예술작품들을 살펴보자. 위의 두 예시를 비교해 본다고 하면, 이 중 어떤 것이 예술이라고 할 수 있울까? 더 작품적인 가치가 높으며, 누가 더 정성을 들였을까? 많은 사람들은 미켈란젤로의 작품이 훨씬 더 가치 있으며 예술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우측에 있는 몬드리안의 그림은, 일반인들도 쉽게 그릴 수 있는 수준의 흔한 그림이지 않을까?

하지만 그 전에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예술 작품에 객관적, 부동적인 가치라는 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술작품은 사람들의 주관에 의해 느껴지며, 사람들의 주관은 영원불멸하는 절대적인 요소가 아니다. 주관은 시간, 장소에 따라 즉각적으로 변하는 상대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으며, 그렇기에 예술은 시시각각 주관적 시선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헌데 그런 시대장소에는 다양한 사조와 생각, 사건들이 흐르며 개인에게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위의 작품들의 연대를 살펴보자. 미켈란젤로는 1500년대에 활동하던 사람이고, 피트 몬드리안은 그로부터 400년이 지난 시대에 살았던 사람이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 보자. 저들이 만들어졌을 땐 세계가 어떤 상황이었을까? 문화는 어떠했으며, 사람들의 사고관은 어떠하였고, 어떠한 사건과 어떠한 기류, 어떠한 철학이 세계를 둘러싸고 흐르고 있었을까? 지금은 또 어떠할까. 1900년대 사람들의 감성과 지금의 사람들의 감성이 같을 순 없는 노릇이다. 포토샵을 이용하는 시대와, 청동거울을 바라보던 시대의 사람들의 가치관이 같을 순 없다. 레디메이드가 처음 출하된 시기와, 누구든지 그것을 자유롭게 쓰는 시대의 사람들이 보고 생각하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 시기의 가치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점도, 그렇지 않은 점도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질문들을 내리다 보면 예술의 가치가 확연하진 않단 것을 느끼게 된다. 말 그대로 지금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이는 것도 그 당시에는 거대한 충격으로 다가왔을 수 있으며, 반대로 옛날엔 아무런 의미가 없던 것도 재조명되어 현재의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

따라서 "무엇이 예술인가?"라고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예술이란 장소, 시간, 개인마다 다를 수밖에 없으며, 그것을 무엇이라고 특정할 수는 없다." 라고 귀결된다. 하지만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것만이 예술'이라는 뜻은 아니다. 때문에 오히려 예술작품에 대해 이해하고 그 가치를 논하기 위해서는, 순간적인 인상뿐만 아니라 그 예술이 나타날 때의 상황, 시대, 문화, 인물, 사건, 사회, 철학 그 총체적인 맥락을 읽고,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논리적으로 타인에게 납득시키려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것이다.[3][4] [5]

탤런트, 배우, 성우의 연기도 엄연히 예술에 들어가기 때문에 작정하고 장면과 일부러 어긋나게 연기하지 않는 이상은 연기력, 캐릭터 싱크로에 대한 평가도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물론 해당 관련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캐릭터의 성격 분석을 반드시 해야 하고 제시된 설정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전제 하에서의 이야기이지만, 그러한 설정을 지키는 와중에도 해당 직업을 가진 사람들만의 해석이 약간 들어갈 수도 있고, 그 사람들의 외모목소리 등의 개성에 의해 같은 캐릭터에 대해서도 느낌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예술에 대한 배경지식이 적은 일반인일수록 캐릭터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기준이 매우 자유롭다. 물론 이것 또한 서로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전제 하에서의 이야기이다.

2.2. 프랑스의 예술 분류법

프랑스에서는 헤겔미학 연구에서 쓰였던 건축, 조각, 회화, 음악, 문학이라는 5개의 기본 예술에 더하여 근대에 무용과 연극이라는 공연 예술을 6번째의 예술로 넣었고 리치오토 카누도가 7번째 예술을 영화로[6] 정했다. 8번째는 논란이 많은데, 라디오와 텔레비전, 사진이 끊임없이 자웅을 겨뤄, 프랑스 내에서도 상당히 혼용되고 있다. 문화부에서는 사진이라고 했지만 프랑스국립사진센터가 엮여서 또 다른 이야기가 많다. 9번째는 만화가 확고하게 언급되는 상태. 그리고 제10의 예술이 뭐냐는 주제도 상당히 떡밥이 되는 모양. 현재는 게임과 요리가 후보군으로 꼽힌다. 하여튼 프랑스에서는 '제n의 예술'이 각각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흔히 쓰인다.

관련 링크: https://en.wikipedia.org/wiki/Classificatory_disputes_about_art
  • 제1의 예술(le premier art) - 건축
  • 제2의 예술(le deuxième art) - 조각
  • 제3의 예술(le troisième art) - 회화
  • 제4의 예술(le quatrième art) - 음악
  • 제5의 예술(le cinquième art) - 문학[7]
  • 제6의 예술(le sixième art) - 무용, 연극 등의 공연 예술(performing arts)
  • 제7의 예술(le septième art) - 영화[8]
  • 제8의 예술(le huitième art) - 사진, TV, 라디오 등의 매체 예술(les arts médiatiques)
  • 제9의 예술(le neuvième art) - 만화[9]
  • 제10의 예술(le dixième art) - 게임[10][11]

2.3. 예술의 확대

인류 문명이 발전해가며 새로운 매체가 등장할 때마다, 예술의 범위에 대한 논쟁 또한 자주 일어났다. 영화도 초창기에는 예술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최초의 영화가 나온 후 근 100여년 가량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예술의 한 장르로 인정을 받았다.[12] 그 외에도 게임이 논의되기도 하는데, 게임을 예술의 한 종류로 인정해야 하는지, 아니면 예술적 요소가 첨가된 스포츠의 일종이라고 봐야 할지가 논란이 되기도 한다.[13] 요리 또한 논의의 대상이다. 어찌됐든 이 또한 장르적인 확대가 이루어지는 것일 뿐. 현재도 그렇듯 미래에도 아무것이나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이 예술인가? 이 부분에서 나아가는 것이 일반인에게는 어려운 영역인 것이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나치군을 상대로 승리하기 위해 미국을 중심으로 연합군이 '고스트 부대'를 창설하였고, 이들의 주임무는 독일 나치군에게 혼란을 주는 일이었다. 부대원들 대다수가 예술 종사자 및 예술대학생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들은 큰 공을 세우며, 예술이 쓰일 수 있는 새로운 면을 보는 큰 계기가 되었다. 영상

이와 관련하여, 대한민국 '문화예술진흥법'의 "문화예술"의 정의의 변천은 시사적이다(아래 연월일은 해당 제정 또는 개정일).
  • 1972년 8월 14일: 문학, 미술, 음악. 연예, 출판
  • 1987년 11월 28일: +무용 +연극 + 영화
  • 2007년 4월 11일: +응용미술 +국악 +사진 +건축 +어문(語文)
  • 2013년 7월 16일: +만화
  • 2022년 9월 27일: +게임 + 애니메이션 +뮤지컬
    더 나아가 아예, "지적, 정신적, 심미적 감상과 의미의 소통을 목적으로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 또는 타인의 인상(印象), 견문, 경험 등을 바탕으로 수행한 창의적 표현활동과 그 결과물을 말한다."라는 포괄적 정의규정을 두었다. 문화예술의 범위가 미래에 더 넓어질 수도 있음을 상정한 셈이다.

3. 이야깃거리

3.1. 예술 분야 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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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2014년에 조사한 자료들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주로 TV 시청(51.4%), 인터넷·사회관계망서비스(11.5%), 게임(4.0%) 같이 실내에서 하는 소극적인 여가 활동을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적극적으로 집 밖에 나가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 중 스포츠 활동을 제외하고 장르별 예술 행사 관람률(중복 채택 가능)만 보면, 영화 관람이 65.8%로 압도적으로 높으며, 2위부터 4위까지도 대중음악, 연극, 뮤지컬 같은 공연예술에 치중되어 있었다. 올해 영화를 본 사람은 국민 세 명 중 두 명 꼴로 많지만, 연극이나 미술 전시를 본 사람은 열 명 중 한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미 방송인터넷이 보급된 상황이라, 대다수 사람들은 여가 시간이 늘어나도 집 안에서 여가를 즐기는데 그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런 예측은 국가마다 사람들의 생활 패턴이 다르므로 섣불리 맞다고 할 수는 없다. 뉴욕 맨해튼 안에 있는 미술박물관 및 갤러리는 남녀노소 및 여러 세대들이 많이 찾는다. 한국의 경우에는 영화 외의 예술 작품 관람을 위한 접근성이 부족한 것도 있고, 예술 행사 참여에 여가 시간을 할애할 수 없을 정도로 노동력을 착취해대는 기업문화의 탓도 있어 위의 통계에서 드러난 한국인의 여가활동에 있어 소극적인 성향은 사회 구조에서 기인한 문제라고 봐야 한다.

3.2.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예술은 취향과 결부된다. 근데 이 취향이란 것은 상술했듯이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개개인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애초에 칸트미학을 연구하면서 이러한 문제를 지적했다. 과학과 달리 어떤 기준을 정해서 정량화할 수 없는 것이 예술이다. 물론 분명 다수가 선호하는 예술이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마이너 취향을 무시할 수도 없는 게 예술계의 특성이다. 그 결과 온갖 난해한 행위들이 다 예술이랍시고 행해지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다음의 기사를 참고하라. 예술가가 구린 17가지 이유여성이 길거리에서 벌거벗고 페인트를 넣은 종이 위에 직접 낳아서 그림을 그리는 행위예술을 볼 수 있다.

헌데 이게 막장으로 치달으면, 모든 것이 예술이 된다는 식으로 되어버린다. 심지어 살인이나 폭력도 말이다. 이게 세대차와 연관되어 버리면, 젊은 예술가/애호가들이 기성 예술가/애호가를 까는 일이 (혹은 그 반대가) 벌어지게 된다. 사실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도 이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소설이나 회화나 연극은 고상하고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은 저급한 저질이라는 인식이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소설, 회화, 연극도 오랜 옛날에서 저열하다고 까였다.[14] 역으로 아마 수 세대가 지나면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도 기성예술매체가 돼서 기득권 자리를 지키려 할지도 모른다. 사실 이미 이런 경향은 다른 세대든 같은 세대든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 근거도 없이 자기 취향만 옳고 남의 취향은 그르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느 커뮤니티든지 발견되니 말이다.

예술계에 한정해서 보면, 예술 생산자인 예술가와 소비자인 관객 사이의 갈등이 있고, 예술 생산자 및 종사자(화상, 평론가 등)끼리의 갈등이 있게 된다. 앞의 경우 난해한 현대미술을 까는 원동력이 된다. 보다 해몽이라는 말처럼, 그냥 노력도 안 하고 대강 뭔가 해놓고 장황한 헛소리 갖다 붙여 그럴듯하게 꾸미려 든다 여기게 되기 때문.

뒤의 경우, 이미 대학 교수 자리 꿰찬 작가들을 신진 작가들이 까는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기본적으로 세대가 다르다 보니 사고방식이나 취향도 다른데다, 근본적으로 앞사람들이 떨어져야 뒷사람들에게 기회가 올 테니까. 이를 고상한 말로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 한다 카더라.[15]

3.3. 대중성과 상업성

예술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로, 예술은 상업성이나 대중성을 추구하지 않는, 예술가 본인의 신념을 추구한다는 인식이 존재한다. 대중들은 일반적으로 예술단체라고 하면 공익을 추구하는 단체로 생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예술 단체는 영리기관이며, 예술가 대부분은 엄연히 사익을 추구한다. 실제로는 돈을 많이 벌지 못할 뿐, 예술가들도 자기 작품을 비싸게 팔려고 노력하고 있다. 단지 그 을 이룬 작가가 극소수일 뿐이다. 미술/업계 문서도 참고.

이런 인식이 생겨난 원인은 예술상품의 특수성 때문이다. 유명한 예술작품들은 대부분 일반 대중들의 취향과 괴리되어 있고, 소수의 부자들에게 비싸게 팔린다. 언론에도 작품 한 점이 경매에서 수백 억에 낙찰되었다고 보도된다. 그러나 이런 수백 억짜리 경매도 다른 공산품들의 경제 원리와 동일하게 작동한다. 예술가가 상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고, 그 상품을 구매하고 싶은 소비자는 돈을 지불한다. 다만 일반 공산품과 달리 예술품의 가치는 실용성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대신 역사적 가치(문화재)나 예술가의 독특한 사고방식에 가격이 매겨진다.

3.4. 가난한 예술가?

"일체(一切)냐 그렇지 않으면 무(無)냐?' 예술도 학문도 늘 이 두 단애(斷崖)의 절정을 가는 것 같다. 평온을 바라는 시민은 마땅히 기어 내려가서 골짜기 밑바닥의 탄탄대로를 감이 좋을 것이다."
- 김기림, 『단념』
"제가 생각하는 기인의 행동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글이나 그림, 음악을 한다고 하면 다 말립니다. 춥고 배고프다 이거지요. 저는 30년 동안 글을 쓰면서 제 마누라와 자식들을 굶기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이건 기인 중에 기인이지요."
- 작가 이외수, 예능 프로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을 때의 발언. # 이외수가 저렇게 말했다고는 하지만, 정작 본인은 지역 일간지 기자, 교생 시절, 등단 초창기부터 결혼 초기에 이르기까지만 해도 가난함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삶을 살았다.

소위 예술의 위기라는 말이 있는데, 위의 문제들이 뒤섞여 연관된 문제이다.[16] 예술가 역시 지속적인 작품 활동을 위해 생계를 유지해야 하며, 궁극적으로 예술을 통해 금전적인 이득을 취해야만 후속 작업이 가능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그러나 지나치게 상업성에 치우쳐져 예술성을 등진 작품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자 예술계에서도 성찰과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비단 예술성을 등진 작품을 만드는 작가만 비판할 게 아니라, 그런 상업적인 것에 눈이 먼저 가는 얕은 예술 의식을 가진 대중들의 문제도 크다.

결국 먹고 살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인정하고 사줘야 하고, 많은 사람들을 충족시키기 위해선 누구나 수용할만큼 이해하기 쉽고 익숙한 그런 상업적인 것들 위주로 만들어내지 않으면 먹고 사는 문제를 작품활동만으로 이겨내기 힘들기 때문. 이러한 문제로 인해서 수많은 상업예술들이 많아지는 것이고, 그런 상업예술중에서 예술적인 면에서 두각을 드러내기까지 하는, 한 마디로 대중성과 작품성을 둘 다 갖추는 작품은 굉장히 드물게 된다.

이 때문에 예술가들은 역시 궁여지책으로 노동조합을 만들기도 한다.[17]

예술의 위기는 소위 인문학의 위기와도 비교된다. 예술이나 인문학이나 결국 사람이 주가 되기 때문.

그러나 예술성을 중시하는 작가가 일부 유명 작가의 전시를 보이콧하는 사태를 일으키는 것도 모자라서(#) '예술가 자녀를 지원하지 않는 부자 부모가 자식을 열정페이로 몰고 가는 파렴치한 족속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예술가 자녀 가진 가정들 경제력이 어떤지 전수 조사해야한다'라고 망언(@)[18]을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모든 가난한 예술가들이 예술성 있는 예술만의 지원을 순수하게 원해서 상업예술에 반대하는 것이라는 편견은 버리는 것이 좋다.

3.5. 투기 수단으로 전락한 예술

고대미술이든 현대미술이든 공연예술이든 영화 등의 기계예술이든 상관없이, 예술은 어느정도 투기적인 속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투자자가 없으면 작품 자체를 만들기가 쉽지 않기 때문.

일반적으로 초기 투자에 대해 문학>사진>회화>조각>음악>연극>영화>게임 순으로 자유로운 편이라 여겨진다. 쉽게 생각해, 문학은 일단 종이만 있으면 감옥에서도 집필은 할 수 있다. 뒤로 갈수록 필요한 재료가 많아지고, 제작자의 입김이 거세져 창작자가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못한다. 작품을 사서 컬렉션을 구성한다던지, 극단이나 교향악단을 지원한다든지, 영화나 게임 제작에 을 지원하는 행위는 그 자체가 그야말로 돈을 퍼붓는 짓이다.

다만 상술한 순서는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더 정확히는 대규모 상업예술 쪽에서의 이야기에 가깝다. 음악의 경우 대규모 공연장과 장비를 빌리는 거창한 교향악단이나 유명 가수가 아니라면 소설가시인과 비슷할 정도의 투자면 충분하다. 작곡은 무료 프로그램으로도 할 수 있고, 노래 역시 큰 수익이 벌리진 않지만 장비가 없어도 거리공연은 가능하다. 연극과 영화 역시 시나리오를 쓰는 단계라면 소설가나 시인에 비해 다를 게 없다. 수십명의 고급 인력을 장기간 동원해야 하는 CG 효과를 들이붓고 비싼 개런티의 명배우를 고용한 거창한 상업영화가 아니라 본인이나 주변 인물을 쓰고 스마트폰 카메라 등의 저질 카메라를 쓴다고 하더라도 영화 제작은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상술한 지표에서 자본과 투자자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게임조차도 간단한 게임의 경우는 거창한 자본력이나 개발력도 필요없고 혼자서도 제작할 수 있다. 과거 인터넷에 업로드되던 1인 개발 플래시 게임이나, 현대의 1인 개발 인디 게임등의 사례가 대표적. 즉 현대에는 마음만 먹으면 1인 예술활동이 충분히 가능한 토양이 마련되어 있다.

당연하겠지만 투기의 대상은 예술만 있는건 아니다. 당장 화석이나 진귀한 유물 역시 경매에 나왔다 하면 높은 값을 받을 것이고, 스포츠 구단이나 각종 자선재단 역시 이런 투기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 되는 건 다 임자가 있다고 봐도 되는 상황인지라.(...) 어쨌든 이 때문에 예술은 갑부나 재단에서 소유하고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아래에서 언급할 각종 비리가 생기기도 한다.

기사 미술품 가격을 높이는 컬렉터라는 변수

투기뿐 아니라 사실상 탈세에도 쓰인다. 2023년 기준 법인세법 시행령상 장식ㆍ환경미화 등의 목적으로 사무실ㆍ복도 등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는 공간에 항상 전시하는 미술품은 손비로 계상한 경우 거래단위 당 1천만원까지[19] 손금산입이 가능하다. 쉽게말하면, 장식/환경미화 목적으로 공공연하게 전시하는 미술품은 비용처리가 가능하고, 해당 비용만큼 법인세를 감면한다는 것. 비용처리를 한다는 것은 즉 자산취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20]. 자산취급을 하지 않으니 장부 외 자산이되고, 결국 1천만원 이하의 미술품을 공연목적으로 구입해 비용처리 후 몇년 후에 슬쩍 팔아버리면 아무도 알 수가 없게된다. 미술품 소비 활성화를 위한 제도라고는 하지만...

3.6. 예술계의 각종 비리

또한 오늘날 예술계는 각종 비리에 연루되어 있다. 마치 최종 보스 끄나풀 정도로 뉴스 지면에 비리 기사가 올라가는 실정이다. 안타깝게도 예술계의 빈부격차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앞서 말한 예술의 위기와 대조시켜 보면, 그야말로 잘놈잘 못놈못. 자본주의 경제가 유지되는 한 이런 현상은 갈수록 심해질 뿐이다. 이익에 관련된 문제뿐만 아니라 사적인 병크등에 의해 예술계가 휘청거리고있다.

당장 크게 문제점으로 지적 받는건 투기수단으로 전락한 미술품, 학연, 지연, 혈연으로 얽힌 그들만의 리그, 이와 연관되어 따라오는 각종 비리와 차별 등이 있겠다. 이건 해외도 마찬가지지만, 그렇다고 국내 예술계 상황을 쉴드쳐줄 것도 아닌 것이 당연지사. 구체적으로 미술과 음악계의 주요 문제만 봐도, 작가의 유족까지 연루된 이중섭 위작 사건, 박수근 <빨래터> 진위공방, 신정아 사건[21], 삼성그룹 비자금과 행복한 눈물 사건, 미협 주최 미술대전 심사비리 사건 등의 문제가 있겠다.# 이런 문제에 분개한 한 트위터 이용자가 아트리크스를 만들어 제보를 받기도 하였다.#

더 자세한 현대미술 비리 관련 내용은 현대미술 하위 항목을 참고.

4. 각종 오해와 통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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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가는 천재다.
    • 사람에 따라서 다르며 공부운동이 그렇듯이 노력을 하면 실력이 향상된다. 단지 천재인 사람은 성장의 한계치가 유달리 높거나 성장 속도가 유독 빠른 것이고, 일반인은 그 한계치가 천재에 비해 낮고 성장 속도가 느린 것일 뿐이다. 즉, 천재든 아니든 노력은 필수불가결의 사항이며, 어느 정도 높은 수준까지는 노력만으로도 커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드래곤볼의 작가인 토리야마 아키라도 수백편의 만화를 퇴짜 맞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그렸고, 결국 만화가가 되었다. 다만 이 견해는 '천재'라는 개념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달라질 여지가 있다.[22] 재능과 노력 문서 참조.
  • 예술가는 가난고독 속에서 예술혼을 불태운다.
    • 거식증, 다이어트, 종교적 고행이 아닌 다음에야 굶고 싶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예술하고 싶어서 굶는 게 아니라, 예술이 인기가 없어서 돈을 못 버니까 굶는 거다. 즉 자발적 가난이 아닌 불가항력적 가난에 시달리는 것이다. 19세기 이후로 대중미술, 상업미술이 발전해서 대중의 수요를 거의 잠식했고 수익도 그쪽 중심으로 난다는 걸 고려해야지, 순수예술 분야만 놓고 가난하고 싶어서 예술한다고 착각하면 곤란하다. 실제로 예술인 소셜 유니온처럼 자구책을 마련하는 경우도 있다. 이 편견 자체는 그냥 대중의 오해일 뿐이지만, 가끔 이 논리를 근거로 "예술인이 돈을 밝히면 안되지"라며 강요하는 경우가 있다.
    • 이는 아래와 같이 '예술성∝1/대중성'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정말로 작품성이 있다면 순수예술이냐 대중예술이냐는 건 문제가 아니다.
  • 예술가에게 작품 한두 개 부탁하는건 큰 문제가 아니다.
    • 유료라면 문제될 것이 없다. 이 경우는 작품 의뢰가 되니 예술가 쪽에서도 그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할 것이다. 작품 제작을 부탁한 사람이 제시한 금액에 대해 작품의 규모, 제작에 소요되는 시간, 자신의 창작 의욕에 대한 자극의 정도 등 제반 여건을 따져 합당한지 아닌지를 판단해보고 의뢰를 받아들일지, 거절할지, 흥정을 시도해 볼지 등에 대해 정할 것이다.
    • 무료라면 문제가 되며 열정페이를 부르는 대표적 사고의 하나다. , 그림, 노래 등의 작품을 만드는데 예술가는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당연히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마땅하다. 저작권이라는 게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예술가의 가치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자신의 이름과 존재가 브랜드다. 설사, 부탁하는 쪽에서 진심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해 달라는 의도일지라도 자신의 작품이 세상에 공개되어 평가받는 예술가에게는 부담이 크다. 게다가 에너지뿐만 아니라 소비되는 시간도 문제다. 당장 시인이 한 편의 시를 지으려면 짧게는 수 시간, 길게는 수 주가 넘게 걸리는 경우도 있다. 노래 한 곡을 작곡하고, 그림 한 장을 그리는데도 비슷한 시간이 소모된다. 잘 와닿지 않는다면 당장 자신이 누군가에게 아무런 보답도 조건도 없이 8시간 동안 봉사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자.
    • 각종 예술학도들에게도 이런 고정관념이 있다.
      • 실용음악과: "분위기 띄운다고 노래 시키지 마라"
      • 사진학과: "제발 단체 사진에서 찍히고 싶다"
      • 회화과: "제발 부탁인데 초상화 좀 그려달라고 하지 마"
  • 예술가들은 현실도피를 했으니 사회생활을 못 한다.
    • 대부분 세상과 분리되어 일하는 직업인 만큼 직업병이란 측면에서 보면 어느 정도 일리가 있으나, 반대로 대중과 사유를 공유하고 소통하는 직업 종사자의 사회성을 무조건 평가절하하는 것도 곤란하다. 예술계에 명망이 있으면서도 사회적인 입지 역시 탄탄하게 구축한 사람들도 많으며, 굳이 사회적 지위가 아니더라도 풍부한 감각을 살려 원활한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하는 경우도 많다. 일례로 문인계에서도 손꼽히는 말솜씨를 자랑하는 소설가 황석영이 있다.
  • 예술성(작품성)과 대중성(상업성)은 반비례한다.
    • 반비례하지 않을뿐더러 둘 사이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예술적 가치가 높지만 대중성은 낮은 작품도 있고 혹은 둘 모두를 잡은 작품도 있을 뿐이다. 둘 중 어느 작품이 더 예술적으로 뛰어나느냐는 대중성과는 전혀 관련이 없을 뿐이다. 즉 반대로 말하면 대중성이 낮고 작품이 인기가 없다고 하여 예술성이 무작정 강한 것도 아니다. 그리고 아무리 해괴한 작품이라도 높은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면 미미하게 나마 지속적인 환기가 이루어지다가 재평가를 받는 날이 온다. 다만 그 날이 작가의 생전일지 작가의 사후일지가 문제이긴 하다.
    • 단, 그 역은 성립할 수 있다. 예술성이 강하다고 반드시 대중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대중을 상대로 하는 예술(영화, 드라마, 연재만화[23] 등)은 대중성을 위해 예술성을 희생해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 특히 많은 자본이 투입되는 영상매체의 경우 제작비를 지원하는 스폰서의 입김이 셀 수밖에 없다. 일부 영화감독이 괜히 감독의 의도를 충실히 반영한 '감독판'을 내는 게 아니다! 단, 대중을 상대로 하는 예술에서도 "내 작품은 예술성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잘 팔리지 않는다"고 변명하는 사람들도 많은 편이다.
    • 요즘 들어서는 예술성과 대중성은 상관관계가 없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극단적인 순수 예술과 극단적인 상업 예술의 경우에는 반비례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 중도에 있는 예술 작품들은 예술성 자체보다 오히려 인지도나 마케팅, 혹은 운빨 등 외적인 요소에 대중성이 좌우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 예술은 미(美)다, 또는 예술은 아름다워야 한다.
    • 예술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아름다움을 느끼는 기준이 다르다.[24] 빼어난 용모의 미인(美人)을 묘사한 그림보다 그물을 끌어올리는 늙은 어부를 그린 그림에서 더 매력적인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고, 클래식 음악을 듣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는 반면 록 음악을 들으며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 그리고 '미(美)'라는 것 자체도 절대적인 하나의 기준이 아니다. 문학 수업에서 자주 언급되는 '미적 범주'가 그 예. 여기서도 미는 최소 4가지의 종류(우아미[25], 숭고미[26], 비장미[27], 골계미[28])로 분류된다. 즉 우리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란 일반적으로 '우아미'만을 의미하는 것. 예를 들어 이른바 '병맛 만화'의 경우 대부분의 그림체가 '아름다움(우아미)'과는 거리가 먼데도 인기를 끄는데, 이는 병맛 만화의 그림체가 병맛 만화가 지향하는 '골계미'에 특화된 그림체이기 때문이다. 또한 굳이 병맛 만화가 아니더라도 ZUN이나 히노우에 이타루와 같이 '잘 그린 그림은 아니지만' 인기 있는(있던) 작가의 경우에도 작품 그 자체의 매력(스토리, 세계관 등) 때문에 인기가 있는 것이지 그림체 때문에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 바꿔 말하면, 그림체가 안 좋다고 욕을 먹는 경우는 사실 그림체 안 좋아서 욕을 먹는 경우가 많다. 어느 정도 작품성이 있다면 웬만하면 그림으로 욕을 먹는 경우는 (일부 까에 의한 것을 제외하면) 없기 때문.
    • 또한 예술이 무조건 아름다워야 한다면 동화 같이 아름다운 이야기 뿐만 아니라 인간이나 사회의 추하고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사회고발물이나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 않아 찝찝하고 아쉬운 뒷맛을 남기는 작품들 역시 큰 인기를 끄는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다. 그리고 추상화같은 경우는 애초에 아름답다 아니다를 따질 수가 없는 장르의 예술이며, 무엇보다 아름다움에 대해 절대적인 기준을 잡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 한편, '디자인 = 아름다움, 유행을 선도' 이라는 오개념[29]도 이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할 수 있다. 대다수의 실용적인 디자인은 아름다움(조형미) 역시 중요시하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실용성(기능미)을 보다 중시하기 때문.[30]
  • 예술가들은 일단 유명해지기만 하면 똥을 싸도 환호해준다.
  • 순수예술은 오래가지만 대중문화는 수명이 짧다.
    • 순수예술이라고 다 오래가는 것은 아니고, 살아남는 것만 살아남는 것이다. 순수예술이라도 '살리에리가 작곡한 곡'[31]이나 '평범한 순문학 소설'을 '고전'의 반열에 넣기에는 어려울 것이다. 반면 엄연한 대중문화인 비틀즈의 음악이 오랜 시간동안 계속 사랑받으며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도 있는 것이다.
  • 활자매체는 상상력 증진에 도움이 되고 영상매체는 수동적인 수용태도를 만든다.
    • "요즘 사람들은 책도 안 읽고..."라는 주장의 연장선상에 있는 편견 및 고정관념.
    • 마셜 맥루한미디어의 이해에 따르면 오히려 영상매체가 더 많은 상상력을 요구한다('쿨 미디어'). 활자매체가 오로지 시각에 의존하여 정보의 '정세도'가 높은 반면, 영상매체는 시청각 모두에 의지하기에 개별 정보의 정세도가 떨어져서 상상력을 동원해 그 데이터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왕이 죽었다. 슬픔을 못 이겨 왕비도 죽었다.'라는 이야기의 경우, 소설로 쓰면 왕비의 내면 심리까지 묘사할 수 있지만 영상매체로 나타내면 왕비가 울다가 지쳐 죽는 장면만 묘사할 수 있을 뿐, 내면 심리를 묘사하기는 어렵기에 시청자가 그 심리를 상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중요한 것은 미디어의 종류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책도 생각없이 읽으면 수동적으로 수용하게 된다.[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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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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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관련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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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예술의 종류

예술은 시간적 직렬인가, 공간적 병렬인가에 따라 나뉘기도 한다.

8. 관련 문서

9. 강조의 의미

간혹 무엇인가 굉장히 훌륭하거나 굉장히 형편없을 경우 '예술이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전자의 경우엔 '예술의 경지'라는 수사로 대표되나, 후자의 경우는 반어법으로 비꼬는 의미.


[1] 이는 고대 그리스에서는 예술 = 디자인 = 테크놀로지 = 기술 이 모두 동일했기 때문이다. 즉 건축 기술자가 외관 디자인도 같이 했다는 것.[2] 대표적인 예시로 무술 즉, '싸우기 위한 기술'을 의미하는 martial art라는 단어를 들 수 있다.[3] 물론 디자인처럼 예술과 비슷한 위치를 차지하면서도 예술과 다른 개념을 밀고 나갈 수도 있다.[4]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맥락을 읽는 예술 감상, 비평만이 정답인 것은 아니다. 감상자가 받은 인상에 근거한 인상주의비평, 감상, 실용적, 기술적 관점 또한 예술을 주시하고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며, 단지 맥락을 읽는 노력을 가미하였을 때, 그 비평과 감상이 더욱 풍부해지고 명료해진다는 것이다.[5] 다만 요즘에는 예술에 대한 이해도 없이 "예술이란 척 봤을 때 "와"하는 소리가 나와야만 예술이다."라는 인상주의적 비평이 전부인 줄 아는 관람객들이 '자신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의 예술'에 대해 "현대 예술은 아무거나 해 놓고 의미부여하는 말장난일 뿐이다"라고 오해하고 있다는 점이 큰 문제이다.[6] 원래 6번째라고 했으나, 무용을 추가함에 따라 스스로 7번째로 밀어넣었다.[7] 여기까지가 본래 헤겔의 예술 분류. https://plato.stanford.edu/entries/hegel-aesthetics/[8] 리치오토 카누도가 영화를 제7의 예술로 정의함. https://en.wikipedia.org/wiki/Ricciotto_Canudo[9] 프랑스에서 20세기 초 만화를 제9의 예술로 정의함. 1971년프랑스의 ‘라루스 알파벳 대백과사전’#에서 예술로 규정.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648553&cid=50338&categoryId=50338[10] 현재 논의 중이다. https://web.archive.org/web/20090106154034/http://big-presse.com/big-article-Art-1707.php[11] 한국의 경우 2022년 9월 7일 문화예술진흥법에서 규정하는 문화예술 범위에 게임을 포함시키는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한국 문화예술진흥법이 게임을 문화예술의 하나로 인정한 셈이다.[12] 실제로 영화는 지난 한 세기 넘게 다양한 장르와 촬영 기법, 주제 등에 대한 고찰이 있었기 때문에 예술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13] 자세한 내용은 게임과 예술 문서 참고.[14] 고대 그리스 시절 상상력을 빨아들여 영혼을 제거한다든가, 요즘 젊은이들은 토론할 생각은 안 하고 방구석에서 책만 읽는다고 했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그 외에도 바둑도 과거 조선 시대에선 저급한 놀이문화로 여겨지기도 했었다.[15] 원래는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자신의 정신분석학에서 제창한 개념으로, 성장 발달 과정에서 남아가 겪게 되는 변화를 비유하는 개념이었으나, 이후 예술계에 넘어오면서 '기성세력에 저항하는 신진세력의 고뇌' 같은 식으로 의미가 와전된 경향이 있다.[16] 물론 즐길거리로서의 예술 그 자체는 인류의 역사에서 어떻게든 계속될 것이다. 여기서 위기는 예술계 일부 종사자들이 올바르다고 믿는 예술관에 근거한 예술이 잘못되었을 때의 위기를 말하는 것이다.[17] 국내에는 예술인 소셜 유니온이 대표적이다.[18] 이 망언의 문제점은 현실적으로 대다수의 부모가 가정형편이 어렵든 부유하든 상관없이 예술로 벌어먹고 살기 힘들기 때문에 자식이 고생할까봐 반대하는 것이지, 자식을 열정페이의 대상으로 삼아서 한몫 벌려고 하는 막장 부모 짓을 하려는 경우는 극소수라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19] 19년도 개정사항이다. 기존은 500만원.[20] 이것은 결국 법인세법이 사실상 천만원 이하의 미술품을 즉시상각의제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21] 아이러니하게도 미술계에서 삼성이나 기타 대기업의 대규모 투기행위는 겉으로나마 미술품시장이 커지는 것 같은 효과를 준 반면그리고 빈부격차가 커지고,인생이 날조된 불륜녀를 위해 시작된 이 대국민 사기극은 큐레이터 직업군의 몰락을 가져왔다[22] 거듭되는 실패를 겪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일종의 재능이라고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23] 특히 소년점프의 연재 시스템이 악명 높다. 작품성이 있어도 인기가 없으면 빨리 연재가 끝나고, 인기만 있으면 작품성은 어떻든(물론 최소한의 작품성이 있기에 인기가 있는 것이겠지만) 오랫동안 연재하게 되는 시스템이기 때문.[24] 예를 들어 용자경찰 제이데커 9화에서 조각상을 구경하는 빌드팀. 비너스 상을 보고있는 파워죠(기분파)와 근육남 동상을 보고 있는 덤프슨(육체파). 나중에 온 맥클레인(냉정침착)은 임무 중 동상을 구경하는 둘에게 한 마디 하려다가 니노미야 긴지로 동상을 아름답다고 한다...[25] 일상생활에서 오는 작고 친근한 것을 추구하는 데서 오는 아름다움. 조화와 균형, 통일성의 아름다움.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들.[26] 일상생활에서 벗어난 크고 위대한 것을 추구하는 데에서 오는 아름다움. 장엄하고 거룩하고 초월적인 아름다움. 예를 들어 종교예술 등.[27] 숭고한 이념을 긍정하려는 투쟁에서 오는 아름다움. 비극의 아름다움.[28] 대상과 상황이 어울리지 않는 부조화를 근거로 그것으로부터 발생하는 재미와 기묘함 등에서 오는 아름다움. 예를 들어 풍자와 해학 등.[29] 예 : "나 차 없는거 놀리냐(자동차디자인과)", "핸드폰 옛날 거라고 구박 좀 하지마(산업디자인과)", "난 추리닝 입으면 안 되냐?(의상디자인과)" 등[30] 즉, 실용 디자인에서는 '쓰기 불편하더라도 예쁜 것'이 아니라 '쓰기 편하고 실용적이면서 예쁜 것'을 추구한다. 아무리 외형이 아름답더라도 쓸모가 없거나 사용하기가 너무 불편하다면 그것은 실용 디자인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바람직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다.[31] 사실 살리에리는 편견과 달리 음악가로서 최고의 자리라고 할 수있는 궁정악장 자리를 맡을 만큼 상당히 실력있는 음악가였으며, 그가 작곡한 곡도 당대에는 잘 팔렸다고 한다. 현대의 기준으로 봤을 때 '평범할' 뿐.[32] "책을 뒤지고 있는 학자는 ......마침내는 사색하는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만다. 책을 뒤지지 않을 때는 생각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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