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1 09:05:34

이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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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설립 이시윤
이일규 대법원장 지명, 노태우 대통령 임명
이재화
윤관 대법원장 지명, 김영삼 대통령 임명
}}} ||
前 대한민국 헌법재판소 재판관
<colbgcolor=#ececec><colcolor=#000> 대한민국 제16대 감사원장
이시윤
李時潤 | Lee Si-yoon
파일:1704727027323_e5o8w3_2_0.jpg
출생 1935년 10월 10일
경기도 경성부
(현 서울특별시)
사망 2024년 11월 9일 (향년 [age(1935-10-10)]세)
본관 단양 이씨 (丹陽 李氏)
대가(大家)
재임기간 제28대 춘천지방법원
1987년 3월 20일 ~ 1988년 7월 19일
제8대 수원지방법원
1988년 7월 20일 ~ 1988년 9월 14일
헌법재판소 재판관
(이일규 대법원장 지명 / 노태우 대통령 임명)
1988년 9월 15일 ~ 1993년 12월 16일[사임]
제16대 감사원장
1993년 12월 17일 ~ 1997년 1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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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cecec><colcolor=#000> 학력 서울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 / 석사 · 박사)
가족 배우자 진영희, 아들 이광득·이항득
경력 제10회 고등고시 사법과 시험 합걱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
서울대학교 사법대학원 조교수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형사지방법원 부장판사
광주고등법원 부장판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제28대 춘천지방법원장
제8대 수원지방법원장
헌법재판소 재판관 (1988.09. ~ 1993.12.)
제16대 감사원장 (문민정부)
경희대학교 법과대학장
명지대학교 법과대학 석좌교수
}}}}}}}}}

1. 개요2. 생애3. 저서
3.1. 신민사소송법3.2. 신민사집행법3.3. 민사소송법 입문
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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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민사소송법학의 거목.[2] 헌법재판소 재판관감사원장을 역임했다.

사시생들의 바이블로 불렸던 '신민사소송법'의 저자이다.

2. 생애

1935년 10월 10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1958년 제10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하여 법관으로서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서울민사지방법원, 서울형사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광주고등법원 등에서 판사 생활을 하였으며, 대법원 재판연구관 및 사법연수원 교수직 경력도 있다. 춘천지방법원장, 수원지방법원장을 거쳐 1988년 헌법재판소 초대 재판관으로 임명되었다.

동시에 법학 공부에도 정진하여 서울대학교에서 소송물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독일과 미국에 국비유학을 다녀왔다. 실제로 저서를 살펴보면 독일과 미국 언급이 자주 나온다.

헌법재판관 시절, 헌법소송에 민사소송법 이론을 접목시키는데 많은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헌법재판이 민사소송의 절차를 준용하고 있기 때문이다.[3] 이를 통해 초기 헌법재판의 정착에 많은 공이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재판관 임기 중이던 1993년, 이회창의 후임으로 감사원장에 임명되면서 재판관직을 사임하였으며, 감사원장 임기를 마치고 1997년 12월 16일 퇴임하였다. 퇴임 후에는 명지대학교 석좌교수,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등을 지냈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고려대학교 법무대학원에서도 민법연습 과목을 강의했다.

2024년 11월 9일 숙환으로 별세하였다. 향년 89세.

3. 저서

3.1. 신민사소송법

'신민사소송법'[4]은 과거에 사법시험 준비생들을 비롯하여 민사소송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누구나 한 권씩 가지고 있을 정도로 베스트셀러이자 명저였다.

문장이 뛰어나고, 용어 선택이 훌륭하지만 많은 내용이 압축적으로 정리되어 있어 혼자 공부하기엔 어려운 책이다. 또한, 저자의 학계에서와 실무에서의 경험이 녹아들어가 있어서 법과대학 학생들의 교과서로도 사용되고, 사법시험 수험생들의 수험서로도 사용되었고, 또한 실무가들이 실무 생활을 하면서 참고하는 서적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들로 인해, 민사소송법을 처음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추천할만한 책은 아니다.[5] 그러나 어느 정도 민사소송법에 대한 지식이 쌓인 뒤로는 정리에 용이하다는 점과 답안지에 현출하기에 적합한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으로 인해 대부분의 학생들이 선택했었다.

2000년대 까지만 해도 압도적인 점유율을 기록하였으나, 2010년대 초반부터는 많은 학생들이 강사저로 변경하였다. 아무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신진학자들의 연구 결과 및 학설 등이 이시윤 견해에 따르지 않거나 이시윤 저에 각주 등에 1~2문장으로 빈약하게 설명된 부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과거 초기 변호사 시험에서 민사소송법이 가지는 중요성이 민법, 회사법에 비해 떨어지고 이러한 실체법과의 연관성 있는 쟁점만이 주로 사례형에 출제되는 경향이 있다 보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원 강사들의 500~600page 요약서를 주교재로 삼으며 이 교재를 도외시하였다는 견해가 있다.

다만 한자세대의 몰락이 가시화된지도 벌써 20년 가까이 지났고, 변호사시험 법전에서 한자가 빠져버리게 된 오늘날에도 이시윤저 <신민사소송법>이 김홍엽저와 함께 로스쿨 수험생들의 부교재로서의 역할을 굳건히 하고 있다는 사실은 가치 있는 좋은 책은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살아남는다는 금언을 떠올리게 한다.

신소송물이론 외에는, 본인의 견해가 대부분 다수설 및 판례가 되었을 정도로 민사소송법학의 발전에 상당히 많은 영향을 미친 책이다.

3.2. 신민사집행법

2002년에 민사소송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기존에는 민사소송법에 포함되어 있었던 민사집행법 내용이 분리되어 별개의 법률로 편성됨에 따라 펴낸 책이다. 사법시험 2차 과목이 아니고, 변호사 시험에서도 민사집행법 지식은 민법 및 민사소송법과 관련되는 한도에서만 출제되고 있기에[6] 신민사소송법 책만큼의 인기는 가지고 있지 못하나, 다른 교수저 민사집행법 서적을 보면 단순한 요약서에 불과한데 신민사집행법은 앞으로 우리나라 민사집행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까지 서술한 명저이다. 2016년에 제7판이, 2020년에 제8판이 출간되었다.[7]

3.3. 민사소송법 입문

2014년에 출간된 이 저서는 민사소송법을 처음 접한 학생들이 그 과목 특유의 난해함으로 인해 공부에 흥미를 잃는 것을 방지하고 해당 법률에 부담 없이 입문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주 목적이다. 민사소송법 주요 part마다 요약적으로 소개를 하고 해당 내용과 관련한 역사 및 사례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민사소송법에 관한 내용의 소개가 학원가의 서브노트처럼 되어 있다 보니, 제목과 달리 입문서로서의 가치는 별로 없는 책이다. 오히려 역사 및 사례 part에 법조계 야사(野史)가 많이 담겨있다보니[8] 법 공부를 하다가 지루할 때마다 읽기에 좋다.

4. 여담

  • 정치적으로는 보수 인사로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 때에 소추위원측 대리인단에 참여한 바 있다.[9] 그런데 참여는 했지만 탄핵이유가 부실해서 탄핵소추가 기각될 것으로 예상했다고.# 이에 반해,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대해서는 "나는 이번의 탄핵소추 사건을 우파정권 타도를 위한 좌파적인 운동이라는 정치적 관점에서 본다."라고 논평하였다. 이는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다만,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에 대해서는 결과가 마뜩지는 않지만[10] 승복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 춘천지방법원장 시절 시위 관련 재판에 개입한 흑역사가 있다. 박종철 사건을 계기로 전국에서 대학생 시위로 시위자들이 잡혀왔고, 정보기관은 이들에 대한 법정최장기관 구류를 요구하여 담당판사를 법원장실로 불러 그 요구를 전한 것. 그러나 그 담당판사는 전임 법원장 시절 전국에서 유일하게 불온서적영장발부를 기각한 꼬장꼬장한 인물이었고, 결국 구류 3일만을 선고했다.#[11]
  • 곽윤직 민법 교과서 개정판을 나중에는 그 제자의 제자인 김재형 대법관이 집필한 것과 비슷하게도, 비록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지는 않으나 이시윤 교과서 개정판은 제자인 조관행 변호사[12]가 작업을 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그 증거는, 2008년 말에 민사소송법 개정으로 변론준비절차가 필수적 절차에서 임의적 절차로 바뀌자 이시윤 교과서에서 이에 대해 맹비난을 한 것을 들 수 있는데, 조관행 변호사의 박사학위논문 주제가 다름 아닌 변론준비절차이다. 여담으로, 개정판 작업 도중인 2006년에 조관행이 뇌물수수로 구속(...)되는 바람에 잠시 동안 조관행의 이름이 개정판 저자 목록에서 이름이 없어졌다.
  • 2018년 2월 8일에 상처(喪妻)하였다. 그래서 한 달 후 신민사소송법 개정판을 출간하면서 머리말에서 "그동안 책 이외에는 거의 취미가 없다시피 한 남편에게 인내심을 가지고 내조하던 아내가 잊혀지지 않는다. 특히 저자책의 인지를 누구에게도 부탁하지 않고 스스로 찍던 아내가 소천[13]하게 되어 이제 그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으니, 단장의 비애를 느낀다."라고 애도하였다. 2019년판 신민사소송법 개정판에는 "나의 반려자였던 아내의 내조가 다시금 상기된다. 이 개정판을 역시 하늘의 고인에게 바친다."라고 적혀있다.
  • 2024년 신민사소송법은 제17판까지 출판되었다. 제14판(2020)의 머리말에서 자신이 처음 민사소송법에 관심을 가진 1960년(무려 3.15 부정선거4.19 혁명이 일어난 해다.)을 언급하며 60년이 다 되었다고 하는 대목에서 민사소송법 대가의 포스와 세월의 무상함을 느길 수 있다. 또한 2020년 2월에 신민사소송법 제 14판 머리말에서 민사소송법의 변호사시험 위치를 보고 개탄스럽다고 높은 수위의 비판을 하였는데 그 이후로 변호사시험 내 민사소송법 위치가 높아진 것을 생각하면 이시윤 교수의 법학계의 위치를 새삼 느끼게 해준다. 이시윤 교수가 공저자 등을 정하여 자신의 신민사소송법 교과서를 물려주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2024년판이 마지막 개정판이 된다.


[사임] 임기 수행 중 1993년 12월 후임 감사원장으로 지명됨에 따라 재판관을 퇴임했고, 기존 임기로는 1994년 9월 14일까지였다. 이후 재판관 후임으로 이재화 대구고등법원장이 취임했다.[2] 학계와 실무 모두에서 상당한 업적을 남겼다. 우리나라에 이 분에 견줄만한 커리어를 가진 분이 별로 없는 것은 그만큼 실무가로서의 법조 생활과 학자로서의 법학 연구를 병행한다는 것은 철저한 자기관리가 없다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3] 헌법재판소법 제40조 제1항 전문 "헌법재판소의 심판절차에 관하여는 이 법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헌법재판의 성질에 반하지 아니하는 한도에서 민사소송에 관한 법령을 준용한다." - 처음 헌법재판소법이 제정되었을 당시에는 헌법재판의 성질에 반하지 아니하는 한도에서라는 문구가 있지 아니하였으나, 추후에 개정을 통해 추가되었다.[4] 기존에는 민사소송법 이었으나, 2002년 1월에 민사소송법이 전부개정된 뒤 신민사소송법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판을 냈다[14][5] 그래서 초학자들은 호문혁(서울대 법대) 교수 저, 민사소송법을 참고로 보는 경우도 있었다. 단, 호문혁 교수는 대부분의 논점에서 극소수설인 경우가 많으므로 주의를 요한다. 극소수설인 이유는 본인만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굉장히 논리적이어서 다른 교과서에서도 그 학설을 소개한다. 다만 논리를 위한 논리여서 수험용 외에는 실무에서는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6] 민사소송법이 전부 개정되기 전에 민사소송법 내에 강제집행편이 있었을 때에도, 강제집행편은 사법시험 출제범위에서 제외되었다.[7] 제7개정판 머릿말에 개정하는데 나이 때문에 체력이 부친다는 말을 적시해 놓았다. 나이가 나이이니만큼, 개정속도는 느려질 것으로 보인다.[8] 대표적으로 서울 법대 교수였던 고 유기천 교수와 고 황산덕 교수의 이야기, 민사소송법학의 계보, 이회창 전 대법관이 대쪽판사 별명을 가지게 된 배경, 저자의 법관 생활 이야기 등[9]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사법연수원에서 사제의 연이 있는 관계로, 서면을 제출하는 방식으로만 소송에 참여하였다고 밝혔다.[10] 특히, 헌재의 결정이 졸속재판이라는 비판을 하였다.[11] 위 기사에서 법원장 실명이 나오지는 않으나 민사소송법 교과서를 집필한 87년 춘천법원장은 이시윤 한명이다. 위의 탄핵 이야기와 같이 보면 노무현 탄핵안을 제출한 민주당 대표 추미애와 그에 함께한 이시윤, 박근혜 탄핵의 주도자 추미애와 그에 반대한 이시윤이라는 구도에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낄 수 있다.[12] 박사과정 지도교수가 이시윤 재판관이었다.[13] 개신교 가정에서 장례를 치를 일이 생기면 부를 소자와 하늘 천자를 써서 소천(召天)했다는 표현을 쓰는데,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는 뜻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 일각에서는 이 말이 사전에 등재되지 않았고 한국어 어법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여 "소천을 받았다"라는 말을 써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