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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82년 11월 2일 |
함경도 온성도호부 미전사 동동 (현 함경북도 온성군 미산리) | |
사망 | 1923년 12월 20일 (향년 41세) |
서대문형무소 | |
본관 | 남평 문씨[1]# |
자 | 언준(彦俊) |
서훈 |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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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두만강을 건너 국내 진공작전을 벌인 독립군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독립유공자 문창범은 그의 4촌 형이다.[2]
2. 생애
1882년 11월 2일 함경도 온성도호부 미전사 동동(현 함경북도 온성군 미산리)에서 아버지 문태원(文泰元)과 어머니 기계 유씨 사이의 3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그 후 1919년 3.1 운동에 참가한 뒤, 간도로 망명하여 대한군정서 독립군으로 활동하였다. 1922년 1월 2일 김학섭 등 대한군정서 대원들과 함께 웅기항의 일제 기관을 공격하고자 하였으나 일제 군경의 경계가 심하여 함경북도 경원군 소재 신건원주재소로 공격목표를 바꾸었다.
중국 화룡현을 떠난 대원들은 두만강을 건너 1월 5일 새벽에 신건원주재소에 도착하였다. 주재소를 급습하여 일제 순사를 사살하고 폭탄을 투척하여 일경 숙소를 파괴하였으며, 일제 군경과 교전 후 복귀하였다.
이후 만주 훈춘시 등지에서 일제 군경 공격과 밀정처단 등의 활동을 계속하다 1922년 12월 13명의 독립군과 함께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청진으로 압송되었다. 1923년 5월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923년 12월 20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을 당해 순국하였다.
3. 사후
대한민국 정부는 일제 기관 파괴와 밀정처단 활동을 벌이다 순국한 문창학의 공적을 기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국가보훈처에서 2016년 5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4. 포스터
* 출처 : 국가보훈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