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8-11-07 16:32:32

지윤

1. 고려 말의 인물
1.1. 평가에 대한 의문점
2. 한국의 인명
2.1. 지윤이라는 이름을 가진 실존 인물2.2. 지윤이라는 이름을 가진 가상 인물

1. 고려 말의 인물

池奫
(? ~ 1377)

충주 사람으로 어머니는 무녀이고 지윤은 군졸로 시작해 군공을 세웠고 공민왕 때 여러 차례 승진해 판숭경부사가 되었다가 1371년에 신돈이 죽자 그의 옷가지, 패물을 모두 차지했다. 우왕 때 문하찬성사, 판판도사사로 있으면서 강을성이 금을 판도사에 납품하려다가 죄를 짓고 죽자 그 처를 자신의 첩으로 삼고 금값으로 포 1500필을 받았다.

또한 신순이 죽자 아들인 지익겸을 신순의 딸에게 장가들이면서 몰수된 신순의 집, 재산을 지익겸에게 줬고 이인임, 임견미와 함께 권력을 전횡했다. 우왕의 유모인 장씨와 간통했고 지윤의 처와 장씨가 친해 궁중을 드나드는 것으로 인해 김속명이 이를 비난하자 지윤은 앙심을 품고 그를 탄핵해 유배보내게 했으며, 김승득으로부터 송제대가 장씨와 간통한 것으로 탄핵하려는 것을 듣고 송제대를 내치게 했다.

김승득, 김윤승 등을 심복으로 삼았고 지윤은 우왕의 탯줄을 예안에 안장하는 일을 주관했다가 유배 중인 지윤이 그 땅이 좋지 않다고 말하자 이 사실이 알려질까봐 두려워 김승득, 김윤승을 시켜 임박은 심왕을 고려왕으로 옹립하기 위해 북원의 중서성에 보내는 글에 서명하지 않았다는 죄목을 뒤집어씌워 죽게 만들었으며, 이 일을 독단적으로 벌였기에 이인임, 경복흥이 못마땅해 했다.

또한 왜적이 전주를 공격한 일로 아들 지익겸을 원수로 삼으려 하자 불만을 품어 지윤은 차례대로 함께 상의하고 있는 최영, 이인임을 거론했으며, 요동을 공략하는 일을 내세워 전주에 대한 왜구를 막는 논의를 거부하면서 이 일로 이인임과 다투게 되면서 지윤은 자리에서 물러났다가 경복흥이 울면서 만류하자 경복흥에게 사과했다.

이 일로 인해 이인임이 병을 핑계로 집에 있을 때 그 집을 찾아가지도 않아 사람들은 그 둘의 다툼을 알게 되었으며, 어떤 사람이 지윤의 문객 김윤승 등이 이인임을 탄핵해 내쫓고 지윤을 시중으로 삼으려 한다는 글을 붙여 이인임, 지윤에게 알려졌고 지윤은 이인임의 집안 조카인 김상이 한 짓이라 했다. 김승득을 비롯한 지윤의 문객이 집에 모여 원나라 사신을 후대하면서 원나라의 연호를 쓰는 것은 어설픈 일이라 비판했다가 이 일에 대한 조사로 인해 지윤의 일당들이 유배당했으며, 순군 부만호로 있던 지윤은 이 일로 인해 이인임에게 공을 음해했다면 천벌을 받을 것이라 맹세할 정도였다.

최영에게 구원을 요청하려고 했지만 실패했고 강은이 이인임에게 붙어 자신의 심복인 김윤승을 탄핵하면서 위험한 처지에 빠지자 김윤승의 말을 듣고 경복흥, 이인임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다가 실패했으며, 결국 김윤승, 지익겸과 함께 문초를 받은 후에 대신들을 살해하려고 한 사실을 자백한 후에 사형당했다. 그가 죽자 사람들이 모두 통쾌해했다고 한다.

그의 장녀와 이성계의 장남인 이방우가 결혼해서 이성계와는 사돈이다. 나중엔 차녀 성빈 지씨와 삼녀 숙의 지씨가 이성계의 차남 정종의 후궁이 되었다. 이외에도 지득린 등 슬하에 2명의 아들을 두고 있다. 이들 남매에 대한 이야기인 연못에 핀 목화 - 송경별곡에도 등장하며 자세한 것은 지윤(송경별곡) 참조 바람.

정도전(드라마)에서는 방형주가 배역을 맡았는데 이인임의 심복으로 나온다. 그러나 1375년부터 1380년까지의 드라마의 모든 내용이 생략되면서 지윤이 숙청되는 과정 역시 홍산대첩 등과 함께 통으로 분량이 날아가면서 자연스럽게 하차했다.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명예훼손 문제로 대부분의 이름이 바뀌어 나온 권문세족들과 마찬가지로 백윤으로 바뀌어 나온다. 초반에 등장한 권문세가 삼두의 일원으로 다른 일원인 길태미와는 내부적으론 사사건건 대립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함께 권세를 누리는 입장이다. 그러다 장삼봉에게 무술을 배운 이방지의 습격을 받아 살해되고 그의 빈 자리는 홍인방이 채운다.

1.1. 평가에 대한 의문점

고려 말, 무관이자 정치가인 지윤은 무인 가문 출신이 아닌 사졸 출신으로 재상인 문하찬성사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고려사』는 그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이다.

일단 그를 '간신'으로 분류했으며 출신에 관해서도 어머니는 무당, 사졸 출신으로 누차 종군하여 군공이 있다며 간략하게 부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우왕 때 최고권력을 누렸던 이인임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대정객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관한 언급은 처음부터 끝까지 부정적인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공민왕 때 신돈이 사형을 당하자 승경부 판사로 있던 지윤은 신돈의 재산을 모두 자신이 취하였다.
2. 판도사 판사로 있을 때, 강을성이란 자가 판도사에 금을 바치고 대금을 받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 사이에 중죄에 걸려 사형당했다. 그러자 지윤은 강을성의 처를 자기 첩으로 삼고 금값으로 포목 1500필을 받아 챙겼다.
3. 신순이라는 재상이 사형 당하자 지윤은 아들 지익겸을 신순의 딸에게 장가들인 다음 몰수당했던 신순의 집과 가산을 되찾아 아들에게 주었다.
4. 지윤은 우왕의 유모 장씨와 간통했다.
5. 찬성사에 오른 지윤은 30명이나 되는 첩을 거느렸는데 오로지 부자만을 취했고 미색은 문제 삼지 않았다.

청백리는 아니더라도 이런 사항은 반역과는 거리가 먼 사안들이다. 그래도 반역조에 실리지 않고 간신조에 실린 것도 실은 역모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일 것이다.

굳이 『고려사』가 지윤을 간신으로 분류한 이유를 따지면 최종적으로 주목할 만한 게 이인임과 권력을 다투다가 패배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신하들끼리 권력투쟁을 하다가 패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런데 왜 지윤은 조선 세종 때 편찬한 『고려사』 편찬자들로부터 이토록 가혹한 평가를 받은 것일까?

어쩌면 그 실마리는 이성계의 장남 진안군 이방우에게서 찾을 수 있다. 이방우는 조선 건국 이듬해인 1393년 12월 술병으로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이성계의 왕위를 잇게 될 제1순위였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반대했다는 야사 때문인지 그가 죽었을 때 실록은 굳이 "진안군은 성질이 술을 좋아하여 날마다 많이 마시는 것으로써 일을 삼더니 소주를 마시고 병이 나서 졸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어쩌면 죽은 자에 대한 모독으로 읽힐 수 있는 졸기다.

지윤은 바로 이 이방우의 장인이었다. 중앙권력으로 진출하기 위해 아들들의 혼인을 활용했던 이성계가 장남의 혼처로 꼽은 집안이 바로 지윤의 집안이었다. 게다가 무신 출신의 이성계는 출신이 한미하나 재상 지위까지 오른 지윤을 자신에게 힘이 되어 줄 집안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지윤은 정치투쟁에서 패해 세상을 떠났고 사위 이방우 또한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 다음 왕위 계승 서열이 가장 높은 차남 이방과. 그는 지윤의 차녀, 삼녀와 혼인한 것으로 보아 이성계와 충주 지씨 가문의 연관성은 깊다.

이방우와 부인 지씨 사이에는 봉녕군 이복근이 있었고. 이방과와 성빈 지씨 사이에는 덕천군, 도평군. 숙의 지씨와의 사이에는 의평군, 선성군, 임성군 세 명의 아들이 있었다. 태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는 적서의 차별이 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 언급된 모든 군들이 모두 왕위계승 가능자들이었다.

그러나 결국 왕위는 이방원에게 돌아갔고 그 뒤를 이은 아들 세종은 아버지 중심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백부 이방우나 이방과 등의 비중을 줄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지윤은 이중 삼중으로 부정적 해석의 희생물이 되는 액운을 당해야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가 바로 고려사에서 간신으로 낙인찍힌 것. 더불어 세종이 도평군 이말생의 왕자군 직위를 빼앗고 성빈 지씨를 폄하한 것에서 더욱 확신을 얻을 수 있다.

2. 한국의 인명

한국 여성 인명으로 자주 접할 수 있으며 간혹 남성 인명으로도 접할 수 있다.

2.1. 지윤이라는 이름을 가진 실존 인물

2.2. 지윤이라는 이름을 가진 가상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