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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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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위와 같은 인재(人材)는 쉽사리 얻을 수가 없다.
《태조실록》 태조 3년 1394년 갑술 1월 21일(신유)
朴葳《태조실록》 태조 3년 1394년 갑술 1월 21일(신유)
(? ~ 1398년)
밀양 박씨[1] 15세[2]이자, 정국군파의 파조이다.
여말선초의 무관으로, 고려 공민왕 때 왕의 호위 장교인 우다치(亐多赤, 于達赤)로 등용됐으며 공민왕과 태조 이성계에게 재능과 능력을 인정받았다. 요동 정벌과 위화도 회군 당시 지휘관 중 한 명이었으며 이성계의 뜻에 따라 위화도 회군 이후 우왕을 폐하고 최영 제거에 동참했다. 창왕 당시 왜구를 뿌리뽑기 위한 차원에서 대마도 정벌을 주도했으며 우왕의 아들인 창왕 역시 폐하고 공양왕을 옹립함으로써 공신의 지위에 올랐다. 충의백(忠義伯), 정국군(靖國君)에 오른 후 회군공신, 중흥공신에 책록됐다.
조선 개국의 혼란한 시기에 역모로 몰려 다행히 죽을 위기는 몇 번 넘겼으나, 결국 이홍무의 옥사를 넘지 못하고 파직됐다. 공신의 죄는 가볍게 여기는 면죄 조항 덕에 사면되고 서북면도순문사로 복직했으나 계속되는 탄핵에 시달렸다. 제1차 왕자의 난인 무인정사 당시 도제조 겸 친군위도진무로 도성 수비를 맡았는데, 숙직 도중 암살당했다.
2. 생애
공민왕 때 고려는 중국의 홍건적과 일본의 왜구들의 침입으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경상도 상주부사, 김해부사, 영흥부사, 진주목사, 계림부윤을 역임하고 합포수령을 3번 역임하는 등 수많은 왜구의 경상도 침입을 모두 이겼다. 부산 동래, 울산 신학, 김해 분성 등에 산성을 짓는 등 공역을 관리하는데도 탁월했다. 상주부사로 있을 때 홍건적의 침입으로 개경에서 몽진하는 공민왕을 안동까지 무사히 피난시키는 공을 세웠기도 하다. 상주 중모현 전투와 고령현 전투에서 왜적을 대파했고 김해부사로 재직 중이었을 때에는 황산강(낙동강)을 거슬러 밀양에 당도한 왜선 50척과 후속 부대들을 고려 군선 30척으로 전멸시키는 공을 세웠다. 정몽주의 <포은집>에 따르면 박위는 행정력이 탁월하여 피해지 복구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해내는 등 신망이 대단했다고 호평을 내렸다.백 번 싸워 백 번 이겨 적으로 하여금 방자하게 굴지 못하게 하였다, 지금도 사람들은 그를 지장(智將)이라 칭찬하고 있다.
- 《해동잡록 본조》1 박위(朴葳)
- 《해동잡록 본조》1 박위(朴葳)
조선 중기에 쓰여진 <해동잡록>으로 야사를 기록한 책이다. 이때까지도 박위의 이름이 유명했다는 뜻이다. 야사에는 과장이 있기 마련이지만 정사에도 패배는 기록되지 않다.
누차 진급하여 지문하부사에 이르렀다.네 번이나 수령을 지내고 세 번이나 남쪽 변방을 지켰는데 왜구는 그쳐지고 백성은 편안해져 성망과 치적이 대단하였다.
- 《해동잡록 지지(地志)》 박위(朴葳)
- 《해동잡록 지지(地志)》 박위(朴葳)
1388년(우왕 14년) 최영과 우왕의 요동 정벌 때 경상도 상원수(慶尙道上元帥)로서 출정했다. 좌군 도통사 조민수 밑으로 배속돼[3] 우군의 이성계[4]를 견제하는 역할도 있었지만 결국 무리한 진격 명령만 하달하는 최영에게 반기를 들고 이성계와 함께 위화도에서 회군했다. 곧바로 개경을 점령한 그들은 최영을 체포하고 우왕을 폐위시켰으며 이로 인해 박위 역시 회군 공신에 올랐다. 그러나 요동 정벌을 기획한 최영을 주살하고 우왕을 폐하는 것으로는 아직 북원과의 관계를 의심하는 명나라를 안심시키기에 부족하다고 느꼈던 고려의 신료들은 생각을 쥐어 짜냈다. 그들은 일본으로 군을 보냄으로써 만주를 도모할 뜻이 없음을 명나라에 표시하고 관계 회복 시그널을 명나라에 보낼 필요를 느꼈다.
1389년(창왕 1년) 1월 군사 1만과 배 100척으로 대마도를 정벌해 왜구 소굴과 적선 300여 척을 불태우고 고려인 포로 100여 명을 구출하는 커다란 공을 세웠다. 조선 침략을 겁낸 류큐(오키나와)의 중산왕은 신하를 자청하고 특산물인 유황, 후추 등을 조공하기 시작해 그로부터 200년 넘게 조공을 지속했다. 당시 일본 주고쿠 지방과 규슈 지방을 제패했던 오우치씨, 쇼니씨 등 봉건 영주들이 저자세로 나오기도 했다. 1390년 5월 규슈 절도사가 고려에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쳤고 1391년 8월 고려인 남녀 포로 68명을 돌려 보냈다.
그러나 고려, 일본 양국 모두 경제적 빈곤층을 돌보지 못했기 때문에 왜구는 근절되지 못했고 결국 이들의 출몰은 계속됐지만 빈도는 줄었다.[5] <고려사 : 박위 열전>에서는 40년간의 왜구 침입에 대마도 정벌의 필요성은 이미 모두 알았지만 다들 실행하기를 꺼리고 방어에만 힘썼다고 기록돼 있다. 고려군은 사병에 많은 부분을 기대고 있었기 때문에 군을 움직이려면 권문세족들의 돈이 필요했고 이들에 대한 보상이 필요했다.
대마도는 땅이 좁고 물산이 적어 보상으로는 불충분했으며 수군을 이끌고 간다한들 주변 해역을 잘 아는 왜구들이나 어민들을 이기기는 어려웠다. 다분히 중앙 정부의 대외적 목적을 포함한 작전이었지만 조선 초인 1396년 김사형, 1419년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과 달리 1389년 정벌은 어디까지나 박위를 중심으로 그의 친인척들과 다른 신흥 무인들이 합세해 완수된 정벌이었다. 고려 말 다른 무인들과 차별점을 갖는 이유는 집안의 문벌을 기반으로 동시대 친척 문신들, 왜구와 실전 경험이 풍부한 경상도 지방 장수들, 경상도 유지들을 규합할 수 있었고 박위 스스로도 이성계와 접점이 적어 정몽주를 위시한 보수파들의 지지까지 얻을 수 있었다.
이후 흥국사 회담에서 창왕 폐위에 참여하여 공양왕을 즉위시킨 흥국사 9공신(이성계, 심덕부, 지용기, 정몽주, 설장수, 성석린, 조준, 박위, 정도전) 중 1명이 되면서 박위는 중앙 정계로 진출한다. 1390년(공양왕 2년) 김종연의 옥사(이성계 암살 모의 사건) 명단에 박위의 이름이 나왔다. 그는 옥에 갇혀 고문을 받고 관직과 공신직을 박탈당했으나 이성계가 적극적으로 사면시켜 관직은 물론 회군 공신직까지 돌려받았다.
기록에 의하면 조선 초기 경복궁은 지금과 달리 2층 건물이 많았고 궁성이 단순한 담장 울타리가 아니라 성곽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박위는 참찬문하부사 겸 도제조로서 광화문을 공사하고 경복궁 궁성 공사 총책임을 맡았다고 한다. "임금이 궁성(宮城)을 순시(巡視)하고 능하지 못한 감독관(監督官) 수십 인을 태형(笞刑)에 처하고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 박위(朴葳)로 도제조(都提調)를 삼아서 능하고 능하지 못한 것을 고찰하게 하였다."[6]
이후 실록에 의하면 박위는 점쟁이에게 이성계의 사주팔자가 어떠한가 물어보고 다른 왕씨들 중에 운명이 좋은 사람들이 있는가 물어보았다.[7] 이로 인한 역모 혐의로 신하들의 엄청난 탄핵을 받았으나 태조는 신하들을 만류하며 박위를 보호했다. 그러나 매일 같이 박위를 탄핵하는 상소가 올라와 결국 파직당했고 이 일이 불쏘시개가 되어 왕씨 학살의 피바람이 불게 된다. 조선이 창업된 이후 신진사대부 등 고려를 적극적으로 부정했던 세력들 사이에서는 왕씨들을 화근으로 인식하고 벼르고 있었던 차에 박위의 일이 자연스레 불쏘시개가 되었다. 박위는 실록에 확인되는 바에 따르면 총 9번 탄핵되었으나 그때마다 이성계는 탄핵하는 신하들을 꾸짖고 박위를 인재로 기용해 쓰겠다는 뜻을 확고히 하였다.
대간과 형조에서 함께 나아와서, "박위(朴葳)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하자, 옥에 갇힌 박위를 풀어주면서, "정무(政務)를 보기를 그전과 같이 하고 의혹(疑惑)하지 말라. 비록 천만인(千萬人)이 말하더라도 나는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태조실록 5권, 태조 3년 3월 1일
태조실록 5권, 태조 3년 3월 1일
간관이 참찬문하부사박위(朴葳)를 탄핵하므로, 임금이 장무(掌務)를 불러 꾸짖고, 박위에게 명하여 정사를 보게 하였다.
태조실록 5권, 태조 3년 3월 22일
태조실록 5권, 태조 3년 3월 22일
이후 관직에 복권되어 박위는 무인정사 때 정1품 도제조 겸 친군위도진무(궁궐 치안대장) 겸 오위도총부 총관(수도경비사령관)을 맡고 있었는데 전투의 유무와 전투의 양상에 대해서는 각종 매체끼리도 상충되며 실록 자체 내에서도 일관되지 못함이 많이 드러난다. 실록에서의 최후 묘사는 투항 이후 박위가 숙직실에 들어가 있었는데 이방원이 회유하기 위해 나오라고 하자 3번이나 불러도 한참이나 나오지 않고 매우 늦게 나왔는데 회안대군 이방간이 박위를 죽일 것을 건의해 그때 죽였다고 하기도 한다.
조온, 조영무, 이무 등 종친들 외에 군사 실무에 종사하던 인사 상당수가 이방원 측에 가담한 상황에서 유만수 등과 함께 반발하다 죽임을 당한 것.
3. 가족 관계
가족 관계는 할아버지 전법판서[8] 박천명이고, 아버지는 보문각[9] 대제학 박광후로, 문벌이 있는 집안이었다. 어머니는 찬성사 김영휘[10]의 딸이다. 외아들 박기는 조선 왕조에서 이조참판, 오위도총관을 지냈고 아버지 사후 밀양으로 낙향해 변계량과 후학을 양성한다. 박위의 동생으로는 박천, 박번이 있고 박천은 영의정[11] 을 지냈고 구산 박씨로 분파했으며 박번은 사헌부 지평을 지냈다.4. 기타
- 대단한 명문가였는데, 아버지와 외할아버지 모두 2품 이상의 관직에 있었으며 그의 친인척들 중 많은 이들이 문무 양면에서 고루 활약했다.[12] 신흥 무인 중에서도 꽤 많이 보이는데 이들은 많은 사람들이 알 정도로 유명하지는 않지만 모두 사병을 적지 않게 가지고 있어 박위가 대마도를 정벌할 때도 합세하였다. 다만, 박위가 당시 박씨들의 당주라 하기 어려운 것은 이미 고려 때 박씨는 밀양 박씨만 하더라도 대종이라 구성원이 너무 많았으며 각자 의견이 하나로 일치되지 않았다. 조선 왕조에 적극적으로 충성한 규정공파 계열 안에서도 관직에 출사한 사람, 또는 이성계의 제의에도 거절하고 은거한 사람, 중도파 등이 나뉘었다. 이는 경제, 군사 기반 또한 분할되어 나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박위는 고려 때나 조선 때나 항상 신하로서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대세를 따라갈 뿐 중앙 정계에서 파벌을 주도하거나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모습은 전혀 안 보인다. 이인임, 최영, 정몽주, 이성계, 정도전, 이방원 등 중앙 정계의 굵직한 인물들과 충분히 깊게 결탁할 수 있었지만 다른 인물들에 비해 그러한 행보는 많이 보이지는 않고 중앙 권력의 늘 한 발 뒤에서 겉돌았다. 그러한 연유로 <조선왕조실록>과 세간에서 기회주의자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박위가 점을 쳐서 왕씨 반란 가입 여부를 결정하려고 했다는 것은 이런 입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다만 태생이 무장 출신이며 평생을 군인으로 살았던 사람이라 중앙정계에 깊이 관여하기는 어려운 면도 있었을 것이다. 오히려 기회주의자라면 상황을 관망하다가 승자에게 붙거나 하지, 왕위를 놓고 점을 치는 것 같은 위험천만한 일은 하지 않는다. 차라리 정치적 감각이 부족한 무장으로서의 일면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정치적 격변기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 점이라도 쳤다고 보아야 더 적절하리라.
- 1822년(순조 22년) 후손인 박성기의 주청으로 밀양 사림들의 공론을 모아 경상도 밀양도호부[13]에 신남 서원을 창건해 박위, 박기 부자를 모셨다. 1868년(고종 5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에 따라 사당은 철거되었으나 강당은 경보당(景報堂)으로 이름을 바꾸어 재실(齋室)로 삼고 박위, 박기 부자의 제사를 계속 모셨다. 1981년 후손들의 발의와 고을 유림들의 호응으로 서원을 1868년 철폐 전의 상태로 복원해 상모사(尙慕祠)를 그 전대로 중건해 박위, 박기 부자의 제사를 매년 모신다.
5. 대중매체
- 1983년 KBS 드라마 <개국>에서는 배우 미상이다.
- 1996년 KBS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는 배우 박건식[15]이 연기했다. 고려 말기는 금방 지나가고 조선 개국 이후부터 제대로 다루기 시작하는 드라마의 특성상 대마도 정벌은 전혀 언급이 없고 위화도 회군에 참여한 모습도 부각되지 않으나 점을 잘못 쳤다가 곤욕을 치르는 장면은 제대로 묘사되어 있다. 이때 이성계가 "박위는 과인이 잘 안다. 그만한 인재는 쉽게 얻을 수 없다"라고 변호하는데 <조선왕조실록>에 있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만한 인재라는 평을 들을만한 묘사가 그때까지 전혀 없었다는 게 문제. 최후에 대해서는 정도전의 일파로서 1차 왕자의 난 당시 대궐을 숙위했으나 이방원을 지지하는 세력이 삼군부를 이미 장악한 뒤라 중과부적으로 패해 참수되는 것으로 그려졌다.[16] 그래도 마지막은 이방원에게 "이제 원하던 옥좌를 손에 넣으시겠소이다. 어서 죽이시오!"라며 당당하게 쏘아붙이고 죽임을 당하는 나름 비장한 퇴장으로 묘사되었다.
- 2015년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등장하지는 않고 1차 왕자의 난이 종료되고 언급만 된다. 이방원 일파의 습격에서 궁궐을 지키다가 이방간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된다.
- 2021년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에서는 배우 이우석[17]이 연기했다. 창왕 때 대마도 정벌을 지휘했으며 이성계와 더불어 공양왕을 옹립한 흥국사 9공신 중 1명. 역사대로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전사하는데 문관 출신인 이숙번과 싸우다가 그의 칼에 목이 베여 최후를 맞는다.
[1] 밀성 박씨 정국군파의 파시조이다. 흔히 밀양 박씨라고 하지만 중시조 신라 53대 경명왕의 장자 박언침이 밀성대군으로 봉해진 당시 밀양의 지명 밀성에서 따 밀성 박씨라고 한다. 정국군파의 정식 족보 명칭도 <밀성 박씨 정국군파보>이다. 정국군파 이외에도 밀성 박씨라고 기록 된 사례를 <충헌공파 밀성 박씨 충헌공파보>에서 볼 수 있다.[2] 박혁거세 44세손, 밀성대군 박언침의 15세손[3] 요동 정벌 당시 좌군 소속: 도통사 조민수, 서경도원수 심덕부, 양광도원수 왕안덕, 경상도 상원수 박위, 조전원수(백업) 최공철 등[4] 요동 정벌 우군 소속: 도통사 이성계, 안주도원수 정지, 안주도 상원수 지용기, 조전원수(백업) 배극렴 등[5] 정도전 등에서도 고려인 출신 왜구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고려를 싫어한 산적들이나 도적들, 농민 봉기를 모두 왜구라 칭했을 가능성이 높고 이들과 일본에서 온 왜구들이 합세했을 가능성도 높다.[6] 태조실록 13권, 태조 7년 2월 6일 계미 1번째 기사 1398년 명 홍무(洪武) 31년[7]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대통령의 사주팔자부터 시작해서 관상풀이까지 신문, 블로그, 카페에 버젓이 올라와 풀이되는 등 별거 아닌 문제지만, 조선 시대 관점으로는 당연히 역모 예비 음모가 된다.[8] 지금의 법무부장관.[9] 고려 시대 왕의 경연과 궁내 도서관을 관장하는 부서. 성균관과 함께 고려 시대 유교 기관이었다.[10] 김영휘는 삼별초를 토벌한 김방경의 손자로, 안동 김씨(= 구(舊) 안동 김씨)다. 당시 김영휘의 집안은 친원파였다.[11] 상신록에는 나오지 않는다. 밀양 박씨로 조선 왕조에 정승은 광해군의 장인으로 영의정을 지낸 박승종 한 명뿐이다.[12] 박위 이전까지는 문관 출신이 다수였고 박위부터 조선 왕조에서 무관이 다수 나왔다. 박위의 후손 중 병마절도사가 여럿 있다.[13]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14] 대한민국 해군의 잠수함의 함명은 주로 일본과의 전쟁, 항일 독립투쟁에서 공로를 세운 인물들의 이름을 붙인다.[15] 1989년 KBS 드라마 <무풍지대>에서는 시라소니 역.[16] 사실 제대로 싸우기도 전에 팔에 화살을 맞고 이를 본 병사들이 도망치자 본인도 허겁지겁 도망치다 포위당해 죽는 모습만 나오기 때문에 멋지게 싸우다 죽는 모습은 없다.[17] 본명은 이영범. 1996년 KBS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는 이직 역, 2012년 KBS 드라마 <대왕의 꿈>에서는 을제 역, 2015년 KBS 드라마 <징비록>에서는 김수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