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fedc89,#670000><colcolor=#670000,#fedc89> 고려사(高麗史)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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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 혜종 · 정종定宗 · 광종 · 경종 | 성종 · 목종 | 현종 · 덕종 | ||||
<rowcolor=#670000,#fedc89> 6권 | 7·8·9권 | 10권 | ||||
정종靖宗 | 문종 · 순종 | 선종 · 헌종 | ||||
<rowcolor=#670000,#fedc89> 11·12·13·14권 | 15·16·17·18·19·20권 | 21권 | ||||
숙종 · 예종 | 인종 · 의종 · 명종 | 신종 · 희종 · 강종 | ||||
<rowcolor=#670000,#fedc89> 22·23·24권 | 25·26·27권 | 28·29·30·31·32권 | ||||
고종 | 원종 | 충렬왕 | ||||
<rowcolor=#670000,#fedc89> 33·34·35권 | 36권 | 37권 | ||||
충선왕 · 충숙왕 | 충혜왕 | 충목왕 · 충정왕 | ||||
<rowcolor=#670000,#fedc89> 38·39·40·41·42·43·44권 | 133·134·135·136·137권열전 | 45·46권 | ||||
공민왕 | 우왕 · 창왕 | 공양왕 | ||||
<colbgcolor=#fedc89,#670000><colcolor=#670000,#fedc89> [ 지(志) ] | ||||||
47·48·49권 「천문(天文)」 / 50·51·52권 「역(曆)」 / 53·54·55권 「오행(五行)」 / 56·57·58권 「지리(地理)」 / 59·60·61·62·63·64·65·66·67·68·69권 「예(禮)」 / 70·71권 「악(樂)」 / 72권 「여복(輿服)」 / 73·74·75권 「선거(選擧)」 / 76·77권 「백관(百官)」 / 78·79·80권 「식화(食貨)」 / 81·82·83권 「병(兵)」 / 84·85권 「형법(刑法)」 | ||||||
[ 표(表)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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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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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권 | ||||||
서필 · 최승로 최제안 · 쌍기 · 최량 · 한언공 · 류방헌 · 김심언 · 최항 · 채충순 | ||||||
94권 | ||||||
서희 서눌 서공 · 유진 · 강감찬 · 최사위 · 황보유의 장연우 · 양규 (양대춘) · 지채문 지녹연 · 하공진 · 김은부 · 주저 · 강민첨 · 곽원 · 왕가도 · 김맹 · 류소 · 윤징고 · 위수여 · 전공지 · 이주헌 · 이주좌 · 안소광 · 조지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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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권 | ||||||
최사추 · 김인존 · 윤관 윤언순 (윤언식 윤언민 윤언이) 윤인첨 윤세유 윤상계 · 오연총 | ||||||
97권 | ||||||
김부일 김부의 · 고령신 · 김황원 이궤 · 곽상 곽여 · 유재 호종단 신안지 · 김경용 (김인규) · 최홍사 · 한안인 · 이영 · 한충 · 임개 유녹숭 · 김준 · 류인저 · 강증 · 허경 · 문관 · 정항 정서 · 김극검 · 김약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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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식 김돈중 김군수 · 정습명 · 고조기 · 김정순 · 정극영 · 박정유 · 최사전 · 김향 · 최자성 · 김진 · 임완 · 최기우 · 김수자 · 최유 · 이숙 이위 · 허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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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 · 이규보 이익배 · 유승단 · 김인경 김승무 · 이공로 · 이인로 오세재 조통 임춘 · 조문발 · 이순목 이수 · 김창 · 송국첨 · 최자 하천단 · 채송년 채정蔡楨 · 손변 · 권수평 · 이순효 장순량 · 송언기 · 김수강 · 김지대 · 이장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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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충 조변 · 김취려 김문연 김변 · 이적 · 채정蔡靖 · 박서 송문주 · 김경손 김혼 · 최춘명 · 김희제 · 이자성 · 김윤후 · 김응덕 | 김방경 김구용 김제안 김흔 김순 김영돈 김영후 김사형 박구 · 한희유 · 나유 나익희 · 원충갑 · 김주정 김심 김종연 김석견 | |||||
105권 | ||||||
류경 류승 류돈 류만수 · 허공 허종 허관 허금 허부 허유 · 홍자번 홍승서 홍영통 · 정가신 · 안향 안우기 안목 · 설공검 · 유천우 · 조인규 조서 조연 조덕유 조린 조연수 조위 | ||||||
106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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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한악 한수 한방신 · 원부 원충 원호 원선지 원송수 · 김련 · 김부윤 · 정인경 · 권단 권부 권준 권렴 권용 권적 (권고) 권화 권근 · 민지 민상정 | 민종유 민적 민사평 민변 민제 · 김지숙 김인연 · 정선 · 이혼 · 최성지 최문도 · 채홍철 · 김이 · 이인기 · 홍빈 · 조익청 · 배정지 · 손수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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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엄 · 김태현 김광재 · 김륜 김경직 김희조 김승구 · 왕후 왕중귀 · 한종유 · 이제현 이달존 이보림 · 이능간 | 염제신 · 이암 이강 · 홍언박 홍사우 류연 · 류탁 · 경복흥 · 김속명 · 이자송 · 조돈 조인옥 · 최재 · 송천봉 · 홍중선 · 김도 · 임박 · 문익점 | |||||
112권 | ||||||
이공수 · 류숙 류실 · 이인복 · 백문보 · 전녹생 · 이존오 · 이달충 · 설손 설장수 · 한복 · 이무방 · 정습인 · 하윤원 · 박상충 · 박의중 · 조운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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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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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권 「폐행1(嬖幸一)」 | ||||||
유행간 · 영의 · 김존중 · 정세신 · 백승현 · 강윤소 · 염승익 · 이분희 이습 · 권의 채모 이덕손 · 임정기 (민훤) · 주인원 · 이지저 고종수 김유 · 인후 인승단 · 장순룡 차신 노영 · 조윤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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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 윤길보 (송화) · 이정 김문비 이병 · 원경 · 박의 · 박경량 · 전영보 · 강윤충 · 배전 · 민환 · 윤석 · 손기 · 정방길 임중연 강융 · 신청 박청 · 왕삼석 양재 조신경 최노성 윤현 안규 · 최안도 이의풍 김지경 이인길 · 노영서 박양연 송명리 · 김흥경 · 반복해 · 신원필 | ||||||
125권 「간신1(姦臣一)」 | ||||||
문공인 · 박승중 · 최홍재 · 최유칭 · 박훤 · 송분 · 왕유소 · 송방영 · 오잠 석주 · 김원상 · 류청신 · 권한공 · 채하중 · 신예 전숙몽 · 이춘부 · 김원명 · 김횡 · 지윤 | ||||||
126권 「간신2(姦臣二)」 | ||||||
이인임 · 임견미 · 염흥방 · 조민수 · 변안열 · 왕안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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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돈 | ||||||
133·134·135·136·137권 | ||||||
신우(우왕) (신창(창왕)) | }}}}}}}}}}}} |
伊昕巖
(? ~ 9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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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태봉의 장군[1]이자 고려 초기에 의문의 사건으로 숙청된 인물.2. 생애
마군대장군(馬軍大將軍) 이흔암(伊昕巖)을 참수하여 저자에 내다 버렸다[棄市]. 이흔암은 궁술(弓術)과 기마술(騎馬術)이 전문이었는데[業], 이득이 되는 일을 보면 재빨리 취하였다. 궁예(弓裔)를 섬겨 술책으로써 임용되었다. 궁예 말년에 이르러서는 웅주(熊州)를 습격하여 빼앗은 후 그곳을 지키고 있었는데, 왕이 즉위하였다는 소식을 듣자 남몰래 해치려는 마음을 품고서 부르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이르니, 사졸(士卒)들이 많이들 도망가 버려서 웅주는 다시 백제의 소유가 되었다. 수의형대령(守義刑臺令) 염장(閻萇)이 이흔암과 이웃에 살고 있다가 그 음모를 알고는 상세히 아뢰었다. 왕이 말하기를, “이흔암은 지키던 곳을 버리고 스스로 찾아옴으로써 변방의 영역을 상실하게 하였으니, 그 죄가 진실로 용서하기 어렵다. 그러나 나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며 주군을 섬기면서 평소에 정분이 있었으므로 차마 목을 벨 수가 없다. 또한 그 반역의 움직임이 아직 드러나지도 않았으니, 그도 필시 할 말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염장이 밀령(密令)을 내려 그를 감시할 것을 청하자 왕이 나인(內人)을 보내어 염장의 집에 가서 장막 속에서 몰래 엿보게 하였다. 이흔암의 부인 환씨(桓氏)가 뒷간에 와서 아무도 없는 줄 알고 오줌을 눈 후에 길게 한숨을 쉬며 말하기를, “우리 남편의 일이 만약 잘 되지 않으면, 나도 화를 입겠구나.”라고 하였다. 말을 마치고 들어갔다. 나인이 보고를 아뢰자 마침내 이흔암을 옥에 가두니, 모두 자복하였다. 백관들에게 그의 죄를 논의할 것을 명령하자 모두들 말하기를, “마땅히 목을 베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직접 꾸짖으며 말하기를, “너는 평소에 흉악한 마음을 길러 스스로 죽을 죄에 빠지게 된 것이다. 법은 천하의 공정한 것이니, 사사로운 감정으로 어지럽힐 수는 없다.”라고 하였다. 이흔암은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저자에서 참수하고 그 집안을 적몰(籍沒)하였으나, 그의 당여(黨與)들에게는 죄를 묻지 않았다.
- 고려사절요 권1 (태조신성대왕 태조1년 6월 미상일 기사) 국사편찬위원회 - 고려시대 사료
궁술, 기마술을 일삼았을 뿐 재주와 식견은 없었고 이득만 챙기는 기회주의자였다고 하며[2] 처음에는 궁예를 섬기다가 기회를 보아 계책을 내어 벼슬을 얻었다. 궁예가 쫓겨나기 전에는 웅주를 습격해 점령하면서 그 곳을 수비했다. - 고려사절요 권1 (태조신성대왕 태조1년 6월 미상일 기사) 국사편찬위원회 - 고려시대 사료
그가 역임한 마군대장군은 해군대장군 왕건과 함께 궁예 시대에 단 2명만 확인되는 대장군직이다. 궁예는 생전에 이흔암과 왕건, 두 대장군으로 하여금 북과 남으로 견훤을 압박해 판도에서 시종 우위를 점했으니 열전의 폄하와는 달리 오랫동안 능력과 충성을 인정받아온 태봉 육군의 필두라 봐야 한다.
웅주의 호족 홍기가 궁예에게 투항한게 904년이었고 투항 과정에서 이흔암의 역할이 지대한 것으로 보이며 이 때부터 이흔암이 14년간 웅주를 다스렸던 것으로 보인다. 이흔암이 웅주와 운주 일대를 장악함으로써 후백제는 완산주가 노출된 형세를 맞이한 데다 나주의 왕건에게 앞뒤로 견제당해 후백제는 태봉이 존속하던 시점에는 적극적으로 동쪽(신라)으로 뻗어나가지를 못했다.
왕건이 즉위했다는 소식을 듣고 웅주를 떠나 철원으로 갔는데[3] 한찬이자 수의형대령인 염상이 그가 흑심이 있다고 여겨 왕건에게 알렸지만 모반의 증거가 뚜렷하지 않다는 이유로 처벌하지 않았다. 염상이 이흔암을 감시할 것을 건의하자 사람을 보내 몰래 엿보게 했는데 이흔암의 처 환씨가 변소에서 나오며 남편의 일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나도 화를 입겠다고 탄식하는 장면이 목격되었다.
결국 전말을 보고받은 왕건의 명으로 하옥되었다가 역모를 자백하게 되었으며 거리에서 참수되고 가산은 몰수되었다. 그런데 모반의 증거가 이흔암의 처 환씨가 "남편 일이 잘 되어야 할텐데."라고 혼잣말한 것 뿐인데 감옥에 가두고 자백을 받았기 때문에 이흔암의 역모는 조작된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거기다 왕건은 마지막으로 이흔암과 면대하여 구체적인 역모 이야기보다는 "니가 평상시 하던 꼬라지가 너를 이렇게 만들었지"라는 식으로 꾸짖기도 하였다. 이흔암이 구체적으로 역모를 꾸몄다기보다는 궁예나 환선길과 가까웠던 처지라 정치적으로 숙청당했을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최전방 요충지인 웅주의 수비를 아무한테나 맡길 일이 없으니 궁예의 신임이 두터웠고 무력도 뛰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고려사 이흔암 열전에는 이흔암이 웅주를 떠나는 바람에 사졸들이 달아나 웅주가 후백제로 넘어갔다고 나오지만 세가에는 이흔암이 처형된게 6월이고 웅주, 운주 등 10여 개 주현이 후백제에 넘어간게 8월이다. 때문에 고려가 웅주와 운주를 상실한 원인은 이곳을 다스리던 이흔암을 증거도 없이 처형하는 바람에 웅주와 운주를 다스리던 책임자가 하루 아침에 사라짐과 동시에 호족들이 이런 처사에 불만을 품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이흔암이 14년간 웅주를 다스린만큼 웅주에서의 영향력과 지지도가 높았던 것으로 보이기에 이흔암의 죽음으로 인한 파장은 클 수밖에 없었다. 이는 뒤이은 매곡성주 공직의 후백제 투항과 더불어 고려 태조가 섣불리 정적들을 숙청하면서 생긴 부작용으로 후백제와의 접경 최전방인 웅주, 운주, 매곡을 상실하는 바람에 고려가 후백제에 밀리는 원인이 된다.[4]
3. 대중매체에서
자세한 내용은 이흔암(태조 왕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1] 태조 왕건에게 반역자로 몰려 처형될 당시 직책이 마군대장군(태조세가).[2] 반역 열전에 오른 인물인만큼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표현을 쓴거라 감안하여 이를 돌려 말하면 이흔암은 장수로서의 재능은 있으나 정치적 식견은 없는 우직한 무장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왕건의 정변 이후에 자기 무력 기반이자 왕건과 협상이 가능한 기반이기도 했던 웅주를 스스로 내놓고 무방비 상태로 철원에 왔다가 화를 자초한 원인이 된다.[3] 한마디로 이는 이흔암이 자신의 군사력을 포기하고 무방비 상태로 왕건에게 가서 왕건에게 대항할 뜻이 없음을 밝힌 것이나 마찬가지.[4] 반대로 후백제는 고려와의 접경인 차령산맥에 위치한 주현을 거의 석권하고 서쪽 접경을 탄탄하게 굳혀 완산주를 보호하는 등 공방에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여 동쪽의 대야성, 상주, 죽령 쪽으로 군사력을 집중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