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개국공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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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00d45,#94153e><colcolor=#f0ad73> 조선 개국공신 동원군(東原君) 정평공(定平公) 함부림 咸傅霖 | |
출생 | 1360년(공민왕 8) |
사망 | 1410년(태종 10) |
봉호 | 동원군(東原君) |
시호 | 정평(定平) |
본관 | 강릉 함씨 |
자 | 윤물(潤物) |
호 | 난계(蘭溪)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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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의 개국공신, 여말선초의 문신.2. 생애
1360년(공민왕 8) 강릉에서 함승경(咸承慶)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385년(우왕 11)에는 문과에 급제해 좌정언과 형조정랑을 지냈다. 1392년(공양왕 4)에는 이성계가 실권을 잡자 병조정랑 겸 도평의사사경력사도사에 복직되고, 조선 개국공신 3등에 책록되어 개성소윤에 임명됐다. 이후 8도의 관찰사 등 여러 관직을 거쳐 1404년(태종 4)에 대사헌에 임명되고, 1408년(태종 8)에는 형조판서에 임명되었다. 2년 뒤인 1410년(태종 10) 사망했다.3. 가족 관계
- 아버지 함승경(咸承慶)은 고려 개국공신 함규의 12세손이다.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에 올랐으며, 고려조에 보문각 제학·검교중추원학사 등을 역임. 조선조에서는 집현전대제학을 역임했다.
- 첫번째 부인은 보문각제학 조인재의 딸 한양 조씨이고, 두번째 부인은 연성군 이명조[1]의 딸 연안 이씨이다. 측실은 차원석의 딸 연안 차씨이다.
- 자녀로는 장남 함우공과 차남 함우치가 있다. 차남 함우치는 아버지가 역임한 관직들을 거쳤는데, 형조판서, 대사헌, 충청·전라·경상·함길도 등 4도 관찰사, 개성유수의 직을 역임했다.
4. 여담
- 조선의 8도 관찰사를 모두 역임한 유이(有二)한 인물이다.[2] 또 다른 한 사람은 반석평[3]이다.
- 홍길동전의 저자이자, 광해군 조정의 권신으로 유명했던 허균은 학산초담이라는 논문에서 강릉[4]의 위인을 소개하면서 첫번째로 함부림을 언급했다. 허균은 함부림 이외에 강릉의 명신 최치운[5]과 최응현, 김시습, 이이 등을 언급했다.
- 예조판서를 지낸 용재 성현(成俔)이 지은 용재총화에는 함부림과 전주기생 막동의 이야기가 실려있다.[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