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2-04 17:22:26

건국

1. 개요2. 예시
2.1. 한국사
2.1.1. 한국사 관련 논해볼 점
2.2. 세계사
3. 관련 문서

1. 개요

건국(建國)이란 단어의 뜻은 "나라를 세우다." 이다. 유의어로 같은 뜻을 지닌 개국(開國)이란 단어와 건극(建極)이라는 단어가 있으며 딱히 구분 없이 쓰인다. 건국은 기반이 되는 구((舊)국가 혹은 구체제가 없이 기초부터 새로 만드는 나라를 뜻[1]하고, 똑같이 나라를 세운다는 뜻을 지닌 개국은 구 국가로부터 확실한 역사적, 시간적, 정통적 연속성을 가지고 이어서 나간다.는 뜻도 함께 내포되어 있다.[2]

영토에 확실한 주인이 없던 고대에는 조그만 부족국가도 건국으로 쳐 주었지만 21세기초소형국민체는 국가로 쳐주지 않는다. 대항해시대식민지시대를 기점으로 남극을 제외하면 주인이 없는 영토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주몽의 건국신화처럼 일정한 집단을 이룬 탐험가개척자들이 주인 없는 영토에 새로운 나라를 새우는 경우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되었으며, 강대국의 침략에 따라 괴뢰국이 설립되거나[3], 소수민족의 무장독립이나[4], 기존 국가에 대한 혁명 내전[5] 등으로 건국되는 수밖에 없다.[6]

보통 전근대의 아시아 국가들, 특히 동아시아 왕국들은 국가국성을 일치시키는 경우가 많아 역성혁명 등으로 국성이 갈리면 새로운 나라를 건국한 것으로 쳤기 때문에 기존의 국호국체를 부정하고 새로운 국호로 나라를 건국한 경우가 많아서 새 왕조마다 새 국가를 건국한 것[7]으로 쳤지만 유럽의 국가들은 보통 사람보다는 지역에 더 중점을 두어서 같은 민족성과 문화를 계승한다면 국성이 갈린다고 해도 나라의 이름은 잘 바꾸지 않았다.[8] 때문에 서양 국가들에게 건국은 자신들 민족의 최초의 민족국가가 개창된 시점이 곧 건국의 시점인 사례가 많다.

2. 예시

2.1. 한국사

2.1.1. 한국사 관련 논해볼 점

한편 국민, 영토, 주권이 국가 3요소로 보통은 간주되는 기준으로 보면, 왕조를 곧 국가와 동일시한 동양의 왕조적 사관을 오늘날까지 고수하는 건 자체로 크게 문제가 있다고 볼 여지가 다분하다. 이를테면 신라-고려 관계와 고려-조선-대한제국 관계가 크게 다르다는 자명한 사실이 여전히 한국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건 큰 문제다. 고려는 신라에게서 전혀 어떤 왕조의 정당성과 명분을 넘겨받은 게 없이 668년도에 망한 그 고(구)려를 다시 세운 국가로서 901년에 부흥한 정통을 내세웠고, 935년도에 신라를 귀부시킨 건 삼한일통의 주체가 이제 신라가 아닌 고려가 되었다는 명명백백한 사실의 재확인이었을 뿐[11] 왕조나 정권 교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신라가 굳이 고려의 왕건을 비하하려면 비난점은 찬탈자로서가 아닌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어긴 외국 군주에 대한 항의였을 뿐이었고, 때문에 신라부흥의 대의를 부르짖는 마의태자마저 왕건에게 찬탈자 운운을 할 수가 없었다. 왕건이 굳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왕건 덕택으로 국체와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경순왕과 마의태자가 아예 왕건에게 어떤 논리로든 찬탈자 운운할 상황이 아니었던 게 이유다. 그러나 이성계는 어디까지나 고려 왕조의 장군으로서 왕씨도 아닌데 고려 왕이 되었고, 이후 고려 왕으로서 국호를 조선으로 바꾼 것으며 이성계가 거느린 이른바 이성계 캠프의 인원은 대부분이 기존 고려 정부의 구성원이었다. 즉 조선 '개국'이란 건 굳이 말하면 901년도에 건국된 그 나라가 왕조와 정권이 바뀐 것에 불과했다.

이와 같은 상황은 고려-마진-태봉-고려에서도 드러난다. 태봉은 애초에 901년도에 고려로 건국할 당시에는 어디까지나 고(구)려가 새로 부흥한 나라였을 뿐 궁예 개인의 개인적 야망을 위한 나라가 아니었는데, 궁예가 자기 멋대로 청주 백제계 호족을 친위 세력으로 끌여들인 다음 907도에 국호를 자의적으로 마진으로 바꿔 패서 호족과 한 약속과 기대를 정면으로 배신했다. 이에 더해 914년도에 태봉으로 또 국호를 바꾼 짓은 그야말로 패서 호족의 암묵적 항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자 국호 교체란 중대한 정치적 행위 자체를 매우 우습게 만드는 희극이 아닐 수 없었다. 이는 원로원의 반발을 인식하자 로마시의 정식 명칭을 콜로니아 콤모디아나로 바꾼 로마 제국 암군 콤모두스의 행태와 매우 결이 같은 것으로서, 여기에 강비 살해라는 만행까지 더해지자 더는 도저히 모욕감과 노여움을 참을 수 없었던 패서 호족이 그후 4년만에 왕건을 앞세워 쿠데타를 일으켜 궁예를 몰아내고, 패서 호족의 진정한 대표 왕건이 일단은 태봉의 새 국왕으로 즉위한 다음 곧바로 901년도의 국호 고려로 국호를 되돌린 게 이른바 918년 고려 '건국'이라는 사건의 진상이었다. 왕건이 국민을 새로 모은 것도 아니고 영토나 주권을 새로 확립한 게 아니라, 말하자면 정권만 교체한 것이었다.
그러하니 현대 한국의 역사적 뿌리는 신라가 아닌 고려가 삼한일통의 주체가 되어 통합한 사건이 더욱 결정적인 것이지, 신라의 삼국통일에 있는 게 아니게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이해 없이 왕조 교체 자체를 국가 교체로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고씨 고구려는 중세 고려와 아무 상관이 없게 되고 신라만 현대 한국과 관련이 있게 되지만, 이와 같은 주장은 당대 누구도 한 적 없고 최근 와서야 동북공정론자나 역사적 사실을 잘 모르는 일각에서만 하는 얘기인 것이다.

2.2. 세계사

3. 관련 문서


[1] 미국은 개국했다가 아니라 건국했다고 표현한다. 민족적인 계승은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계승한 기존의 국가가 망한 지 시간이 좀 지났다거나, 나라가 확실하게 나뉘었다가 다시 통합되는 경우는 건국이라는 단어를 쓴다. 조선을 제외하고 한국사의 모든 전근대국가들을 개국했다가 아니라 건국했다고 표현하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조선은 개국기원을 쓰는 등 스스로도 개국이라는 단어를 썼다.[2] 한국의 건국을 1919년으로 봐야 하는지, 1948년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도 이러한 단어의 차이에서 나온다. 건국을 1919년으로 보는 사람은 1948년의 정부수립을 개국으로 보며, 대한민국대한민국 임시정부로부터 이어진다고 보는 것이고, 대한민국 건국을 1948년으로 보는 사람은 1919년부터 1945년까지 이어져 왔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로부터의 연속성을 부정하는 쪽이다. 이러한 뉘앙스 차이는 국가정통성 논란을 불러오기 때문에 한때 정치권에서 민감하게 다뤄진 바가 있다.[3] 만주국이 이런 경우다.[4] 티베트 왕국이 이렇게 독립했지만 망했다. 이스라엘도 소수 이주민이 일으킨 전쟁으로 건국되었다.[5] 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러시아 내전에 의한 소련의 건국과 국공내전에 의한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이 있다. 둘 다 기존 정부와 체제를 부정했기 때문에 확실히 건국이라고 할 수 있다.[6] 다만 고대에 세력을 건국하는 것은 신화에서 신의 권능에 준하는 수준으로 취급된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우두머리가 세력으로 만드는 것 자체가 굉장히 타고난 재능과 자질, 그리고 카리스마를 가지지 않는 이상 세력을 건국하는 것은 쉽지 않았던 것이 고대시대였다.[7] 한국사에서 예외적인 경우로 고조선이 있다.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을 역사적으로는 구분하지만 딱히 시기로는 잘 나누지 않는다.[8] 독일신성 로마 제국에서 독일 연방으로 독일 연방이 북독일 연방으로 북독일 연방이 독일 제국으로 독일 제국이 바이마르 공화국으로 바이마르 공화국이 나치 독일로 나치 독일이 독일 연방 공화국독일 민주 공화국으로 바뀐 것으로 보지만, 신성 로마 제국이 망하기 전부터 도이칠란드라는 개념은 계속 있었다.[9] 1919년 건국론[10] 1948년 건국론[11] 고려는 이미 931년도에 신라의 상국이 되어 삼한일통의 주체가 신라라는 관념은 이미 그 시기에 완전히 폐기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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