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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려의 시조
此身死了死了(차신사료사료) 一百番更死了(일백번갱사료)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1] 고쳐죽어
白骨爲塵土 (백골위진토) 魂魄有也無 (혼백유야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向主一片丹心(향주일편단심) 寧有改理與之(영유개리여지)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丹心歌 / 고려의 정몽주가 조선의 이방원이 부른 하여가에 대한 답가로서 불렀다는 시조.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1] 고쳐죽어
白骨爲塵土 (백골위진토) 魂魄有也無 (혼백유야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向主一片丹心(향주일편단심) 寧有改理與之(영유개리여지)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하여가로 정몽주를 회유하려던 이방원에게, 정몽주는 단심가를 통하여 거절 답서를 했다. 이에 이방원은 회유를 포기하고 부하 조영규를 시켜서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철퇴로 때려죽인다.
이런 배경이 있어서 그런지, 용의 눈물부터 여말선초를 다룬 사극에선 거의 필수적인 장면으로, 하여가와 거의 한 묶음으로 언급되며 한국인이라면 다른 시조는 몰라도 이 두 시조는 알고 있는 게 대부분이다.
참고로 일각에서는 이 단심가가 정몽주의 창작이 아니고 고구려로부터 내려오던 한 여인의 사랑을 읊은 시조를 정몽주가 읊었을 뿐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확실한 근거는 없다. 내용 자체는 확실히 사랑 노래로도 통할 만한 내용이긴 하다. 신채호 선생은 안장왕이 사모했다는 "한주"라는 여인이 옥중에 갇혀 있을 때 부른 노래라는 가설을 내놓기도 했다. 안장왕과 을밀 문서로. 시조에 사용된 '일편단심'이라는 어구가 처음 중국어 문헌에 등장한 시점은 북송 시대이므로, 원래 노래가 옛 고구려 노래였다 하더라도 언어는 변화하므로 정몽주가 그대로의 형태를 읊었을 가능성은 낮다.
또한, 이 시가 지어진 시점은 약간 논쟁의 여지가 있는데 정몽주가 죽기 직전에 지었다는 설이 가장 널리 퍼져있지만 원주 변씨 가문의 세보에 의하면 실제로는 위화도 회군이 있고 얼마 안되어 지어졌다는 기록이 있다.[2]
중세 국어에서 '고텨'나 '고쳐'는 현대 국어의 '다시'라는 의미를 가지므로, 죽고 또 죽더라도 그 뜻을 지키겠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3]
KBS 대하사극 정도전에서는 이 시조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극본을 구성했는데, 자세한 것은 정몽주(정도전) 문서로. SBS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직접 시조를 읊는 장면을 넣는 대신 이방원과 정몽주가 하여가와 단심가의 내용을 풀어서 대사를 구성하는 것으로 갈음했다. 태종 이방원에서는 대낮에 정몽주를 기습적으로 때려 죽여 하여가와 단심가, 두 시조가 모두 등장하지 않는다.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에서 1막 넘버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