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3764><colcolor=#fff> 박인로朴仁老 | |
성명 | 박인로(朴仁老) |
출생 | 1561년 |
경상도 영천군 (현 경상북도 영천시) | |
사망 | 1642년 |
본관 | 밀양 박씨 |
직업 | 무관, 문인 |
자 | 덕옹(德翁) |
호 | 노계(蘆溪), 무하옹(無何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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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중기의 무관 출신 문인이다.2. 생애
1561년 경상도 영천군(현 경상북도 영천시)에서 아버지 승의부위(承義副尉) 별시위(別侍衛) 박석(朴碩)과 어머니 웅천 주씨(熊川 朱氏)[1] 사이에서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 부터 시를 짓는 재주가 뛰어났기에 문인으로서 여러 업적을 남겼다.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으로 참전하였고, 정유재란 중이던 1598년(선조 31) 경상좌도(慶尙左道) 병마절도사 성윤문(成允文)의 휘하에서 수군으로 종군하여 여러 차례 공을 세워 수문장에 임명되기도 했다.
종전 이후 치러진 1599년(선조 32) 정시(庭試) 무과에 응시하여 병과 110위로 급제한 뒤 선전관(宣傳官)에 임명되었다. 이후 경상도 거제현 거제도 끝에 있던 조라포(助羅浦)[2] 수군만호(水軍萬戶)에 부임하였으나 1612년(광해군 4) 군기(軍器)를 수리하지 않았다고 비변사에서 죄가 논의되었고, 결국 파직되었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