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의 영화에 대한 내용은 쌍화점(영화) 문서
참고하십시오.월금으로 연주한 쌍화점 |
1. 개요
雙花店고려가요 중 하나.
기본적으로 작자 미상이나, 《고려사》 충렬왕 25년(1299년) 5월 기록에 '남장(男粧)에게 가르친 새로운 노래'라면서 삼장(三藏)이라는 한역시로 2절이 나온 것이 쌍화점과 내용이 같다.[1] 이 때문에 삼장을 지었다는 오잠(吳潛)의 창작물로 보는 설, 당시 원나라 풍속에 익숙했던 충렬왕의 취향에 맞춰서 연극 형태로 만들어진 각본의 일부라는 설, 원래는 고려 속요로 민간에 돌았던 것이고 오잠은 채록한 다음에 이를 약간 편곡만 했을 뿐이라는 설로 나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쌍화점 문서는 마지막 설을 취하고 있다. #
《대악후보》와 《시용향악보》에 악보가 남아 있기 때문에 선율은 어느 정도 복원해서 연주할 수 있으며 복원도 되어 있지만, 고려가요 원곡은 시조창에 가까울 정도로 무척 느려서 현대인 취향에는 안 맞는지라 원곡을 재현해 연주한 음원은 매우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 영화 쌍화점 OST에 실린 창작국악 버전만 뜨는 경우가 많다. # 음원 사이트에 검색하면 복원본이 가끔 뜨기도 한다. #
'쌍화점'은 고려 시대 당시 쌍화를 팔던 가게를 가리키는 낱말이다. 만두의 모양이 쌍화(인동초)로 보여 쌍화라고 불렀다고 한다. 쌍화가 무엇인지는 해당 항목 참고.
2. 전문
원문 | 현대어역 |
雙솽花화店뎜에 雙솽花화 사라 가고신ᄃᆡᆫ 回휘回휘 아비 내 손모글 주여이다 이 말ᄉᆞᆷ미 이 店뎜 밧긔 나명 들명 다로러거디러 죠고맛감 삿기 광대 네 마리라 호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자리예 나도 자라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잔 ᄃᆡ가티 더ᇝ거츠니 업다 三삼藏장寺ᄉᆞ애 블 혀라 가고신ᄃᆡᆫ 그 뎔 社샤主쥬ㅣ 내 손모글 주여이다 이 말ᄉᆞ미 이 뎔 밧긔 나명 들명 다로러거디러 죠고맛간 삿기上샹座좌ㅣ 네 마리라 호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자리예 나도 자라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잔 ᄃᆡᄀᆞ티 더ᇝ거츠니 업다 드레 우므레 므를 길라 가고신ᄃᆡᆫ 우믓 龍룡이 내 손모글 주여이다 이 말ᄉᆞ미 이 우물 밧ᄭᅴ 나명 들명 다로러거디러 죠고맛간 드레바가 네 마리라 호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자리예 나도 자라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잔 ᄃᆡᄀᆞ티 더ᇝ거츠니 업다 숨 ᄑᆞᆯ 지븨 수를 사라 가고신ᄃᆡᆫ 그 짓 아비 내 손모글 주여이다 이 말ᄉᆞ미 이 집 밧ᄭᅴ 나명 들명 다로러거디러 죠고맛간 싀구바가 네 마리라 호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자리예 나도 자라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잔 ᄃᆡᄀᆞ티 더ᇝ거츠니 업다 | 쌍화점에 쌍화[2] 사러 갔더니만 회회인[3] 아비 내 손목을 쥐더이다 이 소문이 이 가게 밖에 나고들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새끼 광대 네 말이라 하리라[4]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5]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잔 데같이 뒤엉킨 곳이 없다[6] 삼장사에 불 켜러 갔더니만 그 절 사주 내 손목을 쥐더이다 이 소문이 이 절 밖에 나고들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새끼 상좌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잔 데같이 뒤엉킨 곳이 없다 두레 우물에 물을 길러 갔더니만 우물 용이 내 손목을 쥐더이다 이 소문이 이 우물 밖에 나고들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두레박아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잔 데같이 뒤엉킨 곳이 없다 술 파는 집에 술을 사러 갔더니만 그 집 아비 내 손목을 쥐더이다 이 소문이 이 집 밖에 나고들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시궁 바가지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잔 데같이 뒤엉킨 곳이 없다 |
전문 보기, 해석
〈쌍화〉에 대한 다른 해석을 다룬 기사, 아라비아 상인의 세공품
전문을 보면 알겠지만 이 노래는 고려 여인이 간 곳, 손목을 잡은 남자, 소문을 퍼뜨린 대상 셋만 바뀌면서 변주되는 노래이다. 이 여인은 1절에서 쌍화가게 서역인부터 시작해서 절의 스님, 술집 아저씨, 심지어 우물가에 갔다가 환상종인 용에게도 손목을 잡힌다. 이때 용은 왕족의 은유라는 설이 있다.
3. 당시 사회 배경 추측
고려 역사를 웬만큼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쌍화점〉을 통해 당시 사회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쌍화점은 국문학으로서의 작품성도 있지만 고려 후기의 사회상을 담고 있다는 가치도 있다. 그렇다고 쌍화점의 묘사를 당대 사회상의 객관적인 반영이라 생각하기는 힘들다. 풍자 문학은 사회의 단편을 투영할 수는 있어도 사료로서의 객관성은 떨어지는 편이다.- 2번째의 '삼장사의 주지'는 당시 타락한 불교를 상징한다. 고려는 국교가 불교였고 그에 따라 엄청난 수의 절들이 창건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불교가 여러 세월을 거치며 점점 타락하기 시작했고,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서는 절에서 술을 빚어 마시며 놀고 세금도 면제받으며 노비까지 하사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원래 고려 초기부터 불교의 권력이 막강하긴 했지만, 청렴의 상징인 불교도까지 타락했다는 가사의 내용은 고려 사회의 타락함을 더욱 부각한다. 참고로 삼장사는 개경에 실제로 있었던 절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 3번째의 '우물가의 용'은 당시 고려의 왕과 왕족을 뜻한다. 어째서 강이나 바다가 아니라 우물인지 의아할 수도 있으나, 작제건 전설에서 우물이 용궁으로 들어가는 입구로 묘사된 것을 보면 이상하지 않다.
- 종합하면 당시 성 관념에 대해 많이 개방적이었고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보기엔 문란하기 짝이 없었다는 뜻으로, 그들이 이러한 작품을 남녀상열지사로 묶고 비하할만 했다.
[1] 삼장사에 등불 켜러 갔더니만(三藏寺裏點燈去) / 사주가 내 손을 쥐더이다(有社主兮執吾手) / 만일 이 말이 절 밖으로 나간다면(倘此言兮出寺外) / 상좌여, 네 말이라 하리라(謂上座兮是汝語)[2] 쌍화는 통일신라부터 고려 시대까지 개성, 경주, 평양 등지에서 아랍인들과 위구르인들이 정착하여 팔던 빵 계통의 음식인데, 소고기를 비롯한 양고기와 돼지고기, 닭고기 등등 많은 종류의 고기를 사용하여 만들었다고 전해지지만 현재 구체적인 요리법은 전해지지 않는다. 만두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나 찐빵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술떡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으며 이슬람 문화권에서 넘어온 디저트의 일종인 바클라바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다.[3] 이슬람교를 믿는 색목인을 뜻한다.[4] 비밀스럽게 성관계를 했다는 뜻으로 만약 이 소문이 난다면 ○○ 네가 소문낸거다라고 말하는 것이다.[5] 앞의 화자와는 다른 화자로, 앞의 화자가 회회인 아비에게 손목을 잡히고 격렬하게 성관계를 했다는 소리를 하자 자신도 그곳에 끼고 싶어한다는 뜻이다. 2연과 3연에서도 대상만 바뀔 뿐이지 자신도 겪고 싶어한다는 심리는 동일하다.[6] 잠자리가 어지럽혀질 정도로 꽤나 격렬하고 난잡한 성교를 즐겼다는 소리다. 이는 2연, 3연에서도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