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28 23:06:55

고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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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전해지는 고려가요

1. 개요



고려시대에 창작된 시가로 주로 민중 사이에 널리 전해진 속요(俗謠)를 뜻하여, 고려속요라고도 불린다. 넓은 뜻으로는 고려시가(高麗詩歌), 모두를 포함하며 고려가사(高麗歌詞)등으로 부른다.

현재까지 전해지지 못한 많은 고려가요는 훗날 조선의 성리학자들에게 음란, 퇴폐가요로 낙인찍혀 소독당했다는 주장이 있으나 남녀간의 애정이야기를 뜻하는 남녀상열지사를 남녀간 성애를 가리키는 용어라고 오인한데서 비롯된 정말 단순한 주장으로 근거가 없다. 애초에 고려가요를 수록해 정리한 이들이 조선 성리학자들이다. 조선 후기 유학자가 지은 악학편고(樂學便考)에선 남녀상열지사로 지목받아 비난받았다는 만전춘을 고려가요가 아니라 조선시대 가요로 정리하고 있다. 신라 향가처럼 세월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실전된 것이다.

최근 학계에서는 고려가요를 단순히 속요가 아닌 고려 왕조의 궁중음악, 즉 악장(樂章)의 일부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전하는 고려가요 작품들은 대개 《악장가사(樂章歌詞)》 같은 궁중 속악가사집에 실린 곡으로, 실제로 고려 왕실에서 연주되었던 노래들이다. 조선이 세워지고 정도전 등이 주도해서 〈정동방곡〉, 〈납씨곡〉 같이 조선건국의 정당성을 표현한 악장[1]을 추가로 만들었지만, 고려가요를 없애지는 않았다. 실록 등에서 성종~중종 때까지 꾸준히 고려가요가 연주되고 있었고 이에 대한 논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나 조선시대에나 민간속요가 아니라 왕, 왕비, 대비 같은 궁중어른들이 모인 엄숙한 자리에서 연주되던 곡이었고 이는 남녀상열지사=음란한 이야기 =>그래서 조선시대에 탄압 이라는 단순한 사고에 대한 반박이 된다. 처음부터 남녀상열지사를 잘못 해석한 것으로 그런 의미였으면 고려시대에도 왕실 행사에서 쓰일수가 없다. 고려의 경우는 아마도 좀 경건하거나 대외적으로 중요한 의례에서는 송나라에서 들여온 악곡을 연주하고, 그렇지 않은 사적인 왕실 연회 같은 경우에는 고려의 속악을 연주했으리라 추측하기도 한다. 조선은 이두, (세종 이후)언문으로 수록되어 내려오던 고려가요를 성종대 이후 한문으로 고쳐서 다듬는 작업을 했다.

신라 시대의 향가는 가사도 향찰 혹은 이두로 되어 있어 복원이 제각각인데다 선율도 아예 실전된 경우가 많지만, 고려가요는 조선시대에 이미 정리, 교정 작업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곡들의 악보가 남아있으며 학자들의 연구도 상당히 진행되어 있어 이미 복원된 노래들이 많다. 그럼에도 일반에 잘 공개가 되지 않고 국어 시간에 가사만 가르치는 점이 이상할 따름인데, 리인액트먼트에 별 관심이 없거나 심지어 부정적이기까지 한 한국의 사회 분위기도 영향이 있을 수 있겠다.[2] 2008년 '고려가요 연주단'에서 발매한 음반 '고려가요'에서 현재까지 복원된 음원들을 들어볼 수 있다. 직접 들어보면 근현대에 채록된 민요들보다 전반적으로 호흡이 매우 길고 늘어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들어보면 시조창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3] 그래서인지 유튜브에 고려가요를 검색해 보면 현대에 창작되거나 좀 더 빠른 박자로 편곡된 노래들이 많아서 원곡을 들어보기가 쉽지 않다.

2. 전해지는 고려가요



[1] 태조 이성계의 군사적 업적이나 영웅적 면모를 찬양하는 내용이다.[2] 옛 악보의 박자체계가 현대 서양음악과 잘 맞아떨어지지 않아서 한동안 복원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점도 있다. 그나마 정간보는 보기가 한결 수월한 편이다.[3] 또한 판소리 등과는 달리 거칠지 않고 매우 맑고 고운 목소리로 부르는 것이 특징인데, 이 역시 당대 문헌을 고증한 것이다.[4] 역시 고려 예종이 지었다. 드라마 정도전에도 이 노래가 나온다.[5] 고려가요의 형식과는 차이가 꽤 있어서 고려가요로 보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논쟁도 자주 나온다.[6] 관동별곡, 한림별곡과 죽계별곡은 경기체가라고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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