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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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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 1936년 5월호

1. 개요2. 줄거리3. 등장인물4. 미디어 믹스
4.1. 모바일 게임
5. 기타

1. 개요

1936년 <조광> 5월호에 발표된 김유정단편소설. 사춘기 시골 소년과 소녀의 풋풋한 사랑을 그려낸 작품으로, 현대적 관점에서도 해학적 요소가 많고 구수한 강원도 사투리와 아름다운 순 한국어 단어를 사용한 김유정식의 작품이다.

황순원소나기와 함께 현대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단편문학 로맨스물이기도 하다. 다만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하는 <소나기>와 달리 <동백꽃>은 해학적인 내용이 주가 되며 새드 엔딩으로 끝나는 <소나기>와 달리 <동백꽃>은 새드 엔딩이 아니다.

2.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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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소설 전문을 읽을 수 있다.
고놈의 계집애가 요새로 들어서 왜 나를 못 먹겠다고 고렇게 아르릉거리는지 모른다.

소작농의 아들인 주인공[1]마름의 딸 점순이를 귀찮아한다. 점순이는 주인공에게 쓸데없이 시비를 걸거나 참견을 한다. 나흘 전에도 울타리를 엮는 주인공에게 "혼자만 일하냐", "일하기 좋냐", "한여름에 하지 벌써 울타리를 하냐"며 잔소리를 했다.
얘! 너 혼자만 일하니?
느 집엔 이거 없지? 너 봄 감자가 맛있단다.

점순이는 자기 딴엔 주인공을 생각해서 구운 감자를 주려고 하지만[2] 주인공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물론 사뭇 보기에도 거만한 말투로 가난한 주인공의 속을 긁은 탓이긴 하지만 "난 감자 안 먹는다. 너나 먹어라."라며 주인공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거절하자 점순이는 분하고 서운해서 홍당무처럼 새빨개진 채 눈물까지 흘리며 달아났다.

주인공은 화를 내는 점순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본래 부끄럼을 타는 애도 아니거니와 또한 분하다고 눈에 눈물을 보일 애도 아니다"라며 "분하면 차라리 나의 등어리를 바구니로 한번 후려패고 갈 애인데, 저러는 것을 보면 나를 잡아먹으려 기를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3]

이후 점순이는 주인공네 암탉을 때리게 되는데[4] 하필이면 그 은 주인공네 집이 기르는 씨암탉이었다. 나무하고 오던 주인공이 보고는 화를 내고 된통 욕을 하자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더욱 오기를 부려 닭을 더 때리는 대형사고를 친다.[5] 자신을 괴롭히는 게 지나치다고 생각한 주인공은 점순이에게 "망할 계집애년"이라고 소리치는데 이 말에 점순이는 주인공에게
"얘! 너 느 아버지가 고자[6]라지?"[7]

라고 주인공의 아버지를 욕하고 도망친다. 점순이는 이따금 쪼르르 와서 다시 주인공을 놀리고 도망치고 주인공은 그런 점순이를 질색한다.[8]

이후 점순이는 주인공네 집 과 자신의 집 닭을 싸움을 붙이기까지 한다. 이런 행동에 주인공은 '나도 한때는 걱실걱실히 일 잘 하고 얼굴 예쁜 계집애인 줄 알았더니 시방 보니까 그 눈깔이 꼭 여우새끼 같다.'며 점순이를 싫어하기 시작한다.[9]

그런데 닭싸움 끝에 주인공네 수탉이 죽어가자 주인공은 홧김에 달려들어서 점순이네 수탉을 때려 엎어 죽여 버린다. 이에 점순이가 "왜 남의 닭을 죽이냐"고 나무라자 주인공은 "그럼 어떠냐"고 응수하고 점순이는 "누구 집 닭인데!" 라며 소리친다. 그제야 현실을 깨달은 주인공이 '이제 우리 집이 소작 부치던 땅을 떼이고 마을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엉엉 울음을 터트리는데 점순이가 앞으로 다가와 "다음부터 안 그럴거냐?"[10]고 묻고 "닭 죽은 건 이르지 않겠다"고 타이른다. 주인공의 어깨를 짚은 채로 몸뚱이를 겹쳐 쓰러져 노란 동백꽃[11] 속으로 파묻혀 버린다.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잠시 뒤에 어머니가 역정이 나서 점순이를 찾자 점순이는 겁을 잔뜩 먹고 꽃 밑을 기어나와 산아래로 내려가고 주인공은 바위를 끼고 산 위로 올라가면서 소설은 끝난다.

==# 전문 #==
동백꽃
김유정


오늘도 또 우리 수탉이 막 쫓기었다. 내가 점심을 먹고 나무를 하러 갈 양으로 나올 때이었다. 산으로 올라서려니까 등뒤에서 푸드득푸드득, 하고 닭의 횃소리가 야단이다.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려보니 아니나다르랴, 두 놈이 또 얼리었다.

점순네 수탉(은 대강이가 크고 똑 오소리같이 실팍하게 생긴 놈)이 덩저리 작은 우리 수탉을 함부로 해내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해내는 것이 아니라 푸드득하고 면두를 쪼고 물러섰다가 좀 사이를 두고 푸드득하고 모가지를 쪼았다. 이렇게 멋을 부려 가며 여지없이 닦아 놓는다. 그러면 이 못생긴 것은 쪼일 적마다 주둥이로 땅을 받으며 그 비명이 킥, 킥, 할 뿐이다. 물론 미처 아물지도 않은 면두를 또 쪼이며 붉은 선혈은 뚝뚝 떨어진다.

이걸 가만히 내려다보자니 내 대강이가 터져서 피가 흐르는 것같이 두 눈에서 불이 번쩍 난다. 대뜸 지게막대기를 메고 달려들어 점순네 닭을 후려칠까 하다가 생각을 고쳐먹고 헛매질로 떼어만 놓았다.

이번에도 점순이가 쌈을 붙여 놨을 것이다. 바짝바짝 내 기를 올리느라고 그랬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고놈의 계집애가 요새로 들어서 왜 나를 못 먹겠다고 고렇게 아르릉거리는지 모른다.

나흘 전 감자 건만 하더라도 나는 저에게 조금도 잘못한 것은 없다. 계집애가 나물을 캐러 가면 갔지 남 울타리 엮는 데 쌩이질을 하는 것은 다 뭐냐. 그것도 발소리를 죽여 가지고 등뒤로 살며시 와서,

"얘! 너 혼자만 일하니?"

하고 긴치 않는 수작을 하는 것이다.

어제까지도 저와 나는 이야기도 잘 않고 서로 만나도 본체 만 척하고 이렇게 점잖게 지내던 터이련만 오늘로 갑작스레 대견해졌음은 웬일인가. 항차 망아지만 한 계집애가 남 일하는 놈 보구…….

"그럼 혼자 하지 떼루 하디?"

내가 이렇게 내배앝는 소리를 하니까,

"너 일하기 좋니?"

또는,

"한여름이나 되거든 하지 벌써 울타리를 하니?"

잔소리를 두루 늘어놓다가 남이 들을까 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그 속에서 깔깔댄다. 별로 우스울 것도 없는데 날씨가 풀리더니 이 놈의 계집애가 미쳤나 하고 의심하였다. 게다가 조금 뒤에는 제 집께를 할금 할금 돌아보더니 행주치마의 속으로 꼈던 바른손을 뽑아서 나의 턱밑으로 불쑥 내미는 것이다. 언제 구웠는 지 더운 김이 홱 끼치는 굵은 감자 세 개가 손에 뿌듯이 쥐였다.

"느 집엔 이거 없지?"

하고 생색 있는 큰소리를 하고는 제가 준 것을 남이 알면은 큰일날 테니 여기서 얼른 먹어 버리란다. 그리고 또 하는 소리가,

"너 봄 감자가 맛있단다."

"난 감자 안 먹는다. 너나 먹어라."

나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일하던 손으로 그 감자를 도로 어깨 너머로 쑥 밀어 버렸다. 그랬더니 그래도 가는 기색이 없고, 뿐만 아니라 쌔근쌔근하고 심상치 않게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진다. 이건 또 뭐야 싶어서 그때에야 비로소 돌아다보니 나는 참으로 놀랐다. 우리가 이 동네에 들어온 것은 근 삼 년째 되어 오지만 여태껏 가무잡잡한 점순의의 얼굴이 이렇게까지 홍당무처럼 새빨개진 법이 없었다. 게다가 눈에 독을 올리고 한참 나를 요렇게 쏘아보더니 나중에는 눈물까지 어리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바구니를 다시 집어들더니 이를 꼭 악물고는 엎어질 듯 자빠질 듯 논둑으로 횡하게 달아나는 것이다.

어쩌다 동리 어른이,

"너 얼른 시집을 가야지?"

하고 웃으면,

"염려 마서유. 갈 때 되면 어련히 갈라구!"

이렇게 천연덕스레 받는 점순이었다. 본시 부끄럼을 타는 계집애도 아니거니와 또한 분하다고 눈에 눈물을 보일 얼병이도 아니다. 분하면 차라리 나의 등어리를 바구니로 한번 모질게 후려쌔리고 달아날지언정.

그런데 고약한 그 꼴을 하고 가더니 그 뒤로는 나를 보면 잡아먹으려 기를 복복 쓰는 것이다.

설혹 주는 감자를 안 받아먹는 것이 실례라 하면, 주면 그냥 주었지 '느 집엔 이거 없지.'는 다 뭐냐. 그렇잖아도 저희는 마름이고 우리는 그 손에서 배재를 얻어 땅을 부치므로 일상 굽실거린다. 우리가 이 마을에 처음 들어와 집이 없어서 곤란으로 지낼 제 집터를 빌리고 그 위에 집을 또 짓도록 마련해 준 것도 점순 네의 호의였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농사 때 양식이 딸리면 점순이네한테 가서 부지런히 꾸어다 먹으면서 인품 그런 집은 다시 없으리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곤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열 일곱씩이나 된 것들이 수군수군하고 붙어 다니면 동네의 소문이 사납다고 주의를 시켜 준 것도 또 어머니였다. 왜냐하면 내가 점순이 하고 일을 저질렀다가는 점순네가 노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땅도 떨어지고 집도 내쫓기고 하지 않으면 안되는 까닭이었다.

그런데 이놈의 계집애가 까닭없이 기를 복복 쓰며 나를 말려 죽이려고 드는 것이다.

눈물을 흘리고 간 담날 저녁나절이었다. 나무를 한 짐 잔뜩 지고 산을 내려오려니까 어디서 닭이 죽는 소리를 친다. 이거 뉘집에서 닭을 잡나, 하고 점순네 울 뒤로 돌아오다가 나는 고만 두 눈이 똥그랬다. 점순이가 저희 집 봉당에 홀로 걸터앉았는데 이게 치마 앞에다 우리 씨암탉을 꼭 붙들어 놓고는,

"이놈의 씨닭! 죽어라 죽어라."

요렇게 암팡스레 패 주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대가리나 치면 모른다마는 아주 알도 못 낳으라고 그 볼기짝께를 주먹으로 콕콕 쥐어박는 것이다.

나는 눈에 쌍심지가 오르고 사지가 부르르 떨렸으나 사방을 한번 휘둘러보고야 그제서야 점순이 집에 아무도 없음을 알았다. 잡은 참 지게 막대기를 들어 울타리의 중턱을 후려치며,

"이놈의 계집애! 남의 닭 알 못 낳으라구 그러니?"

하고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러나 점순이는 조금도 놀라는 기색이 없고 그대로 의젓이 앉아서 제 닭 가지고 하듯이 또 죽어라,죽어라, 하고 패는 것이다. 이걸 보면 내가 산에서 내려올 때를 겨냥해 가지고 미리부터 닭을 잡아가지고 있다가 네 보라는 듯이 내 앞에서 줴지르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러나 나는 그렇다고 남의 집에 뛰어들어가 계집애하고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형편이 썩 불리함을 알았다. 그래 닭이 맞을 적마다 지게 막대기로 울타리를 후려칠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왜냐하면 울타리를 치면 칠수록 울섶이 물러앉으며 뼈대만 남기 때문이다. 허나 아무리 생각하여도 나만 밑지는 노릇이다.

"아, 이년아! 남의 닭 아주 죽일 터이야?"

내가 도끼눈을 뜨고 다시 꽥 호령을 하니까 그제서야 울타리께로 쪼르르 오더니 울 밖에 섰는 나의 머리를 겨누고 닭을 내팽개친다.

"에이 더럽다! 더럽다!"

"더러운 걸 널더러 입때 끼고 있으랬니? 망할 계집애년 같으니"

하고 나도 더럽단 듯이 울타리께를 횡허케 돌아내리며 약이 오를 대로 다 올랐다, 라고 하는 것은 암탉이 풍기는 서슬에 나의 이마빼기에다 물지똥을 찍 갈겼는데 그걸 본다면 알집만 터졌을 뿐 아니라 골병은 단단히 든 듯싶다. 그리고 나의 등 뒤를 향하여 나에게만 들릴 듯 말 듯한 음성으로,

"이 바보 녀석아!"

"애! 너 배냇병신이지?"

그만도 좋으련만,

"얘! 너 느 아버지가 고자라지?"

"뭐 울아버지가 그래 고자야?"

할 양으로 열벙거지가 나서 고개를 홱 돌리어 바라봤더니 그때까지 울타리 위로 나와 있어야 할 점순이의 대가리가 어디 갔는지 보이지를 않는다. 그러다 돌아서서 오자면 아까에 한 욕을 울 밖으로 또 퍼붓는 것이다. 욕을 이토록 먹어 가면서도 대거리 한 마디 못하는 걸 생각하니 돌부리에 채이어 발톱 밑이 터지는 것도 모를 만큼 분하고 급기야는 두 눈에 눈물까지 불끈 내솟는다.

그러나 점순이의 침해는 이것뿐이 아니다.

닭벼슬을 좋아한다면서도 사람들이 없으면 틈틈이 제 집 수탉을 몰고 와서 우리 수탉과 쌈을 붙여 놓는다. 제 집 수탉은 썩 험상궂게 생기고 쌈이라면 홰를 치는 고로 으레 이길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툭하면 우리 수탉이 면두며 눈깔이 피로 흐드르하게 되도록 해 놓는다. 어떤 때에는 우리 수탉이 나오지를 않으니까 요놈의 계집애가 모이를 쥐고 와서 꾀어내다가 쌈을 붙인다.

이렇게 되면 나도 다른 배차를 차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는 우리 수탉을 붙들어 가지고 넌지시 장독께로 갔다. 쌈닭에게 고추장을 먹이면 병든 황소가 살모사를 먹고 용을 쓰는 것처럼 기운이 뻗친다 한다. 장독에서 고추장 한 접시를 떠서 닭 주둥아리께로 들여 밀고 먹여 보았다. 닭도 고추장에 맛을 들였는지 거스르지 않고 거진 반 접시 턱이나 곧잘 먹는다. 그리고 먹고 금시는 용을 못쓸 터이므로 얼마쯤 기운이 돌도록 횃속에다 가두어 두었다.

밭에 두엄을 두어 짐 져내고 나서 쉴 참에 그 닭을 안고 밖으로 나왔다. 마침 밖에는 아무도 없고 점순이만 저희 울안에서 헌옷을 뜯는지 혹은 솜을 터는지 웅크리고 앉아서 일을 할 뿐이다.

나는 점순네 수탉이 노는 밭으로 가서 닭을 내려놓고 가만히 맥을 보았다. 두 닭은 여전히 얼리어 쌈을 하는데 처음에는 아무 보람이 없었다. 멋지게 쪼는 바람에 우리 닭은 또 피를 흘리고 그러면서도 날갯죽지만 푸드득푸드득하고 올라 뛰고 뛰고 할뿐으로 제법 한번 쪼아 보지도 못한다.

그러나 한번엔 어쩐 일인지 용을 쓰고 펄쩍 뛰더니 발톱으로 눈을 하비고 내려오며 면두를 쪼았다. 큰 닭도 여기에는 놀랐는지 뒤로 멈씰하며 물러난다. 이 기회를 타서 작은 우리 수탉이 또 날쌔게 덤벼들어 다시 면두를 쪼니 그제서는 감때사나운 그 대강이에서도 피가 흐르지 않을 수 없다.

옳다 알았다, 고추장만 먹이며는 되는구나 하고 나는 속으로 아주 쟁그러워 죽겠다. 그때에는 뜻밖에 내가 닭쌈을 붙여 놓는 데 놀라서 울 밖으로 내다보고 섰던 점순이도 입맛이 쓴지 눈쌀을 찌푸렸다.

나는 두 손으로 볼기짝을 두드리며 연방,

"잘한다! 잘한다!"하고, 신이 머리끝까지 뻐치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서 나는 넋이 풀리어 기둥같이 묵묵히 서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큰 닭이 한번 쪼인 앙갚음으로 호들갑스레 연거푸 쪼는 서슬에 우리 수탉은 찔끔 못하고 막 곯는다. 이걸 보고서 이번에는 점순이가 깔깔거리고 되도록 이쪽에서 많이 들으라고 웃는 것이다.

나는 보다 못하여 덤벼들어서 우리 수탉을 붙들어 가지고 도로 집으로 들어왔다. 고추장을 좀더 먹였더라면 좋았을 걸, 너무 급하게 쌈을 붙인 것이 퍽 후회가 난다. 장독께로 돌아와서 다시 턱밑에 고추장을 들이댔다. 흥분으로 말미암아 그런지 당최 먹질 않는다.

나는 하릴없이 닭을 반듯이 눕히고 그 입에다 궐련 물부리를 물리었다. 그리고 고추장물을 타서 그 구멍으로 조금씩 들여 부었다. 닭은 좀 괴로운지 킥킥하고 재채기를 하는 모양이나 그러나 당장의 괴로움은 매일 같이 피를 흘리는 데 댈 게 아니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한 두어 종지 가량 고추장물 먹이고 나서는 나는 고만 풀이 죽었다. 싱싱하던 닭이 왜 그런지 고개를 살며시 뒤틀고는 손아귀에서 뻐드러지는 것이 아닌가. 아버지가 볼까 봐서 얼른 홰에다 감추어 두었더니 오늘 아침에서야 겨우 정신이 든 모양 같다.

그랬던 걸 이렇게 오다 보니까 또 쌈을 붙여 놓으니 이 망할 계집애가 필연 우리 집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제가 들어와 홰에서 꺼내 가지고 나간 것이 분명하다.

나는 다시 닭을 잡아다 가두고 염려는 스러우나 그렇다고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가지 않을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소나무 삭정이를 따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암만해도 고년의 목쟁이를 돌려놓고 싶다. 이번에 내려가면 망할 년 등줄기를 한번 되게 후려치겠다 하고 싱둥겅둥 나무를 지고는 부리나케 내려왔다.

거지반 집에 다 내려와서 나는 호드기 소리를 듣고 발이 딱 멈추었다. 산기슭에 널려 있는 굵은 바윗돌 틈에 노란 동백꽃이 소보록하니 깔리었다. 그 틈에 끼어 앉아서 점순이가 청승맞게시리 호드기를 불고 있는 것이다. 그보다도 더 놀란 것은 고 앞에서 또 푸드득, 푸드득, 하고 들리는 닭의 횃소리다. 필연코 요년이 나의 약을 올리느라고 또 닭을 집어내다가 내가 내려올 길목에다 쌈을 시켜 놓고 저는 그 앞에 앉아서 천연스레 호드기를 불고 있음에 틀림없으리라.

나는 약이 오를 대로 올라서 두 눈에서 불과 함께 눈물이 퍽 쏟아졌다. 나뭇지게도 벗어 놀 새 없이 그대로 내동댕이치고는 지게 막대기를 뻗치고 허둥허둥 달려들었다.

가까이 와 보니 과연 나의 짐작대로 우리 수탉이 피를 흘리고 거의 빈사지경에 이르렀다. 닭도 닭이려니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눈 하나 깜짝 없이 고대로 앉아서 호드기만 부는 그 꼴에 더욱 치가 떨린다. 동네에서도 소문이 났거니와 나도 한때는 걱실걱실히 일 잘 하고 얼굴 예쁜 계집애인 줄 알았더니 시방 보니까 그 눈깔이 꼭 여우새끼 같다.

나는 대뜸 달려들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큰 수탉을 단매로 때려 엎었다. 닭은 푹 엎어진 채 다리 하나 꼼짝 못 하고 그대로 죽어 버렸다. 그리고 나는 멍하니 섰다가 점순이가 매섭게 눈을 홉뜨고 닥치는 바람에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이놈아! 너 왜 남의 닭을 때려죽이니?"

"그럼 어때?"

하고 일어나다가,

"뭐 이 자식아! 누 집 닭인데?"

하고 복장을 떼미는 바람에 다시 벌렁 자빠졌다. 그리고 나서 가만히 생각을 하니 분하기도 하고 무안도스럽고, 또 한편 일을 저질렀으니, 인젠 땅이 떨어지고 집도 내쫓기고 해야 될는지 모른다.

나는 비슬비슬 일어나며 소맷자락으로 눈을 가리고는, 얼김에 엉 하고 울음을 놓았다. 그러나 점순이가 앞으로 다가와서,

"그럼 너 이담부텀 안 그럴 테냐?"

하고 물을 때에야 비로소 살길을 찾은 듯싶었다. 나는 눈물을 우선 씻고 뭘 안 그러는지 명색도 모르건만,

"그래!"

하고 무턱대고 대답하였다.

"요담부터 또 그래 봐라, 내 자꾸 못살게 굴 테니."

"그래 그래 이젠 안 그럴 테야!"

"닭 죽은 건 염려 마라, 내 안 이를 테니."

그리고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너 말 마라!"

"그래!"

조금 있더니 요 아래서,

"점순아! 점순아! 이년이 바느질을 하다 말구 어딜 갔어?"

하고 어딜 갔다 온 듯싶은 그 어머니가 역정이 대단히 났다.

점순이가 겁을 잔뜩 집어먹고 꽃밑을 살금살금 기어서 산알로 내려간 다음 나는 바위를 끼고 엉금엉금 기어서 산 위로 치빼지 않을 수 없었다.

3. 등장인물

  • 주인공
    소작농의 아들. 자꾸만 '나'를 괴롭히는 점순이를 미워한다.
    일단 원문에는 이름이 나오지 않지만 교과서나 학습만화 등 파생 버전에서는 '만식', '갑돌', '순돌' 등 향토적인 이름이 붙기도 한다.

4. 미디어 믹스

4.1. 모바일 게임

본작의 스토리와 설정을 기반으로 하는 모바일 게임이 2021년 11월 4일에 원스토어 플랫폼으로 출시되었다. 2022년 9월 24일 기준으로 원스토어에서 무료 다운로드가 가능하다.

5. 기타

  • 작중 아래와 같은 문구가 나온다.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동백나무 꽃은 조매화라 향기가 없으며 색깔도 빨갛다. 그런데 노랑 투성이의 배경 묘사와 알싸한 향기라는 대목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도 많았더랬다.[12] 때문에 노란색을 두고 학자들은 물론 숱한 사람들이 일종의 문학적 허용이나 약간 더 나아가서 동백꽃이 아닌 점순이의 노란색을 꽃으로 표현하고 같이 보낸 시간을 냄새라고 표현한 것이라고 다들 넘겼는데[13] 누군가[14] "김유정의 <동백꽃>에 나오는 동백꽃은 생강나무 꽃인 것 같다"[15]는 리포트를 발표하자 금세 학계의 정설로 굳어지는 바람에 이전의 연구자료들이 일대 타격을 받게 된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실제로 2008년 이전의 글들 중 발제자들이 이불킥할 만한 글이 숱하게 보인다. 동백꽃 문서에 서술되어 있듯이 이 소설의 동백꽃은 생강나무 꽃의 방언이다.[16]
  • 점순이가 주인공에게 아래와 같이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지금이야 심영물 덕분에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실은 무시무시한 욕설이다.[17] 부모가 생식 능력이 없다면 자식을 낳는 것이 불가능한데 '그럼 너는 누구의 자식이란 말이냐? 너는 바람난 어머니가 낳은 자식이다!'라는 의미다.[18]
  • 배냇병신이라는 욕설도 했지만 위의 패드립에 약간 묻힌 감이 있다.
  • 중학교 2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 등 여러 교과서에 나온다. 인터넷 등지에서 소설이 유행함은 현재진행형임에 따라 학생들 사이에서도 소설의 대사가 유행하는 모양이다.
  • 우스갯소리로 고전 라이트 노벨이라고도 불린다. 주인공에게 관심이 있지만 표현이 서투른 츤데레 여주인공, 둔감하고 눈치없는 남주인공, 남녀 주인공의 신분의 차이에 갈등으로 점철된 고구마 전개 끝에 연애 시작이라는 요소까지, 그야말로 라이트 노벨이라고 불리기에 손색 없는 구성을 자랑한다.
  • 밝은 이야기지만 속을 보면 신분 차이라는 점으로 뭔가 씁쓸하다. 주인공부터도 마름인 점순이네 덕분에 가족과 함께 이 마을에서 잘 살고 있는 셈이라서, 함부로 점순이를 건드리지 않는 점을 봐도. 처럼 신분적인 그런 차이를 느낄 교과서 수록 소설이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마름이든 소작농이든 결국은 둘 다 상민(평민) 계층이므로 실제로는 신분관계라기보다는 갑과 을에 더 가깝다. 그래도 '주인공이 왜 점순이를 모르는 체 하는가'의 이해는 이쪽이 더 빠를 수도 있는데 생각해 보자. '떠돌이였던 우리 가족이 마름 어르신 덕분에 닭도 치고 농사도 지을 수 있는 등 먹고 살 수 있게 됐으며 마름 어르신은 그 은인이다. 그런데 그 딸이랑 정분이 난다면...' 주인공이 어렴풋하게/확실히 눈치챘다고 하더라도 뒷일은 상상도 하기 싫을 거다(...).


[1]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나'라고만 쓰여 있다.[2] 그 시대엔 감자는 아직 종자가 조신 토지식으로 개량이 덜 되었기 때문에 매우 귀한 음식이었을 뿐만 아니라 한번에 20~30개씩 찌는 경우가 많았던 찐감자와 달리 집중하지 않으면 타기 때문에 한 번에 많아야 2~3개씩만 구울 수 있는 구운 감자라는 걸 고려하면 먹고 남은 감자를 준 게 아니라 주인공에게 주려고 일부러 구워 온 게 확실하다.[3] 사실 주인공은 소작농의 아들이고 마름의 딸인 점순이와 트러블이 생기면 좋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4] 주인공의 관심을 끌어보고자 하는 행동이다.[5] 주인공의 말에 따르면 알집이 제대로 상하고 골병이 단단히 든 것 같다고.[6] 지금이야 이 분 덕분에 욕으로써 가진 뜻이 약해지긴 했지만 당대로서는 무시무시한 욕설을 내뱉은 것이다. 일단 1차로 아버지 패드립 + 2차로 그럼 어머니가 어떻게 널 낳았을까?(불륜)라는 어머니 패드립 + 3차로 그러니 너는 다른 아버지를 가진 사생아라는 그야말로 트리플 크라운 패드립이다. 물론 아이를 낳은 다음에 고자가 되었을수도 있다[7] 물론 현재 쓰는 욕도 다 비슷비슷한 의미인데 그런 것 가지고 일부러 열받거나 하지는 않는 것처럼 주인공도 그런 말 하나로 정말로 열받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냥 귀찮아할 뿐이지.[8] 이전에는 미워한다고 되어 있었지만 이 시점까지 주인공의 점순이에 대한 감정은 귀찮다는 게 가장 크다. 후술하겠지만 정말로 감정이 폭발하는 건 닭싸움 사건 때.[9] 다만, 이 묘사는 중의적으로 점순이가 얼굴이 예쁘다는 묘사가 나온 문장이긴 하다. 즉, 주인공은 점순이를 싫어하면서도 점순이가 예쁘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는 문장이다.[10] 닭 얘기가 아니라 이젠 자기한테 관심 좀 달라는 얘기다. 주인공은 깨닫지 못하지만.[11] 동백꽃은 빨간 색인데 왜 노란 동백꽃이라고 하는지 국문학계에서 소소한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이후 강원도 방언으로 생강나무꽃을 동박꽃이라고 부른다는 게 알려지면서 현재는 최신 교과서를 봤거나 국어국문학 관련 종사자라면 노란 동백꽃은 생강꽃이라는 사실은 다들 알고 있다. 혹은 끝판왕으로 자신 혹은 가족이 강원도가 고향이거나 강원도에 산 적이 있는 경우도 있다.[12] 향기가 있는 동백꽃도 여러 종 존재하지만 생강나무 꽃에 비해 향이 그렇게 강하지 않고 노란 동백꽃은 베트남이나 중국 남부에만 서식하므로 1937년에 별세한 김유정의 소설에 등장한 그 동백일 확률은 더더욱 없다.[13] 심지어 아예 옷을 홀라당 벗고 성관계를 하는(!!!) 만화책 버전도 있다![14] 학계 인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2000년대 중반에 서울대학교 국문과 학부생들에게 자유연구·조사 과제를 냈는데 어느 강원도 출신 1학년생이 발표 중 사족으로 붙인 고향의 사투리 일화에서 시발되었다고 한다.[15] 게다가 동백나무 꽃북방한계선충청남도전라북도 경계 금강 즈음으로, 그보다 훨씬 북쪽인 한강 이북에 살았던 김유정이 자생하는 동백꽃을 글에 묘사할 가능성이 적다. 다만 김유정이 이 소설을 발표한 지 [age(1936-01-01)]년이 흐른 현재는 기후변화 때문에 경기도에서도 자생한다. 물론 소설의 배경인 춘천에서는 택도 없다. 애초에 강원특별자치도민의 상당수는 동백꽃이 빨갛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라는 경우가 많아서...[16] 이와 비슷한 경우가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맨드라미로 봄이 배경인데 웬 늦여름 맨드라미냐 의아해했던 이들은 민들레의 사투리라는 걸 알면 대번에 납득한다. 국문학에서 사투리 연구가 필수적임을 깨닫게 하는 사례다.[17] 젊은이들에게 고자라는 말이 욕설의 의미가 퇴색되고 널리 쓰이게 된 건 내가 고자라니가 방영된 것이 2003년 3월 4일이었으니까 지금으로부터 불과 [age(2003-03-04)]년밖에 되지 않았다. 이 소설이 쓰인 당시엔 고자가 심각한 욕이라는 것은 안 봐도 뻔하다.[18] '너네 아버지가 고자라 자식을 낳을 수 없기에 주워온 자식 아니냐.'는 해석도 가능한데 큰 차이는 없다. 이런 욕설을 하는 이유는 어느 쪽이든 '주인공의 관심'을 받으려는 이유다. '어머니가 바람났다'는 뜻이니 어찌 보면 어머니 욕도 같이 한 셈이다. 저 과격한 욕지거리에 감춰진 점순이의 속내는 자신에게 관심 좀 가져 달라는 투정이다. 참고로 당시에는 의료기술 수준이 미비하여 사고로 고자가 되는 경우가 지금보다 많았고 항생제가 없어 고환염 등으로 고자가 되는 일도 지금보다 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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