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8-12-20 19:11:22

육조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위진남북조 시대 강남 지역 왕조들의 통칭에 대한 내용은 육조시대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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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거리
1. 개요2. 역사
2.1. 발해2.2. 태봉 왕조2.3. 고려시대2.4. 조선시대
3. 각 조별 기능

1. 개요

六曹.

오늘날의 내각에 해당하는 고려조선시대의 정부기관. 이들 관청이 모여있던 광화문 앞은 육조거리라고 불렸다. 각 조의 수장은 판서라고 불렸는데 오늘날의 장관에 상당한다.

기원은 중국 왕조 당나라의 중앙정부 체제인 "3성 6부제"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 왕조들의 정부 조직 체제로 기록에 따르면 발해, 태봉, 고려, 조선 왕조가 자국 실정에 맞게 변형하여 도입하였다. 원래 당제(3성 6부제)는 황제국의 정부 체제라서 제후국은 사용할 수 없었으나[1] 발해, 고려 왕조는 그냥 "6부제"를 사용하였고 조선 왕조는 이를 피해 "6조제"를 사용하였다.

또한 지방 행정 조직에는 육조와 같은 역할을 하는 육방관속이 구성된다.

2. 역사

이 문서에선 3성보다는 6부제 중심으로 서술하며 이하는 각 왕조의 사용 예들이다.

2.1. 발해

기록에 따르면 발해는 최초로 당제 정부 체제를 도입한 왕조로 당나라의 3성 6부 제도를 본 따 역시 육부가 편성되었다.

단, 발해 고유의 특성으로 육부의 각 이름에 유교적 미덕을 붙인 것이 특색이라 할 수 있다. 즉, 이부는 충(忠)부로 불렀고, 호부는 인(仁)부로 불렀으며, 예부는 의(義)부로, 병부는 지(智)부로, 형부는 예(禮)부로, 공부는 신(信)부로 불리었다. 그리고 각 부서는 당나라와 고려의 상서성에 해당되는 정당성에서 한꺼번에 총괄하는 것이 아니라 충,인,의부는 좌서성으로, 지,예,신부는 우서성으로 나누어 각각 담당하게 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발해 문서의 정치 조직 항목 참조.
  • 인부
  • 의부
  • 예부
  • 지부
  • 신부
  • 충부

2.2. 태봉 왕조

태봉은 당제를 기반으로 두되 신라제, 태봉 궁예왕제가 섞인 "2성 6부제" 정부 체제를 가졌으며 이는 초기 고려의 정부 체제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2.3. 고려시대

초기 고려는 태봉제를 기반으로 고려 태조제를 추가하여 사용했는데 이는 초기에 고려의 기틀이 다져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6관제"가 있었다.성종은 고려 초기에서 중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임금이었는데 환구단, 사직, 종묘 등 유교식 황실 제사와 당제 정부 체제를 도입하여 고려의 기구를 정비했다. "2성 6부제"가 완비되었고 고려 6부는 2성 중 상서성 밑에 두었다.

자세한 내용은 고려 문서 참조.몽고와의 전쟁에서 패하며 고려는 황제국 체제가 무너지고 제후국 체제를 사용하여 원과 같은 정부체제를 사용하는 것을 피하였다. 이부와 예부는 통합되었고 공부는 폐지되어 "4사제"가 만들어 졌다.
  • 전리사 : 이부와 예부 통합
  • 판도사 : 호부
  • 군부사 : 병부
  • 전법사 : 형부
각 임금이 집권할 때마다 체제가 여러번 바뀌었는데 마지막 공민왕은 반원독립을 외치며 "오등봉작제", "폐하 경칭", "12장 면류복", "2성 6부제" 등 구제(舊制)의 부활을 시도했다.

최후 임금 공양왕 때는 정도전을 위시한 신진사대부들의 성리학적 명분에 입각, 황제국 체제를 피하여 "6조제"가 만들어졌다. 6조제는 각 부서의 이름에서 X부를 X조로 바꾸었다.(ex.예부 -> 예조) 6조란 이름으로 바뀌고 이는 그대로 조선에 이어진다.

2.4. 조선시대

개국할 때 공양왕 시기의 조직 이름 및 역할을 계승하여 유지했으며, 태종 때 각 조의 으뜸인 전서를 판서로 격상시키는 변화를 주고 의정부 밑에 두었다.

이후 각 임금마다 의정부 밑에 두기도 하고, 독립시키기도 했다.[2]

경국대전에 따르면 각 역할은 다음과 같다.

각 조의 수장인 판서는 정2품으로 품계가 동등하였으나, 각 조의 실질적인 위계는 아래 항목의 순서처럼 이-호-예-병-형-공 순으로 짜였다.1891년에 폐지되었다.

3. 각 조별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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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따라서 삼국시대에는 이러한 정부기관이 존재하지 않았다. 중국 때문이기도 하지만 애시당초 중앙권력이 아닌 지방 귀족들의 권력이 강했던 시기인지라, 삼국통일 이후 신라도 3성 6부를 채택하지 않고 그 때 그 때 필요한 부서를 만들었다. 덤으로 수험생들의 혼란을 가중되었다.[2] 6조 직계제, 의정부 서사제[3] 전근대 국가인 조선과 현대 국가를 비교하는건 무리한 일이지만 매우 체계적이고 건강한 조선의 문치주의를 감안하면 너무 사기캐이다. 그런데 사실 현재도 크게 다를 것은 없다. 현재 정부 편제는 인사혁신처와 행정자치부를 나눔으로써 정부조직관리와 인사관리를 나누었지만, 그 이전에는 안전행정부로 사실상 하나의 기관이 독점하고 있었다. 정부조직관리와 인사관리는 묶어서 관리하는 것이 여러모로 편하기 때문에 그 기능을 한 부처에 두는 것은 해외에서도 비교적 흔한 일이다. 당장 이조가 가진 인사권도 중하위직 대상으로 고위직은 국왕이 결정했다. 그건 오늘날 고위공무원단의 인사권만 대통령이 행사하고 3급 이하로는 장관이 임용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조가 지나친 파워를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4] 소속기관인 국세청, 조달청의 역할도 수행한다.[5] 과거시험을 주관하는 것이 예조였으므로 현재 국가직 공무원의 채용을 담당하는 인사혁신처의 일부 기능을 수행했다고 할 수 있다.[6] 소속기관인 병무청, 방위사업청의 역할도 수행한다.[7] 소속기관인 검찰청의 역할도 수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