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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효공왕릉 慶州 孝恭王陵 Tomb of King Hyoso, Gyeongju | |
| <colbgcolor=#315288><colcolor=#fff>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산14번지 |
| 분류 | 유적건조물 / 무덤 / 왕실무덤 / 고대 |
| 면적 | 32,290㎡ |
| 지정연도 | 1969년 8월 27일 |
| 시대 | 통일신라 효공왕 |
| 소유단체 | 국가 |
| 관리단체 | 경주시 |
| <colbgcolor=#4A2D5B><colcolor=#fbe673> |
| 효공왕릉(孝恭王陵) |
1. 개요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에 자리한 신라 제52대 국왕 효공왕의 능. 현재 대한민국의 사적으로[1] 지정되어 있다.2. 상세
| <colbgcolor=#4A2D5B><colcolor=#fbe673> |
| 하늘에서 내려다 본 효공왕릉(孝恭王陵) |
조선 영조때 경주 황오동 삼층석탑을 근거로 효공왕의 능으로 비정되었다.
원형 토분으로 봉토 밑에 드문드문 자연석이 보이며
그러나 역시 이 무덤 또한 효공왕이 재위하던 신라 하대 양식과는 한참 전인 선덕여왕 ~ 무열왕 시기 중대 양식의 무덤으로 여겨지기에 학계에서 실제 효공왕의 능이라 여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만 능원 양식은 선덕여왕릉과 유사하며, 왕릉 입지는 무열왕릉과 유사한 등 여러 왕릉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어서 효공왕릉이 아니더라도 신라 중고기 후반의 어떤 왕이나 왕비가 묻혔을 능묘라고 본다.
3. 사적 (舊 사적 제183호)
신라 제52대 효공왕(재위 897∼912)의 무덤이다.
높이 5m, 지름 21.2m의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이다. 무덤 밑부분에는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쌓았던 돌이 몇 개 남아 있으며, 아무런 장식이 없는 매우 단순한 형태의 무덤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912년 왕이 죽자 이름을 효공이라 하고, 사자사라는 절 북쪽에 장사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삼국유사』에는 왕이 죽자 사자사 북쪽에 화장해 그 유골을 구지제의 동산 옆에 묻었다 하여 『삼국사기』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현재 이 무덤의 남쪽에 절터가 있어 사자사의 터로 추정하고 있다.
※(신라효공왕릉 → 경주 효공왕릉)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높이 5m, 지름 21.2m의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이다. 무덤 밑부분에는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쌓았던 돌이 몇 개 남아 있으며, 아무런 장식이 없는 매우 단순한 형태의 무덤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912년 왕이 죽자 이름을 효공이라 하고, 사자사라는 절 북쪽에 장사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삼국유사』에는 왕이 죽자 사자사 북쪽에 화장해 그 유골을 구지제의 동산 옆에 묻었다 하여 『삼국사기』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현재 이 무덤의 남쪽에 절터가 있어 사자사의 터로 추정하고 있다.
※(신라효공왕릉 → 경주 효공왕릉)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1] 舊 사적 제18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