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1-21 16:30:39

고성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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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임체는 문루 및 성곽이 대부분이 소실되어 터만 남은 읍성, 볼드체는 대부분이 보존, 복원된 읍성
행정구역은 현재 대한민국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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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제89호
<colbgcolor=#c00d45> 고성읍성
固城邑城 | Goseong City Wall
파일:search.pstatic1234567213456.jpg
정식 명칭 고성현읍성(固城縣邑城)
입지 평지성
기능 읍성
건설 1448년 (세종30년)
폐성 1895년 (고종 32년)
철거 미상[20세기 초]
분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지
면적 32,060㎡
지정연도 1983년 12월 20일
건축시기 조선시대
링크 공식 홈페이지
소재지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읍 성내리, 서외리, 수남리
1. 개요2. 구조
2.1. 고성왜성
3. 현황
3.1. 고성고읍성3.2. 고성읍성3.3. 고성왜성
4. 여담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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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사료 보기 · 닫기 ]
> "갑산(甲山) 방면은 적인(賊人)의 소식이 자주 들려오니 마땅히 병력을 증가하여 적을 방어하는 데에 대비하여야 하겠으며, 경상도의 사천 · 고성 · 영해는 가장 바다에 가까운 곳으로 방어 대책이 긴급한데, 읍성을 아직 쌓지 않았으니 마땅히 급히 축조해야 하겠습니다. 하삼도(下三道)와 황해도 연변에 흩어져 살고 있는 백성들은 저쪽 적(賊)이 두려우니 마땅히 육지의 안쪽으로 옮겨 들어와서 적변(賊變)을 피하도록 할 것입니다. 또 각 고을의 성과 옹성 · 적대 · 지호(池濠)를 일시에 모두 만들기는 어려우나 마땅히 점차로 축조해야 하겠습니다. 또 하삼도 연변 각 고을의 축성이 끝난 후에 내지 각 고을의 읍성을 차례로 쌓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읍 석성(邑石城) 【둘레가 2백 85보인데, 안에 우물 4가 있다. 】
세종실록지리지』「고성현」
충청 · 전라 · 경상도 도체찰사 정분(鄭苯)이 아뢰기를, "경상도 · 충청도 각 고을의 성자(城子)는 당초에 법식에 의하여 쌓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가 규식(規式)에 맞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그대로 둘 수 있는 각 고을과 시기에 미치도록 급히 개축해야 할 각 고을과 추후에 축조할 수 있는 각 고을, 그리고 물려서 쌓을 각 고을들을 마감하여 삼가 갖추어 계문(啓聞)합니다. (...) 고성현읍성은 주위가 3천 11척, 높이가 12척이고, 여장의 높이는 2척이며, 적대가 12개소, 문이 3개소인데 옹성이 있으며, 여장이 5백 75개이고, 성안에 우물이 4개소가 있습니다. (...)"
조선왕조실록1451년 9월 5일
충청·전라·경상도 도체찰사 정분이 아뢰기를, "(...) 또 이미 성을 쌓은 경상도 곤양 · 기장 · 동래 · 고성 · 거제는 해자를 파지 않았고, (...) 청컨대 본읍(本邑)으로 하여금 파고 쌓게 하소서. (...)" 하니, 그대로 따랐다.
조선왕조실록1452년 8월 1일
이수공이 아뢰기를, "남해 미조항(彌助項)의 진 설치와 고성현의 성 쌓는 일을 지금 성준(成俊)을 보내어 그 곳의 형세를 살펴보게 하셨습니다. (...)"
조선왕조실록1489년 11월 1일
의정부에서 아뢰기를, "방금 통제사 정규응(鄭圭應)의 장계(狀啓)를 보니, "고성을 영성(營城) 안에 옮겨 설치하는 것은 그 고을의 사세가 편리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옛 읍은 요충지에 위치하여 마을과 저자가 모두 남아 있고 누각과 성도 헐리지 않았는데 이제 버려둔다면 더없이 허술하게 될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1872년 2월 4일
읍성(邑城)
석축(石築)이며 둘레는 3천 5백 24척이고 높이는 15척이다. 성안에 우물 넷과 못 하나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고성현」【성곽】

조선시대에 현재의 고성군 고성읍 성내리 일대에 존재했던 읍성. 시가지화로 인해 현재 남아있는 부분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가야시대부터 말로왕(末露王)이 쌓은 성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시각이 있지만 성의 초축 시기를 당시로 볼 만한 근거를 아직 발견하지 못한 상태다. 다만 현존하는 고성읍성의 서북측 서외리에 고려 이전까지 치소성으로 사용했을 고성고읍성(固城古邑城)이 남아있어 본격적인 읍성 수축 이전부터 이 일대가 고성의 중심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록상 고성읍성을 처음 쌓은 것은 세종 24년인 1442년인데, 북방의 여진족과 남방의 왜구에 대한 국방을 도모하여 축조했다. 이후로도 문종, 단종, 성종 때 읍성을 개축한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남아있다.

당항포, 제포, 거제도 등과 가까운 고을이라 본래부터 일본인의 침입을 자주 당했고, 임진왜란 때도 함락당했다. 임진왜란 후에는 고성현의 읍치를 한동안 삼도수군통제영성 안으로 옮겨 합했으므로 조선후기 대부분의 시간 동안에 기존에 쌓았던 고성읍성은 방치되어 있었다. 1871년에 와서야 다시 고성 읍치를 원래대로 돌려놓았고, 약 20년간 쓰이다가 1895년 갑오개혁으로 기존의 군현제가 폐지되어 폐성되었다.

2. 구조

파일:KYKH006_0000_0003(3).jpg
『1872년 지방지도』 「고성부지도」 고성읍성 부분
파일:1000012977.jpg
지적원도를 지반으로 그린 고성읍성 배치도 #
둘레 1,644m의, 전체적으로 부정원형을 그리며 고성읍 중심부를 감싸던 읍성이다. 여장 575개소, 12개소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성문은 동, 서, 남문 3곳에 모두 옹성이 둘러져 있었다. 이외에도 북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닫아 놓고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유일하게 이름이 남아있는 것은 남문으로, 안청루(晏淸樓)라고 명명했으며 제남루(濟南樓)라고도 했다. 세종 대의 문신 김수온(金守溫)이 남긴 시가 걸려 있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남아있는 성벽 잔존부를 보면 넓적한 판석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큰 자연석과 할석을 이를 맞추어 가며 축조해 조선후기에 쌓은 읍성들에 비해서 투박한 느낌을 주어서, 전형적인 조선전기의 연해읍성 축성방식으로 쌓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1. 고성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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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성
倭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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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蓮峰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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農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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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aaa> † ¶ 왜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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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상산왜성
馬上山倭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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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멸실   ‡ : 멸실 위기   ¶ : 왜성으로 구전 / 개축 기록 불확실   § : 일본 측 자료에만 수록 / 상세 확인 불가}}}
<colbgcolor=#01454F><colcolor=#fff> 고성왜성
[ruby(固, ruby=コ)][ruby(城, ruby=ソン)][ruby(倭城, ruby=わじょう)] | Goseong Japanese Fortress
파일:固城.jpg
이칭 수남리왜성(水南里倭城)
고성왜채(固城倭寨)
고성성지(固城城址)
형태 연곽식 평지성
면적 불명
건설 1597년 (선조 30년)
킷카와 히로이에 등 2인
폐성 1598년 (선조 31년)
주소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읍 수남리 90






파일:스크린샷 2025-01-21 095620.png
고성읍성과 합쳐진 고성왜성의 구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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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스크린샷 2025-01-21 101434.png
파일:스크린샷 2025-01-21 100825.png
고성왜성 및 고성읍성 지역의 항공사진 (1972) 고성왜성이 위치한 구릉지의 위성사진 (2025)
특이하게도 고성읍성의 남측에는 정유재란 때 쌓은 일본군의 왜성이 덧대어져 있다. 안청루의 잔존 옹성 서측에 해발 약 20m의 작은 구릉지가 남북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왜성의 석축이 약 2단 정도 확인된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제1곽은 서측에 굴절부가 1곳, 동남측에 돌출부가 1곳 있어 이곳이 천수 기단이 위치했던 곳으로 추정한다. 그 아래쪽으로 제1곽의 동측과 남측을 감싸듯 제2곽이 형성되어 있으며 천수 기단을 따라 돌아가는 굴절부가 있다. 현재 석축은 민가의 축대로 쓰이고 있어 보존상태가 그리 좋지 않으나, 집 사이사이로 들어가 관찰하면 제법 왜성 석축의 특징을 잘 볼 수 있다.

제1곽 북측으로는 조선시대읍성을 그대로 이어붙여 하나의 성으로 만들어서 활용한, 특이한 유적이다. 규슈대학 소장 『왜성지도』에 일제강점기 당시 측량한 고성왜성 및 고성읍성의 구조도가 포함되어 있다고 하나 상시 공개하고 있지 않아 확인이 어렵다. 이런 식으로 조선 측의 성곽에 왜성을 이어붙여 최외곽 방어선으로 활용한 것은 사천왜성, 안골포왜성, 영등포왜성, 기장왜성 등지에서 발견되지만, 대부분 성곽을 일부 헐어내어 일본식 성곽시설로 활용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반해 고성왜성은 읍성을 거의 온전하게 보존했다는 차이점이 있다. 어찌 보면 일본의 성조선 읍성퓨전인 셈.

축성자는 동래왜성을 쌓은 킷카와 히로이에와 카츠라 모토츠나(桂元網)이며, 코바야카와 히데카네(小早川秀包), 타치바나 무네토라(立花總虎), 타치바나 나오쓰구(立花直次), 츠쿠시 히로카도(筑紫廣門) 등 일본군 제7군의 왜장들이 번갈아 가며 주둔했고 병력 규모는 6000 ~ 7000명에 달했다고 한다.

3. 현황

3.1. 고성고읍성

파일:스크린샷 2025-01-21 113727.png
일부만이 남은 고성고읍성의 토축

3.2. 고성읍성

파일:고성읍성.jpg
고성읍성의 잔존 체성
파일:unnamed3245.jpg
2006년 발굴조사 당시 발견된 남측 체성
파일:스크린샷 2025-01-21 104638.png
2006년 발굴조사 당시 발견된 서측 체성
파일:스크린샷 2025-01-21 104949.png
영장철공소 앞 콘크리트 석벽 뒤로 살짝 보이는 남문 인근 체성[1]
파일:스크린샷 2025-01-21 105623.png
대성초등학교 뒤로 희미하게 남아있는 북측 체성[2]

3.3. 고성왜성

파일:144784840360_20151119.webp
고성왜성 잔존 석축
파일:스크린샷 2025-01-21 110658.png
영장철공소 맞은편 주차장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제1곽의 동측 석축[3]
파일:14100722052_ba8522bb62_o.jpg
주차장 석축 축조 상태
파일:14080663236_9106a82b40_o.jpg
제2곽의 남측 모서리[4]
파일:13917206158_47a449af10_o.jpg
주택 사이사이로 잔존하는 석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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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곽의 서측 모서리[5]
파일:13917250208_3901c520f2_o.jpg
모서리의 하단부 축조 상태
파일:14104256544_cde2fd5d3e_o.jpg
제2곽 석축 축조 상태

4. 여담

  • 한때 문화유산으로서의 명칭이 고성성지(固城城址)였다가, 고성성은 고성왜성을 칭하는 일본 측 기록이므로 읍성을 지칭하는 데에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어 고성읍성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사실 고성왜성 자체가 고성읍성을 성곽시설의 일부로 결합한 복합적인 유적이기 때문에 고성성이라는 표현 자체에는 어폐가 없지만, 단 2년밖에 쓰이지 않고 버려진 왜성보다는 이 지역에 수백 년간 있으며 중심지 역할을 했던 읍성을 주체로 삼는 것이 적절하기 때문에 합리적인 지적이라고 할 수 있다.

5. 관련 문서


[1]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읍 동외로127번길 93[2]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읍 서외리 23-4[3]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읍 수남리 63-2[4]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읍 수남리 90-14[5]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읍 성내로136번길 5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