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6-01-03 17:42:20

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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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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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경상북도 경주시 경상북도 포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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龜城邑城 | 龜城山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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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읍성
金海邑城
경상남도 남해군 경상남도 남해군 대구광역시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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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海邑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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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천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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蔚山邑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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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陽古邑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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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陽邑城
경상남도 고성군 경상남도 고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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固城古邑城
‡ 고성읍성
固城邑城
}}}}}}}}}
{{{#fff † : 멸실  ‡ : 멸실 위기  ? : 실체 불명  볼드체 : 윤곽 온전/복원   [도] : 도읍지  [산] : 산성 읍치  [신초] : 신라 초기 현성(=읍성)  [고도] : 고대 도시국가 초축  [감] : 감영 소재  [병] : 병영 소재}}}

1. 개요2. 상세3. 도시와의 차이점4. 읍성 목록
4.1. 군사분계선 이남
4.1.1. ㄱ4.1.2. ㄴ4.1.3. ㄷ4.1.4. ㅁ4.1.5. ㅂ4.1.6. ㅅ4.1.7. ㅇ4.1.8. ㅈ4.1.9. ㅊ4.1.10. ㅌ4.1.11. ㅍ4.1.12. ㅎ
4.2. 군사분계선 이북
4.2.1. ㄱ4.2.2. ㄷ4.2.3. ㄹ4.2.4. ㅁ4.2.5. ㅂ4.2.6. ㅅ4.2.7. ㅇ4.2.8. ㅈ4.2.9. ㅊ4.2.10. ㅍ4.2.11. ㅎ
4.3. 나무위키에 등재된 읍성 목록4.4. 관련 문서

1. 개요

읍성(邑城)은 고을의 주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관부(官府, 관청)와 민거(民居, 시가지)를 둘러서 쌓은 성곽이다.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한다.

2. 상세

산성(山城)과 함께 한국 성곽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고을의 중심이 되는 곳에 위치하여 내부에는 관아와 병영을 비롯한 지방 관아와 향교, 장터 등이 있어 행정, 군사, 교육, 상업 중심지였다.

읍성은 대규모 전란에는 방어 능력이 다소 떨어져 가까운 곳에 산성을 추가로 건설해 두는 게 일반적이었다.[1] 읍성들은 멀게는 삼국시대부터 지어지기 시작해서[2] 여러 왕조를 거쳐 보수하거나 신축되어 조선 시대에는 대부분, 중에 북방에 위치해 여진족을 방어해야 하거나 해안에 접해 왜구를 방어해야 하는 고을에 있었고, 내륙 지역의 군현에는 대부분 읍성이 없어# 전국적으로 300여 개의 읍성이 있었다.

다만 읍성이라는 용어는 조선 때부터 등장한다. 구조적으로는 한양도성도 읍성과 유사하나, 왕의 치소가 위치한 곳이기 때문에 도성(都城)이라고 구분지어 부른다. 일제강점기 동안 읍성철거령에 의해 대부분의 성이 철거됐으나, 경주읍성, 영천읍성[3] 등 일부 성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으며, 해미읍성, 고창읍성, 낙안읍성이 원형에 가깝게 남아 있다. 지방자치제의 전면 시행 이후 지자체마다 지역의 관광자원 개발과 지역 정체성 확보를 위해 읍성을 복원하는 사업이 이뤄지고 있고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올려 최종 등재시키려 노력 중이다.

3. 도시와의 차이점

전근대까지 서양에서 기원한 도시와 조선의 읍성 간 차이점은 확실히 명확한 편이다. 우선 형성 과정부터가 약간은 차이가 났다. 도시의 경우 두 가지 경우로 나눠졌는데, 고대 로마 시대 때부터 계획적으로 설계되거나 아니면 자연적으로 마을의 인구수가 증가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도시가 되었다. 읍성의 경우 그 중 전자와 같은 예이지만, 이 경우에도 기능 면에서는 크게 차이가 났다.

우선 도시의 경우 주로 상·공업이 발달하거나 아니면 해당 기능이 우선적이었으나, 읍성의 경우 본래 행정적인 기능만 고려된 채로 조성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비록 조선 중·후기가 되면서 상업이 발달하면서 추가적으로 상업적 기능도 추가되었지만, 상평통보 문서를 참고하면 알 수 있듯 동시기 화폐 사용이 보편화된 서양과는 달리 화폐의 보편화율이 25%에 미치지 못했다.

구조 측면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광장의 유무가 갈린다. 서양의 도시들은 멕시코 만류와 지중해의 영향을 크게 받는 유럽의 기후적 특성과 함께 전근대까지 건폐율인구밀도가 높았던 특징으로 인한 심리적 압박감 등으로 광장이 발달했다. 예컨대 고대 그리스폴리스들에는 아고라라는 광장이 존재했으며, 옛부터 정치·학문적 토론의 장이자 재래시장과 같은 경제적 활동의 중심지였다. 고대 로마 역시 포룸이라는 광장이 존재했다. 중세 도시의 경우 시민들의 정치활동보다는 시장이나 죄인의 처형장소 등의 기능만 남아 있었지만 그 대신 도시 지배층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공간으로서 성당교회시청, 길드 본부와 같은 공공 건물들이 광장을 중심으로 세워졌다.[4]

반면 조선의 읍성을 비롯한 동양권의 경우 이러한 광장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서양과는 정반대로 뚜렷한 사계절 및 고온다습한 여름을 가진 기후적 특징과 함께 특히 한국의 경우 도시의 낮은 인구 밀도가 주 요인이었고,[5] 무엇보다 사회적으로 상업보다는 농업을 중시되었으며, 상류층을 제외하면 정치적 활동이 제한적이었다.[6]

또한 후술되어 있지만 다층의 여러 개의 건물들이 벽을 맞대어서 폐쇄적인 유럽의 도시 구조와 달리 조선의 읍성 내의 건물들은 관청과 같은 공공건물이나 주택가 전부가 대개 낮고 분산되어 있었다. 조선 중기 때까지는 중·상류층 한정으로 2층 가옥도 있었으나 조선 후기에는 온돌의 보편화에 따라 대부분 단층 건물에 낮은 담장으로 구분되어 있었고, 또한 마당의 규모가 건물에 비해 상당히 커서 개방감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작은 광장의 역할을 했다. 유럽 도시의 광장들이 맡았던 경제적 기능도 조선 중기 때부터 점차 발달하기 시작한 사상(私商)이 객사 내의 마당이나 주막 주변 여유 공간에서 5일장을 열어 맡는 것이 일반적이었다.[7]

위치에서도 차이가 있다. 둘 다 강을 끼고 있는 것은 동일했지만, 서양의 경우 몇몇 도시를 제외하면 대체로 평야에 도시가 조성되는 것이 보편적이었고 몇몇 도시의 경우 아예 강이 없거나 언덕 위에 조성되는 경우도 있었으나 읍성들은 한반도의 지형상 산지가 많았기에 지척에 산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풍수지리배산임수에 입각한 위치 선정으로 인해 대체로 북쪽으로 산이 남쪽으로 강이 끼고 있으며, 심지어 대구읍성처럼 분지 지형에 읍성이 자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야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기 때문이다.[주의1] 반면 유럽의 경우 국가·지형별로 도시의 위치가 제각각이었다. 우선 유럽은 상기했듯 기후적으로 난류의 영향을 받기에 위치가 어떻게 되든 계절에 따른 불편함을 느끼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알프스 산맥 이북의 도시들처럼 배산임수의 지형이더라도 산이 남쪽으로 위치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심지어 로마와 부다페스트처럼 언덕 위에 도시가 조성되는 경우가 있었다.[9]

근접한 하천의 특성에도 차이가 있는데, 서구권의 하천은 대체로 강의 중·하류 지역이 여러 척의 나룻배가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넓으며 무엇보다 초기에는 강과 접하고 있다가 도시가 확장되면서 도시의 영역이 강의 반대편까지도 확장되었다.[10] 그래서 수운을 위하여 나룻배가 도시 안에 정박할 수 있도록 도시 내에 항만 구역이 있었는데(#), 이는 당시 전쟁이 빈번했던 유럽 지역의 정치적 요인과 중심지의 인프라와 시장 따위를 활용하려는 경제적 요인으로 말미암아 여러 기능이 멀리 분산된 것보다는 한 곳으로 집약되는 현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중세 중기 파리 복원도 #16세기 메시나 #17세기 쾰른

반면 읍성의 경우 대개 여름철 폭우로 인한 하천의 범람을 우려해 강안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진 편이었다.[11] 수운 자체는 조선에서도 중요했지만 이를 상업적으로 적극 활용해서 이윤을 추구하지는 않다보니 나루터나 포구와 읍성 간에 다소 거리가 있었으며, 읍성 내에 하천이 있더라도 대개 실개천인 경우가 허다했고 수문으로 막아서 본류와는 바로 이어지지 않았다. #강가형#읍성형1#읍성형2 #해안형

주거에서도 차이가 났다. 전근대 이전까지의 서양 도시 주거들은 대체로 방어벽으로 인한 비좁은 성내 면적으로 인해 건축 부지가 상대적으로 넓지 않는 대신 토지 이용률을 높이기 위해 면적은 좁지만 다층건물을 세웠고, 동양과 다른 해앙성 기후 덕에 건폐율이 높은 합벽(combined wall) 구조가 기본이 되었다.[12] 고대 로마에는 아파트의 시초인 인술라와 귀족들의 저택인 도무스가 있었고, 중·근세의 서·남유럽에서는 주로 폭이 좁은 세장형 주택들이 보편적이었다. 파리의 경우 14세기 중반부터 상류층을 위한 도시 환경에 맞는 다양한 구조의 저택이 지어지기 시작했고, 이탈리아 또한 도무스를 본뜬 사각형 중정이 있는 저택인 팔라초를 짓기 시작했다.#이탈리아 피렌체의 서민주거지역의 형성과 주거형식의 변화 #이탈리아, 르네상스건축의 특징 팔라초의 발전 #르네상스 시대의 팔라초(palazzo)의 공간 구성 특성에 관한 연구 #르네상스 이후 파리 주거의 변화 #위키피디아 호텔

하지만 읍성의 경우 대체로 단층 건물이 주류로, 가사규제 등으로 인해 계층별로 차이가 있지만 건축부지가 건물 면적에 비해 넓은 것과 근·현대 이전의 서구의 도시 주거와 달리 담장으로만 구별이 되어 건폐율이 낮은 것이 특징인데, 대체로 읍성 밖의 주거 건축과 대동소이했다. 이는 겨울이 건조한 특성상 화재가 옆집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 효과를 노린 것도 있다.[13]

그래도 조선 중기까지는 2층 건물도 있었지만 가난한 평민들은 대개 단층 가옥에서 살았고, 2층 가옥에서 사는 경우에도 겨울이 추운 환경이다보니 보통 무더운 여름철에만 2층에 거했다. 가사규제령 등으로 인해 시대가 흐르면서 2층의 높이가 낮아지기 시작해 나중에 일종의 수납 공간인 다락으로만 남게 되었으며, 경신대기근을 동반한 소빙하기의 영향으로 인해 온돌이 전 계층으로 보편화됨에 따라 조선 후기의 가옥들은 거의 단층으로 전환되었다. #고려시대 상류층의 주거 공간[14] #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합벽구조는 화재에 취약하고 단열성이 떨어지는 점, 일조권과 같은 권리 보장과 녹지 확보와 같은 도시 환경 개선에 부적합한 점 등을 이유로 아예 법으로 금하고 있다.

17세기 이후부터 도성인 한성부를 제외한 사회적으로 최상위층이었던 사족 집단들은 동일한 가문 구성원들과 함께 읍성 밖에서 집성촌을 형성하여 향촌의 토지를 경영했고, 향리직을 세습하는 지방의 중인층 이하의 계층들만 읍성에서 살았다. 또한 중인을 비롯한 일반 양인들은 경제적으로 부유하더라도 조선 초 세종 시기에 반포된 가사규제령으로 인해 정해진 규격·구조·장식을 갖춘 집만 지을 수 있었다. 그나마 사회·문화적으로 그러한 규제가 형해화된 조선 말에 들어서야 읍성 내에 대형 저택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러한 이유들이 작용하여, 도시와 읍성은 인구밀도와 도시화율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일례로 중세 당시의 도시들은 대체로 동양과 비교하면 도시 내의 면적이 비좁은 대신 인구 밀도가 높아 대도시는 3㎦(300만㎥)~6㎦(600만㎥), 중소도시 0.2㎦(20만㎥) 이내, 주거지역 한구당 1인당 13.5~20㎡, 비주거지역은 평균 210㎡였다. 인구 수는 적게는 천 명 수준이었지만 파리 같은 대도시의 경우 약 10만 명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초기 근대(근세)로 넘어가면서 인구 수가 크게 증가해 1600년대 220,000명이 되었고, 동시기의 런던 또한 이에 근접한 인구수를 자랑했으며 베네치아 공화국의 수도였던 베네치아 또한 이에 못 미치긴 했지만 인구수가 140,000명이었고, 19세기로 진입하면서 대도시의 인구수는 100만 명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그 외의 지방 도시의 경우에도 중·근세를 거쳐 보통 도시 인구수가 수만 명이 보통으로 당대 기준으로 중남미와 중동 쪽을 포함하면 그나마 도시화율이 높은 편이었다. 더욱이 중세를 기점으로 도시와 농촌이 행정적·정서적으로 분리되었기에 비교적 도시와 농촌의 인구를 분리해서 조사하기 쉬웠다.

반면 읍성의 경우 내부 면적이 넉넉했지만 반대로 인구 밀도가 상대적으로 낮았다. 읍성의 면적은 적게는 60,000㎥에서 크게는 150,000㎥로 읍성 중 가장 작은 곳이 2만㎥인 진해읍성이며, 가장 넓은 곳이 내성 한정으로 8.5㎦인 개성, 북성+내성 기준으로 4.3㎦인 평양, 1.29㎦인 수원화성 등이 있다. 아쉽게도 읍성 내에 살던 정확한 인구수를 아는 것은 불가능 한데, 이는 조선의 인구 조사가 국가에서 직접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고을의 주민들이 알아서 신고하는 구조였기에 세금을 피하려고 호구 조사에 일부러 응하지 않은 사람들이 매우 많았기 때문이다.[15]

더욱이 서구권과 달리 도시와 농촌이 법적으로도[16] 행정적으로도 분리되지 않았던 조선은 인구수를 연구하려는 학자들 입장에서 제대로 확인하는 것이 힘들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읍성에 살던 인구수는 추정에만 근거할 수 밖에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농촌부의 인구수를 합한다고 해도 당대의 유럽의 도시와 비교할 때 도시화율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이다.#

심지어 성벽의 역할조차 다르다. 단적으로 조선의 읍성과 영국의 버러, 독일의 부르크를 비교하면 비슷해보이면서도 다른데, 성벽을 두르고 있고 도시 발달에 따라 자체적인 방어 시설로서의 기능이 무력화되었다는 점에서는 같으나, 처음부터 번화한 거주지의 방어를 위한 시설이었던 버로우나 부르크와는 달리 읍성은 본래 치소 소재지의 방어 겸 행정구역 구분을 위해 고안되었다가 도시화한 읍의 경우 그 부속물이 된 것이다. 이는 조선 시대의 읍이라는 개념 자체가 자연스럽게 사람이 모이고 시장이 들어서면서 나타난 대규모 거주지가 아니라 조성되거나 선별된 행정거점에 가까웠고, 방어체계도 피난처 겸 지역방어 거점으로서 산성에 의지하였기 때문이다.

4. 읍성 목록

철거된 읍성도 포함하는 목록이다.

4.1. 군사분계선 이남

4.1.1.

4.1.2.

4.1.3.

4.1.4.

4.1.5.

4.1.6.

4.1.7.

4.1.8.

4.1.9.

4.1.10.

4.1.11.

4.1.12.

4.2. 군사분계선 이북

4.2.1.

4.2.2.

4.2.3.

4.2.4.

4.2.5.

4.2.6.

4.2.7.

4.2.8.

  • 장연읍성 - # - 황해남도 룡연군 고현리 불타산 남쪽 기슭에 위치, 국가지정문화재보존급 제260호. 북한 치하에서 룡연읍성이라 개칭됐다.
  • 정주읍성(정주성)[110]
  • 종성읍성[111]

4.2.9.

4.2.10.

4.2.11.

4.3. 나무위키에 등재된 읍성 목록

4.4. 관련 문서


[1] 고구려 국내성환도성, 평양성대성산성, 백제 한성, 부여성, 신라 서라벌명활산성, 조선 한양과 남한산성 등 역대 왕조의 수도들도 평지에는 도성, 주변 산에는 산성을 지어 2~3성의 방어체계를 가지고 있다.[2] 심지어 영남지방에는 이때 신라가 지은 것들이 아직도 최소 두곳은 남아있다.[3] 서측 성벽 일부가 그 위에 지어진 낡은 주택들의 축대로 쓰이고 있으며, 부분적으로 남은 남측 성벽 역시 일대 건물들의 축대로 쓰이고 있다. 동측 성벽은 아예 남아 있지 않으나, 그 터에 시멘트로 축대를 세우고 그 위에 교회를 지은 덕분에 성벽의 흔적이 조금 보인다. 북서측은 시에서 시립체육관을 지으며 땅을 팔 때 성벽 구간만 거의 파지 않은 덕분에, 노출된 암반들로 그 위치를 가늠할수 있다.[4] 다만 참여 방식이 변화하면서 상인길드 등이 주도하는 현상이 나타났을 뿐, 시민들의 정치 참여가 아예 없어진 것은 아니다. 도시의 자치권 투쟁과 함께 코뮌이 탄생할 때도 도시 상류층부터 하층 서민까지 다양한 계급이 참여했다.[5] 한반도의 인구 밀도 자체는 낮았던 적이 없다. 다만 도시로의 인구 밀집 성향, 즉 도시화율이 약했다. 다른 동아시아권의 도시화율도 조선보다는 높을지 몰라도 서양보다는 상당히 낮아서 농촌 거주 인구가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6] 그래서 일본 같은 경우 비교적 해양성 기후의 특징이 강하기는 하지만 여기서도 광장 문화는 발달하지 못했다.[7] 특히 많은 인구가 밀집되어 있던 수도 한성의 경우, 아예 불법 건축물이라 할 수 있는 가가(假家)를 만들어 거기서 상업 활동을 이루어졌는데, 지나치게 많아진 탓에 한성부 내의 도로가 극악으로 좁아지면서 1896년 도시개조사업을 하기 전까지 대로가 아닌 이상 여러 사람이 함께 다니기 힘들 정도였다.[주의1] 분지의 보편적 인식이 그렇지 한반도 분지들은 실제로는 사방에서 바람이 산을 타고 푄 현상을 일으키는 탓에 여름이 되면 매우 덥다. 물론 철원군의 예처럼 겨울이 되면 매우 춥다. 춘천시 역시 여름엔 엄청나게 덥고 겨울엔 엄청나게 춥다. 특히 대구의 경우 구름이 산을 통과하지 못하고 빗겨가거나 분지 지형 특성상 대류가 어려워 구름이 발생하기 어렵기에 강수량도 상대적으로 적을뿐더러 대프리카라는 별명이 생길만큼 여름에 엄청나게 덥기로 유명하다.[9] 사실 한반도가 산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인들이 '산'이라고 여기는 곳들, 특히 뒷산 등 거주지 근처의 고지대들은 실제로는 '언덕'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 # 반대로 유럽 쪽은 얼핏 '평야'처럼 보이는 곳이지만 언덕에 해당하는 곳들도 많다. 전근대에는 유럽이든 아시아든 간에 평야는 구름을 막는 지형이 없어 비가 안 와서 건조하다든가 높낮이 없이 평탄하다 보니 배수가 잘 안 되어 늪지가 생기고 홍수가 나기 쉬운 등 생각보다는 살기 나쁜 경우가 많았으며, 평야에 위치한 거주지들은 오랜 개간과 확장으로 후대에 조성된 경우가 많다.[10] 보통 최초에는 구도시와 신도시였다가 인구가 불어나면서 연담화된 경우에 해당한다. 예컨대 부다페스트는 원래는 '부다'와 '페스트'라는 별개 도시였다. 웬만하면 같은 강안 쪽의 옆이나 내륙 쪽에 신시가지가 조성되었으나, 이들도 시간이 흐르자 그 사이 평지를 메꾸고 하나의 도시 또는 광역도시권으로 통합된 점은 동일하다.[11] 부산을 예로 들자면 원래 조선시대에 동래구가 중심지였으며 부산이란 지명은 본래 일개 진성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 후 부산이 경제적으로 성장하면서 지금과 같은 지명의 위치가 역전된 것이다.[12] 이러한 합벽 구조는 일본의 성 아래 마을의 마찌야(町家)나 중국의 사합원倒座房, 묘족의 마을 가옥 등 좀 더 상업에 개방적이었던 지역들에서 전통 주거가 남아 있는 구도심이라면 대체로 찾아볼 수 있다.[13] 실제로 유럽이나 일본의 도시들은 화재 발생 시 초기에 진압하지 못하면 도시 전체로 번져 말 그대로 '대화재'(Great Fire)가 되는 경우가 빈번했는데, 조선에서는 그런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유럽과 일본의 경우 화재 예방 및 방화범에 대한 처벌을 위하여 법률을 제정하고 각종 소방 장비를 개발하거나 방화지대를 설정하고 목조 건물을 벽돌 건물로 교체해나가는 등 도시 내의 화재를 예방하려고 부단히도 노력했다.링크[14] 링크에 고려시대라고 표기되어 있지만 조선 중기까지도 연속되었다.[15] 그렇다 보니 조선 조정에서도 세종 시기에 세종지리지를 편찬할 때 조정의 영향 하의 동원 가능한 인구 수는 열의 한둘 정도라고 스스로 인정한 바가 있었다.[16] 특히 중세 유럽 도시들은 시민이 되면 자유민 신분이라는 점, 도시공동체가 자치권을 지니고 도시법과 시의회를 둔다는 점 등에서 특권적 거주지였다. 농노가 도시로 도망쳐서 1년이 지나면 자유민이 된다는 이야기가 유명한데, 첸수알레스(censuales)처럼 아예 정식으로 대가를 치르고서 도시민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강릉]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소재[강진]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소재[고성]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 소재[거제] 경상남도 거제시소재 고현성이라고도 한다.[사천] 경상남도 사천시 소재[광양] 전라남도 광양시 소재[포항]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남쪽 언덕 소재 신라읍성 겸 산성으로 부근에 방어용 북미질부성(역시 신라성) 존재함[당진] 충청남도 당진시 소재[대구] 대구광역시 소재[제주] 제주특별자치도 소재[예산] 충청남도 예산군 소재[예산] [부산] [당진] 충청남도 당진군 소재[무안] 전라남도 무안군 소재[고창] 전라북도 고창군 소재[밀양] 경상남도 밀양시 소재[보령] [보성] [부안] [서천] 충청남도 서천군 소재[사천] 경상남도 사천시 소재[서천] [합천] 경상남도 합천군 소재[서산] 충청남도 서산시 소재[삼척]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소재[구미] 경상북도 구미시 소재[성주] 경상북도 성주군 소재[화성] 경기도 화성시 소재[수원]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소재[순천] 전라남도 순천시 소재[안동] 경상북도 안동시 소재[안성] 경기도 안성시 소재[안산] 경기도 안산시 소재[양산] 경상남도 양산시 소재[양양]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소재[울산] 울산광역시 울주군 소재[포항] 경상북도 포항시 소재[영광] 전라남도 영광군 소재[창녕] 경상남도 창녕군 소재[영암] 전라남도 영암군 소재[영천] 경상북도 영천시 소재[영주] 경상북도 영주시 소재. 구한말까지 위의 영천과 한자가 다른 영천이었다.[군산]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옥구읍 소재[창원] 경상남도 창원시 소재[의령] 경상남도 의령군 소재[군산]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임피면 소재[경주]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양월리(창마을) 소재 신라읍(현)성[포항] 경상북도 포항시 장기면 소재[장흥] 전라남도 장흥군 장흥읍 소재[전주] 전라북도 전주시 소재[제주] [제주] [진도] 전라남도 진도군 소재[진주] 경상남도 진주시 소재[주의2] 읍성으로 분류되나 사실 병영성으로 진주 목사의 치소인 동헌과 객사는 진주성 밖 대사지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다.[장성] 전라남도 장성군 진원면 소재. 임진왜란으로 인해 지역기반마저 무너져 장성도호부에 병합되었다.[창원]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진동면 소재[창원] 경상남도 창원시 소재[용인]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읍 소재[철원]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철원읍 소재[청도] 경상북도 청도군 소재[청주] 충청북도 청주시 소재[충주] 충청북도 충주시 소재[포항] 경상북도 포항시 청하면 소재[함안]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소재[태안] 충청남도 태안군 소재[영주] 경상북도 영주시 소재[하동]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소재[서천] [함양] 경상남도 함양군 소재[함평] 전라남도 함평군 함평읍 읍내리 소재[해남] 전라남도 해남군 소재[서산] 충청남도 서산시 소재[홍성] [화천] 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 소재[창원]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소재[고흥] 전라남도 고흥군 소재[포항] 경상북도 포항시 흥해읍 소재[96] 평안남도[97] 함경북도[98] 함경북도[99] 함경북도[100] 함경북도[101] 강원도[102] 함경남도[103] 함경북도[104] 함경북도[105] 평안북도[106] 함경북도[107] 함경남도[108] 양강도[109] 함경북도 김책시 소재. 본래 성진진성이었으나 성진군 설치로 개칭됨.[110] 평안북도[111] 함경북도[112] 강원도[113] 자강도[114] 강원도[115] 평양시[116] 황해남도[117] 황해북도[118] 함경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