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수군의 수영 | |||||||
삼도수군통제영 휘하 수영 | 삼도수군통어영 휘하 수영 | ||||||
경상좌수영 | 경상우수영 | 전라좌수영 | 전라우수영 | 충청수영 | 경기수영 | 황해수영 |
경상우도수군절도사영 삼도수군통제영 慶尙右道水軍節度使營兼三道水軍統制營 | |
경상우도수군절도사영의 관할 수역. | |
<colcolor=#fff> 위치 | <colbgcolor=#fff,#191919>경상도 |
지휘 | 수군절도사→수군통제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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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상우도수군절도사영(慶尙右道水軍節度使營), 줄여서 경상우수영(慶尙右水營)은 조선 시대 경상도의 서쪽에 존재하던 수군절도사영이다. 경상우수영은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 통영)을 겸임했다. 지휘관은 정3품 당상관인 수군절도사이다. 조선의 경상우도[1] 해안을 방어하는 경상우수군의 본영으로 현재의 창원, 거제, 통영이 차례로 수영소재지였으며, 오늘날 통영시의 이름은 이 삼도수군통제영에서 유래한 것이다.2. 상세
경상우도 지역은 고대부터 서해와 일본으로 가는 중요한 항로였다. 변한 ‧ 가야 시절 김해에서 생산된 철은 낙랑 ‧ 대방으로 갈 땐 거제도와 통영 사이 해협인 견내량을 지나 서진하고 일본으로 갈 땐 거제 동부 연안이나 견내량을 지나 거제 서부 연안을 따라 남하하다 거제도 남단에서 해류를 타고 대마도로 건너갔다.[2] 고려 ‧ 조선 때도 이곳은 낙동강-견내량을 통과해 개성 ‧ 한양으로 가는 조운선이 통과하는 중요한 길목이었고 이를 노리는 일본의 왜구 및 정규군의 침입 루트 역시 주로 거제도 남단을 통해 이루어졌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의 시작을 알린 1350년 충정왕 2월의 침입 역시 마찬가지였다.[3]또한 원나라의 일본원정 때 고려 수군이 출정했던 지역이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을 격퇴한 고려 수군의 주둔지이자 대마도 정벌의 출정지로 조선이 건국되고 태종이 수군을 재편성하며 경상우수군이 창설되었다.
이런 이유로 경상우수군은 가장 강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법제상으로 경상 우수영은 약 75척 ~ 100여 척의 전선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는 전라좌수영과 전라우수영의 함선을 합친 수(약 50척 ~ 60여척)보다 더 많다.
또 고려 통신사나 전기 조선통신사가 일본으로 건너갈 때는 해안을 따라 최대한 남서쪽인 거제 지세포나 다대포에서[4] 출발해 대마도 북단에 도착하는 연안항로를 이용했기 때문에 사절단이 경상우수영 예하 진영에서 머물렀다.
임진왜란 때는
임진왜란의 휴전 협정 기간 동안 권준이 임명됐다가,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이후 사직하였다. 이후 배설이 임명되었다가 명량 해전 직전 도주하자, 해전 이후 무의공 이순신이 후임 경상우수사가 된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경상 우수사가 삼도수군통제사를 겸하여 오늘날의 해군본부 격인 삼도수군통제영(통영)의 역할도 겸하였다. 1894년 갑오개혁 때 해산되었다.
3. 수영 소재지
1415년 웅천현 제포[6] 창설 → 회원현 합포[7] → 거제현 산련포[8] → 1418년 거제현 탑포[9] → 1465년 거제현 오아포[10] → 1593년 거제현 한산도 두억포(통제영과 통합)[11] → 1599년 거제현 오아포 → 1604년 거제현 두룡포[12] → 1894년 9월 폐지4. 관할지역 및 예하 관포
4.1. 관할지역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구역 지역부터 낙동강 지역까지를 관할 지역으로 하고 있다. 조선 개국 초기 일원화 된 수군 지휘체계를 가지고 있던 경상도 지역은 1413년 낙동강을 경계로 낙동강 서측(경상우도)에 수군도절제사를 두면서 경상우수영이 신설되었다.조선 초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경상우수영의 편제는 거제 오아포에 경상우수영이 있었으며, 총 8개의 진(가배량, 제포, 영등포, 견내량, 번계, 구량량, 적량, 노량)이 위치해 있었다.
이후 세조 시대 진관체제의 정착으로 개편이 이뤄지는데, 개편된 편제는 1개의 첨사진(제포), 9개의 만호진(옥포, 평산포, 지세포, 영등포, 사량, 당포, 조라포, 적량, 안골포)으로 이뤄졌다.
중종시기 삼포왜란과 사량진왜변으로 인해 2차 편제개편이 이뤄지며, 2차 개편을 통해 기존 제포의 첨사진이 만호진으로 격하되고, 서측에 미조항, 동측에 가덕에 2개의 첨사진과 12개의 만호진(평산포, 제포, 영등포, 사량, 당포, 적량, 천성포, 가배량, 옥포, 지세포, 조라포, 안골포)으로 편성되었다.
임진왜란 시기에는 수군이 편성된 고을이 포함된 8관(하동, 곤양, 남해, 사천, 고성, 진해, 거제, 웅천), 16포(가덕진, 천성포, 제포, 안골포, 영등포, 율포, 옥포, 조라포, 지세포, 가배량, 당포, 사량, 소비포, 적량, 미조항, 평산포)로 구성되었다.
왜란 이후 경상우수영이 삼도수군통제영과 겸영되면서 첨사진이 2개에서 4개(미조항, 가덕진, 적량, 귀산)로 증가하였고, 11개의 만호진(평산포, 제포, 영등포, 사량, 당포, 천성보, 가배량, 옥포, 지세포, 조라포, 안골포), 5개의 별장, 2개의 권관이 설치되면서 폐영될 때까지 이 체제가 유지되었다.
4.2. 예하 관포
<신증동국여지승람 기준>- 신증동국여지승람 편찬 시기의 진포 위치로 임진왜란 시기와 동일하지 않다
- 11관
- 창원도호부 : 관할관직(창원부사)
- 진주목 : 관할관직(진주목사)
- 김해도호부 : 관할관직(김해부사)
- 하동현 : 관할관직(하동현감)
- 거제현 : 관할관직(거제현령)
- 고성현 : 관할관직(고성현령)
- 곤양군 : 관할관직(곤양군수)
- 남해현 : 관할관직(남해현령)
- 웅천현 : 관할관직(웅천현감)
- 진해현 : 관할관직(진해현감)
- 사천현 : 관할관직(사천현감)
- 10포
- 영등포진(만호진) : 관할관직(영등포만호)
- 옥포진(만호진) : 관할관직(옥포만호)
- 조라포진(만호진) : 관할관직(조라포만호)
- 지세포진(만호진) : 관할관직(지세포만호)
- 사량진(만호진) : 관할관직(사량만호)
- 당포진(만호진) : 관할관직(당포만호)
- 평산포진(만호진) : 관할관직(평산포만호)
- 제포진(첨사진) : 관할관직(제포첨사)
- 안골포진(만호진) : 관할관직(안골포만호)
- 적량진(만호진) : 관할관직(적량만호)
- 기타
- 율포보(권관 지휘 / 거제현 소속)
- 가배량수(권관 지휘 / 고성현 소속)
- 소비포수(권관 지휘 / 고성현 소속)
- 곡포보(권관 지휘 / 남해현 소속)
- 상주포보(권관 지휘 / 남해현 소속)
- 삼천진(권관 지휘 / 진주목 소속)
<임진왜란 전후>
- 8관
- 하동현
- 거제현
- 고성현
- 곤양군
- 남해현
- 웅천현
- 진해현
- 사천현
- 현 하동군 지역(일부 제외)
- 관할관직 : 하동현감
- 현 거제시 + 통영시 지역
- 관할관직 : 거제현령
- 현 고성군 지역
- 관할관직 : 고성현령
- 현 사천시 서부 + 하동군 동부 지역
- 관할관직 : 곤양군수
- 현 남해군 + 사천시 일부 지역
- 관할관직 : 남해현령
- 현 창원시 진해구 지역
- 관할관직 : 웅천현감
- 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일부 지역
- 관할관직 : 진해현감
- 현 사천시 일부 지역
- 관할관직 : 사천현감
- 16포
- 가덕진(첨사진) - 웅천현
- 천성포(만호진) - 웅천현
- 제포(만호진) - 웅천현
- 안골포(만호진) - 웅천현
- 영등포(만호진) - 거제현
- 율포(권관진) - 거제현
- 옥포(만호진) - 거제현
- 조라포(만호진) - 거제현
- 지세포(만호진) - 거제현
- 가배량(만호진) - 거제현
- 당포(만호진) - 고성현
- 사량(만호진) - 고성현
- 소비포(권관진) - 고성현
- 적량(만호진) - 남해현
- 미조항(첨사진) - 남해현
- 평산포(만호진) - 남해현
- 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도 북쪽 지역
- 관할관직 : 가덕첨사
- 16C 중종시기에 신설된 진으로 임진왜란 이후 안골포 지역으로 위치가 조정되었다.
- 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도 남서쪽 지역
- 관할관직 : 천성포만호
- 가덕진과 함께 중종시기 신설된 진이며, 임진왜란 이후 안골포 지역으로 위치가 조정되었다가 효종 대 최초 지역으로 조정 되었다.
- 현 창원시 진해구 지역
- 관할관직 : 제포만호
- 최초 창설시기부터 만호진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이후 첨사진으로 격상되었다가 삼포왜란 이후 다시 만호진으로 격하되었다.
- 현 창원시 진해구 지역
- 관할관직 : 안골포만호
- 현 거제시 장목면 일대
- 관할관직 : 영등포만호
- 거제도 동북방에서 설치된 진으로, 진해지역 해안선과 마주보고 있는 전략적 위치에 설치되었으나, 임진왜란 이후 비중이 축소되어 거제도 서쪽 지역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 현 거제시 장목면 일대
- 관할관직 : 율포권관
- 영등포와 옥포 사이에 설치된 진으로, 임진왜란 이후 만호진으로 격상되었으나, 다시 권관진으로 격하된 후, 거제도 남서쪽 지역으로 이전하였다.
- 현 거제시 옥포동 일대
- 관할관직 : 옥포만호
- 현 거제시 일운면 일대
- 관할관직 : 조라포만호
- 옥포와 지세포 사이에 설치된 진으로, 임진왜란 이후 옥포 북쪽 지역으로 이전하였다.
- 현 거제시 일운면 일대
- 관할관직 : 지세포만호
- 임진왜란 이후 옥포 인근으로 이전했다가 1651년 다시 최초 설치 지역으로 이전하였다.
- 현 거제시 동부면 일대
- 관할관직 : 가배량만호
- 최초 견내량 인근에 설치되었다가, 세종시기 옥포 인근으로 이전하였으며, 임진왜란 이후 경상우수영이 삼도수군통제영과 결합하며 위치를 옮기게 되자, 경상우수영이 있던 오아포 지역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 현 통영시 산양읍 일대
- 관할관직 : 당포만호
- 현 통영시 사량면(사량도) 일대
- 관할관직 : 사량만호
- 현 고성군 하일면 일대
- 관할관직 : 소비포권관
- 최초 사량진이 잠시 이전했던 지역에 설치된 진으로, 임진왜란 이후 잠시 거제 지역으로 옮겨졌다 다시 원 지역으로 이전하였다.
- 현 남해군 창선면(창선도) 일대
- 관할관직 : 적량만호
- 현 남해군 미조면 일대
- 관할관직 : 미조항첨사
- 중종 이후 전라좌수영 지역으로 넘어가는 구간을 방어하기 위해 설치된 진이다.
- 현 남해군 남면 일대
- 관할관직 : 평산포만호
5. 관련 문서
[1] 서부 경상도[2] 부산에서 쓰시마로 직항하는 항로는 17세기부터 활성화 된다. 이는 대한해협의 강한 해류와 편서풍으로 인해 대마도에 도달하지 못하고 동해로 떠내려가 버리는 위험이 커서 대마도와 가까우면서도 최대한 남쪽인 거제 남단에서 출발하는게 안전했기 때문이다. 또 해류를 타고 가기 때문에 항해 속도도 빨랐다.[3] 예외적으로 임진왜란의 경우는 일본군의 전략적 목표가 한양을 점령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북상하기 좋은 부산에 상륙한 것이다.[4] 현재 거제시 남부면 다대리[5] 다만 이는 왜군에게 전선이 넘어가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함도 있었다.[6] 현 지명 창원시 진해구 제덕동[7] 현 지명 창원시 마산합포구[8] 현 지명 거제시 거제면 법동리 산달도[9] 현 지명 거제시 동부면 탑포리[10] 현 지명 거제시 동부면 가배리. 탑포와 오아포 두 포구는 직선상으로 3km 떨어져있다. 그런데 1452년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에서는 이미 오아포가 경상우수영으로 나온다.[11] 현 지명 통영시 한산면 두억리[12] 현 지명 통영시 문화동, 1618년 고성현 두룡포로 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