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8 05:42:41

충청수영

파일:조선군 좌독기_White.svg 조선 수군 수영
삼도수군통제영 휘하 수영 삼도수군통어영 휘하 수영
경상좌수영 경상우수영 전라좌수영 전라우수영 충청수영 경기수영 황해수영
충청도수군절도사영
忠淸道水軍節度使營
충청도수군절도사영의 관할 수역.
<colcolor=#fff> 위치 <colbgcolor=#fff,#191919>충청도
지휘 수군절도사

1. 개요2. 역사3. 관할구역 및 예하 관포
3.1. 관할지역3.2. 예하관포
4. 문화재로서의 충청수영성5. 여담

[clearfix]

1. 개요

충청도수군절도사영(忠淸道水軍節度使營) 또는 충청수영(忠淸水營)은 조선시대 수영 중에서 충청도에 존재하던 수영이다. 현재의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에 위치했다.

2. 역사

1509년에 성곽을 축조하였는데, 길이 3,174척(1,650m), 높이 11척, 우물 4, 못 1, 옹성 5, 성문 5이었다. 성내에 있던 건물은 동헌, 아사, 영보정 등 33동 312간에 달하였다. 임란부터 18세기 중반 영조 대에 이르기까지 북문과 원산창, 군향고, 관노비청, 교방, 십물고, 현고, 양무고, 대주원과 진휼고 등 성내의 많은 영사와 창고등이 건축되고 보수되어왔다. 이러한 내력이 충청수영 사례집에 개략 기록되고는 있으나 그 규모와 위치, 건물용도, 건축 과정을 주도한 장인, 공역에 투입된 공장수나 물목 등에 관한 의궤가 없고 다만 수영을 운영해온 재정적 상황을 밝힌 사례들로 구성되어 있다.

충청수영은 왜란과 같이 남부에서 침입이 발생할 경우, 삼도수군통제영에 소속되어 통제사의 지휘를, 호란과 같이 북부에서 침입이 발생할 경우에는 삼도수군통어영에 소속되어 통어사의 지휘를 받았다. 상황에 따라 상급 부대가 바뀌었던 셈. 19세기 들어 이양선이 많아지는 시점에 와서는 이양선을 감시하는 역할도 맡았다.

임진왜란 시기 충청수사들은 남해안보다는 경기도 방어를 주요 임무로 맡았기 때문에 임진왜란기에 충무공 이순신의 주전장인 남해바다에서는 어찌보면 당연히 전라수군이나 경상수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눈에 많이 띄진 않았으나, 그래도 나름 여러 전투에 참전했다. 충청 수사 정걸(丁傑)은 이순신의 한참 선배였으나, 전쟁 초기 전라좌수영의 조방장으로 이순신 휘하에 소속되어 있었고, 옥포 해전, 한산도 대첩, 부산포 해전에 참전했으며, 1593년에 무려 79세의 나이로 충청 수사에 임명된다. 충청수사로 보임된 뒤에는 행주대첩과 서울 탈환전에 참여했다. 사실 행주대첩도 충무공 이순신은 마치 정유재란 당시의 순천왜성 공략 때처럼 수륙협공을 주장했으나, 조정에서는 들어주지 않았고, 충청수영만 합류하여 정걸이 보급 위주로 활약하여 공을 세운다. 이후의 충청수사인 선거이(宣居怡) 역시 이순신 휘하에서 둔전을 주로 하고 한산도대첩과 장문포 해전에서 공을 세웠던 인물로, 충청병사에 이어 충청수사로 임명된다. 이후 충청수사가 되는 최호(崔湖)는 함경도에서 북관대첩 이후 함경도에서 소탕전을 하다가 충청수사가 되는데, 현재의 충청남도 지역이 이몽학의 난의 주전장이 되기 때문에, 홍가신과 함께 이몽학의 난 진압에 주력했다. 이후 정유재란이 발발한 다음에는 2대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원균 휘하에서 칠천량 해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한다. 그 이후의 충청수사는 불멸의 이순신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이순신의 부관이자 임진왜란순천 부사였던 권준이 후임으로 임명되었다.

3. 관할구역 및 예하 관포

3.1. 관할지역

충청도 지역 해안을 관할구역으로 하고 있으며, 상세하게는 남단의 전라우수영과 경계구역인 금강하구부터 북단의 경기수영과 경계구역인 평택현 지역까지를 관할하였다.

초기에는 5개의 진(소근포, 당진포, 파지도, 마량, 서천포)이 설치되어 운영되었으며, 이후 세종실록지리지에는 8개의 진(대진, 고만량, 우도도, 소근포, 당진포, 파지도, 마량, 서천포)이 운영된 것으로 기록된 것을 볼 때 이후 관할 진들의 개편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16c에 들어서 다시 한 번 예하 관포의 개편이 이뤄진 것으로 보이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5개의 진(마량진, 서천포, 소근포, 당진포, 파지도)이 기록된 것을 볼때 임진왜란 전후로는 5개의 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8c 연려실기술에 기록된 충청수영은 총 5개의 진을 관리하고 있으며(소근포, 안흥진, 평신진, 마량진, 서천포), 북쪽에 설치된 당진포, 파지도의 진이 없어지고, 태안군에 안흥진이, 서산군에 평신진이 설치되어 운영된 것으로 보인다.

3.2. 예하관포

<세종실록지리지> 기준(8개 진)
수군 도안무 처치사(水軍都安撫處置使)는 보령현(保寧縣) 서쪽 대회이포(帶回伊浦)에 머무르며,【거느린 것이 중대선(中大船)이 6척, 중맹선(中孟船)이 18척, 쾌선(快船)이 4척, 군사 없는 중대선이 6척, 추왜별맹선(追倭別孟船)이 6척, 선군(船軍)이 1천 7백 66명, 선직(船直)이 1백 14명이다. 】
좌도 도만호(左道都萬戶)는 태안군(泰安郡) 서쪽 오근이포(杇斤伊浦)에 머무르고,【거느린 것이 병선(兵船)이 11척, 추왜별선(追倭別船)이 2척, 무군선(無軍船)이 2척, 선군(船軍)이 1천 4백이다. 】
우도 도만호(右道都萬戶)는 남포현(藍浦縣)이 구정(龜井)에 머무르며,【거느린 것이 병선(兵船)이 16척, 별선(別船)이 2척, 무군선(無軍船)이 1척, 선군(船軍)이 1천 3백 2명이다. 】
서천포 만호(舒川浦萬戶)는 장암포(長巖浦)에 머무르고,【거느린 것이 병선이 16척, 선군이 7백 97명이다. 】
고만량 만호(高巒梁萬戶)는 보령현(保寧縣) 서쪽 송도포(松島浦)에 머무르며,【거느린 것이 병선이 10척, 선군이 6백 61명이다. 】
파치도 만호(波治島萬戶)는 서산군(瑞山郡) 북쪽 대산포(大山浦)에 머무르고,【거느린 것이 병선이 13척, 별선(別船)이 2척, 무군선 1척, 선군이 7백 90명이다. 】
당진 만호(唐津萬戶)는 당진현(唐津縣) 북쪽 박지포(朴只浦)에 머무르며,【거느린 것이 병선이 13척, 선군이 7백 90명이다. 】
대진 만호(大津萬戶)는 홍주(洪州) 임내(任內) 신평현(新平縣) 북쪽 대진(大津)에 머무른다.【거느린 것이 병선이 13척, 선군이 7백 94명이다. 】

<신증동국여지승람> 기준(5개 진)
  • 마량진(첨사진) - 남포현

    • - 현 서천군 서면 지역
      - 관할관직 : 마량진첨사
      - 남포현 서쪽 33리에 있다. 수군첨절제사(水軍僉節制使)가 서천포(舒川浦)를 관할한다.
  • 서천포(만호진) - 서천군

    • - 현 서천군 장암면 지역
      - 관할관직 : 서천포만호
      - 수군만호(水軍萬戶)관할 서천포영(舒川浦營)이 서천군 남쪽 26리에 있다.
  • 소근포(첨사진) - 태안군

    • - 현 태안군 소원면 지역
      - 관할관직 : 소근포첨사
      - 태안군 서쪽 33리에 있다. 수군첨절제사(僉節制使)가 당진포(唐津浦)와 파지도(波知島)를 관할한다.
  • 파지도(만호진) - 서산군

    • - 현 서산시 팔봉면 고파도 지역
      - 관할관직 : 파지도만호
      - 수군만호관할 파지도영(波知島營)이 서산군 북쪽 35리에 있다.
  • 당진포(만호진) - 당진현

    • - 현 당진시 고대면 지역
      - 관할관직 : 당진포만호
      - 수군만호관할 당진포영(唐津浦營)이 당진현 서쪽 34리에 있다.

<연려실기술> 기준(5개 진)
○ 소근포진(所斤浦鎭)후근이포(朽斤伊浦)라고도 하는데, 태안군의 서쪽 33리에 있다. 수군첨절제사.
○ 안흥진(安興鎭) 태안군(泰安郡)의 서쪽 34리에 있다. 소근첨사(所斤僉使)가 군사를 나누어 수비.
○ 평신진(平薪鎭) 서산(瑞山) 수군첨절제사
○ 마량진(馬梁鎭) 비인현(庇仁縣)의 서쪽 33리에 있다. 수군첨절제사.
○ 서천포영(舒川浦營) 서천(舒川)군의 남쪽 26리에 다. 수군만호

4. 문화재로서의 충청수영성

개요에서도 언급했지만, 충청수영성은 현재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에 있고, 사적 501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충청수영성 내의 건물들도 각각 시도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데 다음과 같다.
  • 오천수영관아: 충청수영 장교청 진휼청으로 분리
  • 충청수영 내삼문: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10호
  • 충청수영 장교청: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411호
  • 충청수영 진휼청: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412호

5. 여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