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ki style="word-break: keep-all; 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f08400 0%, #ff8c00 20%, #ff8c00 80%, #f08400);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letter-spacing: -0.8px; font-size: 1em" | <colbgcolor=#ff8c00><colcolor=#FFF> 교리 | 사성제 catvari aryasatyani · 팔정도 aryastangamarga · 바라밀 paramita · 삼법인 tilakkhaṇa (제행무상 · 제행개고 · 제법무아(무아론 · 진아)) · 연기 pratityasamutpada · 공 sunyata · 유식 vijnapti matra · 반야 prajna · 삼독 trivisa · 계율 sila vinaya (오계 · 오신채) · 삼성 trisvabhava (선 · 악 · 무기) · 열반 Nirvana |
| 신 · 성인 | 부처 buddha · 여래 tathagata · 보살 bodhisattva · 사천왕 catummaharajika · 시왕 十王 · 아라한 arhat · 나반존자 Pindola bharadvaja | |
| 세계관 | 삼천세계 Trisahasralokadhatu · 육도윤회 sadgati - samsara · 정토 buddhakestra · 오탁악세 五濁惡世 | |
| 상징 | 법륜 Dharmachakra · 卍(만) Swastika · 삼보 Triratna | |
| 경전 | 불경 | 삼장 (경장 sutta pitaka - 율장 vinaya pitaka - 논장 abhidhamma pitaka) · 니까야 Nikaya · 대장경 大藏經 | 결집 Samgiti | |
| 종파 | 종파 · 근본 불교와 부파 불교 · 중국의 불교 종파 · 한국의 불교 종단 · 일본의 불교 종파 | |
| 사원 | 절 (부속 건물 · 능침사) · 선원 · 총림 · 포교당 · 도량 | |
| 성지 | 성지 (룸비니 Lumbini · 부다가야 Bodh Gaya · 사르나트 Sarnath · 라즈기르 Rajgir · 슈라바스티 Shravasti · 산카샤 Sankissa · 바이샬리 Vaishali · 쿠시나가르 Kusinagara) | |
| 언어 | 산스크리트어 (한국어의 외래어) · 실담 · 팔리어 | |
| 미술 | 불상 · 불화 (탱화 · 만다라 · 수월관음도 · 달마도) · 불탑 · 승탑 · 목탑 · 보상화무늬 · 연화문 · 대장경판 | |
| 법구 | 금강저 · 당간지주 · 목어 · 목탁 · 불단 · 불진 · 석장 · 염주 · 범종 · 번 · 마니륜 · 금강령 · 죽비 · 정병 | |
| 의식 | 수계 · 예불 · 불공 (사시불공) · 진언 · 다라니 · 다비식 · 발우공양 · 탁발 · 방생 · 재 (사십구재) · 참선 · 화두 · 사경 | |
| 문화 | 법회 (설법) · 범패 · 찬불가 · 승복(가사) · 사찰음식 · 법명 · 법랍 · 불멸기원 · 연등회 · 탑돌이 · 팔관회 · 참회 · 만행 · 승무 | |
| 불자 | 승려 (비구니 · 군종 승려 · 동자승 · 주지) · 법사 · 신자 | |
| 기타 | 가부좌 · 사리 · 감로 · 파계 (파계승) · 불교 용어 |
| 백제 왕흥사 디지털 복원 출처 |
1. 개요
목탑(木塔)은 나무로 만들어진 탑을 말한다. 주로 불교 건축을 의미한다.본래 인도에서 석재 스투파(Stupa)로 시작한 탑이 중국에 건너오면서 궁중건축과 결합하여 대한민국에도 4세기 무렵 전파됐다. 목탑은 화재에 약해 수백 수천 년 남기 힘든 목재로 만들기에 현대 한국에는 별로 남아있지 않지만, 고려 시대까지만 해도 목탑이 제법 많았다. 그러다가 몽골군에게 전 국토가 밟히면서 황룡사 9층목탑을 비롯한 수많은 문화재가 소실된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면서 숭유억불 정책이 시행된 탓에 새로운 대형 목탑을 만들 재정적 지원을 할 주체가 없어졌다.[1] 이후 임진왜란이 끝나자 법주사 팔상전이 새로 지어진다.
일반적으로 목탑은 석탑과 달리 사람이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건축물에 가깝고, 석탑들보다 훨씬 규모도 컸다. 현대인 관점으로는 석탑과 같은 탑이라기보다는 사리를 모신 다층구조 목조 건축물로 보인다. 집 짓는 것과 유사하니... 동양의 석탑으로는 힘든 일이다. 이 덕분에 관광객 눈에 쓱 둘러볼 뿐인 석탑과는 달리 목탑은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법주사 팔상전의 포인트는 안에 그려진 '팔상도'이다. 다만 모든 목탑이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사람이 올라갈 수 없거나 중간까지만 올라가는 목탑도 많다.
한국에서는 석탑이 대세가 되면서 목탑이 별로 남지 않았지만 일본에는 지금도 목탑이 많이 남았다. 고대 한국의 양식을 보존한 목탑도 많이 남아 현대에는 역으로 참고가 되기도 한다.
경상북도에서는 황룡사 9층 목탑을 2035년 안에 복원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하였으나 복원의 구체적인 방법을 두고 논란이 있다. 황룡사 문서 참고.관련기사
한국이나 일본의 목탑은 주로 사각꼴이지만, 중국에서는 팔각꼴인 경우가 많다.
2. 역사
불교가 한중일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지역에 전파된 뒤 수많은 사람들이 숱하게 탑을 쌓았다. 그 중에서도 한국은 석탑, 중국은 전탑, 일본은 목탑이라 할 정도로, 현존하는 목탑은 일본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본래 한반도 지역은 7세기 전반부터 고려 시대까지만 해도 목탑의 나라였지만, 수많은 전쟁과 숭유억불의 조선시대를 겪으며 화재에 취약한 목탑은 거의 사라졌고, 튼튼한 화강암이나 벽돌로 만든 석탑과 모전석탑만 많이 남았다. 참고로 한반도의 전탑은 의상대사가 중국에서 양식을 수입해온 것이라 경상북도에 집중분포한다.상기했듯 고려 시대까지만 해도 목탑이 많았기에, 한국에선 고대부터 여러 대형 목탑들이 건축되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청암리 사지의 목탑(약 80m)[2] 백제 미륵사의 목탑(약 60m)과 그 유명한 신라 황룡사 9층목탑(약 80m[3])과 같이 거대한 목탑들이 지어졌었으며 고려 시대에도 보제사의 목탑(약 60m), 연복사 목탑(약 60m) 등 여러 목탑들이 축조되어 기록에도 남아있는데 지금까지 그것이 남아있지 않아 안타깝다. 이 중 보제사의 목탑은 조선 초까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대한민국에 남아 있는 목탑은 현대에 새로 절을 중축하면서 지은 것들을 제외하면 법주사 팔상전과 쌍봉사 대웅전 등 둘뿐이다. 그나마도 법주사 팔상전은 17세기, 쌍봉사 대웅전은 조선시대 개조되었음을 제외하하면 연대미상인 건물이다. 더구나 현존하는 쌍봉사 대웅전은 현대에 불에 타 전소된 뒤 재건한 것이다. 삼국시대 목탑의 후예, 화순 쌍봉사 대웅전(삼층전) 〔약 3분 영상〕 임진왜란 때 승병들이 보여준 호국정신으로 인해 핍박이 누그러진 것이 이 정도 결과고, 조선 전기까진 목탑들이 남아있었더라도 유생들의 반달리즘을 피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커보인다.
3. 목탑의 구조
| 일본 호류지의 목탑 구조 |
기둥과 지붕 사이에 비스듬하게 내려가는 '하앙'이라는 목재를 통해 처마를 길게 뺀 점이 특이한데, 앞서 말한 호류지나 백제 청동탑편 유물에서 공통적으로 하앙이 보이기 때문에 이러한 것이 백제에서도 주요한 구조였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다만 한국에 남아있는 건물 중에서는 하앙을 사용한 건물이 단 한 채가 존재할 뿐이다.
탑의 가운데에 거대한 심주(기둥)이 있어, 주위의 각 층마다 분절된 구조물들이 심주와 결합되어 받쳐지고 있다. 다만 대부분의 목탑에 있어서 심주는 탑 꼭대기의 금속 장식물을 받치기 위함일 뿐 탑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탑의 무게는 각 층에 쌓은 각각의 기둥들이 지지한다. 이를 적층구조라고 하는데, 법주사 팔상전은 1층부터 윗층까지 통으로 된 기둥으로 지지하는 연속된 구조라서 다른 목탑들과는 좀 다르다.
현재 남아있는 대부분의 목탑은 내부에 사람이 올라갈 수는 없으며 오히려 올라갈 수 있는 누각 구조가 드문 편이다. 불궁사 목탑 정도가 누각으로 유명하다.
4. 역사적인 목탑들
| 역사 속 역대 목탑 크기 비교표[5] |
2번째로 표시된 것은 높이가 80m 정도인 황룡사 구층 목탑이며, 그 다음은 60m 높이의 미륵사 목탑이다.[8]
그 다음 4개의 목탑들은 전부 일본의 목탑으로, 4번째가 현재는 사라진 높이 70m 정도인 대관대사(大官大寺) 목탑, 5번째가 현존하는 일본 목탑 중 가장 높은 55m의 도지(동사) 목탑이다. 교토역 근처에 있으며, 사람이 올라갈 수는 없다. 도다이지의 쌍 목탑이 높이가 100m를 넘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기단의 한 변이 불과 15m 남짓이라서 그만한 높이를 올리기는 불가능하다.
이 외에도 일본에서 일본서기에 조메이 덴노 11년(639)에 백제대사와 구층탑을 지었다고 기록된 백제대사의 탑지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있다. 아스카에서 나라로 천도한 이후 폐사되어 오랫동안 나라현 키비 못(吉備池) 물 속에 잠겨 있던 폐사지로, 심초석구덩이 외에 초석 등이 제대로 남지 않아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나라문화재연구소 측은 첫 발견 당시 탑 한 변을 23m, 높이를 100m라고 추정 발표했다. 하지만 이는 추정 밑변 크기에 현재 일본 5층 목탑에 일반적인 비례에 따른 체감율을 9층에 그대로 적용하여 산출한 것에 불과하여 신빙성이 부족하며 80m로 낮춰 추정하기도 하다가 현재는 구체적인 높이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는 편이다. 이 탑은 몇십 년 만에 금방 폐사되어, 약 600년간 경주 시내 한복판의 랜드마크 역할을 한 황룡사탑에 비하면 역사적 실체가 남은 것이 별로 없다. 백제대사는 이름 그대로 백제인과 관련된 사찰로, 마찬가지로 백제인이 건축설계에 참여한 황룡사탑과 유사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실제로 기단의 조성방법은 황룡사 목탑과 같다. 황룡사 목탑은 일단 높이가 사서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는 것 외에도 초석이 전부 제 위치에 남아있는 등 유구가 확실하고 그 목탑의 비례를 유추할 수 있는 부조 조각이나 청동제 모형탑 등이 남아 있어 신뢰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현존하는 가장 높은 목탑이자 누각인 중국 잉쉬앤(응현)의 포어꽁쓰(불궁사) 5층 목탑이 빠졌다. 아마도 해외 목탑 중 일본 목탑양식에 근원이 된 사각형 평면의 목탑만 비교해서 그런 듯하다. 불궁사 목탑은 높이가 67.31m이고 평면은 팔각형으로,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누각 구조인데 기울기 시작해서 해체 수리를 검토 중이다.
이 도표에 수록되지 않은 목탑으로는 한국의 고구려 청암리 사지 목탑, 정릉사지 목탑, 신라 실상사 목탑이 있다. 백제에서 밑변이 가장 컸던 목탑은 미륵사 목탑이 아니라 왕궁리 유적의 동쪽에 위치한 제석사 목탑이다. 미륵사지 목탑지 한 변의 길이는 18.56m이나 제석사지 목탑지는 21.2m이다. 만약 두 탑의 층 수가 같았다면 제석사지 목탑이 미륵사지 목탑보다 훨씬 높았을 가능성이 많다.
5. 문제점
재질이 나무다 보니 대부분 석탑이나 전탑보다 훨씬 크게 만든다. 그래서 '유지/보수비용'이 석탑에 비해 많이 든다. 또한 현재 국내 산림은 곧고 큰 나무가 많았던 고대 한반도 환경과 달리 소나무의 비중이 높아져있어 대규모 목탑을 건설할 수 있는 곧고 큰 목재를 얻기 힘듦 또한 문제다.[9] 이런 점에서 소나무보다 훨씬 곧고 굵은 삼나무 위주인 일본은 목자재 조달이 훨씬 유리한 편이다. 아무튼 이러한 점에서 목탑은 불에 약해서 전소되기가 쉬우며, 전소되면 남아있는 재료도 없기에 새로 세우기가 힘들다. 심지어 황룡사 목탑은 벼락을 맞아서 불탄 후 다시 짓기도 했지만, 몽골군의 침략으로 거의 전소된다.그리고 대부분의 목탑이 있던 절들은 상기했듯 몽골의 침략 등 전란이나 조선시대의 숭유억불 정책에 의해 사라진 곳이 많아서 원래 목탑의 모습을 보기 힘들다. 거기다 복원해야할 전통 분야 직업군들의 사람들이 많이 사라졌기에 복원하기 위해서 일본이나 중국의 전문가에게 부탁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고, 복원해도 안하느니만 못한 어색하다는 의견과 비판도 많이 오간다.
6. 한국 목탑 목록
6.1. 과거 주요 목탑
6.2. 국내 현존 목탑
6.2.1. 역사적 목탑
- 보은 법주사 팔상전: 쌍봉사 대웅전이 전소된 뒤로 세워질 당시(17세기)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된 유일한 목탑이다.
- 화순군 쌍봉사 대웅전(복원): 17세기에 세워졌다. 1984년 4월 3일 화재로 전소되었지만, 다행히 원형 그대로 다시 복원되었다. 상세한 실측도면을 미리 제작해둔 덕분이다. 불타기 전에는 팔작 지붕이었으나, 조사 결과 원래는 사모지붕이었음이 밝혀졌고, 복원 때 사모지붕으로 고쳐 복원했다. 법주사 목탑과 달리 날씬하여 좀 더 '탑'스러운 것이 특징이다.
- 부여군 백제문화단지의 능산리사지 5층목탑: 능산리사지 목탑의 원형을 추측해 지은 것으로 완벽한 재현은 아니다. 구조적으로는 하앙식 치마를 적용하는 등 고증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나, 한국의 고대 건축물 복원물이 다 그렇듯, 단청이 조선시대 방식인 것이 문제.
- 문경 봉암사의 건축물인 '극락전': 목탑의 형태를 띄고 있는 건축물이다.[11] '한국민족문화재백과'에서는 아예 '목탑'이라고 표현을 했는데, 문화재청 문화유산포탈의 설명은 "높은 단층 몸체에 차양칸을 둘러 마치 중층건물 같은 외관"이라고 표현하여 목탑은 커녕 '외견상 2층인 1층 건물'로 보고 있다. 여튼 우리나라 목탑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건축물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1년에 한번 개방을 하는 봉암사의 눈물나는 접근성 덕분에 인지도는 매우 낮은 건축물이다. 근래에 지어진 성주 심원사의 '약사전'이 봉암사 극락전과 매우 비슷하다.
6.2.2. 현대 목탑
- 진천군 보탑사 통일대탑(52m). 3층 목탑의 형태로, 현대목조건축 중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있다.
- 김천시 사명대사공원 평화의탑(41m).
- 청주시 용화대미륵선도 천계탑(27m). 법주사 팔상전을 본떠 만들었다. 대순진리회의 분파인 용화대미륵선도가 소유하고 있다.#
- 합천군 법연사 황금사리쌍탑.
- 부산광역시 해운정사 관음보궁(15 m).
- 구례군 문수사 대웅전. 쌍봉사 대웅전을 본떠 만들었다.
- 구례군 화엄사 금정암 극락보전. 쌍봉사 대웅전과 비슷한 3층 목탑이다.
- 가평군 현등사 만월보전. 보기드문 2층 목탑이다.
- 양구군 등운사 7층팔각목탑.
조계종에서 이천시에 위치한 백족산 선각사에 54m에 이르는 팔각칠층목탑 건립을 추진중이다. 2025년 완공이 목표.
6.2.3. 목탑 양식의 석탑들
- 익산시 미륵사지 동서 구층석탑, 중원가람의 구층 목탑을 본떠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
- 부여군 왕궁리 유적 오층석탑, 통일신라 혹은 고려 초기 고전풍 [12] 양식이며, 석탑 자리에 목탑이 존재했었다.
- 부여군 정림사지 오층석탑, 목탑을 본뜬 한반도 최초의 석탑이다.
그 외에도 고려시대 이후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본뜬 일명 "백제계 석탑"이 유행하였고, 목탑과 비슷한 처마내밀기 비율, 기둥 등 부조의 표현 등이 특징이나 직접적으로 목탑 양식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6.2.4. 목탑 외관을 본뜬 건물들
- 밀양시 영산정사 성보박물관. 7층 목탑 형식 콘크리트 건물이다.
- 영천시 만불사 범종각. 쌍봉사 목탑을 본떠 만들었다.
- 경주시 중도타워. 황룡사 9층 목탑을 콘크리트로 재현한 건물이다.
- 경주시 보문탑. 5층 6각형 형태의 콘크리트 구조물. 보문관광단지의 랜드마크로 여겨지고 있다.
- 태안군 안면암 7층탑과 부상탑. 부상탑은 태안 기름유출 사고를 계기로 호국의 뜻을 담아 건립되었으며, 밀물때에는 물위에 위치하게 되는 매우 독특한 탑이다
- 국립민속박물관 중앙건물(2전시실). 법주사 팔상전의 외관을 본뜬 콘크리트 건물이다.
7. 유명 목탑 사진
7.1. 대한민국
| 황룡사 9층 목탑 복원 상상도 |
| 미륵사 9층 목탑 복원 모형 |
| 쌍봉사 대웅전 1984년 이전 모습 | 쌍봉사 대웅전의 현재 모습 |
| 백제문화단지의 능사 5층목탑 |
| 진천군 보탑사 3층목탑 |
-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현대목탑임에도 불구하고, 독창적이면서도 어색하지 않은 새로운 한국형 목탑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엄밀히 따지면 문화재도 아닌데, 답사가이드북의 바이블인 '답사여행의 길잡이'라는 책에서도 보탑사가 소개될 정도이다. 세월이 상당히 흐르면 문화재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걸작이 탄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신영훈 대목수, 단청명인 한석성, 도편수 조희환을 비롯한 우리 시대의 장인들이 대거 참여했기 때문이다.
7.2. 중국
| 중국 산서성 불궁사 응현목탑(應縣木塔) |
- 구조면에서 보면 겉모양은 5층인데 각 층 사이에 또 다른 층, 즉 암층이라는 것이 하나씩 숨어있다. 그래서 이런 구조를 중국학계에서는 명오암구옥(明五暗九屋)이라고 한다. 즉, 겉에서 보면 5층이지만 1층과 2층 사이, 2층과 3층 사이, 3층과 4층 사이, 그리고 4층과 5층 사이에 암층이 있어 안에서는 계단으로 올라가면 모두 합하여 9층 목탑이 되는 것이다.
| 중국 절강성 항저우에 있는 육화탑(六和塔) |
| 중국 강소성 쑤저우의 북사탑 |
7.3. 일본
| width=100% |
| 일본 호류지의 5층 목탑 |
| 일본 루리코지(유리광사)의 5층 목탑 |
| 일본 도지(동사)의 5층 목탑 |
8. 가상매체에서의 목탑
- 이소룡이 주연한 영화 사망유희는 원래 이소룡이 위의 법주사 팔상전이 모티프인 5층의 목탑에서 각 층의 고수들을 물리치고 보물을 찾는다는 내용이였다.
- 포켓몬스터의 성도 지방에는 도라지시티에 있는 모다피의 탑, 인주시티에 있는 불탄탑과 방울탑이 있으며, 금빛시티의 라디오탑도 원래는 칠색조 같은 전설의 포켓몬이 쉬어가는 목탑이였다고 한다.
[1] 일부 왕족이 간헐적으로 불교에 관심과 지원을 해 주기도 했지만, 목탑을 만들 정도로 파격적인 지원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2] 삼국시대 목탑 중 가장 인지도가 낮다. 하지만 발굴된 탑지의 규모가 황룡사와 비슷해 그에 맞먹는 높이라고 추정이 되고 있으며 특이하게 이 탑은 팔각 형태다.[3] 이정도 높이면 거의 20층대 아파트 수준이다.[4] 도래인, 아스카 시대 참고[5] 출처: 나라문화재연구소 문화재 도록 <아스카.후지와라쿄 전>, 아사히신문사, 2002[6] 선종의 창시자인 달마가 감탄했다는 탑으로 516년에 지어졌지만 534년에 화재로 소실되었다. 기록에는 탑이 소실될 때 우박와 뇌성이 있었다는데, 벼락에 맞아 불이 난걸로 보인다.[7] 높이로만 비교하면 63빌딩보다 높다. 63빌딩은 249m(안테나 포함 시 274m). 다만 영녕사 항목에는 정작 136.7m였다고 서술되어 있다.[8] 단, 미륵사지 목탑의 추정 높이가 60m로 의견이 모아지기 전의 그림이라 높이가 55m인 도지 목탑보다도 낮게 그려져있다.[9] 또한, 최근 기후 변화로 기온이 상승하면서 소나무가 점점 살기 어려워지는 것 또한 문제이고, 소나무재선충이 극성인지라 목탑에 쓰일만큼 크고 곧은 소나무를 구하기란 거의 어렵다. 한국에서 쓰는 소나무가 절에서 쓰는 나무로 자랄려면 시간이 걸려서 그만큼 비용이 더 많이 들어간다.[10] 삼국사기에 망덕사 목탑이 바람이 불자 서로 부딪쳤다는 기록이 있고 또 발굴되었다.[11] 문경 봉암사 극락전은 보물 제1574호로 지정되어 있다.[12] 고려 초기 삼국의 옛 영토에서 그 고대 국가풍의 고대 미술이 유행했으며, 안동 봉정사 극락전도 그 일환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