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14 20:09:04

열반

파일:나무위키+유도.png   학교 용어로 열등한 반을 뜻하는 열반(劣班)에 대한 내용은 열반(학교)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산스크리트어 निर्वाण
팔리어 निब्बान
한자 涅槃
영어 Nirvana

1. 개요2. 명칭3. 목표4. 여담

1. 개요

불교에서 가르치는 더 이상의 어떠한 고통이 없는 상태. 어떤 깨달음에 의해, 윤회를 거부하는 상태이기도 하다.

2. 명칭

지금의 인도 대륙에서 가르침을 설하던 고대 사상가들은 평안·안은·안락·행복·피안 등과 같은 이상을 목적으로 하여 이에 도달하는 것을 모크샤(Moksha)라 칭하였다. 이를 산스크리트어로 निर्वाण(니르바나)라 한다. 어원에는 많은 설이 있다. '(을) 불어서 끄다, 또는 그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설과, '소멸한다'라는 뜻의 니르바 nirva 또는 '뚜껑을 없앤다'라는 뜻의 니르브리 nirvr라는 설 등이 유력하다.

한자음차를 해서 열반나(涅槃那), 열반(涅槃), 니원(泥洹) 이라고도 쓴다. 원래 涅는 '녈'이라고 읽고, 두음법칙으로 단어의 앞에 올 때는 '열'이 된다.

의역할 때는 '적멸'이라 한다.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을 '적멸보궁'이라 하는데, 여기서 '적멸'이 열반을 뜻한다. 모든 번뇌를 태워 버리고, 기쁨도 슬픔도 없는 마음이 지극히 고요한 상태. 멸도 등으로 쓰기도 하는 참으로 불교의 궁극적인 실천 목적이다. 해탈(解脫) 역시 열반의 의역이다.

스님께서 돌아가시면 "입적 하셨다"라는 말을 쓰는데, 이는 열반과는 약간 의미가 다르다. 입적 이라는 말은 '완전한'이라는 의미의 접두사인 파리(pari)를 붙여 니르브리티(parinirvana, 귀환)이라고 한다. 한역으로는 반열반(般涅槃)으로 음사한다.

3. 목표

열반이 불교 수행의 최고 경지이기는 하지만 불교의 최종 목표는 열반이 아니라 무상정등정각, 즉 최상의 깨달음을 이룩하는 것이다. 열반은 무상정등정각을 얻기 위한 세 가지 방편인 삼승 중 하나에 속한다.[1]

열반과 관련하여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는 점이 하나 있는데, 살아서 열반에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열반이 죽어서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흔히 알려진 착각이다. 물론 경전에서 석가모니의 죽음을 반열반, 즉 완전한 열반이라고 표현한 바가 있기는 하지만, 이는 열반이라는 말이 이차적으로 전용된 예라고 볼 수 있다. 열반의 참다운 뜻은 현재의 상태에서 생사로부터의 해탈을 그대로 체득하는 것이다.[2]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가장 처음 담아낸 책인 디가 니까야의 첫 번째 경인 범망경에서 이에 대해 아주 짧게 나온다. 디가 니까야는 팔리어로 씌어졌으며 제1차 결집아난다 존자를 중심으로 석가모니의 직계 제자 약 500여명이 만장일치를 통해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하고 써낸 책이다. 범망경이란 '견해의 그물' 이라고도 하며, 이런 견해에 집착 또는 머물면 열반에 들 수 없다 하고 '잘못된 견해' 에 대해 설명 한다. 예시 중, '지금 이 자리에서 열반을 실현했다고 주장하는 자' 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오온의 기쁨, 선정을 통한 기쁨을 열반이라 주장하는 이들에 대한 반박이다. 이를 다룬 팟캐스트도 있다

쉽게 말해 부귀, 자식의 성공 등 생전의 삶의 모습에 더 이상 미련을 갖지 않고(털어내고) 이렇다 할 마음의 작용 없이 육체의 죽음을 맞이하는 상태와 유사한 이치라 할 수 있다. 말로는 쉽지만, 주변에 슬픈 일을 겪은 분들의 말씀을 들어보자. 과연 쉬운 것인가. 오죽하면 석가모니도 이 깨달은 것이 너무 어려우니, 가르쳐봐야 나만 피곤해질거다 라는 생각을 했다.

4. 여담

94년도 첫 수능에서 열반의 의미를 묻는 문제가 출제되었는데, "열반에 들다"와 "입적하다"를 같은 의미로 판단하였다.모르면 내지를 말던지 중등교육에서 여기까지 파고들지 않는가 보다.

팟캐스트 지대넓얕에 의하면 우주급 스케일의 전역이라고 한다. 61회.

[1] 고익진, 불교의 체계적 이해, 광륵사, 2015, p. 116[2] 고익진, 불교의 체계적 이해, 광륵사, 2015, p. 9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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