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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20년대 울산객사 학성관 앞 5일장날 모습 |
순우리말로 해(日), 흰(白), 하양은 어원이 같다고 하며[1] 이러한 즉슨 흰색은 빛의 색이자 태양을 상징하는 색이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빛, 태양, 하늘을 숭배하는 사상을 실천함으로써 흰옷을 즐겨 입었다고 한다.
백의를 입는 문화와 별개로 '백의민족'이라는 용어 자체는 근대에 탄생한 용어이다. 후술할 일제의 동화주의 정책에 저항하는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사용되었다.# 현재도 민족주의적 의미를 담고 사용되는 경우가 있는데 군가 휘날리는 태극기의 후렴가사에 "우리는 백의민족 단군의 자손" 이라는 가사가 존재한다.
2. 백의의 역사
2.1. 근대 이전
在國衣尙白, 白布大袂, 袍·袴, 履革鞜.
국내(國內)에 있을 때의 의복은 흰색을 숭상하여, 흰 베로 만든 큰 소매달린 도포와 바지를 입고 가죽신을 신는다.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 부여(夫餘)[2] 출처
진수가 쓴 《삼국지》 기록과 당나라에서 만든 《수서》 기록에서는 부여와 신라 사람들이 흰옷을 숭상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국내(國內)에 있을 때의 의복은 흰색을 숭상하여, 흰 베로 만든 큰 소매달린 도포와 바지를 입고 가죽신을 신는다.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 부여(夫餘)[2] 출처
고구려 벽화에서도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자주 나오고 삼국시대 나라들의 의복 문화가 대체로 같다는 기록이 있으니 고구려에서도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게다가 고구려에서 쓰던 관모 중에서 가장 높은 등급이 왕이 쓰던 흰색 백라관(白羅冠)이다.
或聞平居燕息之時, 則皂巾白紵袍, 與民庶無別也.
혹은 평상시 쉴 때 (고려 왕의 복장은) 검은 두건(皂巾)에 흰 모시(白紵) 도포를 입고 있어, 일반 백성과 다를 게 없다고 한다.
고려도경(高麗圖經) 출처
원나라에서 만든 《송사(宋史)》 기록에서 1014년 송나라를 방문한 고려 사신 곽원(郭元)이 남긴 말이나 1123년 고려를 방문한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이 쓴 《고려도경》 기록에서도 고려 사람들이 신분과 관계 없이 흰옷을 선호했음을 알 수 있다.혹은 평상시 쉴 때 (고려 왕의 복장은) 검은 두건(皂巾)에 흰 모시(白紵) 도포를 입고 있어, 일반 백성과 다를 게 없다고 한다.
고려도경(高麗圖經) 출처
일명 백민(白民)이라고 약칭하기도 한다. 19세기에 한국을 다녀간 많은 외국인들은 한국인이 남녀를 막론하고 다 흰옷을 입고 있다는 데 강한 인상을 받았다.
오페르트(Oppert,E.J.)는 그의 ≪조선기행 Ein Verschlossenes Land, Reisen nach Korea≫에서 “옷감 빛깔은 남자나 여자나 다 희다.”고 말하고 있으며, 라게리(Laguerie,V.de)도 “천천히 그리고 육중하게 걸어가는 모든 사람들이 하얀 옷을 입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1895년 전국에 변복령(變服令)과 단발령이 내리자 이에 항의하는 의병전쟁이 일어난 사실은 너무도 유명하다. 이는 백의를 숭상하는 한국인의 집착이 남달리 강했던 증거라 할 수 있다. 그 뒤 일제하인 1920년대에도 백의의 습속은 여전하여 사람들이 운집하는 시장은 마치 솜밭 같이 희다고 외국인들은 기록하고 있다.
최남선(崔南善)은 ≪조선상식문답≫에서 “조선 민족이 백의를 숭상함은 아득한 옛날로부터 그러한 것으로서 수천년 전의 부여 사람과 그뒤 신라와 고려, 그리고 조선의 역대 왕조에서도 한결같이 흰옷을 입었다.”고 그 유래의 오래됨을 강조하였다.
중략...
일제식민주의자들은 한국인이 흰옷을 입는 까닭을 여러 모로 왜곡하였는데, 가령 도리야마(鳥山喜一) 같은 자는 그의 <조선백의고 朝鮮白衣考>란 논문에서 고려가 몽고의 침략을 받아 나라가 망하자 망국의 슬픔 때문에 백의를 입기 시작하였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야나기(柳宗悅) 같은 자도 백의민족의 유래를 “이 민족이 겪은 고통, 많은 역사적 경험” 때문이라 주장하면서 백의를 마치 상복(喪服)이라도 되는 듯이 착각하고 있다.
백의를 숭상하는 습속에 대해서는 3세기에 편찬된 중국사서 ≪삼국지≫ 위서 동이전(東夷傳)에 기록되어 있다. 즉 부여의 “재국의상백(在國衣尙白)”이라든지, 변진(弁辰)의 “의복정결(衣服淨潔)”이라든지, 고구려의 “기인결청(其人潔淸)” 따위의 기록이 바로 그것이다.
이로써 백의는 삼한·삼국시대 이래의 오랜 유습임을 알 수 있고, 고려·조선시대에 이르러서도 변하지 않은 것을 여러 차례 반포된 백의금지령(白衣禁止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즉 13세기 후반 고려 충렬왕 때 백의금지령이 내렸으나 잘 시행되지 않았고,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도 태조 7년, 태종 원년, 세종 7년, 연산군 11년과 12년, 인조 26년, 현종 11·12·17년, 숙종 2년과 17년, 그리고 영조 때 여러 차례 거듭 백의금지령이 내렸으나 똑같은 결과를 낳을 뿐이었다.
이같이 여러 차례 금지령이 내렸으나 시행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곧 백의의 습속이 끈질기게 우리의 의생활을 지배하였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더욱이 갓난아이에게 흰옷을 입히고 죽을 때 또한 흰옷을 입히니 한국인은 요람에서부터 입관에 이르기까지 백의로 일생을 마쳤다고 할 수 있다.
- 백의민족 (白衣民族)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오페르트(Oppert,E.J.)는 그의 ≪조선기행 Ein Verschlossenes Land, Reisen nach Korea≫에서 “옷감 빛깔은 남자나 여자나 다 희다.”고 말하고 있으며, 라게리(Laguerie,V.de)도 “천천히 그리고 육중하게 걸어가는 모든 사람들이 하얀 옷을 입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1895년 전국에 변복령(變服令)과 단발령이 내리자 이에 항의하는 의병전쟁이 일어난 사실은 너무도 유명하다. 이는 백의를 숭상하는 한국인의 집착이 남달리 강했던 증거라 할 수 있다. 그 뒤 일제하인 1920년대에도 백의의 습속은 여전하여 사람들이 운집하는 시장은 마치 솜밭 같이 희다고 외국인들은 기록하고 있다.
최남선(崔南善)은 ≪조선상식문답≫에서 “조선 민족이 백의를 숭상함은 아득한 옛날로부터 그러한 것으로서 수천년 전의 부여 사람과 그뒤 신라와 고려, 그리고 조선의 역대 왕조에서도 한결같이 흰옷을 입었다.”고 그 유래의 오래됨을 강조하였다.
중략...
일제식민주의자들은 한국인이 흰옷을 입는 까닭을 여러 모로 왜곡하였는데, 가령 도리야마(鳥山喜一) 같은 자는 그의 <조선백의고 朝鮮白衣考>란 논문에서 고려가 몽고의 침략을 받아 나라가 망하자 망국의 슬픔 때문에 백의를 입기 시작하였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야나기(柳宗悅) 같은 자도 백의민족의 유래를 “이 민족이 겪은 고통, 많은 역사적 경험” 때문이라 주장하면서 백의를 마치 상복(喪服)이라도 되는 듯이 착각하고 있다.
백의를 숭상하는 습속에 대해서는 3세기에 편찬된 중국사서 ≪삼국지≫ 위서 동이전(東夷傳)에 기록되어 있다. 즉 부여의 “재국의상백(在國衣尙白)”이라든지, 변진(弁辰)의 “의복정결(衣服淨潔)”이라든지, 고구려의 “기인결청(其人潔淸)” 따위의 기록이 바로 그것이다.
이로써 백의는 삼한·삼국시대 이래의 오랜 유습임을 알 수 있고, 고려·조선시대에 이르러서도 변하지 않은 것을 여러 차례 반포된 백의금지령(白衣禁止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즉 13세기 후반 고려 충렬왕 때 백의금지령이 내렸으나 잘 시행되지 않았고,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도 태조 7년, 태종 원년, 세종 7년, 연산군 11년과 12년, 인조 26년, 현종 11·12·17년, 숙종 2년과 17년, 그리고 영조 때 여러 차례 거듭 백의금지령이 내렸으나 똑같은 결과를 낳을 뿐이었다.
이같이 여러 차례 금지령이 내렸으나 시행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곧 백의의 습속이 끈질기게 우리의 의생활을 지배하였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더욱이 갓난아이에게 흰옷을 입히고 죽을 때 또한 흰옷을 입히니 한국인은 요람에서부터 입관에 이르기까지 백의로 일생을 마쳤다고 할 수 있다.
- 백의민족 (白衣民族)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런 식으로 오래 전부터 한민족은 흰색 옷을 즐겨 입는다고 널리 소문이 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흰옷만 입었다는 건 당연히 아니고 고구려의 다른 벽화들을 보면 흰색 뿐만이 아닌 다양한 색깔의 옷을 입었음을 알 수 있으며 이는 같은 계열의 복식 문화를 공유하는 백제와 신라, 가야도 마찬가지였고 고려 역시 고려도경에서 여성들은 신분 높낮이와 관계없이 노란색 옷도 많이 입었다는 기록이 있다.
김홍도가 그린 평안감사향연도의 일부. 출처.
본격적으로 흰옷을 입는 비율이 늘어난 것은 조선 시대에 들어서부터이다. 위에서 설명한 종교적인 영향도 있지만 이와 별개로 감정을 즉각적으로 나타내는 색은 점잖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부도덕하다고 여기기도 했다. 그래서 흰색은 자연과 동화한 색이라고 여겼고 이는 채색을 줄이고 흰색을 선호하는 사고방식으로 이어졌다. 조선시대 중기에 사림파들이 정치로 진출하면서 유교 이념이 강화된 것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고, 특히 송시열의 초상화 중에서는 송시열이 백의를 입은 모습이 있는 초상화도 있을 정도다. 동시에 각종 민화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다양한 색깔의 옷이 공존했다는 점 또한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오죽이나 흰옷을 좋아했으면 조선의 왕들은 태조#, 태종#, 세종#, 연산군#, 인조#, 현종##, 숙종##, 영조#에 이르기까지 수차례에 걸쳐 파란색 옷을 권장하였고[5] 숙종은 아예 파란색 옷을 입으라고 국명까지 내렸으며 현종은 흰옷 금지령을 시행하기도 했다. 게다가 이미 13세기 고려에서도 충렬왕이 흰옷 금지령을 내렸으나 잘 시행되지 않았었다고 한다.
2.2. 근대
19세기에 한국을 다녀간 많은 외국인들은 한국인들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흰옷을 많이 입고 있다는 데 강한 인상을 받았다. 오페르트는 그의 《조선기행》에서 "옷감 빛깔은 남자나 여자나 다 희다."고 말하고 있으며, 라게리도 "천천히 그리고 육중하게 걸어가는 모든 사람들이 하얀 옷을 입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다만 1898년 정동에서 열린 어느 서양인 선교사 부부의 결혼식에 참석한 한 조선인들이 신부복이 흰색인 것을 보고 "이 여의사는 흰옷은 상중에나 입는다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신부는 반드시 색깔이 있는 밝은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라고 말했고, 이를 지켜보던 어느 서양인은 자신의 일기에 "상복을 입으면 신부에게 불행이 닥친다고 조선사람들은 믿고 있었다."라고 기록했기에 이를 통해 당시 사람들이 흰색 옷을 즐겨 입었다고 해도 최소한 혼례식과 같은 경사스러운 날에는 흰색옷을 불길하게 여겼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관련 링크.고종 시기 세탁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광무개혁 때 색깔옷을 장려하였고, 1906년엔 흰옷을 금하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유독 흰옷을 선호하는 경향은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그 뒤 일제강점기 때도 조선총독부는 색깔옷을 착용하는걸 계속해서 권장하였으나 1920년대에도 하얀옷을 입는 풍습은 여전해서 사람들이 운집하는 시장은 마치 솜밭 같이 희다고 외국인들은 기록하고 있다. 1930년대 신문을 보면 전국에서 색의착용 좌담·협의·통첩을 통한 색의착복선전이 많았고 색의착용실행회 결성 등을 통한 색복장려운동과 백의폐지운동을 위시한 색의장려가 빈번했다. 강원도 춘천에서는 하얀옷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색의선전원이 먹물을 뿌리고 폭행한 일도 있었다. 이런 일제의 색복강요는 1930년대 총독부의 농촌진흥운동/자력갱생운동/각지진흥운동의 일환으로 색의착용이 들어가면서 각종 법제화로 이어졌다. 1929년에는 음력 1월 5일을 색의착용데이(day)로 지정하기도 하고 1933~1934년부터는 흰옷을 입은 자에게 먹물을 뿌리고, 색의불착인의 시장출입을 금(禁)하거나 벌금을 부과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제강점하의 색의 선전은 백의숭상 풍습을 비하하기도 하였는데 백의와 색의 착용의 이해득실대조라는 사설을 쓰거나 백의와 단발을 사회적 손실을 근거로 권하는 사설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지속적으로 일제가 색의를 강요하는 정책은 오히려 백의를 한민족의 얼이자 정체성으로 강조하게 되는 반작용을 일으켰다.
그래도 엘리자베스 키스 여사[6]가 남긴 그림을 보면 어린이들은 색동저고리처럼 색이 있는 옷을 많이 입었던 모양.
2.3. 현대
이미 근대 시기부터 양복을 비롯한 한복 외 복장도 유행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상기한 민족 정체성 등을 이유로 교복이나 제복이 아닌 일상복으로 흰 한복을 선호하는 사람들 또한 제법 남아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 이후 점차 바뀌기 시작하는데 가장 큰 원인은 서양 문화를 접하며 패션 디자인 면에서의 인식이 변화했기 때문이다.광복 이후로도 백의민족 문화는 꾸준히 이어오고 있었지만 6.25 전쟁을 기점으로 해외 원조 물품들이 쏟아져 들어오던 1950년대부터 미군정기를 거치면서 더욱 많은 서양 문물이 유입되고 의복 문화에도 변화가 생긴다. 주로 상의를 흰색으로 입었으며 특히 여름에는 반팔 와이셔츠를 입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복을 입을 때도 중절모와 곁들여 입거나 백의 위에 코트를 걸치는 등 기존의 한국 문물과 새롭게 들어오는 서양 문물이 혼합하는 양상으로 변화했다. 이후로도 흰 한복에 비해 경제적으로 싸고 간편한 서양식 나일론 옷이 유행하고 1980년대 이후 명절 등 특별한 날을 제외하곤 한복을 잘 입지 않던 세대가 자라나면서 이른바 흰 두루마기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던 노인 세대들 거리에서 점차 보기 드물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심지어 2000년대 초중반까지도 이른바 흰 두루마기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노인들은 소수나마 볼 수 있었다. 다만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이후로는 명절 아닌 날에는 거의 보기 힘든 추세다.
여담으로 흰 두루마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일제에게 항거한다는 상징성은 남아있었기에 해방 이후로도 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 흰옷을 제법 착용하였다.[7] 와이셔츠 같은 흰옷을 많이 입은 이른바 넥타이 부대가 이런 사례다.
3. 오늘날
현대인들의 디자인 감각이 폭넓게 확장한 만큼 모자부터 신발까지 모든 패션, 의류 분야에서 다양한 색깔을 활용하여 착용하는 경우도 많이 늘었고 흰색을 바탕으로 하더라도 여러 색깔을 첨가하거나 진한 색깔을 곁들이는 경우도 늘었다. 그래도 여전히 과거만큼은 아니더라도 오늘날 또한 흰색을 선호하는 비슷한 경향은 나타난다. 아무래도 흰색이 패션의 기본색 중 하나라 의류가 없어지지 않는한 꾸준히 소비될 색이긴 하다.
완전히 흰색만 사용해서 깔맞춤으로 입는 사람은 드물지언정, 흰색이 대부분인 옷에 약간의 색깔 장식이 있거나 색깔옷에 흰 줄무늬나 글씨가 있는 옷을 입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깔끔하고 단정한 차림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은 한국인들은 이른바 기본템이라 부르는 무채색(흰색, 회색, 검은색) 라운드 티, 셔츠, 면바지 등을 입는 경우가 많으며 진하고 알록달록한 원색 옷은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적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한 때 한국에서도 1990년대까지 빨간색 잠바 같은 진한 원색 옷이 유행한 적은 있었다. 그러나 이는 한 철 유행이었으며 21세기로 들어선 현재는 다시 무채색이 대세로 자리잡았다.[8]
옷 뿐만 아니라 다른 경우에서도 흰색이나 무채색을 선호하는 현상은 여전히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흰색 실내화, 흰색 줄이 들어간 신발, 흰색 롱패딩, 흰색 전자제품
물론 모든 한국인이 이렇다는 건 아니고 어린이, 청소년이나 젊은층은 원색 옷을 입는 경우도 많이 늘어나고 원색 옷도 선호하는 경향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여자들의 경우에는 다양한 색깔의 옷을 선호하는 경향이 많이 있으며, 남자들의 경우에도 캐주얼 의상을 입을 때는 다양한 색깔의 옷을 입는 경향이 있다.
4. 오해
일각에선 '구한말 조선시대 사람들이 빈곤하게 산 나머지 염료를 구매할 돈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흰옷을 입고 살았다'는 이야기가 간혹 나온다.[11] 하지만 이는 역사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한 사실이 아니라 잘못된 루머이며, 위 기록을 보면 알겠지만 조선 이전 고려, 신라, 고구려, 부여에서도 흰옷을 선호하거나 자주 입었다는 기록이 있으니[12] 조선이 빈곤하다는 주장은 낭설일 뿐이다. 게다가 상기된 평안감사향연도 등에서도 보이듯 조선 시절에도 흰옷이 유행했다 뿐이지 다른 색감의 옷들 역시 얼마든지 입고 다녔다.흔히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흰옷도 일종의 염색옷이다.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옷 한 벌을 염색하려면 그 남을 심는 밭이 네 식구가 한 달 먹을 곡식이 나는 땅을 버리는 것이 되니, 국내 전체를 계산한다면 손실이 매우 많다."고 했을 정도로 염색은 비용이 든다고 호소했는데, 정작 흰색도 가공 직후에 나타나는 원자재의 색이 아니라, 따로 염료로 물들이거나 표백 처리하여 만드는 색이다. 일반적으로 직물을 염색하지 않았을 때의 색은 결코 흰색이 아니고, 누런 삼베, 아이보리색이다. 조선에서의 흰 옷은 표백 처리를 해서 만드는 방법을 주로 썼다. 규합총서의 기록에 따르면 여인들은 흰 옷을 만들기 위해 옷감을 잿물에 넣어 수 차례 빨아 상아색이던 면직물을 희게 표백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천연형광제를 사용하여야만 섬유 특유의 밀빛(아이보리 컬러)을 뺄 수 있어 다른 염색도 쉬워지므로 옷감 완성 후의 표백이 널리 퍼져있었다.
또 염색어미라 불리는 조선시대 여성 최고의 고소득 직종이 진두지휘하여 옷감을 다루었던 기록이 있으며, 가난한 집안에선 가장 대신 부인이나 딸들이 길쌈에 재능이 있으면 어지간히 먹고 살 수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마을 내 여성공동체 전체가 분업을 하고, 판매할 직물생산가치를 올리는 후처리를 공동노동으로 행하던 것을 생각하면 염색할 재료가 없어 운운은 주장이 빈약하다. 역으로 표백을 거친 다음의 천연 염색의 경우 세탁 처리가 쉽지 않았으므로 표백 후 염색처리를 더 하지 않은 것이 문화적으로나 비용적으로 더 선호되었던 것이다.
당시 조선시대 사람들의 의복이 누런 빛이 도는 자연 흰색이 아니라 새하얀 순백색이었다는 건 조선을 방문했던 서양 사람들의 기록에서도 나타난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쓴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 (p.393)》에서 "한국 빨래의 흰색은 항상 나로 하여금 현성축일(顯聖祝日: the Ttansfiguration)에 나타난 예수님의 옷에 대해 성(聖) 마가가 언급한 '세상의 어떤 빨래집도 그것을 그토록 희게 할 수 없다'는 말을 기억하게 했다."는 점이나, 여인들이 냇가에 모여 앉아 무명으로 만든 옷을 눈부시도록 희게 빨고 있는 모습을 본 《아리랑: Song of Arirang》의 저자 님 웨일스(1907〜1997)는 "이상주의와 순교자의 민족이 아니라면 이처럼 깨끗한 청결을 위해 그토록 힘든 운동을 감내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하였다. 서양에서 기독교가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해 본다면 절대 나쁜 뜻으로 표현한 말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실제로도 이러한 백의를 유지하는 데는 많은 비용과 노동력이 필요했으며 구한말 조선을 방문했던 여성인 비숍은 이러한 빈번한 세탁 및 재표백 작업으로 여성들이 중노동에 시달린다는 것을 비판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세탁을 하는 데 소요되는 노동력, 물, 세탁재료 등을 생각 해 보면 "흰 옷을 하얗게 유지하는 것"은 오히려 그 자체로 엄청난 사치다. 현대의 복식에서도 흰옷의 변색과 오염이 유독 빠르고 유지가 어려운 것은 직접 세탁을 해본 경험이 있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특별한 오염이 없더라도 인체에서 발생하는 땀과 기름, 때 등의 분비물만으로도 며칠만에 누렇게 변하는게 흰옷이다. 현대에도 광기에 가까운 집착이 아니고서야 매일 흰 옷을 입지 않는데 세탁기도 세제도 없던 옛날에는 더욱 심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게다가 세탁이 불가능 할 정도로 음식물이 묻었다면? 사대부의 나라 조선에서 의관이 단정치 못하게 돌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옷 자체를 틀고 다시 만드는 수 밖에 없다. 면포 자체가 화폐로서 기능했던 조선에서 백의를 유지하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매우 부담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백의를 고집했다는 것은 이것을 그만큼 특별하게 여겨서지 가난해서가 아니라는 말이 된다.
당장 빅토리아 여왕이 자신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결혼식에서 관리하기 힘들고 고가인 흰색 드레스를 입은 것을 시작으로 하얀색 옷이 유행하여 웨딩드레스가 되었다는 사례를 보면 흰 옷이 얼마나 귀한 대접을 받았는지 알 수 있다.
종합해 보면 백의(白衣)란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상징이며, 오히려 부릴 수 있는 노동력이 있고 투자할 수 있는 경제력이 있다는 뜻이지 빈곤의 상징으로 쓰이기엔 넌센스하다. 애초에 현대에도 흰색 셔츠야말로 가장 쉽게 지저분해져서 자주 세탁해야만 하는 의복임을 생각해 보자.[13] 비용과 품이 하도 많이 들다 보니 아예 국가적인 낭비로까지 여겨졌고 한반도 역사에서 여러 번 백의금지령이나 염색 권장이 정부 차원에서 내려졌으며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는 아예 정책적으로 백의를 금지해서 경찰들이 돌아다니다가 백의 입은 사람 보면 옷에 먹물을 뿌리기까지 할 정도로 백의를 막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만큼 가난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문물로, 오히려 유지에 품이 많이 들어 비경제적인 생활습관이었기에 천년이 넘는 시간동안 위정자들이 뜯어고치려고 했으나 기어코 안간힘을 쓰며 현대에까지 소나무 같이 이어져내려온 취향이라는 것이다.
5. 기타
- 유럽의 국가 벨라루스는 '하얀 루스'라는 뜻인데, 그들의 전통의상이 흰색이라서 그렇게 이름 붙었다는 설이 있다. 다른 설도 있다. 벨라루스 문서 참고. 벨라루스 신임 대사가 한국에 부임할 때 '우리는 서양의 백의민족입니다'라고 자기소개하는 관례가 있다.
- 발음이 비슷한 100(百)과 합쳐 말장난 소재로도 쓰인다. 몸무게를 물어보면 100의 민족(...)이라고 답하는 등.
- 옷뿐만 아니라 하얀 피부도 오래 전부터 한반도계 사람들이 선호하는 대상이었다. 이는 밖에서 일하는 노비들은 햇빛에 피부가 검해질 확률이 높다보니 양반들은 하얗다라는 신분제의 영향도 어느정도 있어보인다. 헌데 한류가 인기를 끌면서 해외 팬들도 늘어나자 이들을 시기 혹은 오해한, 한국의 전통 문화나 역사에 무지한 일부 사람들이 "한국인들이 하얀 피부를 좋아하는 건 서양 백인들을 동경한 결과다."라는[14] 엉뚱한 결론을 내리면서 하얀 피부를 가진 한국인 연예인들을 화이트워싱[15], 따라쟁이 비슷하게 공격하는 사례도 종종 드러난다. 이에 대해 한국의 역사성을 모르는 무지한 역인종차별이라는 의견과 이런 주장이 국내적으론 설득력이 있지만 한국 사회의 인종주의적 문제를 경험한 외국인들로서는 우려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의견이 대립한다. '외퀴''화이트워싱' K팝, '인종주의' 덫을 놓았나 덫에 걸렸나 여기서 지적하는건 하얀 피부를 동경하는게 문제라기보단 마치 그거 자체가 우월한 것처럼 인식되는[16] 세태 자체로 보인다.
[1] 실제로 해는 지구에서 보나 우주에서 보나 흰색으로 보인다.[2] 여담으로 부여 사람들의 대표적인 성씨인 해씨(解氏)가 '태양'을 순우리말로 발음한 '해'를 음차한 것이다.[3] 服色尙素: 흰색을 좋아하는 것은 부여의 '在國衣尙白(『삼국지』「동이전」부여조)'과 같다. 이로 미루어 보아 부여·고구려·신라도 크게는 한 종족이었던 듯 하다. - 출처 링크 주석에서 발췌.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예맥 문서 참고.[4] 사신으로 온 고려인 곽원(郭元)이 한 말이다.[5] 조선이 중국의 동쪽에 있기 때문에 오방색 중 동쪽을 상징하는 색인 파란색을 권한 것이다.[6] 동아시아, 특히 한국과 관련한 목판화를 많이 남긴 예술가이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고.[7] 김창숙 등도 흰 두루마기를 즐겨입었다.[8] 예외가 있다면 네이비색, 베이지색 정도. 그러나 이마저도 무채색에 가까운 낮은 채도의 색상이다.[9] 사실 자동차는 전세계적으로 흰색이 많이 팔리고 한국에서도 흰색 자동차가 가장 많이 팔리지만 옆나라 중국에 비하면 검은색, 은색, 회색의 비율이 많다. #[10] 90년대까진 한국도 짙은 색화장이 꽤 대세였지만 2010년대로 들어서 최대한 민낯에 가까운 쌩얼 화장법이 유행하고 있다. 피부에 노란 기가 도는 경우 연보라색 화장을 하는 경우도 많지만 피부를 화려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깔끔한 하얀 피부를 만드는 게 목적이다. 그리고 이 하얀 피부라는 것도 백인같이 불그스름한 하얀 피부라기 보다는 좀 더 본질적으로 순수한 백옥같은 도자기 피부를 일컫는 것.[11] 혐한 성향이 강한 일본 넷우익들이 주로 이런 선동을 하는 것으로 보이며, 국내 일부 사학자나 일반 네티즌 중에서도 이런 왜곡된 날조에 속아넘어가거나 아니면 진짜 일뽕 성향이라 어떤 목적성을 가지고 "우리 조상들은 가난해서 염색하지 않은 흰 옷을 입고 다녔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12] 한민족 외 금나라의 여진족과 토족들도 흰 옷을 즐겨 입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북방민족들이 흰색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추측하는 의견도 있다. 게다가 일반 백성들도 염색옷 잘만 입고 다녔다. 다만 색감을 넘어서 소위 튀는 옷은 어느 나라던지 신분제 사회에서 유행이 되면 금지령같은 억압을 받는 것이 흔한 패턴이기도 했다.[13] 반대로 검은 옷이 유행하는 이유가 뭔지도 생각해보자. 선호색인 부분도 있겠지만 웬만큼 더러워져도 크게 눈에 띄지 않는 편의성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14] 사실 근대 이전 동양권에서 백인들은 붉은 피부를 가졌다고 홍인이라 불리기도 했다. 근데 또 저 말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닌게, 근대 이전에도 하얀 피부를 선호한건 맞지만 근대 이후 주로 서구권에 위치한 선진국을 동경하면서 이런 시류에 편승하는 자들도 일부 있던건 사실이다. 결국 짬뽕된건데, 21세기 들어서 선호하는 피부는 좀 더 정확하겐 페인트칠한듯한 흰색을 말하는게 아니라 밝은 피부를 말하는거긴 하다. 물광피부 물론 오늘날엔 구릿빛 피부 역시 건강하게 보인다며 선호하는 사람들도 일부 있긴 하다. 예를 들어 보디빌더계에선 일부러 태운다.[15] 이는 한국 연예인 뿐만 아니라 헐리웃 등의 흑인 연예인들 역시 심심찮게 공격당하는 소재다.[16]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 보고 너 아프리카 또는 동남아에서 태어났냐라고 놀리는게 대표적이다. 여담으로 검은 피부 자체는 피부에 멜라닌 색소가 많기 때문인데, 이 멜라닌 색소는 햇빛의 자외선을 차단해주기에 딱히 나쁜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