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09 20:41:10

예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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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예(濊)3. 맥(貊)4. 예맥5. 표기 문제6. 왕사

1. 개요

濊貊. 고대 한반도 북중부와 만주에 거주하던 반농반목의 수렵민족이자, 한반도 중남부에 주로 거주했던 한(韓)족과 함께 현 한민족의 주류 조상이 되는 민족.

2. 예(濊)

고대쑹화강 일대부터 함경도, 강원도 북부에 이르는 동만주 일대와 한반도 북부에 존재했던 공동체. 문헌상으로 맥보다 후에 나타난다. 본래는 맥과는 구분되는 세력이었으며, 맥보다 동방에 위치하여 시대 이전까지 중국 문헌에 등장하지 않는다.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서야 문헌에 등장하며 국가를 이루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부여의 패퇴, 고구려의 확장 등으로 서서히 세력이 미약해지다가 끝내는 맥계의 고구려에 동화된다. 이로 인해 '역사를 열심히 공부한 한국인'에게 익숙한 '예맥'이라는 연칭이 완성된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따르면 예족은 호랑이에 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는데, 곽박의 《이아(爾雅)》, 《일본서기》 등을 근거로 '맥(貊)'이 을 의미했고, 예족과 맥족의 관계가 단군신화에 반영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이로부터 단군신화(檀君神話)에는 하늘과 태양을 숭배하는 천신족(天神族)이 곰을 토템(totem)으로 하는 맥족(貊族)과 호랑이를 토템으로 하는 예족(濊族)을 평정하고 복속시키는 사실을 설화로서 전해주는 신화(神話)로 남아있다고 여겨지고 있다. #

이들 민족이 주류인 국가는 부여, 동예 등이다.

3. 맥(貊)

고대 만주 지방에 존재한 종족. 상나라주나라 때부터 간헐적으로나마 그 기록이 등장하며, 해당 시대부터 춘추전국시대에 걸쳐 중국의 정북방에서 동북방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후한서삼국지의 기록도 그렇고, 중국 입장에서는 영 고깝게 보였던 듯.

목축 민족의 성격이 강하게 보이는데, 이는 맹자가 '수확의 2분의 1을 거두면 걸왕과 같고,[1] 수확의 20분의 1을 거두면 맥과 같다(이후 중국 고유의 세제로 10분의 1세를 주장)'고 한 말에서도 정주를 위한 공동체 예산 및 세제의 정착이 미약했으리라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 따라서 맥족의 이러한 유목 문화를 근거로 당시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유목 국가이던 흉노와의 연관성을 의심해볼 수도 있다. 물론 동시대 존재했던 숙신도 부분적인 유목 문화가 있기는 했지만 숙신은 대개 유목과 농경, 어로를 병행하는 삼림 민족이었다. 순수 유목 민족으로는 흉노로 대표되는 알타이계 민족이 그 당시 유일했다.

맥계는 후에 고구려 건국 및 확장시에 보다 확실하게 대두된다. 물론 고구려 세력이 유일한 맥계 공동체는 아니었고, 고구려 통합 과정에서 대수맥(大水貊), 소수맥(小水貊), 양맥(梁貊) 등이 편입되어 나간 것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영 껄끄러운 세력이었기 때문인지, 북송 시대에 고려 사신의 행패를 소동파가 비난할 때 비칭으로 쓰인 사례를 찾을 수 있다.
"맥적이 들어와 조공하는 것이 터럭만큼도 이익은 없고 다섯 가지 손해만 있습니다. 지금 요청한 서책과 수매해 가는 금박 등은 모두 허락하지 말아야 합니다."
貊賊入貢 無絲髮利而有五害 今請諸書與收買金箔 皆宜勿許。
- 《송사》, 외국열전, 고려전

고유 풍습과 관련된 말로 '맥궁(貊弓)'이나 '맥적(貊炙)' 등의 말을 찾아볼 수 있으며, 특히 맥적은 한국 요리너비아니의 기반이 되었으리라는 추측을 받고 있다. 참고로 백제에서도 맥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책계왕낙랑이 주동이 되어 맥인과 함께 백제에 쳐들어가서 책계왕이 맞서 싸웠으나 전사했다고 한다.

이들 민족이 주류인 국가는 초기 고구려, 고조선 등이다.

4. 예맥

예맥(濊貊)은 고대 중국 동북 지방과 한반도 북부에 거주했던 종족명으로, 삼한계 민족들과 함께 한민족(韓民族)의 근간이 되는 민족들 중 하나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그동안 예족맥족을 사실상 동질적인 민족들로 보는 견해가 주류였으나, 최근의 연구 결과 이에 관한 다양한 반론들이 제시되고 있다.
"내가 몸소 다니며 약취(略取)해 온 한인(韓人)예인(穢人)들만을 데려다가 무덤을 수호·소제하게 하라."
但取吾躬率所略來韓穢, 令備洒掃言教如此.
광개토대왕릉비』 비문에서.

한예(韓穢)를 한과 예가 섞인 별도의 집단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한과 예를 연칭한 것으로 봄이 일반적이다. 예족과 맥족이 같은 민족이라면, 어째서 고구려인(맥인)들이 한인(韓人)들 처럼 예인(穢人)들도 따로 구분해서 부르고 있는지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예인은 백제의 지배 민족이었던 부여계 민족을, 한인은 피지배민족인 마한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된다.

우선 예인(穢人)과 한인(韓人)들의 차이에 대해서는 『주서(周書)』 이역전(異域傳) 백제조에 의하면 "왕의 성은 부여씨(夫餘氏)이고 이름은 '어라하'라 하는데 백성은 '건길지(鞬吉支)'라고 부른다. 이것은 한자어로 왕(王)과 같다. 처는 '어륙(於陸)'이라 하는데 한자로 비(妃)가 된다."고 하여 부여계 언어와 한계(韓系) 토착 언어와의 차이를 단적으로 말하여 주고 있다.

어느 시기나 지배층의 용어와 일반민의 용어에는 차이가 있었던 만큼, 저 구절을 부여계 언어와 백제 토착 언어와의 언어차를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견해도 있는데, 실제로 조선의 경우에도 사대부와 신하들은 '주상' 혹은 '전하'라고 부르고 일반 평민, 백성들은 '나랏님'이나 '임금님', 또는 '상감마마' 같은 식으로 서로 다르게 부른 사례가 분명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동시대 신라 사회나 고구려 사회가 지배 계층과 피지배 계층이 왕을 서로 달리 부른 적이 없었던 점으로 미루어 볼 때 확실히 백제만의 특징적인 차이라고 볼 수도 있으며, 바로 그 점에서 의혹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역사상 한 나라의 국민들이 국가 지도자의 관명을 달리 부르는 현상은 이중 언어 사회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일로서 결코 일반적인 현상이 아니었다. 자세한 내용은 백제어 문서의 '이중 언어 체계' 문단을 참조.

또한, 예맥족을 갈라서 따로 구별해 보는 견해에서는 예(濊)와 맥(貊)을 비동질적인 집단들로 보아 예족은 요동과 요서에 걸쳐 있었고, 맥족은 그 서쪽에 분포하고 있다가 고조선 말기에 서로 합쳐진 것이라고 보며, 반대로 예맥(濊貊)을 단일종족으로 보는 견해에서는 예맥은 고조선의 한 구성 부분을 이루던 종족으로서 고조선의 중심세력이었다고 본다.

하지만 광개토대왕릉비의 저 비문만으로 고구려가 같은 예맥계인 예족들도 아예 다른 민족으로 인식했다고 보기에는 힘들다. 애초에 고대에는 같은 민족끼리도 부족별로 나뉘어서 싸우거나 각각 다른 나라들로 나뉘어서 싸우는 경우가 많았고, 그 탓에 서로를 별개의 집단으로 구별해서 인식하는 경우가 매우 많았었다. 비유하자면 한국전쟁북한남한의 국군 포로들을 노역에 동원했다고 해서 이를 근거로 남한과 북한이 서로 다른 민족이 되는 게 아닌 것처럼, 그 당시 고구려 또한 전쟁 포로들을 활용했다고 해서 같은 부여계인 예족과 맥족이 서로 아예 다른 별개의 민족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애초에 전근대에는 혈통과 언어가 비슷한 같은 민족들을 부족이 서로 다르고 나라가 다르다는 이유로 침략해서 노예로 삼는 경우가 매우 흔했었다. 대표적인 예로 조선시대 여진족들만 해도 서로 부족별로 나뉘어서 치열하게 싸웠었고, 정복한 타 부족민들을 전부 노예로 만든 경우가 많았었다.

참고로 일부 학자들은 발음상의 유사성(예맥-ymk-ymt-야마토)과, 역사적, 유전학적 사실(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이 많음)을 통해 "한국어와 일본어는 같은 어족이다!"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하지만, 이를 확실히 뒷받침하는 자료는 거의 없다.

5. 표기 문제

이들 세력이나 종족을 '예맥족'이라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표현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문헌상으로 예와 맥은 '예(濊)', '맥(貊)'으로만 존재할 뿐 '예족', '맥족'이라 기록된 적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동이(東夷)'의 경우 '동이족'이라는 혈연적 민족이 있었던 게 아니라, 중국의 입장에서 동쪽의 이민족들을 총칭했던 용어가 '동이'일 뿐인 것처럼.

반대로 예맥을 예와 맥이라는 특정 혈연 민족으로 보는 경우 이들을 '예맥족'이라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문헌상에는 羌(강), 氐(저), 凶奴(흉노)라고 나타나는 민족을 강족, 저족, 흉노족 등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6. 왕사

대수 칭호 재위기간 비고
.
.
.
말대 예군(穢君) 남려 ? ~ ?(기원전) 기원전128년, 위만조선의 임둔, 진번, 예맥 등 주변소국 영향력 행사에 반발하여 요동군에 내항함
?? 부조예군(夫租薉君) ?? ? ~ ?(기원전) 기원전1세기, 낙랑군 조선현에 묻힌 군장, 낙랑군 동부도위 부조현의 토착 군장으로 추정, 낙랑군 동부도위는 기원전 30년 폐지되어 영동예(단단대령 동쪽 예맥=동예옥저)는 군장사회로 자립하다 고구려에 복속됨
?? 실직국왕 안일왕 또는 에밀왕 ? ~ ?(기원후) 기원전 50년경, 파단국을 공격하여 정복함(실직→사직→삼척)
말대 파단국왕(波但國王) ?? ? ~ 50년(기원후) 기원전 50년경, 실직국에 정복당하여 멸망, 훗날 고구려 파조현(波潮縣), 신라 경덕왕이 해곡현(海曲縣)으로 바꾼 것을 보면 '파단'국은 '바다'의 나라로 유추할 수 있음
?? 예국왕 ?? ? ~ ?(기원후) 기원후 60년경, 예국(강릉시)이 실직국(삼척)을 공격하자, 실직국 안일왕이 울진군으로 피난감, 강릉예국과 삼척 실직국 그리고 울진 파단국을 창해3국으로 칭함
?? 맥국왕 가리 또는 갈 ? ~ ?(기원후) 춘천 맥국의 왕으로 난리를 피해 산 속에 머물렀다는 구전이 있음. 정선군 가리왕산(갈왕산)의 이름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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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담으로 중세 일본은 걸왕 뺨치는 세율을 자랑했다. 맹자 말마따마 걸왕처럼 걷으면 성군 취급 받았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