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11 10:21:49

예맥

{{{#!wiki style="margin:0 -1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1px; margin-top:-6px; margin-bottom:-5px"
상고
시대
고조선 진국 우산국 주호국
위만조선 삼한
원삼국
시대
마한 변한 진한
삼국
시대
고구려 백제 가야 신라 탐라국
남북국
시대
발해 신라
후삼국
시대
태봉 후백제 신라
고려
시대
고려
조선
시대
조선
구한말 대한제국
일제
강점기
일본령 조선 대한민국
임시정부
남북
분단
조선인민공화국
소련군정 조선 미군정 조선
북조선인민위원회 치하 조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한민국
제1공화국 | 제2공화국 | 제3공화국
제4공화국 | 제5공화국 | 제6공화국
}}}}}}}}} ||


만주의 역사
{{{#!wiki style="margin:0px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고대 중세 근세 근현대
||<|2><#015197> 동호 ||<tablewidth=100%><#AB4B45> ||<|2><#8A001B> 고조선 ||<|3><#951b1b><-2> 예맥 ||<|3><#D2691E> 숙신 ||
흉노 전한
요동군
오환
선비
후한
요동군
부여 읍루
조위 [[요동 공손씨 정권|동연 {{{#!wiki style="font-size: 0.7em; letter-spacing:-1.4px"]]
서진
전연
전진
후연 고구려 부여 물길
북연
북위 거란 실위 두막루
동위 말갈
북제
북주
}}}}}}||

위서(魏書)
{{{#!wiki style="margin: 0px -11px; color:#ece5b6"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color:#181818"
1권 「무제기(武帝紀)」 2권 「문제기(文帝紀)」 3권 「명제기(明帝紀)」
조조 ,조등, ,왕준, 조비 조예 ,학소, ,진랑, ,맹타,
4권 「삼소제기(三少帝紀)」 5권 「후비전(后妃傳)」
조방 ,장특, · 조모 · 조환 무선황후 · 문소황후 · 문덕황후 · 명도황후 · 명원황후
6권 「동이원유전(董二袁劉傳)」 7권 「여포장홍전(呂布臧洪傳)」 8권 「이공손도사장전(二公孫陶四張傳)」
동탁 ,이각, ,곽사, ,마등, ,한수,
원소 ,저수, ,전풍, ,원담, ,원희, ,원상, · 원술
유표 ,유종, ,부손, ,괴월, ,한숭, ,채모,
여포 ,장막, ,진궁, ,진등, · 장홍 공손찬 ,유우, · 도겸 · 장양 · 공손도 ,공손연,
장연 · 장수 · 장로
9권 「제하후조전(諸夏侯曹傳)」 10권 「순욱순유가후전(荀彧荀攸賈詡傳)」
하후돈 ,하후무, ,한호, ,사환, · 하후연 ,하후패, · 조인 ,조순, · 조홍 · 조휴 ,조조(肇),
조진 ,조상, ,이승, ,환범, ,하안, · 하후상 ,하후현, ,이풍, ,허윤,
순욱 ,순의, ,예형, · 순유 · 가후
11권 「원장양국전왕병관전(袁張凉國田王邴管傳)」 12권 「최모서하형포사마전(崔毛徐何邢鮑司馬傳)」 13권 「종요화흠왕랑전(鍾繇華歆王朗傳)」
원환 · 장범 ,장승, · 양무 · 국연
전주 · 왕수 · 병원 · 관녕 ,왕렬, ,장천, ,호소,
최염 ,공융, ,허유, ,누규, · 모개 · 서혁
하기 · 형옹 · 포훈 · 사마지
종요 ,종육, · 화흠 · 왕랑 ,왕숙,
14권 「정곽동류장류전(程郭董劉蔣劉傳)」 15권 「유사마량장온가전(劉司馬梁張溫賈傳)」 16권 「임소두정창전(任蘇杜鄭倉傳)」
정욱 ,정효, · 곽가 · 동소
유엽 ,유도, · 장제 · 유방 ,손자,
유복 ,유정, · 사마랑 · 양습 ,왕사,
장기 ,유초, ,장집, · 온회 ,맹건, · 가규 ,가충,
임준 · 소칙 · 두기(畿) ,두서, ,악상,
정혼 ,정태, · 창자 ,안비, ,영호소,
17권 「장악우장서전(張樂于張徐傳)」 18권 「이이장문여허전이방염전(二李藏文呂許典二龐閻傳)」
장료 · 악진 · 우금 · 장합 · 서황 ,주령, 이전 · 이통 · 장패 ,손관, · 문빙 · 여건 ,왕상,
허저 · 전위 · 방덕 ·방육 ,조아, · 염온
19권 「임성진소왕전(任城陳蕭王傳)」 20권 「무문세왕공전(武文世王公傳)」
조창 · 조식 ,양수, ,정의, ,정이, · 조웅 조앙 · 조삭 · 조충 ·조거 · 조우 ·조림(林) · 조곤 · 조현 ·조간 ·조표 ·조정 ·조림(霖)
21권 「왕위이유부전(王衛二劉傳)」 22권 「환이진서위노전(桓二陳徐衛盧傳)」 23권 「화상양두조배전(和常楊杜趙裴傳)」
왕찬 ,진림, ,완우, ,유정, · 위기 · 유이 · 유소 · 부하 환계 · 진군 ,진태, · 진교 · 서선 · 위진 · 노육 화흡 · 상림 ,시묘, · 양준 ·두습 · 조엄 · 배잠 ,배수,
24권 「한최고손왕전(韓崔高孫王傳)」 25권 「신비양부고당륭전(辛毗楊阜高堂隆傳)」 26권 「만전견곽전(滿田牽郭傳)」
한기 · 최림 ·고유 · 손례 · 왕관 신비 ,신헌영, · 양부 ,왕이, · 고당륭 ,잔잠, 만총 · 전예 · 견초 · 곽회
27권 「서호이왕전(徐胡二王傳)」 28권 「왕관구제갈등종전(王毌丘諸葛鄧鍾傳)」
서막 · 호질 ,호위, · 왕창 · 왕기 왕릉 ,선고, ,영호우, · 관구검 ,문흠, · 제갈탄 ,당자, · 등애 ,주태, · 종회 ,장창포, ,왕필,
29권 「방기전(方技傳)」
화타 · 두기(夔) ,마균, · 주건평 · 주선 · 관로
30권 「오환선비동이전(烏丸鮮卑東夷傳)」
오환족 · 선비족 ,가비능, · 부여 ·고구려 · ·읍루 · 예맥 · 동옥저 ·마한 ·진한 ·변한
}}}
}}}}}}


1. 개요2. 예(濊)3. 맥(貊)4. 예맥5. 표기 문제6. 역사귀속과 계승인식7. 왕사8. 관련 역사기록9. 기타10. 삼국시대 이전 한반도 인근의 세력 목록 11. 같이보기

1. 개요

濊貊. 고대 한반도 북중부와 만주 중남부에 거주하던 반농반목의 수렵민족이자, 한반도 중남부에 주로 거주했던 한(韓)족과 함께 현 한민족의 주류 조상이 되는 민족.

2. 예(濊)

고대쑹화강 일대부터 함경도, 강원도에 이르는 동만주 일대와 한반도 북부에 존재했던 공동체. 문헌상으로 맥보다 후에 나타난다. 본래는 맥과는 구분되는 세력이었으며, 맥보다 동방에 위치하여 시대 이전까지 중국 문헌에 등장하지 않는다.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서야 문헌에 등장하며 국가를 이루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부여의 패퇴, 고구려의 확장 등으로 서서히 세력이 미약해지다가 끝내는 맥계의 고구려에 동화된다. 이로 인해 '역사를 열심히 공부한 한국인'에게 익숙한 '예맥'이라는 연칭이 완성된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따르면 예족은 호랑이에 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는데, 곽박의 《이아(爾雅)》, 《일본서기》 등을 근거로 '맥(貊)'이 을 의미했고, 예족과 맥족의 관계가 단군신화에 반영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이로부터 단군신화(檀君神話)에는 하늘과 태양을 숭배하는 천신족(天神族)이 곰을 토템(totem)으로 하는 맥족(貊族)과 호랑이를 토템으로 하는 예족(濊族)을 평정하고 복속시키는 사실을 설화로서 전해주는 신화(神話)로 남아있다고 여겨지고 있다. #

이들 민족이 주류인 국가는 부여, 동예 등이다.

3. 맥(貊)

고대 만주 지방에 존재한 종족. 상나라주나라 때부터 간헐적으로나마 그 기록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때 맥족은 주나라에 조공을 바쳐오면서 살아왔다. 해당 시대부터 춘추전국시대에 걸쳐 중원의 정북방에서 동북방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후한서삼국지의 기록도 그렇고, 중국 입장에서는 영 고깝게 보였던 듯.

목축민족의 성격이 강하게 보이는데, 이는 맹자가 '수확의 2분의 1을 거두면 걸왕과 같고, 수확의 20분의 1을 거두면 맥과 같다(이후 중국 고유의 세제로 10분의 1세를 주장)'고 한 말에서도 정주를 위한 공동체 예산 및 세제의 정착이 미약했으리라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 따라서 맥족의 이러한 유목 문화를 근거로 당시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유목 국가이던 흉노와의 연관성을 의심해볼 수도 있다. 물론 동시대 존재했던 숙신도 부분적인 유목 문화가 있기는 했지만 숙신은 대개 유목과 농경, 어로를 병행하는 수렵민족이었다. 당시 동양의 순수 유목민족들은 흉노로 대표되는 몽골 초원의 민족들이었다.

맥계는 후에 고구려 건국 및 확장 시에 보다 확실하게 대두된다. 물론 고구려 세력이 유일한 맥계 공동체는 아니었고, 고구려 통합 과정에서 대수맥(大水貊), 소수맥(小水貊), 양맥(梁貊) 등이 편입되어 나간 것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영 껄끄러운 세력이었기 때문인지, 북송 시대에 고려 사신의 행패를 소동파가 비난할 때 비칭으로 쓰인 사례를 찾을 수 있다.
貊賊入貢 無絲髮利而有五害 今請諸書與收買金箔 皆宜勿許.

"맥적이 들어와 조공하는 것이 터럭만큼도 이익은 없고 다섯 가지 손해만 있습니다. 지금 요청한 서책과 수매해 가는 금박 등은 모두 허락하지 말아야 합니다."
송사》, 외국열전, 고려전

고유 풍습과 관련된 말로 '맥궁(貊弓)'이나 '맥적(貊炙)' 등의 말을 찾아볼 수 있으며, 특히 맥적은 한국 요리너비아니의 기반이 되었으리라는 추측을 받고 있다. 참고로 백제에서도 맥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책계왕낙랑이 주동이 되어 맥인과 함께 백제에 쳐들어가서 책계왕이 맞서 싸웠으나 전사했다고 한다.

이들 민족이 주류인 국가는 초기 고구려, 고조선 등이다.

4. 예맥

예맥(濊貊)은 고대 만주 지방과 한반도 북부에 거주했던 종족명으로, 삼한계 민족들과 함께 한민족(韓民族)의 근간이 되는 민족들 중 하나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그동안 예족맥족을 사실상 동질적인 민족들로 보는 견해가 주류였으나, 최근의 연구 결과 이에 관한 다양한 반론들이 제시되고 있다.
"내가 몸소 다니며 약취(略取)해 온 한인(韓人)예인(穢人)들만을 데려다가 무덤을 수호·소제하게 하라."
但取吾躬率所略來韓穢, 令備洒掃言教如此.
광개토대왕릉비』 비문에서.

한예(韓穢)를 한과 예가 섞인 별도의 집단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한과 예를 연칭한 것으로 봄이 일반적이다. 예족과 맥족이 같은 민족이라면, 어째서 고구려인(맥인)들이 한인(韓人)들처럼 예인(穢人)들도 따로 구분해서 부르고 있는지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예인은 백제의 지배 민족이었던 부여계 민족을, 한인은 피지배민족인 마한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된다.

우선 예인(穢人)과 한인(韓人)들의 차이에 대해서는 『주서(周書)』 이역전(異域傳) 백제조에 의하면 "왕의 성은 부여씨(夫餘氏)이고 이름은 '어라하'라 하는데 백성은 '건길지(鞬吉支)'라고 부른다. 이것은 한자어로 왕(王)과 같다. 처는 '어륙(於陸)'이라 하는데 한자로 비(妃)가 된다."고 하여 부여계 언어와 한계(韓系) 토착 언어와의 차이를 단적으로 말하여 주고 있다.

어느 시기나 지배층의 용어와 일반민의 용어에는 차이가 있었던 만큼, 저 구절을 부여계 언어와 백제 토착 언어와의 언어차를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견해도 있는데, 실제로 조선의 경우에도 사대부와 신하들은 '주상' 혹은 '전하'라고 부르고 일반 평민, 백성들은 '나랏님'이나 '임금님', 또는 '상감마마' 같은 식으로 서로 다르게 부른 사례가 분명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동시대 신라 사회나 고구려 사회가 지배 계층과 피지배 계층이 왕을 서로 달리 부른 적이 없었던 점으로 미루어 볼 때 확실히 백제만의 특징적인 차이라고 볼 수도 있으며, 바로 그 점에서 의혹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역사상 한 나라의 국민들이 국가 지도자의 관명을 달리 부르는 현상은 이중 언어 사회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일로서 결코 일반적인 현상이 아니었다. 자세한 내용은 백제어 문서의 '이중 언어 체계' 문단을 참조.

또한, 예맥족을 갈라서 따로 구별해 보는 견해에서는 예(濊)와 맥(貊)을 비동질적인 집단들로 보아 예족은 요동과 요서에 걸쳐 있었고, 맥족은 그 서쪽에 분포하고 있다가 고조선 말기에 서로 합쳐진 것이라고 보며, 반대로 예맥(濊貊)을 단일종족으로 보는 견해에서는 예맥은 고조선의 한 구성 부분을 이루던 종족으로서 고조선의 중심세력이었다고 본다.

하지만 광개토대왕릉비의 저 비문만으로 고구려가 같은 예맥계인 예족들도 아예 다른 민족으로 인식했다고 보기에는 힘들다. 애초에 고대에는 같은 민족끼리도 부족별로 나뉘어서 싸우거나 각각 다른 나라들로 나뉘어서 싸우는 경우가 많았고, 그 탓에 서로를 별개의 집단으로 구별해서 인식하는 경우가 매우 많았었다. 비유하자면 한국전쟁북한남한의 국군 포로들을 노역에 동원했다고 해서 이를 근거로 남한과 북한이 서로 다른 민족이 되는 게 아닌 것처럼, 그 당시 고구려 또한 전쟁 포로들을 활용했다고 해서 같은 부여계인 예족과 맥족이 서로 아예 다른 별개의 민족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애초에 전근대에는 혈통과 언어가 비슷한 같은 민족들을 부족이 서로 다르고 나라가 다르다는 이유로 침략해서 노예로 삼는 경우가 매우 흔했었다. 대표적인 예로 조선시대 여진족들만 해도 서로 부족별로 나뉘어서 치열하게 싸웠었고, 정복한 타 부족민들을 전부 노예로 만든 경우가 많았었다.

참고로 일부 학자들은 발음상의 유사성(예맥-ymk-ymt-야마토)과, 역사적, 유전학적 사실(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이 많음)을 통해 "한국어와 일본어는 같은 어족이다!"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하지만, 이를 확실히 뒷받침하는 자료는 거의 없다.

5. 표기 문제

이들 세력이나 종족을 '예맥족'이라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표현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문헌상으로 예와 맥은 '예(濊)', '맥(貊)'으로만 존재할 뿐 '예족', '맥족'이라 기록된 적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반대로 예맥을 예와 맥이라는 특정 혈연 민족으로 보는 경우 이들을 '예맥족'이라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문헌상에는 羌(강), 氐(저), 凶奴(흉노)라고 나타나는 민족을 강족, 저족, 흉노족 등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6. 역사귀속과 계승인식

공은 어려서부터 남다른 모습을 보였고, 일찍부터 뛰어난 용모를 지녔으니, 그 기세가 삼한(三韓)을 압도하였고, 그 이름이 양맥(兩貊)[1]에 드날렸다.
부여융 묘지명, 682년

부여융 묘지명의 양맥은 두 예맥족이란 뜻으로 백제와 고구려가 예맥을 계승하였음을 알 수있다.

7. 왕사

대수 칭호 재위기간 비고
.
.
.
말대 예군(穢君) 남려 ? ~ ?(기원전) 기원전128년, 위만조선의 임둔, 진번, 예맥 등 주변소국 영향력 행사에 반발하여 요동군에 내항함
?? 부조예군(夫租薉君) ?? ? ~ ?(기원전) 기원전1세기, 낙랑군 조선현에 묻힌 군장, 낙랑군 동부도위 부조현의 토착 군장으로 추정, 낙랑군 동부도위는 기원전 30년 폐지되어 영동예(단단대령 동쪽 예맥=동예옥저)는 군장사회로 자립하다 고구려에 복속됨
?? 실직국왕 안일왕 또는 에밀왕 ? ~ ?(기원후) 기원전 50년경, 파단국을 공격하여 정복함(실직→사직→삼척)
말대 파단국왕(波但國王) ?? ? ~ 50년(기원후) 기원전 50년경, 실직국에 정복당하여 멸망, 훗날 고구려 파조현(波潮縣), 신라 경덕왕이 해곡현(海曲縣)으로 바꾼 것을 보면 '파단'국은 '바다'의 나라로 유추할 수 있음
?? 예국왕 ?? ? ~ ?(기원후) 기원후 60년경, 예국(강릉시)이 실직국(삼척)을 공격하자, 실직국 안일왕이 울진군으로 피난감, 강릉예국과 삼척 실직국 그리고 울진 파단국을 창해3국으로 칭함
?? 추장 소모(素牟) ? ~ ?(기원전)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등장하는 위(僞)말갈의 추장. 위말갈을 춘천 맥국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기원전 1년, 칠중하(임진강) 전투에서 백제국에 사로잡혀 마한왕에게 압송되었음
?? 맥국 거수(渠帥) ? 40년경 40년 9월, 영동예 화려,불내 사람들이 신라(진한?) 북쪽을 침범하자 맥국의 거수가 곡하(曲河) 서쪽에서 격퇴함. 신라 유리이사금이 기뻐하며 맥국과 우호를 맺음
?? 맥국왕 가리 또는 ? ~ ?(기원후) 춘천 맥국의 왕으로 난리를 피해 산 속에 머물렀다는 구전이 있음. 정선군 가리왕산(갈왕산)의 이름 유래
?? 추장 나갈(羅渴) 258년경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등장하는 위(僞)말갈의 추장. 위말갈을 춘천 맥국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258년, 말갈 추장이 백제 고이왕에게 말 10필을 조공함. 친낙랑군백제 자세를 견지해오던 말갈의 조공 이후 백제와 말갈의 오랜 전쟁도 소강상태로 돌아섬
?? 예백(穢佰) ?? 3세기 후반 포항시 북구 신광면에서 발견된 진솔선예백장(晉率善穢佰長) 도장을 사용한 예족 수장. 중국 진(晉)나라로부터 동인(銅印)을 받음, 예백이 북쪽에서 활동하다 여기에 묻혔거나, 당시 해당지역에서 활동하다 여기에 묻혔거나 둘 중 하나인데, 후자일 경우, 동예(영동예)가 활동한 최남단 지역이 경주에 근접한 포항시 북구 신광면까지 였음을 알 수 있음. 전자일 경우, 북명(北冥, 북쪽 바닷가, 강원도함경도 동해안)사람이 신라왕에게 바쳤다는 예왕지인 기록 사례처럼 북쪽에서 남하한 사람들에 의해 취득한 도장일 수도 있음

8. 관련 역사기록

『삼국사(三國史)』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명주(溟州)는 옛날의 예국(穢國)인데 농부가 밭을 갈다가 '예왕의 도장'(濊王之印: 예왕지인)을 발견해 바쳤다.”
춘주(春州)는 예전의 우수주(牛首州)인데 옛날의 맥국(貊國)이다.”
“지금의 삭주(朔州)가 맥국이라고도 하고, 혹은 평양성이 맥국이라고도 하였다.”
《삼국유사》 제1권 기이 제1 마한 中.

9. 기타

예맥족은 한반도 북부, 남만주, 요동에 위치하고 서쪽으로는 동호계[2], 동쪽으로는 숙신계[3] 종족들과 위치해 있었고, 고조선,부여,고구려[4]와 백제, 발해를 세웠고[5] 동호계의 거란족에게[6] 만주지역의 예맥족은 멸망했지만 한반도로 남하한 예맥족은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와 고조선을 계승한 조선을 세웠다. 이후 동호계와 숙신계는 중원에 진출해서 요나라,원나라,금나라,청나라같은 강대국을 세웠지만 한반도 예맥은 중원 진출은 고사하고 본인들의 발흥지였던 만주지역마저도 되찾지 못하고 타 민족에게 고통 고난의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중원에 진출한 동호계, 숙신계는 결국 자기 나라와 역사, 문화들조차 자신이 지배했던 민족들에게 파괴되고 빼앗겼으며 자기 나라조차 없는 중국의 소수민족[7]으로 전락해 버렸고, 예맥계는 한반도에 진출해 결국 독립국가를 지닌 민족의 조상이 되었으니 어찌보면 최후의 승자. 마지막에 웃는 자가 진짜 승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일본 극우들은 예맥계 국가를 억지로 퉁구스 숙신계 -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귀속시키려 하며 떼를 쓰고 있다.

10. 삼국시대 이전 한반도 인근의 세력 목록

11. 같이보기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69 판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150 판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만주 종족 계보 문서의 r50 판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단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한반도의 지도자 목록 문서의 r23 판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1] 두개의 맥족이라는 뜻으로 백제와 고구려를 의미함[2] 거란족, 흉노족, 몽골족 등[3] 여진족, 만주족[4] 동호계의 거란족과 숙신계의 말갈족을 동시에 통제하는 최대의 저력을 보여주었다.[5] 신라,탐라의 경우, 고조선이 남하하여 생겼다는 기록도 있으니 아예 무관하진 않다.[6] 고구려는 동호계인 선비족과 한족의 융합왕조인 당나라에게 이미 한 번 망하기도 했다.[7] 내몽골 자치구의 2000만 몽골족과 다우르족, 만주족은 현재 중국에 귀속된 소수민족이다. 외몽골 300만명은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