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8 20:08:58

순의

진서(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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荀顗
순의
시호 강공(康公)
작위 조위관내후(關內侯) → 만세정후(萬歲亭侯) → 만세향후(萬歲鄕侯) → 임회후(臨淮侯)
서진임회공(臨淮公)
최종직위 태위(太尉)
성씨 (荀)
(顗)
경천(景倩)
아버지 순욱(荀彧)
생몰기간 ?년 ~ 274년 4월 28일
고향 예주(豫州) 영천군(穎川郡) 영음현(潁陰縣)
재임기간 사공 재임기간 264년 3월 17일 ~ 267년 9월
사도 재임기간 267년 9월 ~ ?년
태위 재임기간 ?년 ~ 274년 4월 28일
1. 개요2. 생애3. 평가4.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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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국시대의 위나라와 서진의 문관이며 자는 경천(景倩)으로 순욱(荀彧)의 4남, 순찬(荀粲)의 형, 진태(陳泰)의 외숙부다. 예주 영천군 영음현 사람.

2. 생애

매부 진군(陳羣)으로부터 특이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다양한 학문을 해 배운 것을 모두 흡수했다. 자신의 생각을 나타낼 때는 신중하고 치밀했으며, 사마의(司馬懿)가 그를 보고 기이한 인재라 하며 이렇게 말했다.
과연 순령군의 아들이로구나. 근래에 원간을 만났더니 역시 효경의 아들이라 할만했다.

그리고 그를 발탁해 산기시랑으로 삼았다.

이후 종회(鐘會)를 "역경에는 호체가 없다."고 꾸짖었다거나, 사마의의 칠남인 사마준[1]와 인(仁)과 효(孝) 중에 무엇이 앞선 것인가를 논한 바 있어 세상에 알려졌다.

정시 연간[2]에는 호소(胡昭)를 조엄(趙儼), 황휴(黃休), 곽이(郭彛), 종육(鍾毓), 유애(庾嶷), 하정(何楨)과 함께 천거했다. 260년에 조모(曹髦)가 살해됐을 때는 진태가 오지 않자 사마소(司馬昭)의 명으로 진태를 불러 왔다. 당시 사마소의 앞잡이가 된 순의를 보고 진태는 "외숙부는 이제 저보다 못난 인간입니다." 라고 디스했다고.

264년 3월 17일 상서좌복야에서 사공으로 승진했는데, 나이 60을 넘어서도 효성이 극진하여, 같은 해 어머니의 상을 당하자 관직을 내려놓고 거의 실성할 듯했으므로, 나라에서 이를 칭찬했다.

이에 사마소가 황제에게 아뢰어, 한의 태부였던 호광(胡廣)의 고사에 따라 사공으로 복귀했고, 7월에 사마소의 명을 받아 양호(羊祜), 임개(任愷), 경준(庚峻), 응정(應貞), 공호(孔顥)와 함께 예의를 제정한다.

사마충(司馬衷)의 아내를 결정할 때 행태자태부로 있던 순의는 271년에 가충(賈充)의 아내 곽괴(郭槐)에게 돈을 받고 가남풍(賈南風)이 사마충과 결혼하는 것에 큰 역할을 하며, 시중, 상서령, 거기장군을 지내던 가충, 시중, 중서감을 지내던 순욱(荀勖),[3] 월기교위 풍담(馮紞)과 더불어 서로 한 무리의 벗이 되자 조정이나 민간에서 그들을 미워했다고 한다.

274년 4월 28일 임회공으로 있다가 죽으니 시호는 강공(康公)이다.

아들이 없어서 고조카인 순서가 임화공의 작위를 물려받았으나 뛰어난 인재가 아니었고 동진 시절엔 별다른 인재들을 배출하지 못한채 동진이 망하고 나서 임화공의 작위를 박탈당했다.

3. 평가

아버지 순욱이 일생을 바쳐 충성한 주군과 척을 지면서까지 한 왕조를 지키려 했던 반면 아들은 아버지의 피땀이 녹아든 위 왕조를 무너뜨리는데 앞장섰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걸 두고 '빈 찬합 받고 죽은 아버지 순욱의 복수로 아버지가 끝까지 막으려 했던 위 제국을 아들이 무너뜨린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순의가 그런 감정을 품고 행동했다는 사료적인 근거는 당연히 없다. 실제로는 순의를 포함해 순욱의 아들들은 아버지 순욱의 죽음 이후로도 위나라 황실, 권력자, 명사들과 두루두루 잘 지냈다.

순의가 사마씨에 붙은 건 그저 시대에 영합해서 자신의 부귀영달을 위한 선택이라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이다. 조조에게 중용되었던 여러 중신들의 아들~손자들은 이렇게 고평릉 사변 이후로 이미 정해진 대세를 따라 사마씨 편으로 갈아탄 사람이 대부분이다. 후대인들 입장에서 아버지가 받은 처우에 앙심을 품고 조위에 복수했다는 게 재미있으면서 그럴듯한 소재감이라 그렇게 호사적 소재로 오르내릴 뿐이다.

그러면서도,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정치권력 구도를 보면 순의의 찬탈 동조는 그의 가문인 영천 순씨를 포함한 청류파가 조위 황실을 저버리고 사마씨로 주인을 바꾼 것이란 의미가 있다. 그 시발점이 바로 그들의 영수였던 순욱이 조조와의 반목으로 자살하는 사건이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다만 순의는 지 밖에 모르는 가충에게 빌붙고 가남풍을 비호하는 등 자기 이익밖에 모르는 행동들을 한 것 보면 조조가 순욱을 버리지 않았어도 조씨를 버리고 사마씨에게 붙을 가능성도 있는 인간이다.

실제로 순의의 이런 처세는 후대 학자들 또한 좋아하지 않았는데 왕응린(王應麟) 이란 남송시절 학자는 순의의 행적을 보고
"부모에게 효도한다는 자가 위와 진에게 충성하지 않고, 순의의 오만으로 집안의 재앙이, 순의의 아첨으로 나라에 재앙을 안겨다줬다" 라며 악평을 내렸다.

4. 미디어 믹스

4.1. 삼국지 시리즈

파일:external/kongming.net/655-Xun-Yi.jpg
삼국지 9~11
파일:external/san.nobuwiki.org/0368.jpg
삼국지 13, 14

아버지에서 모든 능력치를 한 20씩 줄여 놓은 게 순의. 그래도 아버지가 워낙 먼치킨이라[4] 내정쪽으론 순의도 굴릴 수 있다. 삼국지 8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16/무력 11/지력 70/정치력 72. 조영, 혼란을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16/무력 11/지력 73/정치력 75/매력 74에 명사 특기를 가지고 있다. 전체적으로 특기는 농업, 기술, 유인, 명사. 총 4개다. 『진서』를 참고하지 않았는지, 생몰년이 207~281로 설정되어 있다.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16/무력 13/지력 70/정치력 74/매력 69에 특기는 없다.

삼국지 12에서는 삭제되었다가 삼국지 13에서 다시 복귀했는데 시리즈 특성 상 매력이 삭제된 것을 제외하면 능력치는 11 때와 완전히 같다. 특기는 상업 2, 농업 1, 문화 2, 교섭 2. 전수특기는 상업이며 전법은 기공강화. 일러스트는 전작에는 없었던 수염을 기른 채 두 손으로 허리를 짚은 상태에서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다.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16, 무력 12, 지력 70, 정치 74, 매력 69로 전작에 비해 무력이 1 하락했다. 개성은 언독, 인맥, 소심, 주의는 명리, 정책은 태학 Lv 3, 진형은 방원, 충차, 전법은 도발, 충차, 친애무장은 가충, 순욱, 진태, 혐오무장은 없다.

4.2. 삼국전투기

순욱 때문인지 순찬처럼 순욱의 헤어스타일을 이어받아서 나왔다. 단 순찬과는 달리 뒷머리는 없고 260년도 기준 나이가 있는 편이어서 중년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전투외편 7편에서 처음 등장. 황제 조모가 죽은 후 사마소가 연 대책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진태를 불러오기 위해 그를 찾아갔다. 진태가 가지 않겠다고 하자 사마소가 부르는데 싫은 게 어딨냐며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고 했지만 이에 진태는 한 나라의 리더가 그런 식으로 죽은 것이야말로 말도 안 되는 것이라며 여전히 거부했다. 순의는 자신도 비통하지만 여기서 끝난다면 미래마저도 도모할 수 없다며 계속 진태를 설득했지만 진태는 삼촌이 어찌 조카만도 못하냐며 뜻을 굽히려 하지 않았다. 순의는 이에 조카보다 못한 삼촌이 돼도 상관 없으니 나는 조카를 살려야겠다며 억지로 진태를 다른 주변인들과 함께 사마소 앞에 데려다 놨다.

전투외편 8편에서는 사마소가 진왕이 된 후 사공이 되었다고 묘사됐다. 사마소가 국가 전반의 시스템을 정비하고자 할 때는 정충의 지휘 하에 예의에 관련된 업무를 맡았다고 묘사되기도 했다. 위가 멸망되고 진이 세워진 이후에도 사공직을 유지했다.

독발수기능의 난 편에서는 점전 과전제를 서량, 옹주 방면에서 시범적으로 시행해 보자고 제의했다. 그 밖에는 순욱 등이 가충의 딸을 황태자비로 만들기 위해 계획했을 당시 그 계획에 참여하기도 했다.

작중에서는 큰 권력에 빌붙어 먹고 살지만 자기 친인척은 그럭저럭 챙기려 하는 소시민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4.3. 창천항로

순찬에게 사색만 하면 배움에 이르지 못한다면서 육경 전부를 통달하게 되면 하늘의 법칙이나 인간의 본성 등 그 진의를 알 수 있다고 하면서 순찬이 노장 사상에 빠진 것을 못마땅해 한다.


[1] 사마준은 순의보다 무려 30살이나 어렸다.[2] 240 ~ 249년이다.[3] 순의의 7촌 조카다.다만 같은 가문의 이 2명도 7촌 숙질간이였는데[4] 순욱의 지력, 정치력, 매력은 거의 90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