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晉書)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color: #ece5b6"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 25%;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제기(帝紀) ] {{{#!wiki style="margin: -5px -1px" | <rowcolor=#ece5b6>1권 「선제기(宣帝紀)」 | 2권 「경제문제기(景帝文帝紀)」 | 3권 「무제기(武帝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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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맹모 · 유문군 · 두릉양 · 주씨 · 저산자 · 하법예 · 왕목지 · 유도련 · 정아춘 · 왕간희 · 이능용 · 왕법혜 · 진귀녀 · 왕신애 · 저영원<rowcolor=#ece5b6>33권 「왕상등전(王祥等傳)」 34권 「양호등전(羊祜等傳)」 왕상 ,왕람, · 정충 · 하증 ,하소, · 석포 ,석숭, 양호 · 두예(預) <rowcolor=#ece5b6>35권 「진건등전(陳騫等傳)」 36권 「위관등전(衛瓘等傳)」 진건 · 배수 ,배외 배해 배헌, 위관 ,위항 위개, · 장화 · 유변 37권 「종실전(宗室傳)」 사마부(孚) ,사마옹(邕) 사마숭 사마망 사마무 사마보 사마익 사마황 사마부(裒) 사마작 사마위(韡) 사마소(韶) 사마괴, ,사마규 사마송 사마형 사마돈 사마경 사마도, · 사마권 ,사마식 사마석 사마웅, ,사마굉 사마홍 사마소(邵) 사마숭 사마집 사마준(俊) 사마순 사마회, · 사마태 ,사마략 사마등 사마모, · 사마수(綏) ,사마효, · 사마수(遂) ,사마훈, · 사마손 ,사마수(隨) 사마수(邃) 사마승 사마무기 사마념 사마상지 사마회지 사마휴지 사마윤지 한연지, · 사마목 · 사마릉 ,사마순 사마빈, 38권 「선오왕문육왕전(宣五王文六王傳)」 사마간(榦) · 사마주 ,사마근 사마담 사마요 사마최, · 사마경(京) · 사마준(駿) ,사마창 사마흠, · 사마융 · 사마유(攸) ,사마유(蕤), · 사마조 · 사마정국 · 사마광덕 · 사마감 · 사마연조 <rowcolor=#ece5b6>39권 「왕침등전(王沈等傳)」 40권 「가충등전(賈充等傳)」 41권 「위서등전(魏舒等傳)」 왕침(王沈) ,왕준(浚), · 순의 · 순욱 ,순번 순조 순혁, · 풍담 가충 · 양준 ,양요 양제, 위서 · 이희 · 유식 · 고광 <rowcolor=#ece5b6>42권 「왕혼등전(王渾等傳)」 43권 「산도등전(山濤等傳)」 왕혼 ,왕제, · 왕준(濬) · 당빈 산도 ,산간 산하, · 왕융 ,왕연 왕징 곽서, · 악광 <rowcolor=#ece5b6>44권 「정무등전(鄭袤等傳)」 45권 「유의등전(劉毅等傳)」 정무 ,정묵, · 이윤 · 노흠 ,노지(盧志) 노심, · 화표 ,화이 화항 화교, · 석감 · 온선 유의 ,유돈, · 화교 · 무해 · 임개 · 최홍 · 곽혁 · 후사광 · 하반 <rowcolor=#ece5b6>46권 「유송등전(劉頌等傳)」 47권 「부현전(傅玄傳)」 48권 「상웅등전(向雄等傳)」 유송 · 이중 부현 · 부함 · 부지 상웅 · 단작 · 염찬 <rowcolor=#ece5b6>49권 「완적등전(阮籍等傳)」 완적 · 혜강 · 상수 · 유영 · 사곤 · 호무보지 · 필탁 · 왕니 · 양만 · 광일 <rowcolor=#ece5b6>50권 「조지등전(曹志等傳)」 조지(曹志) · 유준 · 곽상 · 유순 · 진수(秦秀) <rowcolor=#ece5b6>51권 「황보밀등전(皇甫謐等傳)」 52권 「극선등전(郤詵等傳)」 53권 「민회태자전(愍懷太子傳)」 황보밀 · 지우 · 속석 · 왕접 극선 · 완충 · 화담 민회태자 <rowcolor=#ece5b6>54권 「육기등전(陸機等傳)」 55권 「하후담등전(夏侯湛等傳)」 56권 「강통등전(江統等傳)」 육기 · 육운 하후담 · 반악 · 장재 강통 · 손초 <rowcolor=#ece5b6>57권 「나헌등전(羅憲等傳)」 58권 「주처등전(周處等傳)」 나헌 ,나상, · 등수 · 마륭 · 호분 · 오언 · 장광 · 조유 주처 · 주방 ,주무 주초 주효, 59권 「여남왕량등전(汝南王亮等傳)」 사마량 · 사마위(瑋) · 사마륜 · 사마경(冏) · 사마예 · 사마영 · 사마옹(顒) · 사마월 60권 「해계등전(解系等傳)」 해계 · 손기 · 맹관 · 견수 · 무파 · 황보중 · 장보 · 이함 · 장방 · 염정 · 색정 ,색침, · 가필 <rowcolor=#ece5b6>61권 「주준등전(周浚等傳)」 62권 「유곤등전(劉琨等傳)」 63권 「소속등전(邵續等傳)」 주준 ,주복, · 성공간 · 구희 · 화질 · 유교 유곤(劉琨) · 조적 소속 · 이구 · 단필제 · 위준 ,위해, · 곽묵 64권 「무십삼왕원사왕간문삼자전(武十三王元四王簡文三子傳)」 사마궤 · 사마간(柬) · 사마경(景) · 사마지 · 사마유(裕) · 사마윤 · 사마연(演) · 사마해 · 사마하 · 사마모(謨) · 사마안 · 사마회 · 사마부(裒) · 사마충(沖) · 사마희 · 사마환 · 사마도생 · 사마욱(郁) · 사마도자 65권 「왕도전(王導傳)」 왕도 <rowcolor=#ece5b6>66권 " 「유홍등전(劉弘等傳)」 67권 「온교등전(溫嶠等傳)」 68권 「고영등전(顧榮等傳)」 유홍 · 도간 온교 · 치감 고영 · 기첨 · 하순 · 설겸 <rowcolor=#ece5b6>69권 「유외등전(劉隗等傳)」 70권 「응첨등전(應詹等傳)」 71권 「손혜등전(孫惠等傳)」 유외 ,유파, · 조협 · 대약사 · 주의 응첨 · 감탁 · 변곤 · 유초 · 종아 손혜 · 웅원 · 왕감 · 진군 · 고숭 <rowcolor=#ece5b6>72권 「곽박등전(郭璞等傳)」 73권 「유량전(庾亮傳)」 74권 「환이전(桓彝傳)」 곽박 · 갈홍 유량 · 유역 · 유빙 · 유익 환이(彝) ,환운 환활 환비 환충, <rowcolor=#ece5b6>75권 「왕담등전(王湛等傳)」 76권 「왕서등전(王舒等傳)」 77권 「육엽등전(陸曄等傳)」 왕담(湛) · 순숭 · 범왕 · 유담 · 장빙 · 한백 왕서 · 왕이 · 우담 · 고중 · 장개 육엽 · 하충 · 저삽 · 채모 · 제갈회 · 은호 <rowcolor=#ece5b6>78권 「공유등전(孔愉等傳)」 79권 「사상등전(謝尙等傳)」 80권 「왕희지전(王羲之等傳)」 공유 · 정담 · 도회 사상 · 사안 ,사염 · 사혼 · 사현 · 사만 · 사랑 · 사석 · 사막, 왕희지 81권 「왕손등전(王遜等傳)」 왕손 · 채표 · 양감 · 유윤 · 환선 ,환이(伊), · 주사 · 모보 · 유하 · 등악 · 주서 82권 「진수등전(陳壽等傳)」 진수(陳壽) · 왕장문 · 우부 · 사마표 · 왕은 · 우예(預) · 손성 · 간보 · 등찬 · 사침 · 습착치 · 서광 <rowcolor=#ece5b6>83권 「고화등전(顧和等傳)」 84권 「왕공등전(王恭等傳)」 85권 「유의등전(劉毅等傳)」 고화 · 원괴 · 강유 · 차윤 · 은의 · 왕아 왕공 · 유해 · 유뇌지 · 은중감 · 양전기 유의 · 제갈장민 · 하무기 · 단빙지 · 위영지 <rowcolor=#ece5b6>86권 「장궤전(張軌傳)」 87권 「양무소왕전(涼武昭王傳)」 장궤 양무소왕 · 양후주 88권 「효우전(孝友傳)」 이밀 · 성언 · 하방 · 왕부 · 허자 · 유곤(庾袞) · 손구 · 안함 · 유은 · 왕연 · 왕담(談) · 상우 · 하기 · 오규 89권 「충의전(忠義傳)」 혜소 · 왕표 · 유심 · 국윤 · 초숭 · 가혼 · 왕육 · 위충 · 신면 · 유민원 · 주해 · 환웅 · 한계 · 주기 · 이웅 · 악도융 · 우괴 · 심경 · 길읍 · 왕량 · 송구 · 차제 · 정목 · 신공정 · 나기생 · 장의 90권 「양리전(良吏傳)」 노지(魯芝) · 호위 · 두진 · 두윤 · 왕굉 · 조터 · 반경 · 범귀 · 정소 · 교지명 · 등유 · 오은지 91권 「유림전(儒林傳)」 범평 · 문립 · 진소 · 우희 · 유조 · 범육 · 서묘 · 최유 · 범륭 · 두이 · 동경도 · 속함 · 서막 · 공연 · 범선 · 위소 · 범홍지 · 왕환 92권 「문원전(文苑傳)」 응정 · 성공수 · 좌사 · 조지(趙至) · 추담 · 조거 · 저도 · 왕침(王沉) · 장한 · 유천 · 조비 · 이충 · 원굉 · 복도 · 나함 · 고개지 · 곽징지 93권 「외척전(外戚傳)」 양수 · 왕순 · 양문종 · 양현지 · 우예(豫) · 유침 · 두예(乂) · 저부 · 하준 · 왕몽 · 왕하 · 왕온 · 저상 94권 「은일전(隠逸傳)」 손등 · 동경 · 하통 · 주충 · 범찬 · 노승 · 동양 · 곽원 · 곽기 · 오조 · 노포 · 범등 · 임욱 · 곽문 · 공장 · 맹루 · 한적 · 초수 · 적탕 · 곽번 · 신밀 · 유린지
삭습 · 양가 · 공손봉 · 공손영 · 장충 · 석원 · 송섬 · 곽하 · 곽우 · 기가 · 구형 · 사부 · 대규 · 공현지 · 도담 · 도연명95권 「예술전(藝術傳)」 진훈 · 대양 · 한우 · 순우지 · 보웅 · 두불건 · 엄경 · 외소 · 복후 · 포정 · 오맹 · 행령 · 불도징 · 마유 · 선도개 · 황홍 · 색담 · 맹흠 · 왕가 · 승섭 · 곽논 · 나습 · 욕곽 · 태산 96권 「열녀전(列女傳)」 신헌영 · 엄헌 · 종염 · 왕혜풍 · 이락수 · 순관 · 사도온 · 용린 · 유아 · 염부인 · 소혜 · 모황후 · 단원비 · 양황후 · 윤태후 97권 「사이전(四夷傳)」 부여 · 숙신 · 마한 · 진한 · 왜 · 토욕혼 · 언기국 · 구자국 · 대완국 · 강거국 · 대진국 · 임읍국 · 부남국 · 흉노 <rowcolor=#ece5b6>98권 「왕돈등전(王敦等傳)」 99권 「환현등전(桓玄等傳)」 왕돈 · 환온 환현 · 변범지 · 은중문 100권 「왕미등전(王彌等傳)」 왕미 · 장창 · 진민 · 왕여 · 두증 · 두도 · 왕기 · 조약 · 소준 · 손은 · 노순 · 초종 (1) 사마소 부인 왕원희와는 다른 인물로 효회태후로 추존된 사마치의 어머니.
- [ 재기(戴記) ]
- ||<tablebgcolor=#3797e8><width=33%> 101권 「유원해재기(劉元海戴記)」 ||<-2><width=34%> 102권 「유총재기(劉聰戴記)」 ||<width=33%> 103권 「유요재기(劉曜戴記)」 ||
유원해 ,유화 · 유선, 유총 ,유찬 · 진원달, 유요 104 · 105권 「석륵재기(石勒戴記)」 106 · 107권 「석계룡재기(石季龍戴記)」 석륵 ,석홍 · 장빈, 석계룡 ,석세 · 석준 · 석감 · 염민, 108권 「모용외재기(慕容廆戴記)」 109권 「모용황재기(慕容皝戴記)」 모용외 ,배억 · 고첨, 모용황 ,모용한 · 양유, 110권 「모용준재기(慕容儁戴記)」 111권 「모용위재기(慕容暐戴記)」 모용준 ,한항 · 이산 · 이적, 모용위 ,모용각 · 양무 · 황보진, 112권 「부홍등재기(苻洪等戴記)」 113 · 114권 「부견재기(苻堅戴記)」 115권 「부비등재기(苻丕等戴記)」 부홍 · 부건 · 부생 ,왕타, 부견 ,왕맹 · 부융 · 부랑, 부비 · 부등 ,삭반 · 서숭, 116권 「요익중등재기(姚弋仲等戴記)」 117 · 118권 「요흥재기(姚興戴記)」 119권 「요홍재기(姚泓戴記)」 요익중 · 요양 · 요장 요흥 ,윤위, 요홍 120권 「이특등재기(李特等戴記)」 121권 「이웅등재기(李雄等戴記)」 이특 · 이류 · 이상 이웅 · 이반 · 이기 · 이수 · 이세 122권 「여광등재기(呂光等戴記)」 여광 · 여찬 · 여륭 123권 「모용수재기(慕容垂戴記)」 124권 「모용보등재기(慕容宝等戴記)」 모용수 모용보 · 모용성 · 모용희 · 모용운 125권 「걸복국인등재기(乞伏國仁等戴記)」 걸복국인 · 걸복건귀 · 걸복치반 · 풍발 ,풍소불, 126권 「독발오고등재기(禿髪烏孤等戴記)」 독발오고 · 독발리록고 · 독발녹단 127권 「모용덕재기(慕容徳戴記)」 128권 「모용초재기(慕容超戴記)」 모용덕 모용초 ,모용종 · 봉부, 129권 「저거몽손재기(沮渠蒙遜戴記)」 130권 「혁련발발재기(赫連勃勃戴記)」 저거몽손 혁련발발
1. 개요
江統(? ~ 310)
서진의 인물. 자는 응원(應元). 연주 진류군[1] 어현(圉縣) 사람. 할아버지 강유(江蕤)는 삼국시대 위나라 시기 초군태수를 지내다가, 서진이 들어서고 오등작이 다시 세워질 때 항보남(亢父男)에 봉해지고 습작(襲爵)하며 제양강씨는 서진에서 번창하였다고 한다. 아버지 강조(江祚)는 서진 시기 남안태수를 지냈다.
제양강씨(濟陽江氏)를 다루는 『강씨가전(江氏家傳)』이라는 서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산일(散逸)되었는지 『태평어람』에서 따온 글만 있다.
2. 생애
과묵하지만 원대한 뜻이 있어, 사람들은 강통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강응원은 말수가 적지만 높은 뜻이 있다."
동향 사람 채극(蔡克)과 함께 지역에서 명사로 이름을 날렸다. 이후 아버지가 사망하자 항부남 작위를 계승하고, 산음현령에 임명되었다. 원강 9년(299년) 정월, 제만년이 난을 일으켜 저족과 강족이 관농 지방을 어지럽히자, 조정에서는 장수 맹관을 보내 무력으로 진압하고 수괴 제만년을 사로잡았다. 강통은 사방의 오랑캐가 발호하는 상황에 심각성을 느끼고 마땅히 그 싹을 잘라야 한다 생각해, 조정에 「사융론(徙戎論)」을 상소했다. 내용인 즉, 저족, 강족 등의 이민족들을 모두 관중에서 쫓아내고, 병주에 주둔해 있는 유연의 흉노족 무리도 몰아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2]. 그러나 이때는 조정이 황후 가남풍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혼란한 상황이었고, 혜제 사마충 또한 백치라 강통의 사융론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중랑, 선춘현령을 거쳐 태자사밀로 옮겨졌고, 동궁(東宮)에 거쳐하며 황제로부터 예우를 받았다. 태자 사마휼은 부황과 조정을 받들지 않았고, 사치를 부리면서 여러 금기사항들을 어겼다. 이를 우려한 강통이 조정에 상소해 태자의 태도에서 고칠 점들을 나열하자, 조정에서는 이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영강 원년(300년) 정월, 사마휼이 가남풍의 음모에 당해 태자에서 폐위되고 허창궁(許昌宮)에 유폐되었다. 태자를 섬기던 동궁의 신하들은 그를 배웅했으나, 가남풍이 명을 내려 동궁의 신하들에게 이수(伊水) 밖으로 나가는 것을 금하는 바람에 돌아가야 했다. 폐태자 사마휼이 마지막으로 신하들과 작별인사를 나누니, 강통을 비롯한 신하들은 엎드려 구슬프게 흐느꼈다. 그렇게 사마휼과 헤어지고 강통과 신하들은 도관종사 주련(株連)에게 체포되어 명령을 어긴 죄로 하남(河南)과 낙양(洛陽)에 나누어 투옥되었으나, 하남윤 악광(樂廣)과 도관종사 손염(孫琰)의 도움으로 모두 금세 풀려났다.
영강 원년(300년) 3월, 황후 가남풍이 폐태자 사마휼을 살해하고, 그를 광릉왕의 예로 장사를 지내게 했다. 강통은 가남풍의 눈치를 보지 않고 애도를 표하고 비통해 하면서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팔왕의 난이 격화되는 와중에도 박사, 상서랑, 참대사마를 역임했고, 제왕 사마경이 정권을 잡았을 때는 그의 휘하에서 군사 업무를 맡았다. 이후 정위정(廷尉正)으로 옮겨져 주군(州郡)의 복잡한 분쟁 사건을 도맡아 처리했다.
성도왕 사마영의 부름을 받고 기실(記室)이 되어 사마영에게 여러 조언을 바쳤다. 사마영이 부하들의 모함을 믿고 육기 형제를 죽이려 할 때, 강통은 나서서 육기와 육운을 변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육기 형제가 모두 참수되니, 얼마 후 강통은 모친상을 이유로 사직하고 사마영의 곁을 떠났다가, 상을 마치고 사도 하간왕 사마옹의 좌장사로 다시 관직에 복귀했다.
영가 원년(307년) 12월, 태부 동해왕 사마월이 스스로 연주목에 오르고, 강통을 별사로 삼아 전반적인 주의 업무를 그에게 위임했다. 동해왕 사마월은 강통에게 책서를 보내 이르길,
"과거 왕자사(王子師)가 예주(預州)에 부임할 때, 그는 수레에서 내리기도 전에 순자명(荀慈明)을 등용하고, 수레에서 내린 뒤에 그를 공문학(孔文舉)으로 삼았소. 귀관의 주에는 이에 대응할 만한 인재가 있소?"
라 하였다. 강통은 사마월의 기대에 따라 인재를 발굴하여, 고평군 출신 치감을 현량으로 중앙에 천거하고, 진류군 출신 완수(阮脩)를 직언(直言), 제북군 출신 정수(程收)를 정방(方正)에 각각 임명했다. 이후 다시 중앙으로 돌아가 황문시랑, 산기상시, 국자박사(國子博士)를 역임했다.영가 4년(310년), 영가의 난을 피해 성고(成皋)로 도망쳤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병으로 성고현에서 객사했다. 훗날 진류 사람들은 그를 동선(董宣), 채옹과 묶어서 사당을 세우고 삼현사(三賢祠)라 명명했다. 아들로는 강반과 강돈이 있다. 제양강씨는 강남으로 피난 가서 피난민 출신 귀족이 되었고 수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뒤에도 다시 중원으로 못 돌아오고 객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