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9-13 07:01:58

장개(동진)

진서(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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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2권 「후비전(后妃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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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권 「종실전(宗室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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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권 「선오왕문육왕전(宣五王文六王傳)」
사마간(榦) · 사마주 ,사마근 사마담 사마요 사마최, · 사마경(京) · 사마준(駿) ,사마창 사마흠, · 사마융 · 사마유(攸) ,사마유(蕤), · 사마조 · 사마정국 · 사마광덕 · 사마감 · 사마연조
<rowcolor=#ece5b6>39권 「왕침등전(王沈等傳)」40권 「가충등전(賈充等傳)」41권 「위서등전(魏舒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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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혼 ,왕제, · 왕준(濬) · 당빈 산도 ,산간 산하, · 왕융 ,왕연 왕징 곽서, · 악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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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ece5b6>46권 「유송등전(劉頌等傳)」47권 「부현전(傅玄傳)」48권 「상웅등전(向雄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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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헌 ,나상, · 등수 · 마륭 · 호분 · 오언 · 장광 · 조유주처 · 주방 ,주무 주초 주효,
59권 「여남왕량등전(汝南王亮等傳)」
사마량 · 사마위(瑋) · 사마륜 · 사마경(冏) · 사마예 · 사마영 · 사마옹(顒) · 사마월
60권 「해계등전(解系等傳)」
해계 · 손기 · 맹관 · 견수 · 무파 · 황보중 · 장보 · 이함 · 장방 · 염정 · 색정 ,색침, · 가필
<rowcolor=#ece5b6>61권 「주준등전(周浚等傳)」62권 「유곤등전(劉琨等傳)」63권 「소속등전(邵續等傳)」
주준 ,주복, · 성공간 · 구희 · 화질 · 유교유곤(劉琨) · 조적소속 · 이구 · 단필제 · 위준 ,위해, · 곽묵
64권 「무십삼왕원사왕간문삼자전(武十三王元四王簡文三子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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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권 「왕도전(王導傳)」
왕도
<rowcolor=#ece5b6>66권 " 「유홍등전(劉弘等傳)」67권 「온교등전(溫嶠等傳)」68권 「고영등전(顧榮等傳)」
유홍 · 도간온교 · 치감고영 · 기첨 · 하순 · 설겸
<rowcolor=#ece5b6>69권 「유외등전(劉隗等傳)」70권 「응첨등전(應詹等傳)」71권 「손혜등전(孫惠等傳)」
유외 ,유파, · 조협 · 대약사 · 주의응첨 · 감탁 · 변곤 · 유초 · 종아손혜 · 웅원 · 왕감 · 진군 · 고숭
<rowcolor=#ece5b6>72권 「곽박등전(郭璞等傳)」73권 「유량전(庾亮傳)」74권 「환이전(桓彝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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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ece5b6>78권 「공유등전(孔愉等傳)」79권 「사상등전(謝尙等傳)」80권 「왕희지전(王羲之等傳)」
공유 · 정담 · 도회사상 · 사안 ,사염 · 사혼 · 사현 · 사만 · 사랑 · 사석 · 사막,왕희지
81권 「왕손등전(王遜等傳)」
왕손 · 채표 · 양감 · 유윤 · 환선 ,환이(伊), · 주사 · 모보 · 유하 · 등악 · 주서
82권 「진수등전(陳壽等傳)」
진수(陳壽) · 왕장문 · 우부 · 사마표 · 왕은 · 우예(預) · 손성 · 간보 · 등찬 · 사침 · 습착치 · 서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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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ece5b6>86권 「장궤전(張軌傳)」87권 「양무소왕전(涼武昭王傳)」
장궤양무소왕 · 양후주
88권 「효우전(孝友傳)」
이밀 · 성언 · 하방 · 왕부 · 허자 · 유곤(庾袞) · 손구 · 안함 · 유은 · 왕연 · 왕담(談) · 상우 · 하기 · 오규
89권 「충의전(忠義傳)」
혜소 · 왕표 · 유심 · 국윤 · 초숭 · 가혼 · 왕육 · 위충 · 신면 · 유민원 · 주해 · 환웅 · 한계 · 주기 · 이웅 · 악도융 · 우괴 · 심경 · 길읍 · 왕량 · 송구 · 차제 · 정목 · 신공정 · 나기생 · 장의
90권 「양리전(良吏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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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권 「유림전(儒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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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권 「문원전(文苑傳)」
응정 · 성공수 · 좌사 · 조지(趙至) · 추담 · 조거 · 저도 · 왕침(王沉) · 장한 · 유천 · 조비 · 이충 · 원굉 · 복도 · 나함 · 고개지 · 곽징지
93권 「외척전(外戚傳)」
양수 · 왕순 · 양문종 · 양현지 · 우예(豫) · 유침 · 두예(乂) · 저부 · 하준 · 왕몽 · 왕하 · 왕온 · 저상
94권 「은일전(隠逸傳)」
손등 · 동경 · 하통 · 주충 · 범찬 · 노승 · 동양 · 곽원 · 곽기 · 오조 · 노포 · 범등 · 임욱 · 곽문 · 공장 · 맹루 · 한적 · 초수 · 적탕 · 곽번 · 신밀 · 유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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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권 「예술전(藝術傳)」
진훈 · 대양 · 한우 · 순우지 · 보웅 · 두불건 · 엄경 · 외소 · 복후 · 포정 · 오맹 · 행령 · 불도징 · 마유 · 선도개 · 황홍 · 색담 · 맹흠 · 왕가 · 승섭 · 곽논 · 나습 · 욕곽 · 태산
96권 「열녀전(列女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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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권 「사이전(四夷傳)」
부여 · 숙신 · 마한 · 진한 · · 토욕혼 · 언기국 · 구자국 · 대완국 · 강거국 · 대진국 · 임읍국 · 부남국 · 흉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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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권 「왕미등전(王彌等傳)」
왕미 · 장창 · 진민 · 왕여 · 두증 · 두도 · 왕기 · 조약 · 소준 · 손은 · 노순 · 초종
(1) 사마소 부인 왕원희와는 다른 인물로 효회태후로 추존된 사마치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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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권 「유원해재기(劉元海戴記)」 102권 「유총재기(劉聰戴記)」 103권 「유요재기(劉曜戴記)」
유원해 ,유화 · 유선, 유총 ,유찬 · 진원달, 유요
104 · 105권 「석륵재기(石勒戴記)」 106 · 107권 「석계룡재기(石季龍戴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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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권 「모용외재기(慕容廆戴記)」 109권 「모용황재기(慕容皝戴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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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권 「모용준재기(慕容儁戴記)」 111권 「모용위재기(慕容暐戴記)」
모용준 ,한항 · 이산 · 이적, 모용위 ,모용각 · 양무 · 황보진,
112권 「부홍등재기(苻洪等戴記)」 113 · 114권 「부견재기(苻堅戴記)」 115권 「부비등재기(苻丕等戴記)」
부홍 · 부건 · 부생 ,왕타, 부견 ,왕맹 · 부융 · 부랑, 부비 · 부등 ,삭반 · 서숭,
116권 「요익중등재기(姚弋仲等戴記)」 117 · 118권 「요흥재기(姚興戴記)」 119권 「요홍재기(姚泓戴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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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권 「이특등재기(李特等戴記)」 121권 「이웅등재기(李雄等戴記)」
이특 · 이류 · 이상 이웅 · 이반 · 이기 · 이수 · 이세
122권 「여광등재기(呂光等戴記)」
여광 · 여찬 · 여륭
123권 「모용수재기(慕容垂戴記)」 124권 「모용보등재기(慕容宝等戴記)」
모용수 모용보 · 모용성 · 모용희 · 모용운
125권 「걸복국인등재기(乞伏國仁等戴記)」
걸복국인 · 걸복건귀 · 걸복치반 · 풍발 ,풍소불,
126권 「독발오고등재기(禿髪烏孤等戴記)」
독발오고 · 독발리록고 · 독발녹단
127권 「모용덕재기(慕容徳戴記)」 128권 「모용초재기(慕容超戴記)」
모용덕 모용초 ,모용종 · 봉부,
129권 「저거몽손재기(沮渠蒙遜戴記)」 130권 「혁련발발재기(赫連勃勃戴記)」
저거몽손혁련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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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1. 개요

張闓
생몰연도 불명

동진의 인물. 자는 경서(敬緒). 서주 팽성국(彭城國) 출신. 동오의 보오장군 장소의 증손자. 본적은 서주지만 고향은 단양군(丹陽)이다.

2. 생애

어렸을 때 아버지가 요절했음에도 지조가 있어, 그 모습을 태상 설겸이 높이 평가하여 당시 건업을 진수하던 낭야왕 사마예에게 장개를 천거했다. 이에 낭야왕 사마예가 장개를 직접 만나 언변에 재능이 있고 우직함과 좋은 기량 갖춘 것을 확인한 뒤, 그를 자신의 참군으로 삼고 후히 예우해주었다. 이후 사마예가 좌승상에 임명되자 장개는 종사중랑으로 승진했으나, 오래지 않아 어머니가 사망하여 사직하고 상을 치렀다. 모친상이 끝나자마자 사마예는 그에게 돌아오라 강력히 권고했지만 장개는 병을 이유로 굳게 사양했다. 그러나 그의 명성을 들은 왕돈이 칼 들고 협박하니, 어쩔 수 없이 왕돈의 휘하로 들어가 업무를 보았다.

건무 원년(317년) 3월, 사마예가 진왕(晉王)에 오르고, 장개를 불러 급사황문시랑, 단양군대중정으로 삼았다. 이후 조정에서 사마예를 보좌한 공이 있다 하여, 단양현후(丹陽縣侯)에 봉해지고 시중으로 승진했다.

대흥 원년(318년) 3월, 장안의 민황제 사마업이 사망했다는 비보를 전달받은 진왕 사마예가 드디어 진(晉)의 황제로 즉위했다. 이때 장개는 진릉내사로 부임해 위엄과 은혜로 지역을 다스리니, 원제 사마예가 조서를 내려 치수에 신경쓰라 명령했다. 당시 진릉군 내 4개의 현이 가뭄으로 고생하고 있었기에, 장개는 곡아현(曲阿)의 신풍(新豐)에 제방을 쌓고 800여 경의 관개해, 매해 풍년이 이르게 했다. 하지만 신풍에 제방을 쌓으면서 독단적으로 211,420여 개의 사업을 남발한 죄로 탄핵 받아 면직되었다. 이후 조정에서 공경들이 모여 이 일을 의논할 때, 신하들이 장개를 위해 변호를 해주었고, 원제 또한 깨달은 바가 있어 장개의 면직 처분을 취소하였다. 그리고 조서를 내려 장개를 대사농으로 삼으니, 장개는 처음에 사양했으나 조정에서 그의 사양을 불허하는 바람에 결국 대사농 직책을 맡았다.

영창 원년(322년) 11월, 원제가 승하하자 장개는 대장경(大匠卿)에 임명되어 건평릉(建平陵) 건축 업무를 맡았고, 완공된 후에는 상서로 승진했다.

함화 2년(327년) 2월, 역양내사 소준이 반란을 일으켜, 도성 건강(建康)을 함락하고 황궁을 크게 약탈했다. 장개는 사도 왕도, 시중 저삽, 좌광록대부 육엽과 함께 어린 성황제 사마연의 주변을 호위하며 황제의 안전을 우선적으로 확보했다. 어느 정도 사태가 진정되고 조정을 완전히 장악하게 된 소준은 장개를 지절로 삼아 건강성 동쪽의 군사를 감독하게 했다. 그러나 소준을 따를 뜻이 없었던 장개는 왕도와 의군을 일으킬 방법을 모색하고, 3오(三吳) 지역에 의군을 일으키기 위해 유 태후의 밀서를 들고 동쪽으로 떠났다.

도간이 형주에서 의군을 일으키면서 장개를 가절, 행정로장군(行征虜將軍)에 임명해, 진위장군 도회와 단양 의군을 거느리게 했다. 장개는 부임지인 진릉(晉陵)으로 돌아가, 내사 유탐(劉耽)에게 1부의 곡식을 내놓으라 명하고, 오군(吳郡)으로 탁지를 보내 4부의 식량을 거두어 거기장군 치감에게 보급했다. 이후 오국내사 채모(蔡謨), 오흥내사 우담, 회계내사 왕서의 의군과 합류해 소준 토벌에 참전하였다.

함화 4년(329년) 2월, 소준의 반란이 모두 평정되고, 다시 상서로 돌아왔으며 산기상시가 더해졌다. 또, 공을 인정받아 의양백(宜陽伯)으로 진봉되었다. 얼마 뒤에 정위로 옮겨졌지만, 병에 걸려 해직되고 금자광록대부에 임명받았다. 장개는 46세가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나고 아들 장혼(張混)이 그의 후사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