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晉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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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公孫鳳생몰연도 미상
전연의 은사. 자는 자란(子鸞). 유주 상곡군(上谷郡) 출신.
2. 생애
공손봉은 창려(昌黎)의 구성(九城) 산골짜기에 은거하던 은사였다. 그는 겨울에도 천 한 겹으로 이루어진 옷으로 버티면서 잠은 흙침대 위에서 잤다. 또, 음식은 그릇 하나에 전부 담아서 먹었기에, 여름에는 종종 부패할 때가 있었지만 그 썩은 음식을 그대로 먹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의 이런 생활 방식을 이해하지 못 하고 이상하게 여겼으나, 공손봉은 개의치 않고 홀로 거문고를 타고 노래 부르며 유유자적하였다.전연의 황제 모용위가 공손봉에 대한 소문을 듣고, 안거(安車)를 보내 그를 전연의 수도인 업(鄴)으로 데려왔다. 공손봉은 황제인 모용위를 알현하고도 절을 하지 않고,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으면서 거동은 구성에서 은거하던 때와 똑같이 하였다. 많은 빈객들이 그를 찾아가 더불어 담론을 나누고자 하였으나, 누구도 성공하지 못 했다고 한다. 그리고 수도에서 생활한지 수 년이 지났을 무렵,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