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6 17:17:01

진원달

십육국춘추(十六國春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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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둘러보기

1. 개요

陳元達
(? ~ 316)

전조의 인물. 자는 장굉(長宏). 흉노의 후부(後部) 출신. 본래 성은 고씨(高)였으나 아버지와 같은 달에 태어나는 금기를 범해 진씨(陳)로 고쳤다고 한다.

2. 생애

진원달은 어려서부터 부모를 여의고 가난하게 생활하였으나, 지조가 높고 근면하여 고향인 진양(晋陽)에서 직접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이어가는 동시에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마흔 살이 넘도록 남들과 교류하지 않고 밭일이 끝나면 공부에만 매진하였다. 흉노의 좌현왕 유연은 그 명성을 듣고 초빙하였으나 진원달은 즉시 응하지 않았다.

원희 원년(304년) 10월, 대선우 유연이 좌국성(左國城)에서 이민족들을 모아 한왕(漢王)을 칭하자, 사람들은 진원달을 찾아가 물었다.
"유공(劉公)이 스스로를 낮춰 그대를 불렀을 때, 그대는 답하지 않음으로써 그를 욕되게 하였소. 이제 그의 위세가 용처럼 솟아오른다고 하던데 그대는 두렵지도 않은가?"
진원달이 웃으며 답하길,
"그게 무슨 말인가? 그 자는 자태가 높고 뛰어나며, 가슴에는 끝없는 우주와 같은 뜻을 품고 있는데, 나는 오래전부터 이를 잘 알고 있었네. 그러나 지난날 내가 가지 않았던 것은 아직 운수가 무르익지 않은 마당에 떠들썩하게 되는 상황을 피하고 싶었던 것일 뿐이라네. 그 분께서 나의 뜻을 헤아리고 계시다면 못해도 2 ~ 3일 안에는 반드시 서신이 도착할 걸세."
라 하였다. 과연 유연의 서신을 들고 온 사자는 그 날 저녁에 도착했고, 진원달은 유연의 부름에 응해 황문랑으로 임관하였다. 진원달의 혜안에 사람들은, "그대는 분명 성인일 것이다!"라 칭송하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 했다.

진원달이 이르자, 유연은 기뻐하며 그를 데려오게 하였다. 이윽고 진원달과 마침내 대면하게 된 유연이 말했다.
"경(卿)이 만약 더 일찍 왔더라면 지금 어찌 낭(郎) 관직에 있겠는가."
진원달이 답했다.
"신(臣)은 성품이 있는 자는 자신의 분수를 안다고 생각합니다. 신이 만약 일찍 천문(天門)을 두드렸다면 대왕께서 구경(九卿)과 납언(納言) 사이에 두실까 두려웠습니다. 이는 신의 분수가 아니므로 어찌 신이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감정을 억누르고 분수에 맞게 기다린다면 대왕께서도 과오를 범했다는 비방을 받을 일이 없을 것이며, 소신 역시 적을 불러들이는 화를 면하지 않겠습니까!"
진원달의 답변을 들은 유연은 만족하여 크게 기뻐하였다. 이후 진원달은 유연의 곁에서 책략을 바치고 칙서의 초고를 작성하는 일을 수행하였는데, 유연이 칙서를 마무리하면 진원달의 초고를 곧바로 파기하여 설령 유연의 자제라 할지라도 그 내용을 알지 못 했다.

광흥 원년(310년) 7월, 초왕 유총이 광문제 유연으로부터 황위를 계승한 유화를 제거하고 스스로 황제에 즉위하였다. 소무제 유총은 진원달을 정위로 삼았다.

진원달은 충성스럽고 강직하여 소무제 유총에게 직언을 자주 하였는데, 이는 번번이 유총의 뜻과 어긋나는 것이었다. 유총은 매번 진원달에게
"경은 짐을 두려워해야 하건만, 도리어 짐이 경을 두려워하게 하는 것이냐?"
라며 핀잔을 주었다. 이에 진원달은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하면서
"신이 듣기로, 신하를 스승으로 삼는 자는 왕도를 이룰 것이고 신하를 벗으로 삼는 자는 패도를 이룬다 하였습니다. 신은 진실로 우매하여 취할 바가 없으나, 폐하께서 제환공관이오의 뜻을 받들어준 것과 같은 미덕을 청하셨기에, 소신은 그저 우매한 충성을 다하고 있을 뿐입니다. 과거 한의 무제는 신하들의 말을 들어 나라를 번영시켰으나, 하의 걸왕과 상의 주왕은 간언하는 신하를 주살하였고, 주의 유왕과 여왕은 비방하는 말만 들어, 상, 하, 주 이 3대는 결국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폐하께서는 대단한 성스러움으로 시세에 응하고 계시며, 그 도량은 세상의 누구와도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넒으시니, 상과 주의 복국(覆國)의 폐단을 멀리 하시고, 한의 빛나는 미덕을 가까이 하소서. 그리하신다면 천하는 크게 행복해질 것이고, 신하들은 더욱 일에 힘쓰게 될 것입니다."
라 하며 직언을 멈추지 않았다.

가평 3년(313년) 3월, 소무제 유총이 유아(劉娥)를 세 번째 황후로 세우고, 그녀를 위해 황의전(鷬儀殿)을 축조하였다. 이에 진원달은 장문의 상소문을 올려, 소무제 즉위 후 지나치게 늘어난 토목공사와 잦은 출병으로 인해 죽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는다며 간하였다. 유총은 마침내 분노가 폭발하여
"짐은 만기(萬機)의 주인으로서 황궁에 전(殿) 하나 지으려 하는데, 어찌 너같은 쥐새끼에게 그걸 일일이 묻겠느냐! 이 종놈을 죽이지 않는다면 짐의 마음이 어지럽혀져 전을 완공할 수도 없을 것이다! 장차 참할 것이니, 그 처자 역시 끄집어내어 죽이고 쥐새끼와 함께 구멍에 파묻도록 하라!"
당시 소요원(逍遙園)의 이중당(李中堂)에는 그 이름답게 한가운데에 오얏나무 한 그루가 심어져 있었다. 진원달은 그 오얏나무를 붙잡고 필사적으로 버티면서 울부짖었다.
"신이 거듭 말하는 것은 사직을 위한 계책임에도 폐하께서 신을 죽이신다면, 신은 만약 사후세계가 있다면 위로는 하늘에 호소할 것이고, 아래로는 선제께 호소하겠습니다. 일찍이 주운(朱雲)이 이르기를, 「신은 지하에서 용봉(龍逢), 비간(比干)과 노니는 것만으로도 족합니다.」라 하였으니, 폐하께서 어찌 마음을 놓고 지내실 수 있겠습니까!"
진원달은 쇠사슬을 허리에 두르고 나무에 묶인 채 버티고 있어, 좌우에서 아무리 그를 끌어당겨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 광경을 본 유총은 부아가 더욱 치밀어 올라 날뛰기 시작하니, 유총의 서장자인 태재·하간왕 유이, 대사도 임의(任顗), 광록대부 주기(朱紀), 태위 범륭 등이 모두 나와 말렸으나 소용없었다. 그때 후당(後堂)에 있던 황후 유아가 소식 듣고 급히 형을 정지해달라는 간절한 서신을 써서 중상시를 통해 유총에게 전달하자, 그제서야 유총은 진정하고 진원달을 끌어안으며 사과하였다. 이때 유총이 진원달에게 황후의 서신을 건네니, 진원달도 한발짝 양보하여 황후의 현명함을 칭찬하였다. 이 일에 감명받은 하간왕 유이는 소요원을 "납현원(納賢園)", 이중당을 "괴현당(愧賢堂)"으로 이름을 고쳤다.

가평 4년(314년) 정월, 유성 하나가 견우(牽牛)에서 나와 자미(紫微)로 들어가더니, 그 빛이 땅까지 이어져 평양에서 10리 떨어진 지점에 충돌하였다. 유성의 파편은 대부분은 27보 안으로 퍼졌는데, 이를 기점으로 평양에서 악취나기 시작했고 그 파편 주변에서는 괴이한 소리가 밤낮으로 그치지 않았다. 소무제 유총은 이 징조를 매우 불길하게 여겨 공경대신들을 불러모아 물었다.
"짐의 부덕함이 이와 같은 기이한 현상을 불러들였으니, 각자 거리낌없이 말해보도록 하라."
이에 진원달과 박사 장사(張師) 등이 나아가 말했다.
"성변(星變)의 이상현상은 그 화가 닥칠 조짐입니다. 신은 그것이 후정(後庭)에 3명의 황후를 두어 생긴 일이 아닐까 두렵습니다. 아직 나라가 망하고 집안이 무너지는 일이 닥치지는 않았으나 원컨대 폐하께서는 이를 삼가시길 바랍니다."
유총이 답했다.
"이런 음양의 이치가 인간의 일과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그리고 얼마 뒤에 뱀 한 마리와 맹수 한 마리가 황후 유아로부터 잉태하여 각각 사람을 해치고 사라졌다. 사람들은 황궁을 이 잡듯이 뒤졌음에도 찾을 수 없었으나, 오래 지나지 않아 그 뱀과 맹수가 운성 파편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그 직후 황후 유아가 세상을 떠나니, 유성 파편 근처에서 들리던 소리도 멈추었지만, 이때부터 유총의 판단력이 흐려지면서 황궁에 절도와 질서가 사라졌다.

가평 5년(315년) 3월, 소무제 유총이 중호군 근준의 두 딸을 들여 언니 근월광(靳月光)은 상황후로 삼고, 유 귀빈은 좌황후, 동생 근월화(靳月華)는 우황후로 삼아 3황후를 다시 채웠다. 진원달이 다시 황후가 3명이 된 것에 대해 간언하자, 유총은 이를 불쾌히 여겨 진원달을 우광록대부로 좌천시키고 지니고 있던 권한을 박탈하였다. 하지만 태위 범륭(范隆), 대사마 유단(劉丹), 대사공 호연안(呼延晏), 상서령 왕감(王鑒)이 자신들은 파면당해도 좋으니 진원달은 복권시켜달라 상소한 덕에 얼마 안 가 다시 복권되고, 어사대부, 의동삼사에 임명되었다. 이후 진원달이 상황후 근월광의 행실을 지적하며 상소하자, 유총은 진원달 세력의 압박을 당해내지 못 하고 결국 그 의견에 따라 그녀를 폐위시켰다. 폐위된 근월광은 수치심에 자결하였고, 이 일로 유총과 근준은 진원달에게 한을 품었다.

건원 2년(316년) 2월, 소무제 유총의 총애를 받는 환관 왕침(王沈)이 자신을 무시하는 조정의 대신들을 모함하였다. 유총이 왕침의 말만 믿고 그들을 모두 붙잡아 참수하자, 진원달은 태재·하간왕 유이, 대장군·발해왕 유부, 금자광록대부 왕연과 함께 대궐로 나와 표문을 올려 간하였다. 그러나 왕침 등이 유총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눈물 흘리며 제발 살려달라 빌었고, 유총 또한 진원달 등을 따를 생각이 없어 상소문을 가볍게 무시하였다. 유이가 다시 대궐로 나와 유총에게 상소문을 올리고 강력하게 간언하자, 유총은 상소문을 받아 읽지도 않고 그 앞에서 찢어 버렸다. 이에 유이가 분사하고 마니, 진원달은 슬피 울부짖으며
"현인이 죽으면 나라는 파리해져 곧 멸망한다. 나로서는 더이상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으니, 어찌 이것으로 묵묵히 살아가겠는가!"
라 하고, 집으로 돌아가 자결하였다. 사람들은 모두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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