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6 00:30:24

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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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 추존 황제
부홍 | 苻洪
묘호 태조(太祖)
시호 혜무황제(惠武皇帝)
능묘 미상
성씨 부(苻)
홍(洪)
광세(廣世)
부친 포회귀(蒲懷歸)
생몰 285년 ~ 350년 3월
재위 전진 세력 초대 국왕
350년

1. 개요2. 생애3. 둘러보기(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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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오호십육국시대 전진(前秦)의 기반을 닦은 사실상의 초대 황제.

원래의 성은 (蒲)였으나 "초부응왕(草付應王)"이란 참언에 따라 '초'(草)와 '부'(付)를 합쳐 성씨를 (苻)로 바꾸었다. 사후 전진이 건국된 후 아들 부건에 의해 '태조(太祖) 혜무제(惠武帝)'로 추존되었다.

2. 생애

저족 작은 부락의 수령이던 포회귀(蒲懷歸)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농우(隴右) 일대에 비가 많이 와, 그 지역의 백성들이 "비가 멈추지 않는다면 홍수가 일어날 것이다.(雨若不止,洪水必起。)"라며 한탄하는 것을 포회귀가 듣고는 아들의 휘를 "홍(洪)"이라 하였다.

포홍은 베풀기를 좋아하는 성격에 권세와 모략이 많았고, 용맹하고 날쌔어 기마궁술에 능하였다. 이후 영가의 난이 일어나 대륙이 혼란에 빠지자, 포홍은 재물을 풀어 각지의 영웅과 호걸들을 불러 모으고, 그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였다. 포홍의 세력이 점차 힘을 얻게 되니, 악양 저족의 장로인 포광(蒲光)과 포돌(蒲突)이 그를 맹주로 추대하였고, 많은 저족들이 경외하며 복종하였다.

광흥 원년(310년) 7월, 전조의 소무제 유총이 사신을 보내 포홍을 평원장군에 임명하였다. 그러나 포홍은 직책을 거부하고 호저교위, 진주(秦州)자사, 약양공(略陽公)을 자칭하며 할거하기를 선택하였다.

광초 2년(319년), 장안(長安)으로 사신을 보내 전조의 황제 유요에게 귀순을 선언하면서 솔의후(率義侯)에 봉해졌다.

태화 2년(329년) 9월, 후조석륵이 전조를 멸망시키고, 중산공 석호를 파견해 상규(上邽)를 공략케 하였다. 서쪽에서 농산(隴山)을 보위하던 포홍이 사신을 보내 석호에게 투항하니, 석호는 무척 기뻐하며 받아주고 포홍을 관군장군, 감육이군사(監六夷軍事)로 삼았다.

건평 4년(333년) 10월, 명제 석륵이 붕어하고 승상 석호가 조정의 실권을 장악해 태후 유씨와 팽성왕 석감을 살해하자, 장안의 하동왕 석생과 낙양의 무위대장군 석랑(石朗)이 연합하여 석호 토벌을 명목으로 거병하였다. 이때 포홍도 혼란을 틈타 옹주(雍州)자사를 자칭하고 전량에 투항하였다. 그러나 머지않아 반란을 순식간에 진압한 석호가 장수 마추(麻秋)를 보내 포홍을 토벌하였고, 포홍은 20,000여 호를 거느리고 다시 후조에 투항하면서 석호를 영접해 광위장군, 호저교위에 임명되었다.

이윽고 석호와 함께 장안에 입성한 포홍은 그에게 관중(關中)의 호걸들과 저족, 강족을 이주시켜 동쪽 방면을 채울 것을 유세하였다. 이에 석호는 포홍의 권유에 따라 진주와 옹주의 저족, 강족 100,000여 호를 관동(關東)으로 이주시킨 후, 포홍을 용양장군, 유민도독(流人都督)으로 삼아 방두(枋頭)에 머물게 하였다.

건무 4년(338년) 5월, 천왕 석호가 대군을 동원해 전연을 정벌하였다가 실패하고 돌아왔다. 다만, 이때 정벌에 참가한 포홍은 전투에서 공을 세운 것이 많아 사지절, 도독6이제군사(都督六夷諸軍事), 관군대장군에 임명되고, 서평군공(西平郡公)에 봉해졌다. 유격장군 석민이 천왕 석호에게 간했다.
"포홍은 씩씩하고 과감한데다, 그 아들들도 나란히 비범한 재주를 보유하고 있으니, 의당 비밀리에 제거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석호는 듣지 않고 더욱 두텁게 대우하였다.

건무 12년(346년) 5월, 포홍이 천왕 석호에게 토목공사 중지, 원유(苑囿) 폐쇄, 궁녀 환속을 간했다. 석호는 이를 듣고 기분이 나빴으나 포홍을 아꼈으므로 처벌하지 않고, 일부 받아들여 단지 토목공사만 중단케 하였다.

태녕 원년(349년) 정월, 아버지 천왕 석호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다가 역으로 주살당한 폐태자 석선(石宣)은 '고력(高力)'이라는 동궁의 특수 부대를 꾸리고 있었는데, 이들은 우두머리인 석선 사후 모두 죄수 취급 받아 변경으로 끌려가다가 고력독(高力督) 양독(梁犢)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포홍은 연왕 석빈의 지휘 아래 관군대장군 요익중과 함께 고력을 공격해 무찌르고, 양독을 죽임으로써 반란 세력을 토벌하였다. 이 공으로 포홍은 시중, 거기대장군, 개부의동삼사, 도독옹진2주제군사(都督雍秦二州諸軍事), 옹주자사에 임명되고, 약양군공(略陽郡公)에 봉해졌다.

태녕 원년(349년) 5월, 팽성왕 석준이 반란을 일으켜 어린 황제 석세를 몰아냈을 때, 포홍도 석준의 반정에 가담하여 공을 세웠다. 그러나 석민이 또다시 석준에게 포홍을 파직시킬 것을 간하였고, 석준은 포홍의 도독 직책만 파직하고 나머지는 이전과 같게 하였다. 포홍은 황제 석준을 옹립한 공이 있음에도 오히려 파직당한 처우에 분노하여 방두로 돌아가 동진에 사신을 보내 투항하였다.

영화 5년(349년) 11월, 석호의 아들들이 제위를 두고 다투면서 관동으로 옮겨졌던 진주, 옹주의 유민들은 전란을 피해 다시 서쪽으로 이동 중이었는데, 이들이 방두를 지나다가 포홍을 따르기로 하고 그곳에 눌러앉아 포홍을 임금으로 추대하니 그 무리가 100,000여 명에 달하였다. 이때 마침 후조의 도읍인 업(鄴)에 있던 아들 포건도 성을 탈출하고 방두로 와 포홍과 합류하였다.

당시 석민에 의해 옹립된 황제 석감은 포홍의 세력을 두려워하여 그를 관직으로 회유하고자 도독관중제군사(都督關中諸軍事), 정서대장군, 옹주목, 영 진주자사로 삼으려 하였다. 포홍이 회의를 열어 부하들과 함께 석감이 내린 관직을 받을지에 대해 논의하던 중 주부 정박(程朴)이 나아가 말했다.
"조나라와 화친하고 그 열국(列國)이 되어 국경을 나누십시오."
그러자 포홍이 크게 화를 내며 말했다.
"나는 40여 년간 분투하여 10만여 명의 백성을 얻고 오늘에서야 좋은 국면에 접어들었거늘, 너는 내가 천자를 감당할 수 없고 작은 열국에 만족해야 한다 이르는 것이냐?"
하지만 고집이 강했던 정박도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분노한 포홍은 정박을 끌어내 참수하고, 그대로 세력을 들어 방두에서 할거하였다.

영화 6년(350년) 정월, 아들 용양장군 포웅(蒲雄)을 파견해 군대를 거느리고 업으로 복귀하던 후조의 장수 마추를 습격해 사로잡고, 마추의 투항을 받아주어 군사장군으로 삼았다. 17일에 동진에서 사자를 보내 포홍을 저왕(氐王), 사지절, 정북대장군, 도독하북제군사(都督河北諸軍事), 기주(冀州)자사로 임명하고, 광천군공(廣川郡公)에 봉하였다.

섭두(灄頭)에서 할거하던 강족의 요익중이 아들 요양에게 50,000 군사를 주어 포홍을 치게 하니, 포홍은 이를 요격해 격파하고 적군 30,000여 명을 참수하였다. 이후 포홍은 당시 유행하던 예언인 "초부가 마땅히 왕이 되어야 한다"(草付應王)에 따라 성을 '부(苻)'로 바꾸고, 스스로 대장군, 대선우, 삼진왕(三秦王)을 칭하였다. 또, 뇌약아는 보국장군, 양릉(梁楞)은 전장군•영 좌장사, 어준은 우장군•영 우장사, 단릉(段陵)은 좌장군•영 좌사마, 왕타(王佗)는 우장군•영 우사마, 저족 추장 모귀(毛貴)는 선우보상으로 삼고, 조구, 우이(牛夷), 신뢰(辛牢)를 모두 종사중랑으로 삼았다.

영화 6년(350년) 3월, 군사장군 마추가 부홍에게 먼저 관중(關中)을 장악한 뒤에 중원을 평정해야 한다 유세하였다. 부홍은 마추의 진언을 옳게 여기고 그를 신뢰하였으나, 연회 자리에서 마추에 의해 짐독을 마시고 말았다. 가까이 있던 세자 부건이 마추를 곧바로 참살하였으나, 부홍은 이미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놓여 부건에게
"내가 아직 입관(入關)하지 않은 이유는 여유롭게 중원을 가히 평정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서였다. 한데 지금 당황해 있는 애송이 같은 너의 모습을 보아하니, 중원을 평정하는 것은 너희 형제가 능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듯 하구나. 네가 관중으로 들어가 승리한다면 내가 죽은 후에도 우리 세력은 가히 서쪽으로 뻗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라는 유언을 남기고 이내 숨을 거두었다. 향년 67세. 훗날 전진을 건국해 황제를 칭한 부건은 '태조(太祖) 혜무제(惠武帝)'로 추존하였다.

3. 둘러보기(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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