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2-17 11:52:23

추담

진서(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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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18,#e5e5e5
1권 「선제기(宣帝紀)」 2권 「경제문제기(景帝文帝紀)」 3권 「무제기(武帝紀)」
사마의 사마사 · 사마소(昭) 사마염
4권 「혜제기(惠帝紀)」 5권 「회제민제기(懷帝愍帝紀)」 6권 「원제명제기(元帝明帝紀)」
사마충(衷) 사마치 · 사마업 사마예 · 사마소(紹)
7권 「성제강제기(成帝康帝紀)」 8권 「목제애재폐제기(穆帝哀帝廢帝紀)」
사마연(衍) · 사마악 사마담 · 사마비 · 사마혁
9권 「간문제효무제기(簡文帝孝武帝紀)」 10권 「안제공제기(安帝恭帝紀)」
사마욱 · 사마요 사마덕종 · 사마덕문
※ 11권 ~ 30권은 志에 해당. 진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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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 31·32권 「후비전(后妃傳)」 ||
[ 재기(戴記) ]
||<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width=33%> 101권 「유원해재기(劉元海戴記)」 ||<-2><width=34%> 102권 「유총재기(劉聰戴記)」 ||<width=33%> 103권 「유요재기(劉曜戴記)」 ||
유원해 ,유화 · 유선, 유총 ,유찬 · 진원달, 유요
104 · 105권 「석륵재기(石勒戴記)」 106 · 107권 「석계룡재기(石季龍戴記)」
석륵 ,석홍 · 장빈, 석계룡 ,석세 · 석준 · 석감 · 염민,
108권 「모용외재기(慕容廆戴記)」 109권 「모용황재기(慕容皝戴記)」
모용외 ,배억 · 고첨, 모용황 ,모용한 · 양유,
110권 「모용준재기(慕容儁戴記)」 111권 「모용위재기(慕容暐戴記)」
모용준 ,한항 · 이산 · 이적, 모용위 ,모용각 · 양무 · 황보진,
112권 「부홍등재기(苻洪等戴記)」 113 · 114권 「부견재기(苻堅戴記)」 115권 「부비등재기(苻丕等戴記)」
부홍 · 부건 · 부생 ,왕타, 부견 ,왕맹 · 부융 · 부랑, 부비 · 부등 ,삭반 · 서숭,
116권 「요익중등재기(姚弋仲等戴記)」 117 · 118권 「요흥재기(姚興戴記)」 119권 「요홍재기(姚泓戴記)」
요익중 · 요양 · 요장 요흥 ,윤위, 요홍
120권 「이특등재기(李特等戴記)」 121권 「이웅등재기(李雄等戴記)」
이특 · 이류 · 이상 이웅 · 이반 · 이기 · 이수 · 이세
122권 「여광등재기(呂光等戴記)」
여광 · 여찬 · 여륭
123권 「모용수재기(慕容垂戴記)」 124권 「모용보등재기(慕容宝等戴記)」
모용수 모용보 · 모용성 · 모용희 · 모용운
125권 「걸복국인등재기(乞伏國仁等戴記)」
걸복국인 · 걸복건귀 · 걸복치반 · 풍발 ,풍소불,
126권 「독발오고등재기(禿髪烏孤等戴記)」
독발오고 · 독발리록고 · 독발녹단
127권 「모용덕재기(慕容徳戴記)」 128권 「모용초재기(慕容超戴記)」
모용덕 모용초 ,모용종 · 봉부,
129권 「저거몽손재기(沮渠蒙遜戴記)」 130권 「혁련발발재기(赫連勃勃戴記)」
저거몽손 혁련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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鄒湛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 위나라와 서진의 인물이며 자는 윤보(潤甫)로 추궤(鄒軌)의 아들.

형주 남양군 신야현 사람으로 어릴 때 학문을 익혀 위나라에서 좌장군, 사위, 사랑, 태학박사, 중서통사낭 등을 지냈으며, 진나라에서는 서랑, 정위, 정남종사중랑을 지냈다.

양호의 재능을 중히 여긴 인물로 양호의 타루비에 대한 일화에서 양호가 양양에 머무르면서 선정을 베풀 때 현산에 올라 술을 마시면서 시 읊는 것을 즐길 때 늘 양호와 동행했다. 언제는 양호가 부하들을 돌아보면서 많은 현인들이 이 산에 오른 것을 얘기하면서 지금은 모두 그들이 사라져 이름조차 알 길이 없다면서 자신도 이름없이 사라질 것을 탄식했다.

그러자 추담은 공의 어진 명성이 반드시 이 산과 함께 할 것이라고 하면서 자신과 같은 자는 공의 말씀처럼 될 거라 했는데, 그 말대로 양양 백성들은 양호를 기리는 타루비를 세웠다.

추담은 꿈을 꾸었는데, 어떤 사람이 절하면서 자신을 진중서(甄仲舒)라 하면서 장례를 치러 달라고 했다. 추담이 깨어나 곰곰이 생각하니, 甄仲舒라는 글자를 뜯어보면 집 서쪽 기와더미 속에 있는 사람(舍西瓦土中人)이라는 뜻이라면서 그 곳에서 시체를 찾아내 장례를 치러주었으며, 다시 꿈을 꾸자 그 사람이 찾아와 감사의 절을 올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