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8 10:47:07

하증

진서(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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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릉효공(朗陵孝公)
何曾 | 하증
파일:하증.jpg
시호 효공(孝公)
작위 성양정후(成陽亭侯)[1] → 창향후(昌鄕侯)
→ 낭릉후(朗陵侯) → 낭릉공(朗陵公)
최종직위 태재(太宰)
성씨 하(何)
증(曾)
영고(潁考)
아버지 하기
생몰기간 199년 ~ 278년 12월 13일
고향 예주(豫州) 진국(陳國) 양하현(陽夏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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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00080><colcolor=#fff> 재임기간 조위의 사도
264년 3월 17일 ~ 265년 9월 7일
진국[2]의 승상
265년 9월 7일 ~ 265년 12월 13일
서진의 태위
265년 12월 13일 ~ 267년 9월
서진의 태보
267년 9월 ~ 273년 5월
서진의 사도
273년 5월 ~ 278년 8월 21일
서진의 태부
276년 8월 21일 ~ 278년 9월
서진의 태재
278년 9월 ~ 278년 12월 13일 }}}}}}}}}
1. 개요2. 생애3. 미디어 믹스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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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국시대 위나라서진의 관료이며 자는 영고(潁考)로 하기의 아들. 예주 진국 양하현 사람.

2. 생애

본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우면서 정숙해 어릴 때부터 장성할 때 색을 탐하지 않았다고 하며, 노년이 되자 아내와 서로 볼 때 의관을 바로 해 손님처럼 대했다고 한다. 하증은 남쪽, 아내는 북쪽을 바라보고 두 번을 절해 술을 다 마시면 방을 나갔는데, 한 해에 이렇게 하는 것이 불과 2, 3번 뿐이었다고 하며, 부현이 순의와 합쳐 증삼과 민자건처럼 효성이 있다면서 군자의 근본이 있다고 칭찬했다.

조예가 즉위하자 전한의 선제의 예를 들어서 농업 진흥의 중요성을 건의했으며, 사마의공손연을 토벌할 때 사마의에게 부관을 붙이라고 상소했지만 조예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상이 정권을 잡자 사마의가 병에 걸렸다고 했는데, 하증도 이에 맞추어 병에 걸렸다고 했다.

249년에 사마씨를 도와 조상 일파와 싸웠으며, 조방을 황제로 옹립하는 모의를 하증이 맡았고 사예교위가 되었다. 완적이 모친의 상중에도 아무렇지 않은 듯이 사마소의 연회에 참석해 술을 마시면서 고기를 먹자 예법을 무시하는 행동이라면서 사마소에게 일러바쳤지만 완적이 쇠약해져 있다면서 오히려 사마소가 나무랐다고 한다.

255년에 관구검이 수춘에서 반란을 일으켰고 관구검의 장남 관구전의 아내는 순씨였는데, 남편이 반역자이면 아내가 연좌되기에 친척 관계에 있는 순욱, 사마사 등이 돕자고 했다. 순씨는 참형될 뻔 했다가 사마씨 정권의 실세였던 순의의 친족임이 감안되어 이미 죽은 관구전과 이혼하는 형식으로 죄를 면했는데, 순씨가 자신의 딸인 관구지도 살리기 위해 하증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이에 하증은 순욱, 사마사의 뜻을 받들어 여자가 시집을 가게 되면 친정집의 일에 연루되지 않게 법령을 고치자고 건의했으며, 이것이 받아들여져 관구지의 목숨을 건지게 했다.

273년에 사도가 되었다가 276년 8월 21일에 태부가 되었으며, 사치스러운 생활을 해 매일 식사에 돈을 1만전이나 썼지만 젓가락으로 집어 먹을만한 것이 별로 없었다고 투정했다. 유의 등이 수 차례 하증이 사치스러워 정도를 잃었다고 탄핵했지만 사마염은 그가 중신이라 책임을 묻지 않았으며, 278년 9월에 태재가 되었다가 낭릉공의 작위를 지내면서 12월 13일에 죽었다.

도관종사 유향도 하증을 탄핵하자 유향을 자기 부서로 선발했다가 항상 작은 일로 유향을 처벌했다. 밖으로는 관대했지만 속으로는 남을 시기했으며, 당시에 사마염의 권력에 버금가는 사공 가충에게 들러붙었다. 가충이 술을 마시면서 유순과 언쟁을 하자 가충의 편을 들면서 유순을 깎아내려 정직한 사람들에게 비난받았다.

시호는 효공(孝公)으로 진수는 하증에 대해 오만하고 사치해 천하에 이름이 있었지만 만약 시호를 주는 규정을 엄격하게 따른다면 시법(謚法)에 따라 명성과 실제가 부합되지 않은 것이 무(繆), 품행이 방탕한 것을 추(醜)라 하므로 그에게는 무추공(繆醜公)이라는 시호를 줘야 한다고 혹평했다.

서예가로써는 고초서에 뛰어나 당시 사람들이 보배로 여겼다고 하며, 일설에는 초서를 잘 써 매우 멋이 있으면서도 꾸밈없이 수수했지만 고상한 것이 적었다고 한다. 당나라의 장회관이 하증의 글씨에 대해 공자의 말을 빌렸는데, 본질이 문채보다 뛰어나면 거칠다고 했으니 이것을 일컫는다고 했다.

그의 아들로는 하숭(何嵩), 하소(何邵), 하기(何機), 하선(何羨) 등이 있으며, 하소는 중서령을 지냈고 결국 하씨들은 사치를 부려서 영가 말년에 멸족되었다.

3. 미디어 믹스

3.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파일:external/kongming.net/heceng.jpg
삼국지 9
파일:external/san.nobuwiki.org/1282.jpg
삼국지 13 PK, 14

삼국지 9에서 처음으로 등장하고 난 후 그 뒤로 쭉 출연이 없었다가 삼국지 13 PK에서 오랜만에 복귀했는데 뚱뚱한 일러스트로 나오며 사치스럽고 식사에 돈을 많이 썼다는 기록 때문에 그렇게 그려진 것을 알수가 있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무지정 순으로 36/27/70/78이며 병법으로는 투석, 배반, 조영을 가지고 있지만 모략계 병법인 배반 말고는 이렇다 할 병법도 없다. 후반부에는 이런 문관도 감지덕지 쓰게 되긴 하지만...

삼국지 13 PK에서의 일러스트는 콧수염을 만지고 있는데 한국어판에서는 뜬금없이 하후증으로 오역되었다. 능력치는 통무지정 순으로 39/27/70/78이며 중신특성은 화기생재, 특기는 상업 1, 문화 2, 설파 2, 언변 1. 전수특기는 문화, 설파보다 1 낮은 상업이고 전법은 궁방약화이며 병과 적성은 모두 C다. 사치스러운 기록 탓에 서적, 보물을 모두 좋아한다.

삼국지 14에서는 드디어 하증이란 명칭으로 제대로 개선되었으며 능력치는 통솔 35, 무력 23, 지력 70, 정치 78, 매력 55로 전작과 달리 통솔력과 무력이 각각 4 하락했다. 개성은 법률, 낭비, 탐욕, 주의는 예교, 정책은 지역순회 Lv 3, 진형은 방원, 전법은 혼란, 매성, 친애무장은 사마염, 혐오무장은 완적이다.

3.2. 삼국전투기

아버지 하기와 마찬가지로 오오고치 사부로로 패러디 되었다. 다만 첫 등장인 264년 기준 나이가 좀 있는 편이라 콧수염을 달고 나왔다.

전투외편 8편에서 처음 등장. 사마소가 진왕이 된 후 사도로 임명되었다고 묘사된다. 위가 망하고 왕조가 진으로 교체된 후에는 태위로 직책이 바뀌었다.

독발수기능의 난 편에서는 호열이 독발수기능에게 깨지고 죽자 석감두예를 보낼 것을 제의했다.

4. 둘러보기

진서 「왕상등전(王祥等傳)」
왕상 정충 하증 석포
조위의 사도(司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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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버지인 하기의 관직을 이어받은 것이다.[2] 조위의 번국인 사마씨의 진국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