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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74ba3><colcolor=#ece5b6> 후연 제3대 황제 모용성 | 慕容盛 | |||
출생 | 373년 | ||
전진 경조군 장안현 (現 산시성 시안시) | |||
사망 | 401년 9월 13일 (향년 28세) | ||
후연 화룡성 (現 랴오닝성 차오양시) | |||
능묘 | 흥평릉(興平陵) | ||
재위기간 | 제3대 황제 | ||
398년 10월 ~ 401년 9월 13일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374ba3><colcolor=#ece5b6> 성씨 | 모용(慕容) | |
휘 | 성(盛) | ||
부모 | 부황 열종 모후 정씨 | ||
형제자매 | 8남 4녀 중 장남 | ||
배우자 | 황후 난씨 | ||
자녀 | 1남 | ||
자 | 도운(道雲) | ||
작호 | 장락군공(長樂郡公) → 장락왕(長樂王) | ||
묘호 | 중종(中宗) | ||
시호 | 소무황제(昭武皇帝) | ||
연호 | 건평(建平, 398년 ~ 399년) 장락(長樂, 399년 ~ 40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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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연(後燕)의 제3대 황제.휘는 성(盛), 자는 도운(道運)으로 묘호는 중종, 시호는 소무황제(昭武皇帝)였다.
제2대 열종 혜민제 모용보의 서장자로, 어려서부터 침착하고 민첩하며 모략을 꾸미는 데 능하다는 제법 괜찮은 평가를 받았다. 당시 북위가 성장함에 따라 후연의 판도는 요서로 축소되었고, 정치적으로도 내분이 일어나 혼란스러웠는데, 모용성은 정권을 찬탈한 난한을 타도하여 모용씨의 몰락을 가까스로 막아내고 공포정치로 권력을 강화했다. 그러나 단기의 반란을 진압하다가 입은 부상으로 붕어했다.
2. 생애
385년, 서연의 군대가 장안을 포위하고 전연의 마지막 황제 모용위가 성 내에서 반기를 들자, 전진의 세조 선소제 부견은 장안성 내에 있는 모용씨 가문 사람들의 대부분을 학살했다. 이때 모용성은 성을 탈출해 가까스로 살아남았고, 당숙이 되는 위황제 모용충(慕容沖)이 다스리는 서연으로 도주했다. 1년 뒤 서연을 나와 후연으로 향했고, 387년 후연에 도착한 그는 장락왕(長樂王)에 임명되었다.398년, 단속골의 난이 일어나자 후연의 황제였던 아버지 모용보와 함께 각지를 떠돌았는데, 아버지가 정서 난한이 있는 곳으로 가자고 했을 때 반대하다가 설득시키지 못하자 자신의 세력과 함께 이탈했다. 얼마 후 난한이 부황 모용보의 목숨을 빼앗자,(난한의 난) 난한에게 거짓 항복하고 충성하는 척을 했다. 마침 난한은 모용성의 장인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의 신임을 얻는데 성공했다.
모용성은 난한의 형들과 난한의 사이를 계속 이간질시켰고, 은밀히 모용기에게 반란을 일으키도록 사주했다. 결국 모용기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난한의 형 난제가 반란을 일으키는 사태가 벌어졌다. 난한의 아들 난목이 난제의 반란을 진압하자 모용성은 그의 목숨을 빼앗았고, 군대를 시켜 난한과 그 일족을 싸그리 죽이고는 정권을 잡았다.
이후 모용성은 난한이 요동공으로 삼은 숙부 모용희를 다시 하간공으로 되돌리고[1] 시중·거기장군·중령군·사예교위로 삼았다.
모용성은 398년 10월에 비로소 황제로 즉위했다가 399년에 '서인천왕'(庶人天王)이란 이름으로 통치를 시작했고 급속도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데 주력했다. 하지만 이런 갑작스러운 권력 강화는 큰 후유증을 낳게 되니 바로 연이은 숙청극이 벌어졌던 것이다. 이때 모용성은 작은 혐의가 있어도 잡아들이거나, 심지어 취조도 없이 사건을 판결할 정도로 냉혹하게 숙청을 실행하여 악명을 떨쳤다. 이에 신하들의 반발이 날로 커져서, 급기야 401년에 전장군 단기가 반란을 일으키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때 모용성은 단기의 난을 진압하다가 패잔병들의 습격으로 부상을 입게 되었고, 후유증 때문에 결국 붕어하고 말았다.
3. 평가
두 차례나 목숨을 건지며, 반란으로 끝장날 뻔한 모용씨 가문을 구해내고, 원수인 난한을 제거할 만큼 재주가 있는 인물이었지만, 결국 공포정치로 몰락했다.4. 여담
광개토태왕에서는 역사대로 제대로 흘러갔다면 고구려의 정적으로 등장해야했지만, 이 드라마가 어떤 드라마인가. 막상 고구려랑 대립각을 세우기도 전에 죽은 모용보만 죽어라 우려먹으면서 모용성은 졸지에 등장도 못하고 모용보에게 역할을 흡수 당하며 그대로 짤렸다.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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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용성이 처음 정권을 잡으면서 황제로 즉위하길 거부하고, 여전히 장락왕의 호칭을 유지했으므로 종실의 다른 왕들을 낮추어 공으로 삼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