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5-05 17:35:32

이기(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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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 제3대 황제
폐황제 | 廢皇帝
<colbgcolor=#CD7F32> 묘호 없음
시호 유공(幽公)
제호 폐황제(廢皇帝)
작위 공도현공(邛都縣公)
연호 옥항(玉恒, 335년 ~ 338년)
이(李)
기(期)
세운(世運)
생몰 기간 314년 ~ 338년
재위 기간 334년 ~ 338년

1. 개요2. 생애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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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오호십육국시대의 십육국 중 하나인 성한의 제3대 황제. 황제에서 폐위되어 묘호는 없으며 제호는 폐제(廢帝)이다. 시호인 유공(幽公)은 폐위되고 사후에 이수가 내린 시호로, 폐위된 뒤 받았던 작위인 공도현공(邛都縣公)와 합쳐 공도유공(邛都幽公)으로 부른다.

2. 생애

이기는 314년에 성한의 초대 황제인 이웅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334년 이웅이 죽고 이반이 즉위하여 이수가 정사를 보좌하였는데, 이웅의 아들들은 이반이 친형제가 아님에도 황제로 즉위한 것에 불만을 품었다. 이기는 형인 이월(李越)과 함께 이반이 빈소를 지키고 있는 틈을 타 그를 죽였다. 이반을 살해한 이월은 제위에 오르라는 주위의 권유를 물리치고 아우인 이기에게 양보했다. 이기는 즉위한 뒤에 연호를 옥항(玉恒)으로 고쳤다. 그리고 미처 황궁을 떠나지 못한 이반의 동생 이도(李都)를 주살했다.

335년 1월, 대장군 이수를 대도독, 한왕(漢王), 큰형 이월을 상국, 건녕왕, 작은형 이패(李覇)를 중령군, 진남대장군, 동생 이보(李保)를 진서대장군, 사촌 이시(李始)를 정동대장군으로 각각 삼아 강양(江陽)을 지키게 했다. 치르다 만 아버지의 장례도 재개하여 그 시신을 안도릉(安都陵)에 안치했다.

이반이 살해당했을 때 그의 또다른 동생 이오(李玝)는 도성을 빠져나와 부성(涪城)으로 도망쳤는데, 이시는 대도독 이수에게 가 이오를 잡아죽이자 권했다. 애초에 이기를 따를 마음이 없었던 이수가 선뜻 수락하지 않고 머뭇거리자, 이시는 이를 이기에게 일러바치고 이수가 두 마음을 품고 있으니 마땅히 그를 죽여야 한다며 참소했다. 하지만 이기는 능력있는 이수를 이용하고 싶었기에 황명을 내려 이수로 하여금 부성을 치게 하니, 이수가 하는 수 없이 이에 따랐다. 이오를 죽이고 싶지 않았던 이수는 이오에게 사신을 보내 이해를 따지며 도망가라 설득했다. 이오 또한 승산이 없다 여겨 성을 버리고 동진으로 망명했다. 부성을 되찾았다는 소식을 들은 이기는 이수에게 양주자사를 겸하게 하고 부성에 머물도록 했다.

동년 9월, 이반의 장인 나연(羅演), 한국상(漢國相) 상관담(上官澹)이 이반의 아들을 옹립하려는 역모를 꾸미다 발각되어 나연, 상관담, 이반의 어머니 나씨를 죽였다. 더이상 후환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 이기는 이웅대부터 섬겼던 옛 신하들을 홀대하고 상서령 경건(景騫), 상서 요화(姚華), 전포(田褒), 환관 허부(許涪)만을 전적으로 신임하였다. 이기는 국가의 형벌과 정사를 이들에게 전적으로 맡겨 다른 대신들이 관여하지 못하게 했다. 국가의 모든 포상과 형벌은 경건, 요화 등의 무리에 의해 결정되어 나라의 법과 기강이 매우 문란해졌다. 이밖에도 조카인 상서복사, 무릉공 이재(李載)의 재주가 뛰어난 것을 꺼려 역모죄를 뒤집어 씌워서 죽여버렸다.

336년, 이기의 잔학함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 수많은 사람들이 주살당하고 재산과 처를 모두 빼앗기니, 백성들은 물론 조정의 대신들까지 불안해 하였다. 한번은 병도 없이 건강하던 이패와 이보가 연달아 급사하는 일이 있었는데, 나라에서 이기가 독살했다는 소문이 겉잡을 수 없이 퍼졌을 정도로 이기에 대한 인식은 바닥을 쳤다. 한편, 이기는 부성에 주둔해있는 이수의 명성과 위엄이 드높은 것을 항상 꺼렸다.

338년, 이수가 장사 나항(羅恒), 해사명(解思明) 등과 반란을 모의했다는 밀고가 들어오자, 궁궐에 있던 이수의 의붓동생 안북장군 이유(李攸)에게 짐독을 먹여 독살하고는 이월, 경건, 요화, 전포 등의 무리와 함께 은밀히 출병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는 여러 차례 허부를 부성으로 보내 이수의 동태를 살피게 했다. 이유의 뜻밖의 죽음, 허부의 빈번한 왕래를 수상히 여긴 이수는 그해 4월, 이기보다 먼저 군사를 일으켜 보기 1만을 소집해 이혁(李奕)을 선봉으로 삼아 성도로 돌격했다. 이기와 이월은 이수의 선제공격을 전혀 예상하고 있지 않았기에 아무런 방비도 하지 않았고, 성도성은 순식간에 저항도 없이 이수에게 점령당했다.

이수는 군대를 궁문 앞에 주둔시켜 압박하니, 이기가 사신을 보내 위로하였다. 이수는 사신을 받들면서 이기에게 표문을 올려 이월, 경건, 요화, 전포, 허부, 정서장군 이하(李遐), 장군 이서(李西) 등의 무리는 간사하여 조정을 어지럽히고 사직을 전복하려 했으므로 주살하라 청했다. 이기는 이수의 요청에 따라 이월, 경건 등을 죽였다. 이기의 무리를 제거한 이수는 얼마 안가 태후 임씨의 명령을 빙자하여 이기를 폐위시켰다. 제위에서 쫓겨난 이기는 공도현공(邛都縣公)이 되었고 이수에 의해 별궁에 유폐되었다.

나항, 해사명, 이혁이 이수에게 동진에 칭신하고 이기를 건강(建康)으로 압송할 것을 제안하면서 사실상 동진에서 처형당할 뻔하지만, 이수가 동진 복속을 거부하고 칭제를 선택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그러나 황제에서 유폐당하는 신세가 된 것이 치욕스러웠는지 이기는 탄식하면서 아래와 같은 말을 남기고 결국 목을 매 죽었다.
천하의 군주가 작은 현의 공이 되었다니, 이것은 곧 죽느니만 못한 것이로구나!
이수는 이기를 유공(幽公)으로 추시하고 왕의 예로 장사를 치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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