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5 07:07:44

사마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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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서(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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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서가 있는 경우만 기재
※ 황제는 추존황제를 포함해서 자황색()으로 굵게 쓰고 팔왕은 빨갛게 쓴다. 그리고 8왕의 난에 관련된 종실은 갈색으로 쓴다.
※ 출계(出系)는 취소선을 치고 계자(系子)는 밑줄을 친다.
각주 [ 펼치기 · 접기 ]

[추존] [2] 황제로서의 뚜렷한 존호를 헌상받지 못했으나 다른 추존 황제와 동격배향(同格配享).[3] 친부는 의양성왕[4] 친부는 안평헌왕[5] 숙부(실제로는 종숙) 창무정후에게 출계(出系)[추존] [추존] [8] 친부는 진문제[9] 종숙(실제로는 숙부) 요동도혜왕에게 출계[10] 종숙(실제로는 숙부) 광한상왕에게 출계[추존] [12] 적장자나 두 살에 요절하여 혜제가 사실상 장남이 되었다. 항목이 존재하고 추봉(追封)되었기에 기재[13] 친부는 회남충장왕[14] 여기까지 서진[15] 친부는 오효왕[16] 백부 진헌왕에게 출계[17] 숙부 성양애왕에게 출계[18] 친부는 사마유(동래왕)[19] 백부 진헌왕에게 출계[20] 적장자였던 비릉도왕처럼 한 살에 요절했으나 추봉(追封)되었기에 기재한다.[21] 직접 난을 일으킨 적은 없는 여남문성왕 대신 팔왕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22] 백부 진세종에게 출계.[23] 친부는 진무제[24] 친부는 제헌왕[25] 백부 성도왕에게 출계[26] 친부는 제헌왕[27] 숙부 연왕 경에게 출계[28] 난을 일으킨 적은 없기에 팔왕에서 빼고 대신 효회황제를 넣는 시각도 있다.[29] 여기부터 동진[30] 친부는 진문제[31] 윤통(閏統)[32] 숙부 사마익에게 출계[33] 숙부 사마형에게 출계[34] 백부 사마랑에게 출계[35] 숙부 하비헌왕에게 출계[36] 숙부 안평왕에게 출계[37] 친부는 남궁현왕[38] 진안이 장사만 황제의 예로 올리고 시호는 왕으로 하였다.[39] 종조부 사마민에게 출계했다지만 이러면 소목에 어긋나 항렬이 꼬임[40] 종실에서 팔왕의 난에 아니 가담하고 난이 끝나가는 직전까지 살았다.[41] 친부는 단수현후. 다만 종조부에게 출계하면 항렬이 꼬여서 친부가 법적으로 종형이 되는데 이 문제는 어찌 된 건지 몰?루[추존] [43] 아니 추존되었으나 칠묘에 동격배향(同格配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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司馬翼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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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진의 인물이며 자는 자세(子世), 사마부의 넷째 아들. 사례 하내군 온현 사람.

2. 생애

젊은 나이에 고위 관직에 올라 호분중랑장에 이르렀으나, 서진이 세워지기 전에 죽자 큰형 안평정왕 사마옹의 아들 사마승을 후사로 삼았고, 사마승은 남궁현왕(南宮縣王)에 봉해졌다. 사마승이 죽었으나 그의 아들 사마우가 안평왕 사마돈에게 출사하여 사마승은 후사가 없었다.

그가 호분중랑장을 역임하기 전에 같은 관직을 역임한 사람은 순운이었던 것으로 보아서는 사마씨가 위나라의 조정을 장악하기 전까지는 위나라 문제 때 이후로는 호분중랑장은 공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 사마부가 워낙 오래 산 것도 있지만 사마옹, 사마규, 사마형과 함께 사마부보다 먼저 죽었으며, 제후왕에 임명되기 전에 죽었기에 사마옹과 함께 제후왕에 임명되지 못했는데, 사마옹은 장남이라 시호를 받았지만 사마익은 장남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마부의 아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시호가 없다.

사마부의 아들 중에서는 사마형과 함께 직계 자손이 없어서 사후에 형인 사마옹의 아들을 양자로 입적해 봉국을 세워 계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