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7-24 23:01:21

장현정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방송인에 대한 내용은 장현정(1996)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드라마 삼남매가 용감하게의 등장인물에 대한 내용은 장현정(삼남매가 용감하게)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557 0%, #317589 20%, #317589 80%, #004557); color: #ece5b6;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제5대
무왕 명왕 성왕 문왕 환왕
제6대 제7대 제8대 말대 부흥운동
애공 위왕 충왕 도공 장대예
}}}}}}}}}

<colbgcolor=#317589><colcolor=#ece5b6>
전량 8대 국왕
충공 | 衝公
출생 350년
서진 양주 안정군 오씨현
(現 간쑤성 핑량시)
사망 363년 (향년 14세)
능묘 평릉(平陵)
재위 기간 8대 국왕
355년 ~ 363년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317589><colcolor=#ece5b6> 성씨 장(張)
현정(玄靚))
부모 부친 장중화
모친 왕태비 곽씨
형제자매 2남 ?녀 중 차남
원안(元安)
시호 전량: 충공(衝公)[1]
서진: 경도공(敬悼公)[2]
}}}}}}}}} ||
1. 개요2. 생애3.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전량의 제8대 군주.

자는 원안(元安)이었다. 제5대 세종 환왕 장중화의 차남으로 폭군으로 군림한 제7대 위왕 장조가 피살된 후 반란을 일으킨 장관과 송혼 등에 의해 옹립되어 5살의 어린 나이에 즉위했다. 나이가 매우 어려 조정은 장관, 송혼, 장옹 등 권신들의 손아귀에 들어갔고, 그의 재위 기간 동안 대신들끼리 피비린내 나는 권력 투쟁을 벌였다.

2. 생애

어린 나이와는 별개로 태어날 때부터 천성이 매우 유약했다. 이후 백부 장조가 황제를 칭하면서 양무후(涼武侯)에 봉해졌다.

355년, 장조가 살해되고 반란을 일으킨 대신들이 어린 장현정을 옹립했다. 장현정은 즉위한 후 연호 화평(和平)을 버리고 원래 쓰던 건흥(建興)으로 되돌아갔으며, 칭제도 하지 않았다. 반란의 주모자 장관을 위장군에 임명하여 병권을 그에게 일임했다.

355년 9월, 농서의 백성 이엄(李儼)이 호족 팽요를 주살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장현정은 우패를 보내 진압하게 했는데, 우패의 관군이 농서에 도착하기도 전에 서평에서도 백성 위림(衞綝)이 반란을 일으켰다. 등 뒤에서 예상치 못한 반란군의 등장으로 인해 우패의 군대는 협공을 받아 전멸했고, 우패 혼자 도성으로 도망쳤다.(위림의 난)

356년, 위장군 장관은 자신의 동생 장거에게 군대를 주고 위림을 치게 하고, 사마 장요에게도 군대를 주어 위림에게 호응한 주천태수 마기, 전선 등을 공격하도록 했다. 장거는 위림의 주력군을 대파했고 장요 역시 승리하여 마기와 전선을 참수했다. 장거와 장요가 위림의 반란을 완벽하게 제압하고 돌아오자 장관 형제의 권세는 더욱 높아졌고, 급기야 왕위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359년, 보국 송혼과 그의 동생 송징이 권신들인 장관 형제를 제거하고 장관의 무리들을 궁에서 축출했다.(송혼의 정변) 국왕 장현정은 송혼을 도독중외제군사, 기마대장군에 임명하여 국정을 보좌하도록 했다.

361년, 송혼이 사망하자 장현정은 송징을 영군장군으로 임명해 송혼을 대신하게 했다. 송징이 정권을 장악하고 정사를 좌지우지하자, 우사마 장옹(張邕)이 이를 시기하여 정변을 일으킨 후 송징과 송씨 가문을 멸족시켰다.(장옹의 정변) 장현정은 장옹을 중호군, 숙부 장천석을 중령군에 임명하여 함께 국정을 보좌하게 했다. 그러나 장옹은 거만하여 궁녀를 희롱했고, 붕당을 조직해 국정을 독점했다. 또, 형벌을 남발하여 꺼리낌없이 사람들을 살육해대니 전량의 백성과 관리들이 모두 그를 원망했다. 이에 장천석은 자신의 측근인 유숙 등과 장옹을 제거할 음모를 꾸몄다.

361년 11월, 장천석과 장옹이 함께 입조할 때, 유숙과 조백구가 그 뒤를 밟았다. 장옹이 궁문을 지나려는 순간 유숙이 칼을 뽑아들고는 장옹을 향해 휘둘렀지만 명중하진 못했다. 뒤이어 조백구도 칼을 뽑고 장옹을 베려했으나 둘의 칼날이 장옹에게 닿지 않았다. 단번에 죽이려던 계획이 틀어지자 유숙과 조백구는 장천석을 따라 궁 안으로 도망쳤고, 죽을 위기를 넘긴 장옹은 자신의 집으로 도망친 뒤 사병 300명에게 갑주를 입히고 궁문에 들이닥쳤다. 그러나 이내 장천석의 반격을 받고 붙잡혔으며 장옹과 장옹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처형당했다. 국왕 장현정은 장천석을 관군대장군에 임명하고 국정을 보좌하게 하니 조정은 장천석의 손아귀에 넘어가버렸다.(장천석의 제1차 정변)

363년, 폭군 장조와 간통하고 국정을 망친 태비 마씨가 사망하자 장현정은 자신의 어머니 곽부인을 태비로 봉했다. 곽태비는 평소 장천석이 권력을 독점하는 것이 아들에게 위협이 될까 염려하여 장흠 등의 대신들과 장천석을 제거할 방법을 모의했다. 하지만 중간에 일이 누설되어 곽태비는 유폐되었고, 장흠 등 관련자들은 사형당했다. 장현정은 몹시 두려워하여 장천석에게 왕위를 넘겨주려 했으나 장천석이 사양했다. 며칠 뒤, 장천석은 유숙 등에게 명령을 내려 야밤에 군사를 이끌고 왕궁을 쳐 장현정을 살해하도록 했다. 장현정은 그날 밤 살해당했고, 장천석은 다음날 장현정이 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고 공표했다.(장천석의 제2차 정변)

장천석은 장현정을 충공(衝公)으로 추시했고, 동진의 열종 효무제는 장현정에게 경도공(敬悼公)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다만 방현령의 《진서》와 사마광의 《자치통감》과는 달리 최홍의 《십육국춘추》에는 장현정의 시호가 충왕(衝王)이라고 적혔다.

3. 둘러보기

전량의 역대 국왕
7대 위왕 장조 8대 충왕 장현정 9대 도공 장천석
진서(晉書)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color: #ece5b6"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제기(帝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81818,#e5e5e5
1권 「선제기(宣帝紀)」 2권 「경제문제기(景帝文帝紀)」 3권 「무제기(武帝紀)」
사마의 사마사 · 사마소(昭) 사마염
4권 「혜제기(惠帝紀)」 5권 「회제민제기(懷帝愍帝紀)」 6권 「원제명제기(元帝明帝紀)」
사마충(衷) 사마치 · 사마업 사마예 · 사마소(紹)
7권 「성제강제기(成帝康帝紀)」 8권 「목제애재폐제기(穆帝哀帝廢帝紀)」
사마연(衍) · 사마악 사마담 · 사마비 · 사마혁
9권 「간문제효무제기(簡文帝孝武帝紀)」 10권 「안제공제기(安帝恭帝紀)」
사마욱 · 사마요 사마덕종 · 사마덕문
※ 11권 ~ 30권은 志에 해당. 진서 문서 참고
}}}}}}}}}}}}
[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 31·32권 「후비전(后妃傳)」 ||
[ 재기(戴記) ]
||<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width=33%> 101권 「유원해재기(劉元海戴記)」 ||<-2><width=34%> 102권 「유총재기(劉聰戴記)」 ||<width=33%> 103권 「유요재기(劉曜戴記)」 ||
유원해 ,유화 · 유선, 유총 ,유찬 · 진원달, 유요
104 · 105권 「석륵재기(石勒戴記)」 106 · 107권 「석계룡재기(石季龍戴記)」
석륵 ,석홍 · 장빈, 석계룡 ,석세 · 석준 · 석감 · 염민,
108권 「모용외재기(慕容廆戴記)」 109권 「모용황재기(慕容皝戴記)」
모용외 ,배억 · 고첨, 모용황 ,모용한 · 양유,
110권 「모용준재기(慕容儁戴記)」 111권 「모용위재기(慕容暐戴記)」
모용준 ,한항 · 이산 · 이적, 모용위 ,모용각 · 양무 · 황보진,
112권 「부홍등재기(苻洪等戴記)」 113 · 114권 「부견재기(苻堅戴記)」 115권 「부비등재기(苻丕等戴記)」
부홍 · 부건 · 부생 ,왕타, 부견 ,왕맹 · 부융 · 부랑, 부비 · 부등 ,삭반 · 서숭,
116권 「요익중등재기(姚弋仲等戴記)」 117 · 118권 「요흥재기(姚興戴記)」 119권 「요홍재기(姚泓戴記)」
요익중 · 요양 · 요장 요흥 ,윤위, 요홍
120권 「이특등재기(李特等戴記)」 121권 「이웅등재기(李雄等戴記)」
이특 · 이류 · 이상 이웅 · 이반 · 이기 · 이수 · 이세
122권 「여광등재기(呂光等戴記)」
여광 · 여찬 · 여륭
123권 「모용수재기(慕容垂戴記)」 124권 「모용보등재기(慕容宝等戴記)」
모용수 모용보 · 모용성 · 모용희 · 모용운
125권 「걸복국인등재기(乞伏國仁等戴記)」
걸복국인 · 걸복건귀 · 걸복치반 · 풍발 ,풍소불,
126권 「독발오고등재기(禿髪烏孤等戴記)」
독발오고 · 독발리록고 · 독발녹단
127권 「모용덕재기(慕容徳戴記)」 128권 「모용초재기(慕容超戴記)」
모용덕 모용초 ,모용종 · 봉부,
129권 「저거몽손재기(沮渠蒙遜戴記)」 130권 「혁련발발재기(赫連勃勃戴記)」
저거몽손 혁련발발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800080><tablebgcolor=#800080> ||
}}} ||



[1] 장천석(張天錫)이 즉위한 후 추존했다.[2] 동진의 열종 효무제 사마요가 추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