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1 17:41:40

태평어람

1. 개요2. 내용3. 같이보기

1. 개요

太平御覽[1]

북송송태종 때 편찬된 유서(類書). 이방 등의 학자가 송태종의 명으로 태평흥국(太平興國) 2년(977년)에 시작하여 태평흥국 8년(983년)까지 6년간 편찬한 일종의 백과사전 격의 책으로,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각종 문헌을 인용하여 기록한 책이다. 총 55부에 부설된 5,474류로 구성되었으며, 각 항목에는 여러 서적의 기록과 문장을 인용하였다. 다만 체계적인 분류를 두어 항목을 정리하는 현대의 백과사전 류와는 달리, 이 시대의 유서는 이처럼 옛 문헌의 문장을 그대로 인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책부원구》, 《태평광기》, 《문원영화》와 함께 송사대서(宋四大書)라고 불린다.

2. 내용

본디 태평총류(太平總類), 태평류편(太平類編), 태평편류(太平編類)라고 불렸으나 1천 권에 달하는 책을 완성하자마자 태종이 기뻐하며 하루에 3권씩 독파하여 1년 동안 다 보았다고 해서 《태평어람》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새로 지은 책을 열심히 탐독하는 황제의 건강을 걱정하는 신하들에게 송태종은 "책은 펼치기만 해도 이로움이 있소. 짐은 이를 고생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소."(開卷有益,朕不以爲勞也)라고 답했고, 이 말에서 '개권유익(開卷有益)'[2]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겼다. 송태종은 비록 무인이긴 했어도 대단한 책벌레였던 모양이다.

전대의 서적들 1690여 권[3]에서 인용한 내용들을 정리한 책으로, 인용된 서적 중 70~80%가 이미 유실된 것들이고, 송대 이전의 고사라든지 주변국, 특히 고대 한국의 역사 및 풍습에 대한 기록들도 있어 사료로서도 가치가 높다. 이런 유서는 《태평어람》 이후에도 활발하게 간행되어서 명나라 영락제의 《영락대전》(2만 2877권)이나 청나라강희제가 발간을 명령하고 옹정제 때 완성된 《고금도서집성》(1만 권), 건륭제의 《사고전서》(7만 9377권) 등이 발간되는 데 영향을 주었다.

중국 역사 상 자료와 서적들에서 유서(類書)를 편찬하는 일은 역대 왕조마다 개인적으로 또는 국가적으로 이뤄졌다. 이전에도 전국시대의 거상이자 진나라의 재상인 여불위가 거금을 들여 《여씨춘추》라는 책을 편찬했고, 북제의 《수문전어람》, 당나라 때 명관료이자 학자이기도 했던 구양순의 《예문유취》를 비롯하여 《문사박요》 등의 유서가 있었다. 《태평어람》은 이러한 전시대의 유서 및 각종 서적들의 기록과 문장을 인용하여 다시 유서 형식으로 엮은 책이었다.

읽어보면 재밌는 일화들이나 한국에 관련된 일화들이 꽤 있는데, 몇가지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 오래 전에 기록되었지만 지금은 사라진 책에 적힌 반고 신화.#
  • 공자에게 벼슬을 줄 것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공자의 제자 좌구명이 언급한 고사성어 '여호모피'의 일화.#
  • 촉한 재상 제갈량 어록 및# 그의 밑에서 일했던 전설적인 장인 포원의 일화.
  • 한 달 내내 술에 취해 있어도 일하기는 깬 사람보다 나았다는 육조시대의 신하 공의의 일화.#
  • 당나라 시대 장쑤성의 명주(名酒)인 곡아주(曲阿酒)가 고구려에서 유래됐다는 전설.#
  • 부여에서 시작된 윷놀이에 대한 설명#

한국에 들어온 것은 고려 중기로 보이는데 《고려사절요》에 의하면 고려 숙종 5년(1100)에 고려사신 오연총[4]이 구해 처음 들여왔던 것 같다. 이후 《태평광기》 등의 다른 4대서들도 들어온 듯하다.

3. 같이보기


[1] 영어 : Taiping Yulan[2] 남송 때의 문인 왕벽지(王闢之)의 저서 '승수연담록(繩水燕談錄)'에 전한다.[3] 다만 중복은 있다.[4] 후일 윤관여진정벌에도 참여한 그 오연총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