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9 15:54:33

공손도

위서(魏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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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연의 역대 국왕
공손도 | 공손강 | 공손공 | 공손연
公孫度
공손도
작위 영녕향후(永寧鄕侯)[1]
최종직위 요동태수(遼東太守) 무위장군(武威將軍)
성씨 공손(公孫)
(度)[2]
승제(升濟)또는 숙제(叔濟)
고향 유주(幽州) 요동군(遼東郡) 양평현(襄平縣)
생몰 기간 150년 이전 ~ 204년[3]
아버지 공손연(公孫延)[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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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역임한 관직 및 작위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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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상서랑(尙書郞)→기주자사(冀州刺史)→면직
→요동태수(遼東太守)→요동태수(遼東太守) 무위장군(武威將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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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이름 논란4. 미디어 믹스5.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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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대 중국 후한 말 세력을 이룬 동연의 제1대 수장이며 는 승제(升濟) 또는 숙제(叔濟)로[5] 유주 요동군 양평현 출신. 본명은 공손표(公孫豹), 개명(改名)이 공손도다.

2. 생애

그의 부친 공손연(公孫延)[6]은 관리의 추적을 피해 현도군으로 이주했기 때문에 그곳에서 거주했다.

공손도는 아버지가 일찍 사망하고 현도군 태수 공손역(公孫琙) 아래에서 일했는데, 공교롭게도 공손역의 18세에 요절한 아들 이름이 공손도의 원래 이름이었던 공손표였고, 공손도는 공손표와 태어난 해가 같았다. 이 때문에 공손역은 공손도를 자기 아들처럼 사랑하였고 좋은 혼처를 얻어 장가를 가도록 도와주기까지 하였으며, 특히 스승을 붙여주며 생업에 매진할 필요 없이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그를 지원해주었다. 이후 169년에는 사필이 공손도를 유도(有道)[7]로 천거해서 공손도는 중앙 정계에 진출하기도 했다.

그렇게 점차 관직이 올라가 기주 자사까지 승진했지만 뜬소문이 돌아 면직되었다. 이후 189년에 동탁의 수하 장수였던 서영이 공손도와 동향 출신이었기 때문에 공손도는 그의 추천으로 요동 태수가 되었지만, 중원 지역이 혼란해지자 왕을 자칭하였다.

191년에 위명을 떨쳐 중원의 난리를 피해서 온 관녕, 병원, 왕렬과 같은 인물들이 공손도에게 의탁했다고 하며, 공손도는 객사를 비워 관녕, 병원 등을 맞이했다. 관녕의 충고로 병원이 고향으로 도망갔을 때 굳이 쫓지 않았으며, 왕렬을 장사로 임명하려고 했지만 왕렬이 거부했다고 한다.

공손도는 산동 반도의 동부 지역 및 주변 지방을 공략하는 등 제법 세력을 확장했다.[8] 또한 국내에서도 강성한 호족들을 붙잡아 모조리 죽이는 등 철저한 공포 정치로 철혈 지배권을 확립하는 데 힘썼다. 한편 그와 적대하던 고구려와 선비족의 적국인 부여왕에게 종친의 딸을 시집보내는 형태로 동맹을 맺는 등 외교 관계 수립에도 힘을 기울였다.

197년, 고구려에서 왕위 계승전 끝에 산상왕이 즉위하고 형인 고발기가 이에 반발했다가 패배한 후 망명해와 군사를 요청하자 선뜻 30,000명의 군대를 지원해줄 정도로 꽤 유망한 강자였다. 아무래도 동연의 적대국이었던 고구려의 내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던 듯 하다. 다만 이 시도는 고발기와 산상왕의 동생이었던 고계수가 막아내면서 무위로 돌아갔다.

헌제를 옹립한 조조에 대해서는 상당히 같잖게 본 듯하다. 조조가 직접 헌제에게 상주해 공손도에게 무위장군, 영녕향후의 작위를 내렸지만, 공손도는“나는 요동의 왕이다. 뭐가 영녕향후냐!”며 화를 내고 인수를 창고에 처박아 버렸다고 한다.

204년 8월, 조조가 원상을 격파하고 업을 함락시켰다는 소식을 듣자 이 기회에 군사를 일으켜 조조를 밀어버리고 자기가 업을 차지하겠다는 패기 넘치는 발언도 하였다. 이로 보아 원소 사후 하북의 혼란을 틈타 중원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할 생각도 있었던 듯하나, 마침 그 해에 사망했고, 사후 아들 공손강이 권좌를 이어받았다.

3. 이름 논란

이름인 度는 보통은 도라고 읽히지만 탁이라고도 읽을 수 있어서 어느 쪽이 맞는가에 대한 논란이 있다. 마찬가지로 한자를 사용하는 일본의 한자음에서도 '도'에 해당하는 'ど(도)'와 '탁'에 해당하는 'たく(타쿠)'가 모두 존재하며 한국의 여러 논문과 사전에서 '공손탁'이란 표기를 사용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자는 이름에 맞춰 지었다는 점에서 자인 '승제'에 근거해 이름을 어떻게 읽었는가에 대해 몇 가지 의견이 있다.

'헤아리다'는 뜻의 '승'에 주목하면 '재다'는 뜻의 '탁'이 맞게 되며, '승제'가 현대 중국어에서 '초도'(중생을 구제한다)의 의미이므로 그 뜻을 따르면 '도'가 맞다.

4. 미디어 믹스

4.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공손도(삼국지 시리즈) 문서 참조.

4.2. 토탈 워: 삼국

클론 무장으로 등장하며, 흉폭한 야생 DLC 출시 이전까진 요서 지역을 점거한 상태로 시작한다. 세력 등급이 올라가면 국명이 고죽국으로 바뀐다. DLC 출시 이후 요동 지역까지 영토로 추가가 되었다.

5. 관련 항목



[1] 인수는 받았지만 분노하며 창고에 쳐박았다고 한다[2] 개명 이전 본명은 공손표(公孫豹))[3] 유도로 천거된 것이 169년의 일이고 이전 공손역과의 일화를 생각하면 사망 당시 상당한 고령이었을 것이다. 140년대 초반 즈음으로 추정된다.[4] 손자인 공손연과는 한자가 다르다.[5] 흔히 승제(升濟)로 알려져 있으나 《후한서》 <문원전>의 주석으로 인용된 《위지》, <육신주문선>의 이현의 주석에는 숙제로 나와있으며, 동일한 사례로 황충, 유표가 있다.[6] 삼국지에 나오는 공손연의 이름은 淵이다.[7] 후한 선거제 과목 중 하나다.[8] 공손도가 한창 발흥할 때는 바다 건너로 군사를 보내 청주 방면, 동래군 일대의 현들을 점령하고 영주(營州)라고 부르며 영주자사를 두는 등 객기를 부린 바가 있고, 수만 명의 군사를 보내 공융에게 찝적대다가 크게 패배한 기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