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서(魏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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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楊阜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후한 말과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이며 자는 의산(義山)으로 옹주 천수군 기현 출신.2. 생애
2.1. 초기 생애
어렸을 때부터 외종사촌 형 강서의 집에서 지냈으며, 같은 군 출신인 조앙(趙昂), 윤봉과 함께 천수의 인재로 이름을 날려 양주목 위단의 종사가 된다. 주 종사의 신분으로 허도로 파견되었고 허도에서 안정군의 장사[1]자리를 받으며 승진해서 돌아온다.이때는 원소와 조조가 대립하던 시기였는데, 관서의 유력 군벌들이 양부에게 누가 이길 것 같냐고 묻자,
원공은 관대하지만 과단성이 없고, 책략을 좋아하지만 결정하는 법이 없습니다. 과단성이 없으면 위신이 없게 되고, 결정하는 것이 없으면 훗일을 잃게 됩니다. 지금은 비록 강대할지라도 끝내 대업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조공은 웅대한 재능과 원대한 지략을 갖고 있으며, 판단하고 결심할 때는 주저하지 않으며, 법령에는 일관성이 있고 병사들은 정예이며, 뛰어난 인재를 파격적으로 사용하고, 임용된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역량을 전부 발휘합니다. 조공은 반드시 큰 일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라며 조조를 찬양하고 원소를 폄하한다.[2] 양부의 평가는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이후 장사의 직무가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여겨 사직했지만, 위단이 태복으로 승진해 중앙으로 돌아가고 위단의 아들 위강이 후임 양주자사로 부임하자 양부를 초빙해 별가[3]로 삼는다. 한편 승상부에서도 그를 효렴으로 천거해 중앙으로 불렀지만 위강이 표를 올려 이를 만류했으므로 참군사로 양주에 남게 되었다.
2.2. 마초와의 대결
211년에 조조가 마초를 동관에서 물리쳤으나 소백이라는 자가 하간에서 모반을 해 그것을 막기 위해 동으로 군사를 돌리자 양부는 마초가 강족과 함께 힘을 길러 다시 올 것을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조조 또한 그 말을 옳다고 여겼으나 너무 빠르게 퇴각하는 바람에 제대로 대비를 하지 못 하게 된다.212년에 마초는 강족들을 이끌고 다시 농상을 침범하고 기성을 제외한 모든 군현이 그에게 호응했으며, 또한 장로의 지원군 양앙의 1만 병사까지 마초의 원군으로 참전한다. 양부는 사대부까지 모아 1천의 군사를 종제 양악에게 성벽 위에서 초승달 모양의 진형을 짜게 해 대항했으나 몇 달이 지나도록 지원군이 오지 않자 마지막으로 염온이라는 자가 지원군을 요청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가 마초에게 살해당한다.
이에 위강은 싸울 기력을 잃어 양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초에게 항복하는데, 마초는 기성의 양악을 구금하고 약속대로 자신이 그들을 죽이지는 않고 양앙으로 하여금 자사와 태수를 죽이게 했다.
이에 양부는 복수할 계획을 세워 아내의 장례식을 핑계로 역성에 있던 고종사촌 형 강서에게 울며 말하길
성을 지켰지만 완전하게 할 수 없었고, 주인이 죽었는데 함께 죽을 수 없었으니 또 무슨 면목으로 세상에서 숨을 쉬며 살겠습니까! 마초는 아버지를 배신하고 군주를 배반했으며 주의 장수들을 죽였습니다. 어찌 저 양부 혼자만이 슬퍼하며 책임을 느끼겠습니까? 한 주의 사대부들은 전부 치욕을 받았습니다. 당신은 병권을 장악하고 전권을 휘두르고 있지만, 적을 토벌할 마음이 없습니다. 이것은 조돈이 사관들에게 반역자를 죽인 것이 아닌 주군을 죽인 것으로 쓰인 까닭입니다. 마초는 강대하지만 신의가 없고, 대부분 모순되는 것이 많아 무찌르기가 쉽습니다.
이 말에 옆에 있던 강서의 어머니가 감명받아 강서에게 어서 그의 말을 따르라고 해 강서는 양부의 말을 따르게 되며, 이와 동시에 외부의 고향 사람 강은, 조앙, 윤봉, 요경, 공신, 무도 사람 이준, 왕령 등과 모의하는 한편 종제 양모를 기성으로 보내 양악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거기다가 안정현의 양관, 남안의 조구ㆍ방공과도 손을 잡아 확실히 하고 강서와 함께 노성에서 군사를 일으킨다.이에 마초는 군사를 이끌고 출전하니 성안에 남아있던 조구와 양관은 양악을 풀어주고 기주성의 문을 닫아 마초의 처자를 처형했다. 마초는 역성을 습격해 강서의 어머니를 죽이고[4] 양부와 싸워 양부의 일곱 종제를 죽이고 양부에게도 다섯 번의 상처를 입혔으나 결국 패해 장로에게 달아나게 된다.
조조는 마초를 토벌한 공으로 양부를 관내후에 봉했으나 양부는 다음과 같은 말로 사양한다.
저는 군주가 살아있을 때에는 어려움을 제어한 공로가 없었으며, 군주가 죽었을 때에는 죽음으로써 따르는 행동이 없었으므로 도의상으로는 응당 쫓겨나야 하고, 법률상으로는 주살되어야만 합니다. 마초는 또 죽지 않았으므로 어떠한 작위나 봉록을 받아서는 안됩니다.
이에 조조는 기뻐하며 그의 일을 사관에게 기록해 널리 알려야겠다며 칭찬한다.2.3. 무도태수에 임명
215년에 조조가 한중을 정벌하러 가는 길에 익주자사로 임명 되었으며, 장로를 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금성태수로 부임되었다가 바로 무도태수로 전임되었다.218년에 유비가 장비와 마초를 보내 하변을 노리자 조조는 조홍과 조휴를 보내 이들을 격퇴하는데 성공한다. 이에 조홍은 주연을 준비해 빈객들을 대대적으로 모이게 하고, 가희들에게 얇은 비단옷을 입도록 한 후 발로 큰 북을 밟으며 춤을 추게 하니 좌석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웃었으나 양부만은 거센 소리로 조홍을 질책해 말하길그리고 옷을 떨치고 물러났다. 조홍은 가희들의 악무를 중지시키고, 양부에게 돌아와 앉도록 청해 양부를 존경하고 두려워함을 나타냈다.
그러나 결국 유비가 한중을 취하는데 성공하자 무도도 지키기 어렵다고 느낀 조조는 백성들과 저족들을 이주시키고자 했는데[5], 양부는 이에 자신의 군청을 소괴리로 옮기자 주민들도 이에 따라 경조·부풍·천수로 옮겼다. 양부는 정치의 기강을 세우고, 차마 아랫사람에게 속임수를 쓰지 않았다고 전한다.
조조는 유엽에게 양부의 평을 물으니 삼공에 어울린다는 평을 했고 조조 또한 그를 삼공에 임명하려고 했으나 곧 조조 자신이 병들어 죽으면서 양부는 10년간 무도태수의 직위로 있었다.
2.4. 조예 휘하에서
이후 조예의 시절에 중앙으로와 성문교위가 되었다.조예가 예법에 맞지 않는 옷을 입자 그것을 탓해 다시는 그런 옷을 못 입게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예는 궁궐을 증축하고 미녀를 뽑아 후정을 채우고, 자주 사냥을 나가 가을에 자연 재해를 맞이하면서 상소해 이런 것들을 문제로 여기고 개선할 것을 촉구하는 한편 황실 친척들의 대우에 대해서도 말했다. 이렇게 조예에게 밉보일 일만 했는데도 불구하고 소부로 승진한다.
230년에 조진이 촉을 공격할 때 큰 비로 낙수, 한수, 하수가 넘치자 표를 올려 그를 돌아오도록 주장했고 조예는 그의 명에 따라 조진의 군사를 돌리게 했으며, 235년에 조예가 또 허창에 새로 궁을 짓고 낙양궁을 증축하는 등 백성들이 농번기에 일하게 되자 고당륭과 함게 상소를 올렸으나 조예는 듣지 않았다. 이에 양부는 어부의 관리에게 후궁의 수를 물어 그가 답하지 않자 그에게 곤장 백대를 치게 했고 조예의 딸 조숙이 태어난지 1년도 안되어 죽으면서 조예가 직접 장례식에 참석하려고 하자 양부는 조비와 무선황후 장례식에도 참석 안 하던 사람이 뭐하던 짓이냐하고 상소를 올렸지만 조예는 이번에도 듣지 않았다.
이처럼 조예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자 도저히 못 참겠다하고 은퇴하겠다고 의견을 밝혔는데 이것도 안 들어준다. 결국 양부는 화병(火病)으로 죽었으며 죽었을 때 재산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어찌보면 내내 운이 따라줬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마초와 악전고투해 중상을 입으면서도 용케 살아남은 것도 살아남은 거지만 조조-조비 시절엔 무도태수로 변방에 가있었고 직언을 들어주고, 직언한 신하를 처벌하지는 않으나 실천은 하지않는 조예때 중앙으로 들어온 덕택에 간언하나 목 날아가는 일이 없었다. 황제가 듣기만 하고 따라주진 않으니 본인은 답답해 미칠지경이었겠지만 조비때 이랬으면 화병으로 집안 침상에서 죽는게 아니라 저자에서 목이 날아갔을 수도 있다. 진짜로 조비가 그렇게 죽인 중신이 존재하기도 했고.[6]
3. 미디어 믹스
3.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삼국지 9, 10, 11 |
삼국지 12, 13, 14 |
삼국지 3에서 첫 등장하고 쭉 출연이 없었다가 삼국지 8 PK에서 복귀했다. 전체적으로 지력, 정치력 모두 준수한 인재이며, 마초와 맞서 싸웠다는 점을 반영해서 문관이지만 통솔력도 잡무관 수준은 된다. 후기 시나리오에선 조조군 소속이라 두드러지진 않지만 초기 시나리오에선 197년즈음부터 천수에서 등장하기 때문에 문관이 무관에 비해 부족한 서량지역에서는 매우 귀중한 인재다. 단, 상성도가 조조쪽이라 등용이나 충성도 관리 모두 신경써줘야 한다.
삼국지 3에서는 양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인지 프로필 사진이 투구를 쓰고 있으며 분류상 무관으로 되어있다.
삼국지 8은 무력 56/지력 83/정치력 82/매력 75. 축성, 변설, 도발, 소문 특기를 가지고 있으며, 가장 실용적인 전법이 교란이 5레벨이라 전장에서도 쓸 만하다. 참고로 똑같이 PK에 추가된 장특 또한 교란이 4레벨이고 위관도 기습이 5레벨로 매우 쓸만하다. 아무래도 신캐 보정인듯. 다만 성장 타입이 어딜봐도 군사형일 거 같은데 지력으로 설정되어서 정치력이 느리게 오른다는 단점은 있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65/무력 46/지력 87/정치력 84. 파괴, 덫, 혼란, 매도를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68/무력 55/지력 85/정치력 81/매력 77로 능력치 총합 366으로 준수하다. 특기는 기술, 보수, 치안, 일제, 은밀, 유인, 지리, 반격, 위압, 반박, 간첩. 총 11개다.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전작에 비해 너프를 당하긴 했지만 통솔력 67/무력 50/지력 83/정치력 78/매력 77, 총합 355로 여전히 나쁘지 않다. 여담으로 삼국지 11에 마등 부자한테 지력이 높은 무장이 크게 없어선지, 10~11년 쯤 진행을 하고 나면 지력이 95로 성장해 마등 부자의 군사가 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삼국지 12에서는 일러스트는 왼손에 병서를 든 채 오른손으로 검을 앞으로 내밀고 있는 상태에서 마초에게 호통을 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무력은.... 중간 정도이지만 약하다. 여담이지만 혐오무장으론 마초가 있는데[7] 왠지 조예는 빠져 있다. 이는 조예도 마찬가지다. 군주와 신하가 서로 혐오무장 관계일 때는 군주가 신하를 죽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조예는 양부의 말만 듣지 않았지 관직에는 그대로 앉혀놓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승진까지 시켜줬다.[8]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67/무력 50/지력 83/정치력 78. 중신특성은 없고 특기는 설파 7, 교섭 6, 신속 4, 순찰 4, 문화 1. 전수특기는 설파로 전법은 속공지휘이며 병과적성은 창병 C/기병 B/궁병 B다.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67, 무력 50, 지력 82, 정치 78, 매력 77로 전작에 비해 지력이 1 하락했다. 개성은 동지, 교화, 인맥, 소욕, 여망, 주의는 왕도, 정책은 시설개발 Lv 4, 진형은 학익, 정란, 충차, 전법은 견제, 저지, 고무, 정란, 충차, 친애무장은 강서, 위강, 장기, 조앙, 혐오무장은 마초다.
3.2. 삼국전투기
하나나카지마 마사루로 등장했다. 개그캐를 패러디한 거라 하는 짓은 가벼워보이는데 작중 행적은 진지하고 심각하기 짝이 없어서 다소 괴리가 있다.[9] 기 전투 (3)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기도 했다.[10]기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몇 달이 지나도록 조조의 지원군이 오지 않아서 위강이 마초에게 항복하려고 하자 눈물까지 흘리면서 반대하지만 결국 그를 막지 못했다. 그리고 마초가 위강을 죽이자 항복한 위강을 해한 마초만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며 복수심을 불태우기도 했다.
그리고 조조의 지원군이 천수에 들어 왔다는 정보를 입수하자 조앙에게 바로 찾아와서 그 정보를 전달했고 하후연이 밖에서 밀어붙이고 우리가 안쪽에서 공조한다면 위강의 원수를 손쉽게 갚을 수 있다고 기뻐하기도 했다. 그렇게 안쪽에서 공조하기로 했지만 밖에서는 하후연이 마초에게 밀렸고 안은 방덕이 지키고 있었기에 내부 전복 시도는 일단은 실패로 끝났다.
이후 아내가 사망하면서[11] 아내의 장례를 핑계로 역성으로 간 뒤 사촌형 강서에게서 군사를 빌려올 것이라고 조앙에게 말했다. 이는 스스로 미끼를 자처한 것으로, 양부 등이 마초를 상대하는 동안 내부의 조앙이 기성을 접수하는 것이 계획의 골자였던 것.
양부는 형제 여섯 명을 모두 인질로 잡히고 나서야 마초에게서 이동을 허락받을 수 있었고, 양부는 역성으로 간 뒤 사촌형 강서에게 눈물을 보이며 지원군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강서가 이에 동의하면서 그와 함께 역성에서 군사를 일으키게 되었다.
그렇게 방덕을 상대하게 되었고, 애초에 비빌 상대가 아니었기에 간단히 짓밟히고 양부 본인은 심한 중상을 입게 되지만, 계획대로 조앙이 기성을 접수하면서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치는 데 성공했다.
요동 전투 편에서 오랜만에 재등장. 중앙 관리가 되었으며 엄청나게 짙은 콧수염이 생겼다.
취미생활에 몰두하는 조예를 보고 다른 관리들과 함께 우려를 표했고, 양부 본인은 조예에게 이런저런 설교도 해 봤지만 하나도 먹히지 않았다.[12] 이후 조예가 궁궐은 일종의 수집품을 채울 장식장 같은 거라고 진군에게 말하자 양부는 궁녀가 만 명이면 하루 한 명씩만 지내도 3년 가까이 걸린다며 크게 어이를 상실했다.[13] 조예가 양부의 말을 듣고 "그래서요?"라고 말하자 "한 명만..."이라고 말하는 건 덤.
여담으로 그의 여섯 형제가 마초에게 인질로 잡혀있다가 보복으로 죽었는데, 오소마츠 군으로 패러디되었다. 막 올라온 당시 댓글란은 이게 무슨 패러딘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가 후일 오소마츠 상 덕분에 인지도가 확 올라가서 후반 댓글란은 알아보는 사람이 엄청나게 늘어나 있다.
3.3. 화봉요원
마초가 양주를 공격해 난민들이 기성으로 왔는데, 기성에 사람이 꽉 찼다면서 수용할 공간이 없다며 난민을 계속 들이는 위강을 말리는 모습으로 등장한다.[1] 태수의 수석 보좌관이자 태수 부재시 이를 대리하는 부군수격에 해당한다. 기본적으로는 승(丞)과 같지만 변방의 군사 요충지에는 군승이 아닌 군장사를 두었고 권한도 더 강했다. 백마장사로 이름을 날린 공손찬이 유명하다.[2] 원소와 조조를 둔 제 3자 입장에서의 객관적인 평가라고도 하지만 애초에 양부는 중앙조정을 장악하던 조조가 관서 군벌들 감시하라고 파견한 위단에게 발탁된 사람이고, 그 스스로도 주종사 신분으로 조조에게 파견되어 잔뜩 벼슬을 받고 돌아온 인물인지라 입지상 철저한 친조조파에 가깝다.[3] 주(州)의 수석보좌관이다.[4] 이 와중에도 강서의 어머니는 “너는 부친을 배반한 역적놈이고, 군주를 살해한 흉악한 적이다. 천지가 어찌 너를 오래 살려두겠느냐? 네가 일찍 죽지 않는다면, 무슨 면목으로 감히 사람들을 보겠느냐!”라고 당당하게 꾸짖었다. 이 일화는 《열녀전》에도 기록되어 있다.[5] 단순히 위협을 느낀 게 아니라 유비가 실제로 (마침 번성 공방전도 초전에는 성공적이었던 터라 이에 호응해서) 하변 공격을 준비했던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도 있다. #[6] 참고로 이 사람의 아버지는 포신으로, 조조 세력 초기에 수많은 도움을 준 후원자이며 유비로 치면 도겸이나 미축 정도의 위치로 봐도 될 만한 인물이니 양부보다 공이 낮은 사람이 절대 아니다.[7] 그래서 마초가 군주일 때는 절대 등용을 못한다. 마등으로는 등용할 수 있다.[8] 비슷한 예로 유파도 장비는 혐오무장이어도 군주인 유비는 혐오무장이 아니다.[9] 기성에서의 전투는 삼국지 내에서도 특히 노인, 여성, 아이 등 약자들이 보복, 복수 때문에 무참하게 살해되는 잔혹한 전투였다. 또한 양부라는 인물도 딱히 개그캐가 어울리는 행보를 보인 적은 없다. 뭐 패러디일 뿐이고 '이상해보이지만 멋진 녀석'으로 꽤 잘 나왔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큰 문제는 아니지만.[10] 타이틀 컷에서의 표정은 진지하지만 잘 보면 바지 남대문이 열려 있다.(...)[11] 소설 운수 좋은 날의 패러디. 웬 안경남에게 이유 없이 거금을 받고 운수 대박이라며 집으로 갔지만 아내가 죽어 있었다. 그리고 양부는 이 비보를 접하고 운수 대박이었는데 운수 초대박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양부가 싸이코패스인 건 아니고, 후술하듯 아내의 죽음으로써 역성으로 갈 명분이 생겼기 때문에 운수 초대박이었던 것이다.[12] 조예는 설교를 차분하게 다 듣긴 듣되 그대로 행하지는 않았다고 묘사된다. 이에 양부는 싫으면 중간에 끊고 싫다고 말하라며 괜히 한참을 말했다고 어이없어했다.[13] 사실 계산오류. 실제로 1만을 365로 나눠 보면 약 27년 정도가 도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