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3 10:49:42

주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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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 주왕(紂王)[1]
호칭 제신(帝辛)
자(子)
수(受) / 수덕(受德)
생몰년도 ? ~ 기원전 1046년
재위년도 기원전 1075년 ~ 기원전 1046년
1. 개요2. 폭군 주3. 재발견4. 대중문화에서 제신
4.1. 봉신연의의 등장 인물4.2. 봉신연의(만화)의 등장 인물

1. 개요

중국 상나라 왕조의 마지막 임금. 왕호는 제신帝辛이며, 자수子受/자수덕子受德이다.

하나라의 마지막 임금으로 전하는 (桀)과 함께 '걸주'로 불리며 오랜 세월 폭군의 대명사로 통한다. 그리고 주나라프로파간다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

선대 왕인 제을(帝乙)의 작은 아들로 형인 미자계(微子啓)는 서자라서 왕위를 이어받을 수 없었기에 적자였던 제신이 왕위를 승계한다.[2]

2. 폭군 주

사람들은 제신을 두고 주(紂)라고 불렀는데 사기집해에서는 주(紂)를 도리를 잃고 선을 해치는 것라고 뜻풀이를 하고 있다. 흔히 폭군의 대명사로 꼽히는 인물로, 사마천의 사기에서는 그의 폭정으로 은이 멸망에 이르게 되었다는 식의 인식이 퍼져 있다.

사기 등의 기록에 의하면 꽃미남인 데다가 머리가 총명하였으며 말 재주에 능하였고, 힘이 무척 장사였다고 한다. 자신의 명성이 천하의 누구보다 더 높다고 생각하여 모든 사람들을 자기 아래로 여겼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하여 천지신명에게 지내는 제사를 소홀히 여기고[3] 세금을 과중하게 부과하며 천하의 온갖 좋은 보물은 다 독차지했다고 한다.[4]

우혼이나 비중 같은 아첨을 잘하고 비위를 잘 맞추는 간신들을 등용하는가 하면 달기에게 푹빠진 나머지 달기가 원하는 건 뭐든지 들어주며 매일 초호화판 파티를 열고, 난교를 하는 등 아주 인간 막장의 극치를 보여주었고 심지어는 달기의 말에 술로 호수를 만들고 고기로 숲을 만드는 주지육림을 만들어 진탕 노는 것에만 정신이 팔렸다는 것.

기자비간이 좋은 말로 간하여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기자는 "상아[5]로 만든 젓가락을 쓰면, 보통 그릇에 만족하지 못하고 옥으로 그릇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옥그릇을 만들면 그 그릇에는 보통의 음식은 담지 못하고, 진수성찬만을 담아야 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사치를 그만둘 것을 간했지만, 주왕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죽임을 당할 것을 우려해 미친 척하고 노예로서 숨어버렸다고 한다. 비간도 잔혹한 형을 그만둘 것을 간했다가 주왕이 "듣자하니 성인심장에 7개의 구멍이 있다면서? 니 가슴팍을 갈라서 확인해봐야 겠다"며 비간의 심장을 갈라 죽였다고 한다.[6]

그 당시 은의 삼공은 구후, 악공, 서백(西伯) 창(후의 주문왕)의 세 사람이었다. 주왕은 구후의 딸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듣고 강제로 구후의 딸을 첩으로 삼았다. 이에 분노한 구후가 악공과 함께 주왕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키려 했다가 음모가 들통나자 주왕은 구후와 악공을 붙잡아 구후는 젓갈로 담그는 사형에 처했다. 악공은 육포로 만드는 사형에 처했다.

간신배 비중이 서백도 반란에 가담한 혐의가 있다고 고하자 주왕은 서백을 유배시켰다가 서백창이 자신의 영지와 보물을 바치자 풀어주었다. 이 일로 서백창의 아들은 원한을 품고 주왕을 타도할 기회만을 노리게 되는데, 서백창이 죽고 아들이 뒤를 이으니 이 사람이 바로 무왕이다. 무왕은 문왕의 위패를 실은 수레를 앞세우고 천하의 제후들을 모두 모아 주왕과 결전을 치르려 했으나, 하늘에서 무왕을 만류하는 목소리가 들려 2년 동안 출전을 보류하다가 2년 후 다시 은으로 쳐들어가서 목야라는 곳에서 주왕과 최후의 결전을 치르게 된다.

이때 주왕은 무려 70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있었지만 이들은 대부분이 노예들인 오합지졸들이었고, 제후들의 정예병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결국 목야에서 캐발린 주왕은 마지막에 스스로 수도에 불을 지르고 자살했다. 그 시체는 무왕이 찾아내서 목을 쳤다고 한다.

온갖 안 좋은 이미지는 다 달고 있다. 주지육림, 포락지형 하면 빠짐없이 시조로 거론되는 인물. 하나라의 걸왕와 함께 세트로 묶여 '걸주 같다'는 말을 만든 장본인. 요새 표현으로 치자면 인간 막장, 인간 쓰레기 정도의 표현들이다.

3. 재발견

하지만 춘추전국시대 당시에도 너무 악행들만 달고 다닌다고 쓰여있어, 그 진위가 매우 의심스럽다고 할 정도였다. 공자의 제자인 자공은 '어떤 사람이 나쁜 짓을 좀 했다고 세상의 모든 악명을 그에게 덮어 씌운다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7] 그리고 '주왕의 잘못이라 쓰인 것은, 실제로 보면 그렇게까지 심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제신의 행적에 대해 어느 정도 재평가가 이루어진 것은 먼 후대에 상나라 시대의 갑골문이 발견되면서부터다. 갑골문에 의하면, 상나라의 군주 제신은 천지신명에 충실하게 제사를 지냈고 동쪽의 인방[8]을 평정해 오히려 상나라의 국세는 왕성했다고 한다. 이는 제신이 제사를 게을리하고 국정은 내팽개친 채 주지육림에 빠져 지냈다는 사기의 기록과는 선뜻 다른 것이다.

방탕과 사치의 상징인 주지육림도 제사의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게다가 갑골문에 의하면 상대의 전통적 제사 방법인 산 사람을 희생물로 바치는 제도를 폐지한 것이 바로 제신이라고 나온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전보다 많이 줄어들었다에 더 가깝고, 이후 주나라춘추전국시대 때도 여전히 횡횡했었지만.

이를 미루어 본다면 방탕하고 난폭한 인물이라는 기록은 왜곡된 기록일 개연성이 크다. 제신이 제사를 충실하게 지내는 것을, 주의 문왕과 무왕이 왜곡시켜서 술 연못과 고기 숲을 만들었다고 했다는 것이고, 이는 선대 나라의 마지막 왕을 깎아내리고 자신이 새 나라를 세우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얻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또한 제신이 사치하고 방탕했다는 기록은, 제신 개인에게 힘이 집중되던(즉 왕권이 강화되던)[9] 상황에 대한 소국들의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상나라는 말기에 형제나 숙부 등이 계승하기도 하던 왕위의 부자 상속이 4번에 걸쳐 연달아 나타나는 등 왕권이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제신은 아예 서자인 이복형도 끌어내리고 부자 계승의 끝이라 할 수 있는 적장자 계승으로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전근대 시절만 하더라도 왕국에서 왕의 왕권이 강하고 중앙집권적일수록 국가도 강한 게 일반적이었다.

즉 왕권이 굳건하다는 것은 상나라가 초기의 소국 연합 체제에서 한 일족을 중심으로 한 중앙국가라는 안정적인 국가의 형태를 갖춰가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상나라에 권력이 집중되자 자연스레 주변국의 힘은 약화될 수밖에 없었고, 여기에 대한 불만이 주지육림 등의 설화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갑골문을 연구한 학자들은 상나라에서 주나라로 주 세력이 넘어간 역성혁명의 실체는 주왕이 폭정을 해서가 아니라 상나라황하에 위치한 상나라 동쪽의 동이라고 불렀던 이민족을 상대로 동진 정책을 펴는 사이에 서쪽에 있던 강력한 제후 세력인 주나라가 상나라를 기습했고, 그걸 막아내지 못한 상나라가 멸망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주 무왕의 입성 당시 상나라인인 백이와 숙제가 이탈하는 등, 이 기습 공격이 정당하지 못하다는 여론이 형성되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서 하늘의 뜻에 따라 폭군을 주살했다는 식으로 정당화한 것이 사기에 나온 왜곡된 기록들일 것이라는 것. 애초에 천명사상 자체가 상주 혁명 성공 이후에 등장한 것이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상당하다.

이에 따르면 상주 혁명은 새로운 중앙권력에 맞는 체제를 위해 제신과 달기가 희생되는 과정으로 파악할 수 있다. 상나라는 여타 부족과의 혼인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힘을 얻어 나갔지만, 일정 이상으로 왕권이 커지려면 오히려 이들을 배제해야만 했다. 그러나 태고太古의 상나라 시대의 체제로는 그것이 힘들었고, 이것이 설화 상의 긴장 관계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 불균형이 상나라의 부족신인 제(帝)를 넘어 보다 보편적인 천명론을 들고 나온 주나라에 의해 해소되는데, 이 과정에서 희생되는 것이 제신, 그리고 왕권 강화를 제약하던 주변 세력의 상징으로서 달기였다는 것이다.

거기다 제신이 자제를 하게 했다고 한들, 상나라의 인신공양 항목을 보면 알다시피 상나라는 기본적인 인습 자체가 너무 잔인하고 주변에게 큰 민폐라서 원한이 철철 넘쳐흘렀다. 이 왜곡은 상나라라는 나라 자체에게 가지고 있던 주변국들의 증오와도 결코 무관하지 않았다.

상나라는 주변 민족을 앞서가는 첨단 문물의 상징인 청동기를 앞세워 허구한 날 주변을 족쳐가며 대대적인 인신공양과 식인을 저지른 나라였다. 제신이 저질렀다고 사기에 기록된 만행들도 사실 상나라에서 공포를 주기 위해 꽤 많이 행하던 것들이며, 거기다 저 만행들은 춘추전국시대까지도 빈번한 일들이었다. 애초에 상의 주특기가 전쟁과 제사인데, 이 둘이 연결되다 보니 인신공양이 성행할 수 밖에 없었다.

상나라가 유달리 심했다는 거지, 주나라도 잔혹성을 줄였지만 여전히 잘만 행했고, 춘추전국시대 당시 온갖 나라들이 태연히 인신공양과 식인, 순장을 행했다. 이 풍습이 사라지기 시작했던 것은 仁을 내세운 제자백가유가 발흥 이후부터 일어난 일이다.

애초에 고대에는 인권이라는 개념이 없었으니, 딱히 제신 개인이 특출나게 악한 왕은 아니었을 것이다. 인습 자체가 아즈텍 제국만큼은 아니었을지언정 오만가지 방식으로 사람을 바치고 죽여댔으니, 제신 본인이 온건했다고 한들 주변국들이 상나라에게 오랜 세월 동안 쌓인 원한이 사라질 턱은 없었다.

따라서 사기에 기록된 제신의 일화들은 제신 개인의 악행이라기보다는 상나라가 다른 나라의 포로들에게 벌인 잔혹한 행위에 대한 이야기들이 축적되어 주나라의 프로파간다로 활용되었다고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정리해보자면 비록 제신이 사기 등의 문헌에 보이는 것처럼 세기말 폭군 수준은 아니었더라도, 결국 상나라가 본래부터 가진 문제점인 인신공양을 비롯한 특유의 잔혹한 문화와 정책이 상의 멸망 원인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즉 이건 상나라라는 국가 체제의 문제가 주나라로 인한 멸망을 불러들였다고 보는 게 옳다.

4. 대중문화에서 제신

4.1. 봉신연의의 등장 인물

모티브는 위 항목의 제신. 원래는 성군이었는데 여와의 사주를 받은 달기 때문에 폭군으로 타락했다. 달기와 자매들이 인간이 아니란 걸 알고도 정을 통하는 근성가이.

4.2. 봉신연의(만화)의 등장 인물

파일:attachment/chuou.png

주왕(紂王, ちゅうおう). 애니메이션에서의 성우는 마츠다 유우키/최준영(선계전), 나미카와 다이스케(패궁).

기본적인 사항은 원작소설과 같다. 어렸을 때부터 은의 태사 문중으로부터 지도를 받은 덕분에 약간 여자를 밝히는 점을 제외[10]하면 거의 단점을 찾기 힘들 정도로 뛰어난 성군이며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도 훌륭한 인물이었다.

그러던 것이 달기의 섭혼술 때문에 다 틀어져버려 달기의 말만 듣는 바보가 되어버렸고 가끔 잔인한 일들을 하면 거부감을 느끼는 상식 정도만 남아있었다. 가끔 달기가 옆에 없거나 문중 때문에 제정신으로 돌아올 때도 있으나 가뭄에 콩나듯 하는 수준.

여기에 더해 문중이 봉신되고나자 끝끝내 달기 세 자매에 의해 개조까지 받아 괴물과 다름없는 힘까지 지니게 되며[11] 미쳐버리고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혼자서 주의 군대와 태공망 일행을 상대할 정도가 된다. 안습.

마지막에 자신 곁에 더이상 아무도 없다는 현실을 직시해 겨우 사람으로 돌아왔으나 그때는 이미 지킬 것은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은데다가 부작용인지 백발의 노인의 모습이 된다. 씁쓸함 속에서 황천화의 마지막 도전을 담담히 받아준 뒤 자포자기에 가까운 패배를 맞이했으며, 스스로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무왕에게 죽음을 맞이한다.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달기에 대한 연심이 남아있었던 듯. "유혹술이 걸려 있지 않은 지금도... 달기를..."

선계전 봉신연의에서도 기본적인 사항은 위와 비슷하다. 다만 달기의 유혹술에 걸려있을 때 코믹스판보다 더 찌질한 모습을 보인다. 마지막에 괴물의 모습이 된 채 정신을 차리고 달기를 공격하나 오히려 역습을 당한 뒤, 문중의 품에서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그러나 원작과 달리 여기서는 정신을 차린 이후 달기에 대한 연심은 온데간데 없어졌고, 오히려 그녀를 만악의 근원 취급하며 같이 죽자고 자폭하려 드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신차린 후 원한이 증폭했나...[12]


[1] 주나라에서 붙인 악시(惡諡).[2] 여씨춘추 당무(當務)편에 의하면 '어미를 같이한 형제가 미자계(微子啓), 중연(中衍), 그 다음이 수덕(즉 주)라고 한다. 주의 어미는 계와 중연을 낳았을때는 당시 그녀가 첩이었고, 얼마 안 돼 본처가 되어 주를 낳았다. 미자계를 태자로 삼으려고 했더니 태사가 법으로 "본처의 소생이 있으면 첩의 소생을 세울 수 없다."라고 하여 주가 후계자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편에서는 법조문에 얽매어 태자를 세웠으므로 천하가 어지러워졌다는 뜻으로 넣은 항목이다.[3] 상나라는 제(帝)라는 신을 섬기고 있었는데 30대왕 제을에 이르러서 제(帝)라는 이름을 씀으로써 신권 사상이 극을 달했다고 볼 수 있다. 천신(天神) 보기를 우습게 여긴 왕은 28대왕 무을(武乙)이라는 왕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날벼락 소리에 놀라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선왕 제을은 덕왕으로 시호가 기록되었으며, 적자이지만 차자인 제신을 총애하여 제(帝)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는 설이 있다. 신(辛)이라는 이름에 얽힌 설화로는 당대에 동이가 은나라의 최대 골칫거리로 전락하였는데 제을 때까지 제압하지 못한 동이를 제신에 이르러서야 완벽하게 제압하여 정복시켰으므로 그가 무섭다는 의미로 신이라는 이름이 내려진 설화도 있다. 그 외엔 저를 신으로 등극시키려는 의미로 신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별칭으로는 주신이라는 별칭도 따로 있다.[4] 이렇게 재물을 쌓아둔 누각이 있었는데 이를 녹대(鹿臺)라 불렀다. 후일 자결할 때 여기에 불을 지르고 죽었다고 한다. 사방 1리에 높이가 1000자였다고 하는데(전한 기준 척관법으로도 거의 육삼빌딩 높이다.) 기와 하나 똑바로 못만들던 기술 수준으로 현대에도 짓기 힘든 건물을 지을 수 있을 리 없으니 그야말로 과장된 기록이라 할 수 있다.[5] 고대 중국 중원 지방은 밀림이 우거져 있고 코끼리가 살았으므로 상아를 구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당시 갑골문의 기록을 보면 코끼리는 군대를 동원해서야 겨우 몇 마리 잡을 수 있었으며, 몇 마리 잡은 것을 기록으로 남겨 기념할 정도로 잡기도 힘들었다. 상아도 그만큼 귀한 물건이었을 것이다.[6] 참고로 7개는 정상보다 많은 게 아니라 오히려 하나 적은 거다. 정상인은 폐정맥 4개, 폐동맥 1개, 대동맥 1개, 대정맥 2개로 8개. 폐정맥 2개가 서로 붙어 있거나 한 경우에 7개가 가능하다.[7] 子貢曰, "紂之不善, 不如是之甚也. 是以君子惡居下流, 天下之惡皆歸焉. 이 말을 한 배경은 자공 항목 참조.[8] 人方이라고 쓴다. 상나라에서 方은 방향이라는 뜻도 있지만 복종하지 않는 나라를 뜻하기도 하므로 여기서 인방은 나라 이름이다. 사람 인(人)이 두 사람이 기대는 모습이라는 헛소리도 있지만, 실제로 한 사람의 옆 모습을 본뜬 글자이고 오랑캐 이(夷)와 뿌리가 같은 말이다. 그래서 동이의 원래 뜻이 바로 인방이다.[9] 상나라의 나라 구조는 왕으로 대표되는 상족과 점복을 도와주는 정인과 복인으로 대표되는 지방 세력이 연합한 구조였다. 초기에는 이들 간의 힘의 차이가 별로 없었으나 후기에 들어 권력 승계 구조가 형제 상속에서 적장자 상속으로 옮겨지자(힘이 집중되기에 용이함) 왕은 제사를 지낼 때 신의 뜻을 해석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로 성장하며 이를 기반으로 왕권을 강화한다. 더불어 당시의 가치관이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변화하며 이러한 추세는 주공 단의 천명사상으로 완성되어 현대까지의 중국 역사의 큰 틀로 자리잡는다.[10] 사실 약간은 아니고 상당히 밝혔다(...). 달기에게 홀리기 전부터 부인이 이미 수백명이었다고 하며 달기를 자신의 아내로 바치지 않으면 기주를 멸망시킬거라는 서신을 보내거나 작중엔 황비호의 아내인 가씨를 강제로 취하려고 하는 등...[11]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대 은 나라의 개국 군주인 '탕왕'의 힘. 주왕 대에는 피가 흐려져서 본래 탕왕과 같은 힘을 쓸 수는 없었지만, 달기의 개조를 받아 억지로 힘을 끌어내게 된다.[12] 사실 달기에게 당해서 지금까지 본인이 겪었던 일들과 저질렀던 행각들을 다 깨닫게 되면 그 원흉인 달기를 원망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기가 더 힘들 것이다. 결정적으로 그 주변에 자신의 둘째 아들까지 있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