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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황룡사 금당 치미 (높이 186cm) 출처
고구려 안학궁 치미 (높이 210cm) 출처
다른 치미들과 크기 비교 출처
1. 개요
동아시아 건축에서 건물 지붕을 장식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와의 한 종류이다. 고대 즈음 부터 생기기 시작한 양식으로 보인다.주로 건축물 맨 꼭대기인 용마루 양 끝으로 뿔처럼 설치한다. 꼭 궁궐에서만 한정하여 사용하진 않았지만 지붕 위에 무언가를 더 올리는 것 자체가 매우 사치스러운 행동이었기 때문에 적어도 불교 사찰 같은 종교 건축물이나 왕궁 정도는 되어야 치미를 달았다.
2. 명칭
치미(雉尾)란 한자 그대로는 '솔개꼬리'라는 뜻이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치미(雉尾)'라고 부르고 중국에서는 '치문(鴟吻)'이라고 부르는데 뜻은 같다.이 기와는 용마루 끝에 올려지는 것으로, 흔히 '치미(雉尾)'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치미'라는 용어는 그 모양이 올빼미 꼬리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어서 이 기와의 쓰임새나 성격을 잘 대변하는 명칭은 아닙니다. 망새(순우리말)는 마루 끝에 장식하는 기와를 부르는 말이므로 적절한 용어라 여겨집니다.
국립경주박물관 출처
국립경주박물관에 따르면 망새가 더 건축 용어로서 맞는 표현이라 한다.국립경주박물관 출처
3. 형태
다양한 장식용 기와 형태. 각각 형태의 유사성을 눈여겨 볼 것.
4. 용미
고려시대 관경변상도에 나타난 용미 | 현대의 용미 |
이렇게 생겼다. 고려 시대엔 이런 형태의 장식 기와를 주로 썼다.
치미는 이후 용미(龍尾)->용두(龍頭)와 취두(鷲頭, 독수리 머리)의 형태로 변형되며 건축을 장식하는 장식용 기와로서 역할을 이어간다. 정확히는 송나라 양식을 수입한 고려 시대부터 용의 머리와 물고기의 꼬리를 가진 용미가 쓰였고, 조선 시대에는 용미가 좀 더 간소화된 형태의 용두와 취두가 쓰였다. '치미'가 건축물 자체의 위엄을 높이고 하늘과 땅의 매개자인 새의 모습을 형상화한 종교적인 의미로 쓰였다면, '용미'는 위엄을 높이는 용도 이외에도 수신(水神)인 용의 기운을 형상화하여 화재에 취약한 목조 건축물의 안녕을 바라는 액막이 역할 또한 갖게 되었다.
용미를 쓴다는 것은 정말로 사치스럽고 격식 높은 행위였기 때문에, 서긍의 고려도경을 보면 거란 사신이 올 때 마다 개경 사람들이 건물 위에 올려놓은 용미와 치미를 철거해서 숨겨놓았다는 묘사도 있다.(...)
중국에서는 송나라 이후로 용미를 비롯한 화려하고 장식적인 기와가 많이 쓰였지만, 한국에서는 조선 건국 이후 검소와 질박을 강조하는 성리학 이념에 따라 점차 장식기와가 생략되거나 형태가 단순화되고 대신 지붕 위에 자그마한 잡상들을 올려 장식하는 경향을 보인다. 일본에서도 후대로 갈수록 생략하는 경향이 있지만 예외로 현대에 재건한 오사카성 천수각 위에 올려진 금박 입힌 용미 같은 사례도 발견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상상 속 물고기 괴수인 샤치호코 형태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조선시대 후기 때도 용미를 궁궐 건축에서 사용한 적이 있었다. 심지어 강화행궁과 외규장각 전도에서 묘사한 용미는 금칠까지 되어있었다.
5. 용두와 취두
조선 후기의 취두 | 용두 | 경회루의 장식기와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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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로 가면서 장식기와는 더욱 형태가 단순해진 취두와 용두를 주로 쓰게 된다. 취두와 용두를 함께 쓰기도 하거나 둘 중에 하나만 쓰기도 한다. 같이 쓰는 경우 취두는 주로 용마루 양 끝으로 올라가고, 용두는 내림마루와 추녀마루 사이로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경회루 장식기와 배치를 보면 조선후기 장식기와의 예시를 잘 알 수 있다.
조선시대 때는 아주 격조높은 건축에서만 제한적으로 장식기와를 허용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사용하는 빈도와 종류가 적어졌다. 현대에는 신분과 격조별 제한이 사라졌기에 최근에 새로 짓는 한옥이나 사찰에서 치미와 용 모양 장식기와를 전통의 재발견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재도입하는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2022년 태안에서 발견된 조선 전기의 취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