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7 12:47:18

석파정

한국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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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존하지 않는 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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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25호 26호 28호[1]
황학정 석파정 삼층석탑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6호
석파정
石坡亭
소재지 <colbgcolor=#fff,#191919>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의문로11길 4-1
(부암동 산16-1, 201)
분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조경건축 / 누정
수량 / 면적 건물 4棟, 각자바위 2基, 정자 초석 1基, 토지 1,108.4㎡
지정연도 1974년 1월 15일
파일:석파정.jpg
<colbgcolor=#ae1932> 석파정[2]
석파정 서울미술관에서 제작한 석파정 해설 영상
1. 개요2. 역사3. 석파정 서울미술관
3.1. 관람
4. 시설
4.1. 석파정(정자)4.2. 삼계동 각자4.3. 너럭바위
5. 대중매체에서6. 석파정 별당

[clearfix]

1. 개요

흥선대원군의 별서[3]였다. 이름은 흥선대원군의 호인 '석파(石坡)'에서 따왔다. 부암동에 있으며 정자와 사랑채, 안채, 별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는 별서 전체를 석파정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석파정 명칭 자체는 정자 하나만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래서 가옥 부분을 정자와 구분하고자 '흥선대원군 별서'로 구분해서 부르기도 한다.

2. 역사

원래는 안동 김씨 세도가의 일원으로서 철종영의정을 지냈던 김흥근의 별서 '삼계동정사(三溪洞精舍)'이었다. 삼계동정사가 있는 자리는 경치가 굉장히 좋기로 유명했던 곳으로, 세종의 3남 안평대군 역시 이 주변의 경치에 반해 근처에 별서 무계정사를 세울 정도로 빼어난 풍광에 반한 고위층들이 별서를 두던 동네였다.
파일:흥선대원군 이하응.jpg
<colbgcolor=#ae1932> 집권 후 석파정의 새 주인이 된 흥선대원군
고종 즉위 후에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소유로 넘어갔다. 이와 관련한 재미있는 야사 하나가 있다. 안동 김씨 세도를 꺾고 집권한 흥선대원군은 세도가의 핵심 인물이었던 김흥근의 경치좋은 삼계동정사를 자신이 차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김흥근이 순순히 내줄 리 만무했기 때문에 흥선대원군은 한 가지 묘수를 고안해 냈다. 바로 자신의 아들인 고종을 삼계동정사에 행차하게 한 다음 하루 자고 가게 한 것. 조선의 관례에 따르면 임금이 하루라도 머문 장소는 일종의 불가침 장소가 되어서 감히 신하가 머물 수 없었고, 결국 김흥근은 눈뜨고 흥선대원군에게 삼계동정사를 넘길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때 별장 주변의 장엄한 바위에 감탄한 흥선대원군은 자신의 호를 '석파(石坡)'로 짓고 별서의 이름도 '석파정(石坡亭)'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흥선대원군 사후에는 흥친왕, 영선군, 이우가 세습해서 쓰다가 6.25 전쟁이 끝난 뒤에는 천주교에서 코롬바고아원으로 사용했다. 그후에 병원에서 활용하다가 개인 소유로 넘어갔고 여러 번 경매에 오르는 등 소유자가 자주 바뀌었다.#

1974년 1월 15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 25호로 지정받았다.

2004년 12월에 빚으로 힘들어한 당시 소유자가 경매에 내놓았는데 2번이나 유찰되었다. 거의 대부분 부지가 문화재보호구역, 군사시설보호구역 등 개발이 제한된 구역이라 낙찰이 쉽지 않았던 듯 하다.

3. 석파정 서울미술관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fff><tablebgcolor=#fff> 석파정 서울미술관
Seokpajeong Seoul Museum
}}} ||
<colcolor=#ffffff> 위치 <colbgcolor=#ffffff,#2d2f34>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의문로11길 4-1
(부암동 201번지)
국가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전화 02-395-0100
관람 여부 정상 개관
관람 시간 수요일 ~ 일요일 10:00 - 18:00(M1 본관)
11:00 ~ 17:00(M2 신관 · 석파정)
월요일 ·화요일 휴무
홈페이지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4]
SNS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석파정 서울미술관.jpg
<colbgcolor=#000> 석파정 서울미술관 본관[A]
파일:석파정 서울미술관2.jpg
석파정 서울미술관 신관[A]
[clearfix]
2006년 안병광 유니온약품그룹 회장이 63억 1,000만원에 낙찰했다.# 미술애호가인 안 회장은 석파정 입구에 사재로 미술관을 설립했고, 이름을 '석파정 서울미술관'으로 지은 후 2012년에 개관했다.# 문화재 구역이라 허가받는 기간만 5년, 공사 기간은 2년이었다고 한다. 석파정 서울미술관 홈페이지

미술관 유지가 어려워 면세점을 입점시키는 방안으로 임대료를 이용해 수익을 보전하고 있다. 면세점
그러나 중국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면서 미술관 앞 인도길은 흡연으로 인해 통행에 불편함이 있다. 주변의 민원으로 종로구에서 나와 협조를 요청한 상황이다.

3.1. 관람

기존에는 석파정만 별도로 입장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석파정과 통합 관람 체계로 운영하고 있다. 즉, 석파정과 미술관을 따로는 못보고 반드시 같이 관람하게끔 만들었다. 관람일은 매주 수요일 ~ 일요일이고,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쉰다. 관람시간은 구역별로 다르다. M1(본관)은 10시 ~ 18시, M2(신관) · 석파정은 11시 ~17시이다. 입장료는 성인 20,000원, 학생(초 · 중 · 고 생) 15,000원, 우대/어린이(36개월 이상 미취학 아동)는 13,000원이다. 우대자는 만 65세 이상 본인, 국가유공자 본인, 군인 본인, 장애인 및 그 동반자 1인이다.

주차는 입차시간 기준 주말 1시간 30분, 평일 2시간 무료주차이다. 다만 주차장이 매우 좁으니 가능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4. 시설

총 건물 8채로 이루어진 권역이다. 안태각(安泰閣), 낙안당(樂安堂), 망원정(望遠亭), 유수성중관풍루(流水聲中觀風樓) 등이 있다.

4.1. 석파정(정자)

파일:석파정(정자).jpg
<colbgcolor=#ae1932> 석파정(정자)[7]
석파정 권역 안쪽에 있는 정자이다. 청나라 양식을 많이 가미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보기 어려운 스타일의 건물이다. 원 소유주 김흥근이 청나라에서 장인들을 불러 지었다는 설도 있으나 확실한 건 아니다.

백운동천 계곡이 흐르는 곳 위에 벽돌 기단을 쌓고 건물을 올린 형태인데, 기단 각면 가운데에는 아치로 홈을 파두었다. 가장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부분은 문살 · 난간 모양과 석파정으로 들어가는 평석교이다. 바닥 마감재는 화강암인데, 이 역시 나무 마루로 바닥마감을 하는 게 일반적인 조선 가옥과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4.2. 삼계동 각자

파일:삼계동 각자.jpg
<colbgcolor=#ae1932> 삼계동 각자[8]
사랑채 서축 후면의 암반에 새겨진 글자이다. 김흥근이 이곳에 살 때 판 것으로 추측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부근에서 시내 3개가 만난다하여 '삼계동(三溪洞)'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4.3. 너럭바위

파일:너럭바위.jpg
<colbgcolor=#ae1932> 너럭바위[9]
석파정에서 가장 구석진 곳에 있는 바위이다. 굉장히 우람하고 위압적인 바위로, 코끼리와 닮았다하여 코끼리 바위로 불리기도 한다. 인왕산의 영험한 기운을 담고 있다하여 예전부터 서울 내 치성 장소로 인기를 끌었던 곳이다.

5. 대중매체에서


파일:명성황후 석파정.jpg}}} ||
<colbgcolor=#ae1932> 〈명성황후〉 석파정
2002년 KBS 2TV 드라마 〈명성황후〉에서는 실제처럼 흥선대원군(유동근 분)의 별장으로서 첩 추선(김혜선)이 옥선(이현경 분)과 대화하는 곳으로 나왔다.

왕이 사랑한 정원인 이곳은 한때 흥선대원군의 별장으로 대원군의 호를 따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또한, 고종은 ‘이곳’을 행궁 시 임시거처로 사용하며 신하들과 함께 국정을 논의하기로 했는데요. 빼어난 산수와 계곡, 사계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으며 왕의 국사와 쉼이 모두 이루어진 가장 안벽한 공간인 ‘이곳’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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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bordercolor=#552582> 석파정 ||
}}} ||
2019년 11월 12일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 43회에서 세 번째 참가자에게 낸 질문의 답이었다.

6. 석파정 별당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22호 23호 25호[10]
안평대군 이용 집터 석파정 별당 황학정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호
석파정 별당
石坡亭 別堂
소재지 <colbgcolor=#fff,#191919>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 309
(홍지동 125-2)
분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가옥
수량 / 면적 건물 1棟, 토지 85.2㎡
지정연도 1974년 1월 15일
파일:대원군별장.jpg
<colbgcolor=#ae1932> 석파정 별당[11]
[clearfix]
석파정에 딸린 사랑채. 홍지동에 있으며 석파정과는 걸어서 14분, 버스로 11분 정도 걸리는 위치에 있다. 원래 석파정 경내에 같이 있었으나 1958년에 서예가 손재형이 자신의 집 바로 위인 현재 자리로 옮겼고, 작품 활동을 하는 장소로 활용했다.

1974년 1월 15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 23호로 지정받았다. 1981년 손재형이 세상을 떠난 후 가옥은 타인 소유로 넘어갔다. 1993년에는 한정식당 석파랑(石坡廊)으로 바뀌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으며, 석파정 별당 역시 석파랑에서 소유하고 관리 중이다. 한동안 비공개로 있었다가 2012년 겨울에 완전히 공개되었다. 석파랑은 현재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받았다.

건물 평면은 'ㄱ'자 형태로, 원래는 'ㅡ'자 였다는 설도 있다. 지붕은 맞배지붕이고 처마는 홑처마이며 공포없는 민도리집이다. 건물 측면 끝마다 전돌로 쌓은 벽을 두었으며 벽 가운데에 창을 두었는데 서쪽 창은 원형, 북쪽 창은 반원형, 동쪽 창은 사각형이다. 전반적으로 청나라풍이 나며, 조선 후기 상류층들의 별장 양식 특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물이다. 가운데에 대청이 있고 양 옆으로 온돌방이 있는 형태이다. 앞으로 돌출된 방은 흥선대원군이 주로 사용했던 방이고, 대청은 그 유명한 난초 그릴 때 쓰던 곳이며, 건너방은 손님을 대접할 때 활용했던 방이라고 한다. 마루 안쪽에는 난간을 설치해 고급스런 느낌을 자아내게 했다.

[1] 27호 한글고비는 2007년 9월 18일에 보물 제 1524호로 승격하면서 해지되었다.[2]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이영천 기자: 〈석파정에 남은 중국풍 건축물, 흥선대원군은 이를 어찌 봤을까〉.[3] 별장과 비슷한 개념이다. 별장과 다른 것은, 별장은 잠깐 머물다 가는 개념이라면, 별서는 좀 더 오래 머문다는 차이가 있다.[4] 공식 홈페이지[A] 사진 출처 - 연합뉴스.[A] [7] 사진 출처.[8] 사진 출처.[9] 사진 출처.[10] 24호 석불좌상은 문화재청에서 2018년 4월 20일에 보물 제1977호로 승격시키면서 해지했다.[11]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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